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25:1-3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현상 세계, 이 세계 안에 가득 차 있는 만물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지 않은 것이 어디 있을까? 우리의 몸은 말할 것도 없고 머리카락 하나까지라도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들의 정신 세계는 얼마나 광활하고 귀중한 것들입니까? 그렇습니다. 보이는 사물, 보이지 않은 실재 할 것 없이 그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입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 1.위엄을 베푸십니다
빌닷의 말.....그는 먼저 하나님이 권능과 위엄을 가진 분이라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2절)
이는 하나님이 절대적인 우주적 주권을 가지고서 그 위엄을 나타내고 계시는 분인 것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위엄보다도 더 우리에게 있어 숭엄하고 두려운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호렙산에서 모세를 부르시면서 < 이리로 가까이하지 말라. 너희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출애굽기 3:5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위엄을 나타내는 곳은 신약에도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심판을 언급하고 나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라고 히브리서 10:31절에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 하나님은 위엄스러운 분이시며, 그 위엄을 우리에게 항상 베풀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그런 위엄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멋대로 살고 있습니다. 실로 하나님의 위엄은 죄를 다스립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런 위엄을 항상 두려워해야 합니다.
##### 2.화평을 베푸십니다
빌닷은 이어 하나님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 화평을 베푸시는 분이라고 2절에서 말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위엄만 생각하면 우리 성도들은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위엄은 우리의 허물과 죄만 찾고 벌만 내리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엄하게 대하는 내면에는 뜨거운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물며 만인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야 말할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도요한은 요한일서 4:16절에서 < 하나님은 사랑이시니라 >라는 한마디로 그분의 속성을 선포하였던 것입니다.
진정 구약 성경 안에는 하나님이 마냥 두려운 분으로 나타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유인즉,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신 분'(욘4:2)이라는 고백의 말씀이 구약 성경도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베푸시는 화평의 원천이 그분의 사랑 안에 있습니다.
실로 인류는 지금까지 인간의 힘으로 평화를 창출해 보려고 무진 애를 써왔습니다. 그러나 인류가 유산으로 남겨놓은 것은 엄청난 무기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참으로 사람은 절대로 평화를 만들 수 없다는 단적인 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제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평화를 바라보아야 합니다.(롬14:17). 그 분은 오늘도 이 땅에 화평을 베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 3.광명을 베푸십니다
빌닷은 계속하여 하나님은 광명을 베푸시는 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절...< 그 광명의 비췸을 입지 않은 자가 누구냐 >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진정 흑암에 싸인 인간을 구원해 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한 빛을 오늘도 내어 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해 보십시다. 진정 그분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 지금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사실 아무리 태양이 빛나고 있어도 눈을 뜨지 못하는 소경에는 흑암일 수 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의 소경은 하나님의 광명이 아무리 빛나도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마음의 눈부터 밝게 떠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광명을 찬양하십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 광명이요, 빛입니다. 주님의 오심과 고난당하심을 생각하는 절기들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욥 25:4-6
악인의 모습
겉모양으로만 보면 인간은 짐승과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을 사람 비슷한 짐승에서 진화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는 진화론까지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나 정신의 우수성을 보면 인간은 분명히 짐승과는 뚜렷이 다른 존재이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로서도 규정할 수 없는 어떤 우월한 존재인 것이 확실합니다. 진정 인간의 우수성은 오늘날의 첨단과학, 여러 분야의 학문과 문화를 창출해 내는 재능과 기량만 보아도 넉넉히 알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종교적인 면, 특히 성경이 지적하고 있는 면에서 보면 인간은 여러 자기 한계 안에 갇혀 있는 나약한 존재인 것을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한계를 지니고 있을까요?
##### 1.의로운 자가 없습니다
본문 4절...<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랴.>
빌닷은 이 세상에 의로운 자가 없다고 천명합니다. 성경도 이를 증거합니다.
롬 3:10...<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시 130:3...<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진데 주여 누가 서리이까?>
시 143:2...<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사실 인간의 안목으로 볼 때는 의인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성덕이 하늘같아서 만인이 우러러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孔子는 인애(仁愛)를 가르쳤으며, 석가는 자비(慈悲)를 가르쳤고, 묵자는 인류애(人類愛)를 가르치며 실제로 그들은 각각 자신들의 가르침과 똑같이 살았습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 인류의 스승이라고 부르기를 서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인류의 성인이라는 사람들 역시 우리와 조금도 다름없는 죄인들에게 지나지 않습니다. 진정 절대적으로 의로운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갖고 있는 비극적 단면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불가불 구원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주님을 통해서만 의로워 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2.깨끗한 자가 없습니다
본문 4절...< 부녀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
빌닷은 인간 중에는 깨끗한 자가 없다고 천명하였습니다.
