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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내가 사는 이유/대하 2:11-12
11. 두로 왕 후람이 솔로몬에게 답장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사랑하시므로 당신을 세워 그 왕을 삼으셨도다
12. 또 가로되 천지를 지으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는 송축을 받으실찌로다 다윗왕에게 지혜로운 아들을 주시고 명철과 총명을 품부하시사 능히 여호와를 위하여 전을 건축하고 자기 권영을 위하여 궁궐을 건축하게 하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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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봄이 열리는 삼월이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은 3월에 맞는 시 한편을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이 시는 김상용 시인의의 "남으로 창을 내게소"
여러 시 가운데 이 시가 우리 마음속에 삼월에 기억하기 좋은 시입니다.
마지막 연이 가슴에 다가오지 않습니까!
"왜 사느냐고 묻거든 웃지요"
새 학년이 시작이 되어서 입학을 하기도 하고 한 학년이 진급이 되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새 봄과 함께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여러 장소에서 바쁘게 자기의 길을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왜 바쁘게 살아가야 되는지,
내가 지금 어느 곳으로 달려가고 있는지"를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될 것입니다.
왜 사느냐고 사람들이 묻는데 그저 웃고만 있어서는 곤란합니다.
김상용 시인은 그렇게 말해도 되는데 성도들은 왜 사느냐고 물으면 분명하게 대답해 주어야 합니다.
"나는 바로 이것 때문에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아니면 내가 죽기 때문에 이것을 위하여 내가 지금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런 대답을 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다윗에 이어서 이스라엘의 3대 왕이 되었던 솔로몬, 이 분은 정말 바쁜 왕이었습니다. 왕이 돼서 정치 조직을 다시 개편하기도 하고 군비도 증강을 했습니다. 정부 조직도 아주 튼튼히 했습니다. 다른 나라와 외교적인 관계도 잘 맺어 나갔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는 준비가 만만치 않은 일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시를 쓰고 또 저술 활동을 쉬지 않았습니다.
잠언을 쓰고, 시편을 쓰고, 전도서를 기록을 했습니다. 성전 건축을 준비하기 위해서 이웃나라인 두로라는 나라에 후라몬 왕에게 사람을 보냈습니다. 성전 건축에 필요한 재료들을 보내 주고 사람도 보내 달라는 그런 청을 했습니다. 기꺼이 후라몬 왕은 그렇게 하겠다고 답변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가 해 온 답변 가운데 아주 중요한 내용이 나옵니다.
솔로몬이 왜 사는지, 솔로몬의 존재의 이유를 이 후라몬 왕이 몇 마디 말로 잘 요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로왕 후람이 요약한 이유는 우리 각자가 우리의 삶을 사는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솔로몬이 사는 이유를 발견하고 아울러 내가 왜 사는지를 발견하는 그런 귀한 은혜로운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먼저 후람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사는 이유를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산다."고 말했습니다.
11절 말씀입니다. "두로 왕 후람이 솔로몬에게 답장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사랑하시므로 당신을 세워 그 왕을 삼으셨도다."
첫 번째롤 솔로몬이 사는 이유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사랑하며 섬기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솔로몬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이 사랑하는 백성들을 사랑하며 섬기게 하기 위하여 솔로몬이 산다고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하기 위한 도구로 우리 하나님은 솔로몬을 선택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백성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솔로몬이 사는 분명한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왕이 되었을 때, 일천번째 절을 하나님께 올리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주랴? 청하라."
솔로몬은 한 가지를 청합니다. 그는 돈을 청하지 않았습니다. 부귀 영화를 청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맡겨 주신 백성들을 잘 사랑으로 인도하고 재판할 수 있는 지혜를 청했던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사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백성들을 위한 존재, 타자를 위한 존재를 그가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독재자나 나쁜 정치는 백성을 하나의 수단으로 봅니다.
자기의 정권을 연장해 줄 이용 대상으로 봅니다. 혹은 자기를 정치에 나가게 해줄 한표 정도로 보게 됩니다.
자기 자리를 유지해 줄 사람들로 보게 됩니다.
그러나 좋은 지도자와 좋은 정치인은 백성을 바라볼 때 내가 사랑해 주어야 할 상대, 내가 도와주고 내가 섬겨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만나는 여러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그 사람들을 경쟁 상대로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수단도 아닙니다. 그들은 바로 우리가 사랑해 주어야 할, 우리가 섬겨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우구스투스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사람은 그가 알고 있는 것으로 평가 될 것이 아니요 그가 사랑하는 것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
이 말은 지당한 말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능력, 그것 가지고 세상은 평가하지만 진짜 귀한 평가는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 얼마나 사랑하며 사는가, 무엇을 사랑하며 사는가, 그것에 따라서 우리 인생의 모든 의미는 달라진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땅에 오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실 때 이 땅을 정복하고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착취하고 사람들을 군림하기 위하여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요한복음3:16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세상을 사랑하셔서 하나님을 사랑할 도구, 바로 그 도구로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 귀한 사랑을 전달할 수단으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신 이후로 일생토록 사람을 사랑하기 위하여 세상을 사랑하기 위하여 모든 권한을 다 자취하시다가 마지막에는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모든 피를 다 주시고 살을 다 주시고 결국은 참으로 행복하게 죽으셨습니다.
