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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마태복음 3:13–17, 마가복음 1:9–11, 누가복음 3:21–22 (참조: 이사야 42:1, 53:11–12, 고린도후서 5:21, 히브리서 2:14–17)
핵심 명제: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창조주 메시아께서 죄인들의 회개 세례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오사 요한의 극구 만류(디에콜뤼엔)를 뚫고 물속에 잠기신 수세(受洗)의 신비는, 인류의 죗값을 짊어지시는 대속적 연대와 하나님의 구속 언약을 완성하는 ‘모든 의의 성취(플레로사이 파산 디카이오쉬넨)’이며, 하늘이 찢어지고(스키조메누스) 성령이 임하사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선포된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적 위임식이다.
1. 서론: 심판주를 기대한 자리로 걸어오신 속죄양
마태복음 3장 10–12절에서 세례 요한이 선포했던 메시아의 이미지는 손에 날카로운 도끼와 키를 쥐고,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꺼지지 않는 불로 태워버리실 서슬 퍼런 '우주적 심판관'이었습니다(3강).
온 이스라엘은 숨을 죽인 채, 하늘에서 불과 번개를 동반하고 강림할 영광의 군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3장 13절은 인류의 모든 종교적 상식을 전복시키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전환됩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토테 파라기네타이 호 이에수스 아포 테스 갈릴라이아스 에피 톤 요르다넨 프로스 톤 요안넨 투 밥티스데나이 휩 아우투)" (마 3:13)
그분은 로마 군대를 짓밟는 백마를 타고 오지 않으셨습니다.
불칼을 휘두르는 천군 천사를 대동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갈릴리 나사렛의 거친 먼지 길을 100km 넘게 홀로 걸어 내려오신 서른 살의 청년 예수.
그분은 세관의 세리들, 거리의 창기들, 자복하며 통곡하는 죄인들이 길게 늘어선 ‘죄인들의 행렬 맨 끝자락’에 조용히 줄을 서 계셨습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는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밥티스마 메타노이아스 에이스 아페신 하마르티온)’였습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나는 멸망받아 마땅한 더러운 죄인입니다"라고 하나님 앞에 자복하는 영적 항복 선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죄가 전혀 없으시고(히 4:15),
거룩함 그 자체이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도대체 왜,
누구에게 죄를 자복하러 이 회개의 물속으로 들어오셔야 한단 말입니까?
요한은 이 우주적 역설 앞에 사시나무 떨듯 떨며 주님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물러서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제4강은 죄 없으신 메시아가 죄인의 물세례를 받으셔야만 했던 기독론적 신비,
요한의 격렬한 만류(디에콜뤼엔)와 예수님의 엄중한 명령(아페스 아르티),
구속사의 절대 원리인 ‘모든 의의 완성(플레로사이 파산 디카이오쉬넨)’,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갈라진 사건(스키조메누스 투스 우라누스),
비둘기 같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
그리고 성부 하나님의 영원한 인정 선포(호 휘오스 무 호 아가페토스) 속에 계시된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적 위임식을 심층 해부합니다.
2. 요한의 경악과 극구 만류: 디에콜뤼엔(διεκώλυεν) (마 3:14)
자신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이고 세례를 청하시는 예수님을 목도한 순간, 요한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결사적으로 그분을 가로막았습니다:
"요한이 말려 이르되(호 데 요안네스 디에콜뤼엔 아우톤)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카이 쉬 에르케 프로스 메)" (마 3:14)
{ὁ\ δὲ\ Ἰωάννης\ διεκώλυεν\ αὐτὸν\ λέγων,} {Ἐγὼ\ χρείαν\ ἔχω\ ὑπὸ\ σοῦ\ βαπτισθῆναι,}
{καὶ\ σὺ\ ἔρχῃ\ πρός\ με;}
{“호 데 요안네스 디에콜뤼엔 아우톤!”}
{“그러나 요한이 그분을 온몸으로 결사코 가로막으며(디에콜뤼엔) 말하기를, ‘내가 도리어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처지인데, 어찌하여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 콜뤼오(κωλύω) + 디아(διά) = 디아콜뤼오(διακωλύω)
단순한 거절이 아닙니다. 접두사 '디아(강조)'가 붙은 미완료 과거 시제로, "온몸을 던져 거듭거듭, 결사적으로 가로막고 또 가로막았다(He persistently tried to prevent Him)"는 뜻입니다.