시 14:3...<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렘 17:9...<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욥 15:14...<사람이 무엇관대 깨끗하겠느냐?>
물론 이러한 측면도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에는 사람들 가운데 깨끗한 자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카톨릭 교회에서 자랑삼고 있는 성녀 테레사같은 이의 삶은 참으로 명경수와 다름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이들도 불결한 자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 5절에도 보면 < 하나님의 눈에는 해와 달이라도 명랑치 못하고 별도 깨끗하지 못하거든...>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씻음 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히9:14)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도 자신을 깨끗케 할 자가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합시다.
예수님의 필로 씻음을 받아야만 가능합니다.
##### 3.존귀한 자가 없습니다
본문 6절...< 하물며 벌레인 사람, 구더기인 인생이랴.>
인간은 무척 비천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 말에는 인간의 비천함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사실 벌레와 구더기만큼 미천한 미물도 없기 때문입니다.
시 22: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이사야 41:14...<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그런데 이 말씀들에 나타난 벌레와 구더기라는 표현은 본래부터 인간이 그처럼 미천한 존재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처음 지음을 받았을 때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기에 피조물로서 인간처럼 존귀한 존재가 없었습니다.(창1:26)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타락한 후로는, 불행하게도 버러지 형상을 경배하는 죄인의 자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생각하면 안타깝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불가불 그리스도를 본받음으로써 다시 존귀의 자리를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인간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유대 땅 어느 마을에 랍비가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율법과 의식을 성실히 준행하여 거의 완벽에 가까운 종교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로 인해 그에게는 많은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많은 무리 중엔 꼭 소수의 열심있는 자가 있는 법인데, 그 랍비를 따르던 제자들 중에도 한명의 열심 있는 젊은 제자가 있었답니다.
그는 자신이 따르는 랍비의 헌신적이며 완전 무결한 모습을 존경하며 늘 랍비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성 베드로에게 물었습니다.
< 저어, 제가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 그는 은근히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늘 랍비를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것은 무엇이든지 완벽하게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어렵소, 여기는 천국이 아니란 말이요.>
성 베드로는 그에게 천국의 문은 훨씬 더 높은 곳에 있는데 그곳에 가려면 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만 한다고 설명해 주며 그 사다리를 가리켰습니다.
그 사다리는 높이 뻗어 올라 구름으로 가려져 있었습니다. 사다리를 본 그는 흠칫 놀랐습니다.
< 그럼 언제쯤 도달할 수 있을까요? 이 사다리는 끝도 없는 것 같은데요!>
그러자 성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겁먹지 마십시오 그건 당신에게 달렸소, 당신은 이 분필을 갖고 사다리를 오르며 디딤대 하나 하나에 당신이 이제껏 지은 죄를 하나씩 표시하십시오. 그렇게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며 당신의 모든 행위와 생각의 죄를 다 적으면 비로소 사다리 끝에 당도하여 천국의 문 앞에 서게 될 것이요. 그러니 천국의 길은 당신이 죄를 얼마만큼 지었느냐에 따라 멀 수도 있고 가까울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는 성 베드로의 말을 들으며 아주 만족해했습니다. 그는 분필을 가지고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한참을 올라가도 아무런 조짐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다리가 떨리기 시작했고 팔이 아파옵니다.
얼마나 올라갔을까? 그는 너무 힘이 들어 포기하고 싶었지만 이제껏 오른 만큼 다시 내려갈 생각을 하지 그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아 자신의 마음을 달래며 계속 오르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사다리를 오르던 어느 날 그는 무척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겉으로는 아무런 죄도 범하지 않았을지라도 마음속으로는 온갖 죄를 다 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죄를 숱하게 기록하며 끊임없이 사다리를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저만큼 위에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고 있는 자신의 랍비를 발견했습니다.
< 앗, 랍비님! 많은 제자들을 천국으로 데려가시기 위해 다시 돌아가시는 건가요?>
< 아니 그대는 아직도 어리석군 그래! 분필이 더 있어야 겠기에 다시 내려가는 것이라네! >라고 했다고 합니다. 랍비도 죄가 많았드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다 악합니다. 에수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기고 주님을 더욱 붙잡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옥련지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