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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7: 40 말씀을 들은 무리 - 요 7: 44 그 중에는
요 7: 40 말씀을 들은 무리 -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이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혹은 이가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그가 참으로 그 선지자라 또는 그리스도라 하는 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이미 은혜를 받은 자들이었다. 그들의 심령은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믿음의 문 앞에 서 있는 자들이다.
무리 중에서 예수님을 인해서 논쟁이 일어났다. 심지어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아직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았으므로 그에게 손을 대는 자는 없었다.
1]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인간들은 죄로 인하여 어두워졌기 때문에, 유일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대해서도 견해가 달라졌다.
2]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이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그 선지자"란 말은 모세가 예언한 메시야 명칭이다.
* 신 18: 15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요 7: 41 어떤 사람은 -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 혹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1]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 하며,
시인하는 자와 부인하는 자에 대한 성경의 증언을 살펴보자.
* 마 10: 32 -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 롬 10: 9-10 –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 빌 2: 11 -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 딛 1: 16 -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 요일 2: 23 -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 요일 4: 2-3, 15 – 2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 계 3: 5 -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2]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성경은 갈릴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 사 9: 1 -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마 4: 18, 23 – 18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 행 10: 37 -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요 7: 42 다윗의 씨 -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의 살던 촌.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의 살던 촌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말했다.
1]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다윗의 씨."
* 삼하 7: 12 -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 요 7: 42 -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 딤후 2: 8 -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2]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 미 5: 2 -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 마 2: 6 -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요 7: 43 쟁론 - 예수로 말미암아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 예수를 인하여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
1] 예수로 말미암아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그들은 의견이 갈렸다. 어떤 이들은 참으로 선지자나 그리스도라 하였다. 이들은 적극적인 자들로 우호적이라면 다른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는가 하며 쟁론하였다.
자기의 권익을 위한 치열한 논쟁이었다. 기득권의 이익을 위해 교만하고 남을 멸시하는 사람들의 관점은 자고로 동일하다.
자기가 무시하려는 대상에 대하여 무식하고 못난 사람이라는 확정된 견해를 바꾸려하지 않는다. 기회가 닿는 대로 비하하고 무시한다. 그러나 순수한 영혼을 소유한 사람은 보고 느낀대로 말한다.
오늘날에도 교만한 단체나 이단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거나 묵상하지 않고 대충 들은 말이나 얄팍한 지식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려 하지 않는다.
무조건 자기의 이익에 반한 것은 잡아 죽이려고만 한다.
요 7: 44 그 중에는 - 그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 ( 그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 )
1] 그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으나
그들은 진리를 신앙하므로 구원 받기를 원치 않고 도리어 그를 잡아 치우려고 한다. 그것은, 어두움이 빛을 물리쳐 보려는 어리석은 일이다.
진리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진리의 존재가 괴로운 것이 된다.
* 계 11: 10 - 이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두 증인 순교의 모습은 두 증인 시체가 조롱받는 일이다.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하였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열왕기상 18장 17절에 배경이 나온다.
오바댜가 엘리야를 볼 때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 그러면 엘리야가 육적으로 괴롭게 했나? '네가 언제까지 그렇게 있을 것이냐?'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책망하고 진리를 선포했던 것이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었다.
따라서 두 증인이 조롱과 아픔을 당하는 것이 그들이 선포하는 진리가 강력하기 때문에 반항도 크게 나타났다. 아무리 봐도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 내일 인류 종말이 올 수 있다.
썬 마이크로 창업자 빌 조이란 분이 있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세상의 모든 것, 물 때문에 종말이 온다. 무엇을 읽어보던지 모든 면에서 종말로 연결되지 않는 것이 없다. 기술의 발전이 현재처럼 급속하게 이루어질 경우 두 세대 안에 인류의 종말 같은 사태가 올 수 있다는 견해를 제기하였다.
'더욱이 이 같은 비관론이 정보화 시대의 개막을 개척한 굴지의 소프트웨어 업체인 썬 마이크로 시스템의 공동창업자 빌 조이에게서 나왔다는 점이 충격적이다.'고 미국 워싱턴 퍼스트지가 보도했다.
빌 조이는 "인터넷 잡지 와이워드에 발표할 '24초짜리 건물에서 기술의 진보가 인류에게 위험을 제기하고 있다.'는 유나바모의 주장에 기본적으로 동의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2030년에는 컴퓨터의 성능이 현재보다 1백만 배 이상 강해진다. 로봇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어 스스로 복제할 능력까지 갖출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대로 가면 60년 이후에 컴퓨터에 의한 지구의 종말이 올 수 있다.
로마 원형경기장에서 초대교회 성도들과 종들이 조롱받고 거기서 죽었다. 많은 사람들은 황제가 '죽여라!'는 손가락 동작 하나에 맹수들을 풀어 놓아 물려 뜯기는 참혹상을 바라보면서 관중들은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서로 환호성을 지르면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설마 이런 일이 있을까?
성경을 들추어 보면 이스라엘이 독립한다는 예언이 있다. 그러나 주석가들이 이스라엘이 독립하기전의 주석은 칼뱅뿐만 아니라 모든 주석가들이 이스라엘이 성경대로 독립할 것이라고 쓴 주석은 하나도 없다.
왜 그랬을까? 이스라엘의 상태를 보면 2000여 년 전에 전 세계에 흩어져서 그 씨족이 말린 상황이었다. 그 땅은 터키가 지배했으며, PLO가 살았다. 그러면 다 없어져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흩어진 사람들도 쫓겨 다니거나 600만 명이 히틀러에게 몰살당하는 현실이므로 이스라엘이 독립한다는 것을 감히 주장할 수 없었다.