요한의 영적 당혹감:
"주여, 이것은 우주의 질서가 거꾸로 뒤집히는 일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세례를 줄 수 없으며, 죄인이 흠 없는 심판자에게 물을 뿌릴 수 없습니다!
내가 성령과 불로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마땅하거늘, 어찌하여 주님이 내 발아래 무릎을 꿇으시나이까!"
(2) 요한의 눈에 비친 메시아의 영광
요한은 마태복음 3장 11절에서 "나는 그의 신발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고백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예수님 안에서 죄의 흔적이라곤 단 0.001%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도저히 이 거룩하신 분의 머리 위에 손을 얹어 물속에 밀어 넣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3. 핵심 헬라어 강해: 플레로사이 파산 디카이오쉬넨(πληρῶσαι πᾶσαν δικαιοσύνην) (마 3:15)
요한의 격렬한 만류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공생애 복음서에 기록된 ‘당신의 입술로 뱉으신 최초의 말씀’을 엄숙하게 선언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아페스 아르티)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후토스 가르 프레폰 에스틴 헤민 플레로사이 파산 디카이오쉬넨)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마 3:15)
{Ἄφες\ ἄρτι,}\quad \mathbf{οὕτως\ γὰρ\ πρέπον\ ἐστὶν\ ἡμῖν\ πληρῶσαι\ πᾶσαν\ δικαιοσύνην׃}
{“아페스 아르티! 후토스 가르 프레폰 에스틴 헤민, 플레로사이 파산 디카이오쉬넨!”}
{“지금은 허락하라! 대저 우리가 이와 같이 행하여, 하나님의 ‘모든 의(파산 디카이오쉬넨)’를 완전히 성취하는 것(플레로사이)이 마땅하니라!”}
'모든 의를 이룸'의 3대 구속사적 신학
[ 1. 아페스 아르티 (Ἄφες ἄρτι) ] ─────────> "지금은 물러서라!" (구속사의 특별한 국면과 순서를 수용함)
인간적 겸손이나 논리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구속 경륜에 복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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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파산 디카이오쉬넨 (πᾶσαν δικαιοσύνην) ] ─> 하나님의 언약적 요구와 율법의 모든 공의를 100% 만족시킴
인간이 행할 수 없는 온전한 율법 순종(능동적 순종)의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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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플레로사이 (πληρῶσαι) ] ─────────────────> 예언과 제사, 언약의 모형들을 단번에 가득 채워 완성함(Fulfill)
(1) 디카이오쉬네 (δικαιοσύνη): 하나님의 언약적 공의
신약성경에서 '의(디카이오쉬네)'는 단순한 도덕적 착함을 넘어,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과 구속 언약에 대한 전적인 신실함과 복종’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인을 심판하셔야 하지만, 동시에 언약 백성을 구원하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모순된 두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오셨습니다.
(2) 왜 세례를 받는 것이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인가?
율법 아래 나신 자의 복종 (갈 4:4):
당시 요한의 세례는 사적인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보낸 공적 명령(요 1:33)이었습니다.
참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든 율법적·구속사적 요구에 머리 숙여 복종하셔야 했습니다.
대제사장의 위임식 성취 (출 29:4, 레 8:6):
아론 계열의 대제사장이 공직을 시작할 때 회막 문에서 물로 몸을 씻고 관유를 발랐듯이,
영원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요단강 물로 씻기시고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으심으로써 공적 제사장 직무에 합법적으로 취임하신 것입니다.
4. 기독론의 심장: 죄인과의 대속적 연대(Solidarity)
예수님이 요단강 세례를 받으신 가장 깊은 신학적 이유는 ‘죄인들과의 완전한 동일시(연대, Solidarity)’에 있습니다.