자기 영혼의 수고를 주님은 보시고 만족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다가 죽으셨습니다.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바로 우리가 사는 이유도 분명합니다.
누군가 나의 사랑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있기 때문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을 사랑하기 위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 땅에 보내셔서 사랑이 필요한 많은 사람들을 사랑해 줄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주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보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요즘 잘 부르는 찬송이 하나 있습니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런 노래를 부르는데 한번 불러 보실까요!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에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렇게 노래하고 있지만 이 노래 속에는 한 가지 전재가 있습니다.
"나는 바로 당신을 사랑해 주어야 할 존재"
다 사랑을 받아야 될 존재가 된다고 노래하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우리의 사랑을 전달해 줄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용서받아야 할 존재요, 나는 용서해야 할 존재, 당신은 이해 받아야 될 존재, 나는 이해해 주어야 할 존재, 그런 귀한 존재로 우리를 이 땅에 보내 주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 곳에 세운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어느 직장에 있다고 하면 그 직장에서 나의 동료를 사랑해 주고, 나의 상사를 사랑해 주고, 나의 부하를 사랑해 주기 위하여 하나님이 그 자리에 나를 세워 주셨다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대연동에 살고 있습니다.
여기에 감만동 사람들도 계시고, 용호동 사람들도 계시고, 남천동 사람들도 계십니다.
왜 우리가 그 동네에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사랑해 주어야 할 사람이 바로 근처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사랑해 주어야 할 목적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그 동네에 살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산에도 많은 교회가 있지만 왜 산성교회를 다니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바로 여기에 우리가 사랑해 주어야 할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그런 의미에서 옆에 계시는 분에게 인사를 해 보실까요!
"주안에서 당신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왜 여기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까?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내가 당신을 사랑해 주고 "당신은 나의 사랑을 받아야 할 존재" 함께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선교를 위하여 힘쓰는 존재인 것으로 우리가 여기서 예비를 드리는 줄로 믿습니다.
월남전이 한참 일 때 아주 친한 두 친구가 참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자란 친구입니다. 형제 보다 더 가깝습니다. 밀림 깊숙이 작전을 위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만 베트콩에 급습을 받았습니다. 도망가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막 철수를 하고 있는데 한 친구가 집중 부활을 받고 쓰러졌습니다. 심각한 부상을 입고 숨을 헐떡이고 있습니다.
돌아보니 그 친구는 멀리 있는 것입니다.
급하게 다른 친구가 그 친구를 구하기 위해 뛰어가려고 합니다.
소대장이 말합니다.
"이것봐 소용없어! 가 봤자 죽을 꺼야. 니 생명이나 돌볼 것이 좋을 꺼 아니야."
그러나 그 친구가 말합니다.
"소대장님 저는 가야 되겠습니다."
뛰어서 그 포하를 피해 가면서 그 친구에게 갔습니다. 얼마 뒤에 친구는 품속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것봐! 내가 무엇이라고 말했나! 소용없다고 하지 않았나!
죽었지?" "죽었습니다."
"왜 괜한 짓을 했나? 자네 목숨만 위험 할 뻔했네 그려!"
"소대장님 모르시는 말씀하지 마십시오. 제가 달려갔을 때 내 친구는 살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게 이런 말을 해 주었습니다."
"자네가 올줄 알았어! 자네가 와서 정말 행복해! 고마워! 나는 기뻐!"
"그리고는 제 품에서 죽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사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랑에 굶주려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가서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그들의 손을 잡아 주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바로 내가 사랑을 전달해 주어야 할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해 주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소용없는 사랑은 하나도 없습니다.
괜히 할 수 있는 사랑은 없습니다.
아무리 많이 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 사랑입니다.