우리 주석가들도 성경을 믿고 쓰지 못했다. 그러므로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해석했다. 무천년을 주장하는 주석가들은 '재림의 확실성이다.'고 해석했다. 따라서 마태복음 24장 32절을 '재림이 확실히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확실성이 아니라 재림의 역사성이다.
'무화과나무가 싹이 나면 그 무화과나무를 보아라.' 그 무화과나무는 무엇인가? 마태복음 21장에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시면서 길가의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고 저주하자 곧 말라죽었다. 마태복음 24장 32절에서 '무화과나무를 보라. 싹이 나면', '죽었다 살아나면', '독립하면' 그러면 '내가 문밖에 곧 가까이 이른 줄 알라.' 이것도 이스라엘이 독립함으로 확 드러나고 있다. 믿습니까?
제사장은 백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왜냐하면 백성을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 가서 늘 백성의 유익을 구했다. 백성을 위해서 제사를 드리고 백성을 축복 했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은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았다.
교황을 보라. 가는 곳마다 축복하고, 평안을 빌고, 교황청의 문만 지나가면 죄가 다 없어져버린다고 하니 얼마나 인기가 하늘을 치솟습니까? 그러나 선지자는 하나님을 대변했다. 하나님의 입장에 서서 성도들(백성) 앞에 나가서 하나님의 유익을 구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좇았다. 마지막 때 활동하는 것은 제사장이 아니다. 선지자다. 그래서 죄를 책망하고, 회개시키고, 주일 성수를 강조하고, 새벽마다 기도하라고 외치며 세상의 모든 것에 회개하라고 한다. 철통같이 하나님 편에 서서 선포한다.
그러므로 마지막 대 환난 때는 제사장적 종이 아니라 선지자적 종이다. 제사장적 종은 부담이 없다고, 기쁘다고 한다. 그러나 선지자적으로 말하면 고난과 아픔이 따른다.
갈라디아서 1장 10절에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예레미야 6장 14절을 보면 '거짓선지자는 사람에게 아첨한다.'고 말하고 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선지자이기 때문에 죄를 책망하고 하나님 편에 서서 심판을 경고했다.
지금도 제사장적 목회자는 인기가 많다. 사람이 좋다느니, 부담이 없다느니, 얼마나 인기가 많은 줄 모른다.
선지자적 종은 독재한다느니, 강하다느니, 별소리를 다 듣는다. 두 증인이 오늘 이렇게 조롱받고 마지막 역사 속에 순교의 재물로 사라진다.
(1)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했다.
두 선지자란 두 증인을 말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이란 짐승에게 속한 자들을 말한다.
두 증인은 물이 피가 되게 할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니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는 심히 괴로운 일이었다.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처럼 땅에 거하는 자들이 알지 못하는 진리를 말하고 물이 피가 되게 하면서 새 언약을 증거하니 그들에게는 고문이요 고통이 되었던 것이다. 말씀과 진리로 회개를 촉구했다.
* 왕상 18: 17 - 엘리야를 볼 때에 아합이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 마 23: 33 -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2)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큰 성과 동일한 의미이다. (3: 10. 6: 10. 8: 13. 13: 8,14. 17: 8. Mounce, Morris).
이들은 두 증인들이 소멸하는 불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회개를 촉구할 때 양심이 괴로워 증인들을 미워하였다. 믿는 자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예언이 항상 듣는 자들의 양심을 채찍질 했다. 그런대 두 증인이 죽음으로 질책할 종들이 없으므로 믿는 자들은 가책에서 놓임을 받은 것이다.
(3) 서로 예물을 보냈다.
두 증인의 죽음을 보고 잔치를 벌였다.
* 삿 16: 23-24 – 23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이르되,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다 모여 그들의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리고 즐거워하고 24 백성들도 삼손을 보았으므로 이르되, 우리의 땅을 망쳐 놓고 우리의 많은 사람을 죽인 원수를 우리의 신이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자기들의 신을 찬양하며,
* 느 8: 10-12 – 10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11 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정숙하게 하여 이르기를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조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하니 12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
* 시 89: 42 - 주께서 그의 대적들의 오른손을 높이시고 그들의 모든 원수들은 기쁘게 하셨으나
그러기에 증인들의 죽음과 시체가 거리에 장사되지 않은 채로 있는 것을 보면서 즐거워할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선물을 교환한다.
이렇게 선물을 교환하는 것은 당시의 관습으로 그들이 증인들의 죽음을 기뻐하여 축제를 벌이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들의 기쁨과 축제는 삼일 반 즉 극히 짧은 기간으로 끝나게 되며 그들은 자신들이 승리자가 아니라 패배자임을 인식하고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떨게 될 것이다.
바로 왕은 모세를 미워하여 죽이고자 했으며, 아합 왕과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도 엘리야를 죽이고자 했고, 헤롯 왕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도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다.
마찬가지로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큰 성 바벨론도 두 증인이 시체가 되어 길거리에 버려지는 것을 기뻐하며 즐거워할 뿐만 아니라 서로 선물(은사)들을 교환하면서 두 증인의 죽음을 기뻐하는 축제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기쁨과 축제는 삼일 반이니 극히 짧은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자신들이 승리자가 아니라 패배자임을 인식하고 두려움과 공포에 떨며 결국 멸망으로 들어가게 되지만 그때까지 그들은 깨닫지 못한다(계 18: 2-19).
2]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
그러므로 그들은 그것을 눌러 보려고도 하며, 잡아 치우려고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멸망을 자초함이다.
그들이 그 때에 그를 잡지 못한 원인은 아직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았기 때문이다(3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