이사야 53장 12절의 메시아 예언을 기억하십시오: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웨-에트-포쉬임 님나)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사도 바울의 고린도후서 5장 21절의 선언: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톤 메 그논타 하마르티안 휘페르 헤몬 하마르티안 에포이에센)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요단강 물세례에 담긴 십자가의 그림자
[ 죄인들의 오염된 물: 요단강 ] ───────> 수많은 백성이 자기 죄를 자복하고 털어 넣은 '죄악의 흙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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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룩하신 분의 자발적 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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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그리스도의 입수 (入水) ] ──────> 그 오염된 물속으로 죄 없으신 주님이 직접 들어가심
의미: "너희의 모든 죄악의 짐을 이제 내가 내 어깨에 넘겨받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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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과 부활의 예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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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속에 잠김(죽음)과 올라오심(부활) ] ─> 장차 골고다 십자가에서 지옥의 진노에 잠기실 대속의 서막!
요단강 물은 앞서 세례받은 수천 명의 죄인들이 쏟아내고 간 온갖 추악한 탐욕, 음란, 불의의 영적 오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신 것은,
마치 "너희가 버린 모든 죄의 찌꺼기를 내가 다 마시고, 너희의 형벌을 내가 대신 짊어지겠다"는 자원하는 희생의 서약이었습니다!
물속에 잠기시는 순간(장사됨),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의 죽음을 미리 맛보셨으며,
물에서 올라오시는 순간(부활), 그분은 죄 사함의 새 생명을 획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세례는 '갈보리 십자가의 수난'을 향한 공적 출정식이었습니다.
5. 핵심 헬라어 강해: 스키조메누스 투스 우라누스(σχιζομένους τοὺς οὐρανούς) (막 1:10)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때, 온 우주가 숨을 멎는 우주적 사건이 발생합니다: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에이덴 스키조메누스 투스 우라누스)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카이 토 프뉴마 호스 페리스테란 카타바이논 에이스 아우톤)" (막 1:10)
{εἶδεν\ σχιζομένους\ τοὺς\ οὐρανούς} {eiden schizomenous tous ouranous})
{καὶ\ τὸ\ Πνεῦμα\ ὡς\ περιστερὰν\ καταβαῖνον\ εἰς\ αὐτόν׃}
(1) 스키조 (σχίζω): 하늘이 산산조각 찢어지다
마태는 "하늘이 열리고(에네오크데산)"라고 완곡하게 표현했으나, 마가는 가장 거칠고 생생한 단어인 ‘스키조(σχίζω, 찢어지다, 갈라지다)’의 분사형(스키조메누스)을 사용했습니다.
조용히 문이 열린 것이 아닙니다.
400년간 구리처럼 닫혀 있던 하늘의 장막이 ‘번개를 맞은 듯 위에서 아래로 쩍 갈라져 두 동강이 난 것’입니다!
이사야 64장 1절의 절규의 완벽한 응답:"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루 카라에타 샤마임 야라드타) 주의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성전 휘장의 찢어짐과의 수미쌍관:
마가복음 전체에서 '스키조'라는 단어는 단 두 번만 쓰입니다:
공생애의 시작: 요단강에서 하늘이 찢어짐 (막 1:10, 스키조메누스)
공생애의 마지막: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실 때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짐 (막 15:38, 에스키스데)
요단강에서 찢어진 하늘은, 십자가에서 성소 휘장이 찢어짐으로써 온 인류에게 영원히 하나님 보좌로 나아가는 산 길(히 10:20)을 활짝 열어주실 것임을 예고한 것입니다!
(2) 호스 페리스테란 (ὡς περιστεράν): 비둘기 같은 성령
성령은 독수리나 매처럼 포악한 맹금류의 형상으로 임하지 않으셨습니다.
성령은 온유와 순결,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페리스테라)의 형체로 임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2절과 8장의 구속사적 회복:
태초의 창조 때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암탉처럼 품어 운행하셨듯이(메라헤페트)',
노아의 홍수 심판이 끝나고 비둘기가 감람나무 잎사귀를 물고 새 시대의 도래를 알렸듯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옛 시대가 끝나고 ‘새 창조(New Creation)의 새 시대’가 열렸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32절의 증언대로, 성령은 잠시 스쳐 지나가지 않고 ‘예수님 위에 영원히 머물러(에메이넨 에프 아우톤)’ 계셨습니다.