아무리 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을 사랑해도 그것은 귀한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그 사람 사랑하는 것이 바로 내가 사는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만약에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한다면 우리는 벌써 사는 이유를 상실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러는 우리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미워할 수 밖에 는 이유를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들을 사랑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 땅에 보내 주신 줄로 믿습니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 그들을 사랑하고 섬기기 위하여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바로 그 자리에서 주님의 사랑으로 그들을 사랑하며 그들을 섬기는 삶을 통해서 내가 사는 이유를 분명히 발견하는 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두 번째로 솔로몬이 사는 이유는 성전건축이었습니다
후람은 솔로몬에게 계속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왕이 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다시 말하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솔로몬은 살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또 가로되 천지를 지으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는 송축을 받으실지로다 다윗왕에게 지혜로운 아들을 주시고 명철과 총명을 품부하시사 능히 여호와를 위하여 전을 건축하고 자기 권영을 위하여 궁궐을 건축하게 하시도다"
솔로몬이 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에게 부여된 사명을 위하여 솔로몬은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사명을 기억하고 이 사명을 이루어 드리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솔로몬의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이 땅에 보내실 때에는 반드시 보내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하실 일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두자로 "사명"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일은 세상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바쁘게 살아가고 있지만 그 모든 일을 하는 동안에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선교와 더불어 연관된 일인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우리가 바쁘게 살고 아무리 큰 성공을 얻어도 그것이 만약에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면 이것이 우리의 사는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아무런 가치가 없을 것입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이루고 큰 사업을 이루어도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선교와 더불어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결국에 우리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 사울왕은 좋은 자리에 있었습니다.
큰 권세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밖에는 몰랐습니다.
자기의 왕좌를 유지하기 위하여 혈안이 되었습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결국 그는 귀한 자라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의 인생을 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상관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아무런 연결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두아비라성에 루디아라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가는 자주 장사, 물감을 들여서 천을 파는 아주 성공한 사업가였습니다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수완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가 많은 돈을 벌고 성공했던가 하는 이유를 그는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강가에 나갔다가 바울 사도를 만났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 동안에 왜 그가 부자가 되었으며 큰 사업가가 되어서 큰집을 소유하고 재산을 가지게 되었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선교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바울에게 다가갑니다.
"선생님, 제가 돈도 많이 벌었고 집고 큰집이 있습니다. 그냥 가지 마시고 우리 집에서 교회를 시작합시다."
루디아의 집은 빌립보 교회가 되었습니다.
루디아는 유럽의 최초의 신자가 되는 그런 특권을 가졌습니다. 자기가 가진 모든 것,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와 연결될 때 그는 참으로 사는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히 밝혀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교회에 여자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여전도회 회장이었습니다.
집이 무엇이냐면 부동산을 중개하는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아파트 앞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하루 종일 받는 전화는 주로 아파트 동수였습니다.
"101동 205호 전세 나왔습니다."
손님이 오면 소개합니다.
"햇빛도 잘 들고, 값도 쌉니다."
하루 종일 아파트 동수를 말하며 살았습니다.
이렇게 바쁘게 살다가 어떤 주일에도 여전도 헌신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 집사님이 사회를 보게 되었습니다. 잘 나가는데 찬송 부를 때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제 찬송가 101동을 부르겠습니다."
너무나 쉽게 나와 버렸습니다.
당황했습니다.
왜 사람이 웃는지 몰랐습니다.
다시 "101동을 부르겠습니다."
여러분 101동과 101장을 혼동해서는 곤란합니다.
열심히 힘을 다해 일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혼돈하지 마십시오.
우리 인생은 찬송가 101장을 부르며 하나님께 영광 돌릴 인생인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것 때문에 우리는 한 주일 101동을 생각하며 사업도 하며 열심히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선교를 참으로 확장시켜 나가는 일, 복음을 전파하는 일과 더불어 연결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한 주일 바쁘게 일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 가운데 하나님이 내게 보내 주신 사명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선교를 위하여 구체적으로 사는 삶, 이 삶이 바로 그 사는 목적이 분명한 삶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세운 곳에서 열심히 일하십시오.
주님께서 그 곳에서 나를 통해 하실 일, 그 일을 반드시 주의 이름으로 이루어 드리시기만을 바랍니다.
두 석공이 돌을 깨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물었습니다.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한 사람이 말합니다.
"예, 그저 저는 먹고살려고 열심히 일을 하는데 밥도 되지 않고 돈도 되지 않습니다. 힘들어 죽겠습니다."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옆에 있는 한 석공에게 말합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예, 저는 지금 하나님의 교회에 성전을 세울 기둥을 깎아 내고 있는 중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짓고 있습니다."
누가 사는 이류를 분명히 발견한 사람입니까?
여러분 우리가 세상 속에서 힘들게 삽니다.
땀 흘리며 삽니다.
그러나 고생스럽다고 말하지 마시고 힘들다고 말하지 마시고 지금 내가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 나가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간다는 이것만 분명히 발견하게 된다면 우리가 사는 삶은 의미 있는 삶이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열심히 일하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를 위해 열심히 사업을 하십시오.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열심히 일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교회를 든든히 세워 나가기를 원하십니다.
땅 끝까지 주의 복음을 증거 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시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아니면 하지 못할 그 일, 그 일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더욱 열심히 일하시고 공부하시고 사업하셔서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이루시기 원하는 일을 마음껏 이루어 드리는 복된 인생을 사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따라오는 솔로몬이 사는 이유는 궁궐을 건축하는 일이었습니다.
