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릉(思陵) 정순왕후(定順王后)
정순왕후는 판돈녕부사 송현수의 딸로, 1440년(세종 22)에 태어나셨고, 1453년(단종 1) 14세의 나이에 타고난 성품과 검소의 미덕을 인정받아 간택되었고, 다음해 왕비에 책봉되셨습니다. 그러나 영의정이던 수양대군이 왕권을 잡은 후 단종과 생이별을 하게 되고 신숙주∙한명회 등의 청에 따라 왕후에서 부인으로 다시 노비신분이 되었으나, 1521년(중종 16) 6월 4일을 일기로 돌아가실 때까지 장장 7대 왕대에 걸쳐 82세를 사셨습니다. 이는 조선왕비 중에 2번째로 장수하신 것입니다.
정순왕후와 관련된 일화에 따르면 단종이 영월로 쫓겨갈 때 이별을 한 장소가 청계천 영도교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단종과 정순왕후가 이 다리에서 이별한 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하여 영영 이별한 곳, ‘영 이별 다리’ 혹은 영이별교, 영영 건넌 다리 등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그 말이 ‘영원히 건너가신 다리’라는 의미 영도교가 되었고 훗날 영미교(永尾橋)라고도 불렸는데, 이 역시 영이별교의 음이 전해 내려오면서 변해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후 흥선대원군이 영도교를 경복궁을 중수(수리)할 때 부수어 궁궐 석재로 사용하여 없어졌다가 현재의 영도교는 2005년 청계천 공사할 때 복원된 것입니다.
한편 영월에서 단종이 억울하게 살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정순왕후는 아침저녁으로 산봉우리에 올라 단종의 유배지인 동쪽을 향해 통곡을 했는데, 그 소리가 산 아랫마을까지 들렸으며 온 마을 여인들이 땅을 한 번 치고 가슴을 한 번 치는 동정곡을 했다고 합니다. 그 뒤부터 이 봉우리는 정순왕후가 동쪽을 바라보며 단종의 명복을 빌었다 하여 동망봉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현재 동대문 근처 숭인동 근린공원이 그 자리입니다..
단종과 정순왕후를 합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실현 가능성은 없어 보이며, 대신 1999년 4월 9일 사릉에 심어져 있던 소나무 하나를 장릉에 옮겨 심고 '정령송(精靈松)'이라 하였는데 무려 사후 478년만의 일입니다.
사릉(思陵) 정순왕후 기신제 재위기
기신제는 기일(돌아가신 날)에 제사를 지낸다는 의미로 사능 제향은 매년 5월 20일이며, 문화재청이 주최하고 대동종약원 장∙사릉봉향회가 주관하며, 남양주시와 남양주문화원이 후원하는 작은 규모의 지역 축제 성격을 띄기도 합니다.
기신제 정순왕후 제향 제497주기 2018,5,20
정순왕후 또는 사릉에 대한 전문적 지식은 지식백과나 조선왕릉 홈페이지를 참고하시고 여기에서는 옆 동네 조선왕릉 사릉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개인적 경험 등을 이야기 합니다.
사릉(思陵)에는 애잔한 스토리텔링(Storytelling)과 다양한 볼거리가 있습니다.
※길찾기=경춘선 사릉역에서 우측으로 사릉사거리에서 또 우회전 사릉교차로에서 근처좌향으로 031-573-8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