6. 핵심 헬라어 강해: 호 휘오스 무 호 아가페토스(ὁ υἱός μου ὁ ἀγαπητός) (마 3:17)
찢어진 하늘 틈바구니에서, 영원 전부터 계신 성부 하나님의 장엄한 천둥 같은 음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후토스 에스틴 호 휘오스 무 호 아가페토스) 내가 그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엔 호 유도케사)" (마 3:17)
{Οὗτός\ ἐστιν\ ὁ\ υἱός\ μου\ ὁ\ ἀγαπητός,}\quad \mathbf{ἐν\ ᾧ\ εὐδόκησα׃}
{“후토스 에스틴 호 휘오스 무 호 아가페토스, 엔 호 유도케사!”}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영혼이 기뻐하여 택한 자니라!”}
성부의 음성에 결합된 구약의 3대 메시아 예언
성부 하나님의 이 한 문장은 구약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세 가지 핵심 메시아 본문을 단번에 용해하여 선포하신 신학의 결정체입니다:
[ 1. 시편 2:7 (왕적 메시아) ] ──────>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 온 우주를 다스릴 다윗 가문의 영원한 왕의 정체성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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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창세기 22:2 (희생 제물) ] ─────>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 독자 이삭처럼 갈보리 제단에 바쳐질 독생자의 희생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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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사야 42:1 (고난받는 종) ] ───>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를 보라"
---> 십자가에서 도살당할 '여호와의 고난받는 종'의 수난 예언
호 아가페토스 (ὁ ἀγαπητός): 유일무이한 사랑받는 독자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사랑의 총량이 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게 온전히 쏟아부어져 있음을 확증합니다.
엔 호 유도케사 (ἐν ᾧ εὐδόκησα): 내가 그 안에서 기뻐하였도다
부정과거 시제로, 영원 전 창세 전부터 성부와 성자 사이에 누리셨던 완전한 신적 친밀함과 기쁨입니다.
죄인의 형상으로 물속에 잠기사 십자가의 길을 자원하신 성자 예수님을 바라보시며,
성부 하나님은 우주가 떠나갈 듯한 만족과 찬사를 터뜨리신 것입니다:
"보라! 내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로 걸어가는 내 아들을 내가 가장 기뻐하노라!"
7. 구속사적 절정: 요단강에 현현하신 삼위일체 하나님 (Theophany)
누가복음 3장 21–22절은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적 현현이 완성되었음을 증언합니다: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카이 이에수 밥티스덴토스 카이 프로세우코메누 아네오크데나이 톤 우라논)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카이 카타베나이 토 프뉴마 토 하기온 소마티코 에이데이 호스 페리스테란 에프 아우톤)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카이 포넨 엑스 우라누 제네스다이)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눅 3:21–22)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요단강의 이 장엄한 광경을 가리켜 라틴어 신학의 금언을 남겼습니다:
{I\ ad\ Iordanem,\ et\ videbis\ Trinitatem!}
{“요단강으로 가라! 그리하면 너는 삼위일체(Trinity)를 보게 되리라!”}
요단강에 동시 현현하신 삼위일체의 구속 사역
| 삼위의 위격 | 요단강 현현의 양식 | 구속사적 신학 역할 |
|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 물속에 잠기셨다가 기도하며 올라오시는 인간의 몸 |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질 구속 사역의 실행자 |
| 성령 하나님 (루아흐 / 프뉴마) |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스도 위에 머무시는 비둘기 | 메시아의 인성에 무제한의 능력을 부으시는 사역의 보증자 |
| 성부 하나님 (야훼 / 파테르) | 찢어진 하늘 너머에서 울려 퍼지는 장엄한 음성 | 구원 계획을 입안하시고 아들을 인치시는 구속의 주권자 |
창세기 1장에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 역사하셨듯이(창 1:1–3),
이제 죄악으로 타락한 온 우주를 구속하고 새롭게 창조하시는 ‘새 언약의 새 창조의 출발점’에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역사상 최초로 한 시공간에 공적으로 함께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8. 목회적 적용과 묵상(1) 가장 낮은 자의 자리로 내려가는 '대속적 연대(겸손)'를 실천하라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지만, 죄인들의 맨 꽁무니에 서서 요단강 흙탕물 속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오늘 당신은 어떤 자리에 서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직장에서 "나는 저 사람들과 급이 다르다, 나는 흠이 없다"며
바리새인처럼 거룩한 척 뒷짐 지고 사람들을 정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성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배우십시오!
