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벌써 처서를 지나고 가을의 초입에 들어서 아침저녁으론 제법 선선한 기운이 감돈다. 한낮에는 아직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지만, 9월의 뙤약볕은 곡식을 영글게 하는 자양분이라 농부들에겐 고마운 존재다. 이달엔 계절의 풍성함과 함께 우리민족 최대의 명절 한가위도 들어있다. 그래서 고향과 옛 추억을 생각하는 계절이기도 한다.
9월엔 한옥마을을 찾아 추억여행을 떠나보자. 경남도내엔 잘 보존된 한옥마을이 곳곳에 있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옛 담장도 추억여행 온 길손들을 반긴다. 몇몇 한옥마을은 숙박체험도 할 수 있어 우리선조들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옛 정취를 즐길 수 있다. 도내 한옥마을은 추석연휴에도 관람할 수 있고, 민박을 운영하는 한옥마을 중엔 추석연휴에도 체험객을 맞는 곳도 있다.
/글·사진최춘환 편집장

현대적 편의시설 갖춘 전통한옥생활체험
김해한옥체험관
김해한옥체험관은 예부터 내려오는 한옥마을은 아니다. 김해시가 가야유적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2006년 개관해 운영하고 있다. 사랑채와 안채를 비롯해 별채, 아래채, 바깥채, 행랑채, 사당 등 7개 동 85칸의 웅장한 한옥이 관람객과 체험객들을 맞는다.
오래된 고택은 아니지만 우리 고유의 전통한옥생활을 체험하고, 선조들의 슬기와 지혜를 배울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특히 현대적인 편의시설을 갖추고 다도시연과 예절교육, 한지공예, 민속공예, 풍물놀이 등 전통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번 추석연휴에도 관람은 물론, 숙박까지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한다. 숙박체험관은 안채와 사랑채, 별채에 13개가 운영되고 있다. 행랑채에는 전통식당이 있어 전통한식을 맛볼 수 있다. 우리 고유의 정원과 장독대, 곳간을 갖추고 지게 등 민속품을 전시하고 있다.
낮은 돌담위에 조성된 탱자나무 울타리 독특
의령 오운마을
의령 오운마을은 빛바랜 세월만큼이나 옛 모습 그대로의 담장이 볼만한 곳이다. 담장은 낙서면 전화리 오운마을 일대에 고루 배치되어 있다. 토석담이 주를 이루고, 군데군데 돌담과 낮은 돌담 위에 조성된 탱자나무 울타리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형성하고 있다.
토석담은 높이 1.5~2m, 폭 40~60cm 정도다. 길이 20~40cm 방형의 막돌과 진흙을 전통적인 축조방식에 따라 쌓았다. 돌담은 주로 막돌을 높이 1.5m 안팎으로 쌓았는데, 대체로 골목과 접하지 않은 옆집과의 경계 담이나 축대용이다.
등록문화재 제365호로 지정된 '오운마을 옛 담장'은 마을 내 토석담과 돌담 1000m와 탱자나무 울타리 200m가 그 대상이다. 50여 가구가 모여살고 있는 오운마을의 형태는 표주박 모양으로 재실과 정자, 그리고 한옥들마다 돌담과 토석담, 탱자나무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어 전형적인 양반촌의 멋스러운 정취를 자아낸다.
'불사이군' 충절 보여주는 도심근교 작은 유적지
함안 고려동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충절을 지키기 위해 두문동으로 들어갔던 성균관 진사 모은(矛隱) 이오(李午) 선생이 만은(晩隱) 홍재(洪載), 전서(典書) 조열(趙悅)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갈 것을 결심하고, 모곡땅(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 이르러 자미화(紫薇花·배롱나무꽃)가 만발한 것을 보고 평생 살 곳으로 정했다고 한다.
600여년이 지난 지금 배롱나무의 원 둥치는 세월의 무게로 삭아 없어졌지만, 그 위용은 남아 당시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모은 선생은 이곳에 담장을 쌓고 고려 유민의 거주지임을 뜻하는 '고려동학(高麗洞壑)'이라는 비석을 세워 논과 밭을 일구어 자급자족했다. 그래서 이 동네를 '담안' 혹은 '장내'라고도 부른다. 후손들이 19대 600여 년에 이르는 동안 이 곳을 떠나지 않았고, 고려동(高麗洞)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마을 안에는 고려동학비, 고려동담장, 고려종택, 자미고원(紫薇古園), 자미단(紫薇壇), 자미정(紫薇亭), 율간정(栗澗亭), 복정(鰒亭)등이 있다. 종택 앞에는 자급자족한 흔적인 1만여㎡의 고려전답이 남아있다.
