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두꺼워서, 어려워서, 방대해서 포기한 고전 읽기. 해결책은 없을까?
고전이 좋은 것은 누구나 다 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일찍부터 아이들에게 고전을 읽히기 위해 고심한다. <노인과 바다> <죄와 벌> 등 고전 문학은 물론 <국부론> <자본론> <사회계약론> 등 제법 어려운 인문교양서들도 초등학생용 버전으로 많이 나와 있다. 부모들은 이런 책들을 세트로 구입하여 자녀들의 책장에 꽂아주지만 어른에게도 쉽지 않은 이 책들이 초등학생에게 쉽게 읽힐 리 만무하다. 조금 더 자라 고등학생이 되어 관심을 가지고 읽으면 좋겠지만, 많은 학생들이 입시공부와 고전 독서를 병행하는 것에 마음의 부담을 느낀다. 그래서 입시가 끝난 이후 본격적으로 책을 읽을 계획을 세우는 학생들이 많다.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가장 많이 대출하는 책의 목록에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등 ‘소포클레스 비극’과 ‘에우리피데스 비극’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등 그리스 고전이 해마다 상위 10위 안에 들어있는 것도 고전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대학생 중에 애초 마음먹은 대로 고전 읽기를 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학점을 따고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는 것이 더 급한 현실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당장 발등의 불의 끄느라 독서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녹록치 않다. 3,40대 직장인들 사이에 인문고전 읽기 열풍이 부는 것은 청소년기와 20대에 채우지 못한 고전에 대한 갈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기 또한 웬만한 시간과 정성을 들이지 않고서는 고전을 읽기가 쉽지 않다. 항상 더 급한 현실적 문제들이 우리의 삶에 도전해오고, 그래서 고전 읽기는 종종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떤 이에게 다이어트가 항상 내일부터 할 일이 되는 것처럼, 고전 또한 많은 이들에게 ‘언젠가는 읽어야 할 책’으로 끝나기 십상이다. 그런 까닭에 19세기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고전을 두고 “제목은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막상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라고 정의 내리지 않았던가.
이렇듯 고전이란 히말라야 산처럼 이름은 익숙해도 쉽게 오르기 어려운 높고 험준한 산과 같다. 왜 우리는 번번이 고전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도중에 덮어버리곤 하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고전은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의 고전은 두껍고 분량이 방대하다. 늘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에게 이것은 물리적 부담감으로 다가온다.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 꼭 한 번은 읽어야 한다는 위대한 고전, 언제까지 갈증과 부채로만 남아있어야 하는가? 대단한 결심과 시간과 공을 들여 읽을 수 없는 수많은 장삼이사(張三李四)에게 고전은 그저 넘지 못할 산인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수많은 사람이 도전했으나 아무도 풀지 못했다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로 끊어 풀었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일수록 때로는 단순한 해결책이 답이 될 수도 있다. <고전(古典) 결박을 풀다>는 고전을 읽느라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어봤으나 아직도 고전의 숙제를 풀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2. 원작의 매력을 정확하게 살려낸 줄거리와 명문장, 시의적절한 메시지, 깊은 통찰까지! 일석사조의 책 읽기
분명 책을 읽었는데도 무엇을 읽었는지 기억이 안 나는 경우가 있다. 아직 책 내용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미숙한 상태에서 읽거나, 혹은 흥미 없이 의무감으로 읽었을 때 이런 현상은 더 잦다. 고전 리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내용을 충실하게, 효과적으로 소개하느냐이다. 책 한 권을 통으로 읽고도 이해하지 못한 것을 다른 이의 리뷰를 읽으면서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것은 바로 선택과 집중의 힘이다.
동서양 필수고전 30권을 엄선해 담은 <고전 결박을 풀다>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줄거리 소개에 공을 들여 원작의 맛을 충실하게 재현했다는 것이다. 단순한 축약이 아니라 마치 한 편의 새 작품을 구성하듯이 책의 줄거리와 핵심 내용을 심혈을 기울여 담아냈다. 그리고 책 속의 명문장 혹은 하이라이트 장면을 따로 소개하여 독자가 원작의 감동을 더 음미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내용 소개뿐만 아니라 평론에도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는 것이다. 주제가 무엇이고 작가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 책을 썼는지,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전 쓰인 이 책이 21세기의 현대인에게는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 등에 대해 깊이 있게 통찰했다.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주제 접근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에서 책을 바라보고 해석하려 시도하였다.