진짜 영성은 높은 보좌에 앉아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받고 신음하는 연약한 죄인들의 자리 한복판으로 기꺼이 내려가
그들의 눈물과 고통을 제 어깨에 짊어지는 ‘대속적 연대(낮아짐)’에 있습니다.
당신이 낮아져 죄인들의 발을 씻길 때, 그곳에서 하늘의 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2) 인간적 계획을 꺾고 "이제 허락하라(아페스 아르티)"는 말씀에 순종하라
요한의 만류는 인간적으로 지극히 타당하고 겸손한 태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명령하셨습니다: "이제 허락하라!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의를 이루어야 하느니라!"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내 상식과 이성, 내 체면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하나님의 요구 앞에 설 때가 있습니다:
"주님, 이것은 상식에 맞지 않습니다. 내가 왜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합니까?"
그 순간 인간의 좁은 고집을 꺾으십시오.
하나님의 구속사의 시간표를 인정하십시오.
내 생각보다 크신 하나님의 주권 앞에 "아페스 아르티(이제 주님의 뜻대로 허락하나이다)" 무릎을 꿇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완전한 의가 당신의 삶을 통해 온전히 성취될 것입니다.
(3) "너는 내 사랑하는 자요 기뻐하는 자라"는 정체성으로 세상의 유혹을 돌파하라
예수님은 기적을 단 하나도 행하기 전에,
수많은 군중의 갈채를 받기도 전에,
이미 요단강 물가에서 성부 하나님의 절대적 인정을 받으셨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이 성부의 음성이 예수님의 심장 속에 흔들리지 않는 닻으로 내렸기에,
주님은 이어지는 40일 광야의 마귀의 시험과 십자가의 수치를 넉넉히 돌파하실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에 목말라 갈증을 느끼고 있지 않습니까?
세상의 평가에 영혼을 맡기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는 오늘 당신을 향해 똑같이 선포하십니다:
"너는 십자가의 피로 값주고 산 내 사랑하는 자녀요, 내가 너를 가장 기뻐하노라!"
이 하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 절대적 영적 자존감으로 무장할 때,
세상의 그 어떤 위협과 마귀의 시험도 당신을 결코 흔들지 못할 것입니다.
9. 결론: 손가락으로 가리킨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을 향하여
요단강의 물결이 잦아들고,
하늘이 찢어지며 성령이 비둘기처럼 강림했던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적 위임식이 끝난 후,
예수님은 성령에 이끌려 40일간의 처절한 광야 시험의 전장으로 나아가셨습니다.
그리고 40일의 시험을 승리로 마치신 후,
예수께서 다시 요단강 가로 걸어오시는 모습을 목격한 선지자 세례 요한!
그의 눈에 비친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 실체는
도끼를 든 심판관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모세의 율법 1,500년 동안
매일 아침저녁으로 번제단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갔던 수억만 마리의 어린양들의 궁극적 원형,
이사야 53장에서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온 인류의 저주와 죄악을 제 등에 짊어지고 골고다를 향해 걸어가실
‘하나님의 속죄 어린양’이었습니다!
온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요한은 떨리는 손가락을 뻗어 예수를 가리키며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음의 사자후를 토해냅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이데 호 암노스 투 테우 호 아이론 텐 하마르티안 투 코스무)!"
구약 출애굽 유월절의 피 묻은 문설주와,
레위기 대속죄일의 아사셀 염소,
이사야의 찔림과 상함을 단번에 관통하는
기독교 대속 신학의 최고봉!
제5강: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 대속 신학의 최고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