3만㎡ 대지에 한옥 6채 자리 잡은 우리나라 3대 고택
창녕 성씨고가
우포늪 인근 3만여㎡ 규모의 대지에 6채의 한옥으로 이루어진 대저택이어서 밖에서 보면 마치 작은 마을처럼 보인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55호로 지정돼 있으며, 강릉의 선교장, 구례의 운조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고택이다.
전통한옥에 비해 기둥과 도리, 들보는 가늘지만, 대신 장식요소가 풍부하고 벽장과 반침 등 수납공간이 많은 게 특징이다. 특히 안채와 사랑채의 유리문, 실내화장실, 서양식 도어, 철제 까치발, 장마루로 된 응접실 등은 외래 주거문화의 영향과 함께 건축주의 취향을 살렸다. 고택 내 한반도 지도 모양의 연못도 이채롭다.
성씨고가는 우리나라 3대 고택이라는 명성보다 가문에 얽힌 이야기를 떠올리며 관람하면 더욱 흥미롭다. 이 가문에서 1908년 일본에서 양파를 들여와 대지면 석리에 파종한 것이 시초가 되어 지금의 창녕양파를 있게 했다. 성씨 가문은 전국에서 열손가락에 꼽히는 만석지기이면서도 주민들에게 선행을 많이 베푼 것으로 이름나 있다.
고향 정취 간직한 전국 14개 옛 담장 중 으뜸
고성 학동돌담마을
학동돌담마을은 전주최씨 안렴사공파 집성촌이다. 도내 내륙에 자리 잡은 다른 대부분 전통한옥마을과 달리 바다를 접하고 있는 고성군 하일면 학림리에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 반가의 집성촌답게 바닷가에서 약간 안으로 물러나 앉아 마을 뒤로는 수태산, 앞에는 임진란 때 봉수대가 있었던 좌의산, 마을 옆으로는 학림천이 휘감아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형 입지다.
수태산에서 가져왔다는 구들장 모양의 납작한 돌을 켜켜이 쌓아올린 돌담장이 최씨 종택을 비롯한 마을 고가들과 어울려 세월의 깊이를 더한다.
학동돌담마을도 등록문화재 제258호로 지정돼 있다. 문화재청이 인정한 근대문화유산으로 전국 14개 담장 유산 중 으뜸으로 꼽힌다. 마을 안 최씨 종가와 차종가 최영덕 매사고택이 민속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그만큼 전통고택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가위에 걷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산청 남사예담촌
9월 6일부터 45일간 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가 열리는 산청군에는 담장길이 아름다운 전통한옥마을 두 곳이 엑스포 관람객들의 주변 관광코스로 추천할만하다.
이 가운데 단성면 남사리의 '남사예담촌'은 토담과 돌담이 한옥과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풍경을 자아낸다. 마을에는 20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 잘 보존된 이씨고가, 1920년에 지어진 최씨고가, 면우 곽종석 선생을 기리기 위해 유림과 제자들이 역시 1920년에 건립한 이동서당(尼東書堂·문화재자료 제196호), 연일정씨 문중 재실인 사양정사가 각각의 골목길을 끼고 옛 모습 그대로 자리하고 있다.
남사예담촌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로, 마을의 옛 담장은 등록문화재 제281호로 지정돼 있으며 한국 전통한옥문화를 체험하려는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예담한옥, 최씨고가, 별장집, 사양정사에서 숙박하면서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내부에 현대식 시설을 갖춘 황토방을 비롯해 12개의 객실에 최대 4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사양정사는 이번 추석연휴에도 평소와 같이 민박이 가능하다.
타임머신 타고 70~80년 전 농촌마을 여행
산청 단계한옥마을
황매산 자락에 위치한 단계한옥마을은 전형적인 한국 전통농촌 가옥들과 돌담·토석담의 어우러짐이 정겹다. 담장 높이는 2m 정도로 비교적 높다. 도로를 따라 길게 이어진 담장을 지나 골목길 안으로 들어서면 호박돌이라고 불리는 냇돌을 이를 맞추듯 쌓아놓은 돌담이 정겹게 다가온다. 담쟁이넝쿨이 보기 좋게 뒤덮은 돌담도 곳곳에 보인다. 이 마을 옛 담장도 등록문화재 제260호로 지정돼 있다.
마을의 고택 중 가장 오래된 박씨고가 안채는 1918년에 세워진 것이다. 박씨고가는 안채와 사랑채, 문간채, 곳간이 □자 형으로 배치돼 있다. 근대기 경남 서부지방 중류 자영농가의 대표적인 살림집 형태다. 단계리 전체가 옛 담장과 한옥으로 이루어져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영화나 드라마 세트장을 방불케 한다. 단계초등학교도 독특한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보건소는 솟을대문집 안에 있다. 파출소도 외벽은 벽돌 모양이나 2층 한옥 형태의 기와지붕이다. 그래서 타임머신을 타고 70~80년 전 한국 농촌마을에 온 느낌이다.