“페스트는 비극적인 인간 조건, 한계 상황, 부조리한 삶을 상징한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자신의 페스트 앞에 무사하지 않다. 당신의 삶에서 페스트는 무엇인가? 당신은 그것에 어떻게 맞서고 있는가?” - 알베르 카뮈 <페스트> 편 중에서
“안티고네는 양심이라는 ‘자연법’과 왕의 명령이라는 ‘실정법’ 사이에서 양심을 택하여 시련을 겪게 되는 비극의 여주인공이다. 법을 따를 것인가, 양심을 지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러 가지 의무 사이에 있는 복잡한 현대인의 삶에서도 중요한 화두다. 법과 양심이 가리키는 방향이 다를 때, 당신은 어느 편에 서겠는가?” - 소포클레스 <안티고네> 편 중에서
이 책의 색다른 특징 중 하나는 글자만큼이나 그림의 비중 또한 크다는 것이다. 단순한 삽화가 아니라 활자와 함께 책의 흐름을 이끌고 가는 중요한 텍스트로서 기능한다. 이 책에 실린 모든 고전들이 ‘고전5미닛’이라는 5분 동영상으로 제작되어 카카오페이지를 통해 서비스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책에서는 특별히 10편의 QR코드를 수록하여 독자들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비롯한 디지털 기기를 통해 동영상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21세기 영상 이미지의 시대에 맞춰 단순히 읽는 책을 넘어 보는 책으로 도서의 외연을 확장한 것이다.
3. 인류가 남긴 위대한 고전으로 내 삶의 결박을 풀다
한 사람이 가진 상상력은 그가 가진 레퍼런스의 두께에 비례한다는 말이 있다. 좋은 레퍼런스를 많이 가지게 되면 그만큼 빛나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전은 인류가 축적한 가장 위대한 레퍼런스라 할 수 있다.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겪어가며 고전(苦戰)을 해도 우리가 고전(古典) 읽기를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다.
고전을 읽기 전에 이 책을 읽으면 의미와 포인트를 가장 똑똑하게 짚어주는 고전 안내서가 될 것이다. 고전을 읽은 뒤 이 책을 읽으면 내가 놓친 핵심과 메시지를 되새겨주는 든든한 고전 복습서가 될 것이다. 고전 읽을 시간이나 여건이 안 될 때 이 책을 읽으면 정제된 줄거리와 명문장, 메시지, 통찰까지 일석사조로 해결하는 완벽한 고전 솔루션이 될 것이다.
고전은 두껍고 난해하며 정복하지 못할 산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책 <고전 결박을 풀다>. 고전(苦戰) 없는 고전 읽기가 시작된다.
책속으로
헤밍웨이는 ‘파멸(destroy)’과 ‘패배(defeat)’를 엄연히 구별했다. ‘파멸’은 물질적 가치요, ‘패배’는 정신적 가치를 뜻한다. 주인공은 물질적으로는 모든 것을 잃었을지언정 정신적으로는 조금도 위축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애써 잡은 청새치를 상어 떼에게 모두 빼앗겨도, 자신의 힘으로 상대하기 힘든 무자비한 힘에 맞서다 쓰러진다 해도, 최선을 다해 살았던 삶이기에 결코 헛되거나 무가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나는 인간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다면적이며 이율배반적인 별개의 인자들이 모여 이루어진 구성체다.” 소설 속에서 실험을 통해 자기 안의 악마성을 발견하게 된 주인공 지킬 박사가 하는 말이다. 아무리 선한 인간이라도 그 안에는 악한 면이 존재하고, 아무리 악한 인간이라도 그 안에는 선한 면이 존재한다. 내면에 공존하는 선과 악의 이중성으로 인해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길에 놓인다. 그리고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오늘 또 다시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는 그대여, 당신 안의 하이드 씨는 안녕하십니까?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킬 박사와 하이드>
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렇게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달려갈까? 아니, 그 길이 성공을 향하는 길이기는 할까? 남들이 모두 가고 있으니까 그저 휩쓸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연도 저마다의 속도를 가지고 있다. 사과나무는 사과나무의 속도로, 떡갈나무는 떡갈나무의 속도로 자란다. 다른 나무와 보조를 맞추겠다고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지는 않는다. 하물며 사람이 걸어가는 생의 여정에도 자신만의 북소리가 있지 않겠는가? 170년 전의 소로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느 북소리에 발맞추고 있습니까? 그 북소리는 당신을 행복한 삶으로 인도하고 있습니까?’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