후람은 계속해서 솔로몬이 사는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권영을 위하여 궁궐을 건축하게 하시도다."
솔로몬의 궁궐을 건축하게 하는 것, 그것도 세 번째로 따라오는 솔로몬이 사는 이유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며 살던 솔로몬을 위하여 하나님은 궁궐을 건축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물론 자기가 짓지만 하나님이 좋은 궁궐을 허락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는 순서가 바로 되어 있는 왕이었습니다.
궁궐을 먼저 지었습니까?
성전을 먼저 지었습니까?
성전을 먼저 지은 솔로몬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자기 백성을 위해 지혜를 먼저 구한 솔로몬에게 구하지 않았던 다른 좋은 것까지 하나님은 다 허락하셨습니다.
역대하1:12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재물과 존영도 주리니 너의 전의 왕들이 이 같음이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이 같음이 없으리라"
솔로몬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궁궐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궁궐에 집중되지 않았습니다.
먼저 구할 것을 구하고 먼저 힘써야 할 것에 힘쓴 솔로몬에게 하나님이 상급으로 보너스로 궁궐을 그에게 허락해 주신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도 우리도 다 어떤 의미에서는 궁궐을 짓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것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이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궁궐이 목적입니다. 자기 세상, 자기의 성, 그것을 잘 짓고 세워 나가는 법, 그것이 자기의 삶이요, 목적입니다. 그것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한번은 미국에 있는 산 호수에 갔습니다.
거기에 마술의 집이라는 곳에 방문할 수가 있었습니다. 큰 궁궐 같은 집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일생 동안 그 집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강박관념이 있었던지 누가 따라온다고 생각했던지 귀신이 자기를 추격한다고 생각했던지 미로를 만들었습니다.
방을 만들고 문을 이상하게 만들고 도저히 사람들이 추격할 수 없도록 아주 꼬불꼬불하게 집을 만들었습니다.
큰집을 평생 동안 만드는데 마지막에는 결국 완성을 하지 못하고 주인은 죽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바라보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자기만을 위한 궁궐을 짓는 삶, 그 삶이 얼마나 허무한 삶인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가 남긴 궁궐, 이멜다가 남겨 놓은 이천 켤레의 구두를 가지고 만든 구두 박물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가슴을 답답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삶에 집중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궁궐을 짓고 있습니다.
방법이 다릅니다.
우리는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는 이 귀한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이 보너스로 허락하시는 귀한 궁궐을 지금 지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6:33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짓지 않은 집을 주실 것입니다.
파지 않은 우물을 주시고 심지 않은 과일을 먹게 해 주실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십시오.
먼저 사랑하십시오.
거기에 초점을 두고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아름다운 궁궐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스신화 가운데 나르시스 얘기가 있습니다. 아주 미소년 나르시스는 숲속 요정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사랑을 거절했습니다.
어느날 길을 가고 있는데 목이 말랐습니다.
작은 호수 위에 가서 물을 먹으려고 하는데 자기 얼굴이 거기에 비췄습니다. 그만 자기의 얼굴을 보고 매혹 당하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잘생겼는지 쳐다보다가 물먹을 마음도 없어 졌습니다.
밥을 먹을 마음도 없어 졌습니다. 하루 종일 이틀이고 사흘이고 자기 모습만 바라보다가 자기를 사랑하다가 그만 그는 죽고 말았습니다.
그 자리에 피어난 꽃이 바로 수선화였더라 바로 이런 이야기가 신화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자기밖에 모르고 자기에 도취되어서 사는 것을 우리는 나르시스 점이라고 말합니다.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자기의 궁궐을 짓는 일에만 도취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자기 집만 짓고 자기에게만 관심을 가지는 인생은 결국에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나의 궁궐은 하나님께서 지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내 인생은 궁궐 같은 아름다운 인생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내 인생은 오두막 같은 인생이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사는 진짜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선교를 세워 나가는 일을 소홀이 하고 내 집 짓는 일, 내 궁궐을 세우는 일에만 모든 관심을 다 세운다면 결국 우리는 형편없는 인생의 집을 짓고 말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살고 있습니까?
내가 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만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하여 우리는 오늘도 살고 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사람들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내 인생의 집은 든든한 왕궁으로 세워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이루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선교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 사명에 철저하면 할수록 우리 인생의 왕궁은 더 튼튼하고 아름다워 질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주신 사명을 철저하므로 우리 인생의 집들을 아름답게 지어 나가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바로 이것이 나를 가장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성경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은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5300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그 다음에는 생명,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빈도수를 가지고는 메시지는 이렇게 만들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길이요, 내가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길이요 내가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하나님과 이웃과 자신을 참으로 사랑하며 사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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