드라마·영화 촬영지에 자주 등장하는 곳
함양 개평한옥마을
조선 전기 문인이자 성리학의 대가 일두 정여창(鄭汝昌·1450~1504) 선생과 한때 우리나라 바둑계의 전설이자 노사초 국수로 유명한 사초(史楚) 노근영(盧近泳·1875~1944) 선생의 생가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개평한옥마을은 14세기 경주김씨와 하동정씨가 터를 잡으면서 번창한 곳이다. 15세기에 풍천노씨가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 마을에는 대부분 풍천노씨와 하동정씨가 살고 있다. 골목길을 따라 걷다보면 1838년에 지어진 오담고택과 1880년에 지은 하동정씨 고가를 비롯해 풍천노씨 대종가 등 지은 지 100여년이 넘는 크고 작은 한옥 60여 채가 어우러져 전통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이 가운데 정여창 선생의 생가인 이일두고택은 대지가 국법에 정해진 3000평을 넘지 않도록 2994평으로 지었다고 전한다. 가옥 구조는 솟을대문을 비롯해 행랑채, 사랑채, 곳간, 별당, 사당 등으로 구성돼 있다. 1987년에 방영된 대하드라마 '토지'의 최참판댁, 2003년에 방영된 '다모'에 나오는 어린 채옥의 생가 등 TV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로 자주 등장할 만큼 전형적인 경상도 양반집 형태를 보여주는 곳이다.
활처럼 휘어진 옛 담장 고즈넉한 풍경 연출
거창 황산전통한옥마을
마을 전체가 명승 제53호로 지정된 한옥마을로 그윽한 정취를 느끼며 옛 사람들의 주거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마을 초입에서부터 '안정좌(安亭座)' 나무라 부르는 높이 18m, 폭 7.3m 정도의 느티나무 고목이 방문객을 맞는다. 수령이 무려 600여년이라고 한다. 마을에 들어서면 1.2㎞에 걸쳐 활처럼 휘어진 고샅길 담장(등록문화재 제259호)이 전통고가와 어우러져 고즈넉하면서도 절제된 풍경을 연출한다.
이 마을의 한옥들은 대부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지어져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 강점기 시대 이 지방 반가의 전통한옥 건축양식을 잘 보여준다. 담장을 따라 이어지는 한옥은 대부분 거창신씨 씨족 전통가옥이다. 그 가운데 마을 가운데 자리 잡은 '황산신씨고가'가 그 규모와 형식에서 단연 돋보인다. '원학고가'라고도 부르는 이 건축물은 1927년 옛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지었다. 경상남도 민속자료 제17호로 지정되어 있다.
마을에 남아 있는 전통한옥 50여호 가운데 10곳 정도에서 민박 손님을 받는다. 거창 수승대국민관광단지 건너편에 위치해 인근 송계사계곡과 월성계곡을 비롯해 금원산자연휴양림, 거창조각공원, 거창박물관 등 주변 관광지를 둘러볼 수 있다.
관광공사가 지정한 명품고택의 아름다운 건축물
거창 동계정온종택
금원산과 기백산의 기운이 흐르는 거창군 위천면 강동리에 위치한 조선 중기 충절과 기개의 선비 동계(桐溪) 정온(鄭蘊) 선생(1569~1641)의 종택이다. 1820년 동계 선생의 후손들에 의해 중창돼 오늘에 이르는 고택으로 중요민속자료 제205호로 등록돼 있다.
건축물은 남부지방이지만 호서지방에 가까운 내륙 분지에 위치해 남방과 북방 건축물 방식이 혼합돼 여름철 무더위와 습기, 겨울철 추위를 고려한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2012년 한국관광공사가 지정하는 명품고택에 선정될 만큼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종택에는 동계 선생의 14대 종부 최희 할머니와 후손들이 실제 거주하면서 한옥민박을 체험하려는 방문객을 맞고 있다. 가족이 거주하는 안채를 제외한 사랑채와 중문채, 대문채를 손님맞이 공간으로 활용한다.
고택이지만 전 객실에 냉난방시설과 현대식 샤워실 및 화장실을 갖추고 있어 편리하게 묵으면서 전통한옥을 즐길 수 있다. 정온고택 사랑채의 누마루 다실은 활짝 열려진 문 너머로 보이는 주변 산세 풍경과 함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여유롭게 차 한 잔을 음미하기 좋은 곳이다.
정온고택은 추석에는 가족친지들이 모여들어 추석 전날만은 외부 민박을 받을 수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