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암종택 (글/김익동 -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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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의 온오프라인 휴식처, 종갓집
아파트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편리함이다.침실과 주방, 거실과 화장실 등 먹고 자고 싸는 문제들이 한 공간에서 원 스톱으로 해결되니, 스피드가 경쟁력인 요즘사회에서 이보다 훌륭한 기능을 갖춘 주거공간도 드문 것이 사실이다. 나는 가끔씩 아파트 콘크리트 벽을 허물고 투명한 유리벽을 대입시키는 상상을 하면서 웃곤한다. 사는 사람은 달라도 사는 모양새는 비슷하기에 15층, 또는 18층 사람들이 모두 아래위로 비슷한 모습으로 먹고 자고 싸는 것을 상상하니 쓴웃음이 절로 나는 것이다. 잠자는 머리 위로 다른 사람의 등짝이 보이고, 밥 먹은 밥그릇 위로 다리 떠는 사람이 있다는 상상이 유쾌하진 않지만 얇은 시멘트 바닥을 경계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니겠지만 여하튼 전국의 수백만 세대가 삭막한 콘크리트 벽을 경계로 각자의 편리를 즐기면서도, 마음 한켠에 텃밭을 가꾸고, 정원가득 꽃을 피우고 아주 가끔씩은 불 지핀 아궁이로 뜨겁다 못해 장판까지 눌어붙게 만든 아랫목에 허리 눕히는 소망을 간직하고 있다. 선비처럼 살지는 못해도 선비의 삶을 동경하고, 종갓집 며느리처럼 살고 싶지는 않아도 종부의 품위와 권위는 존경하고 경험하고 싶어 한다.
안동은 세계에서 가장 넓은 박물관이라 불릴 만큼 문화재가 풍부하며, 특히 전통과 역사 깊은 고건축물은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다. 대개의 고건축물이 보존을 이유로 전시관광자원으로 활용되는데 반해 안동의 고건축물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생활공간으로 활용되는 특징이 있다. 그런 탓인지 관광객들이 안동의 문화유산을 둘러보고, 기대치를 충족할 만큼 감동을 받지 못했다는 푸념을 하는 것을 듣고 있다. 깨끗하게 정비되고, 세련된 안내정보, 편리한 로드맵을 갖춘 문화재 관광에 익숙한 탓에 자신의 살림살이와 별반 차이 없는 생활 문화유산에서 감동보다는 좀 불편한 과거의 생활모습정도로만 여기는 듯하다. 마치 편리한 아파트와 불편하지만 의미가 남다른 오래된 집의 구별정도로 말이다. 회사 일로 안동방문을 하시는 분들의 관광안내를 맡은 적이 있는데 종갓집에서 하룻밤을 체험하신 분들의 만족도는 언제나 최고였다. 빠르고 편하고 감각적인 생활에 익숙한 도시민들에게 종가고택의 불편함이 한두 가지가 아님에도 넉넉한 점수를 주는 것에는 추억과 향수, 그리고 감성을 자극하는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여유 있고 고즈넉하고 깊은 옛 정취의 진수를 만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 많지만, 그중에서 대표적인 한 곳을 소개하고자 하는데 농암종택(www.nongam.com)이 그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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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적이고 목가적인 가송마을, 농암종택
농암 이현보 선생의 주손이 생활하고 있는 농암종택은 낙동강 상류 청량산 자락,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에 자리하고 있다.
'가송리'는 그 이름처럼 아름다운 소나무가 있는 마을로 산촌과 강촌의 정경을 한꺼번에 만끽할 수 있는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마을이다.
종택 인근에는 도산서원, 국학진흥원, 오천유적지, 퇴계종택, 도산온천, 이육사생가 등의 유적이 있고
청량산과 더불어 가송리의 협곡을 끼고 흐르는 낙동강은 낙동강700리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농암의 17대 주손 이성원 선생은 600여년 전통의 농암종택과 유적들을 선생의 '강호문학'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의 공동공간으로 개방하여 '江湖之樂'과 '江湖之美'를 추구한 농암선생의 생애와 문학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행복한 삶에 대한 깊은 사색의 기회의 장이 되길 희망하고 있다.
군불 땐 아궁이에 호일에 싼 고구마 간식이 아이들에게 못 잊을 맛이라면 사랑문을 밀어 제치고 맞이하는
도산9곡의 비경과
종부께서 직접 장만하신 음식상엔 정갈함과 정성이 가득 담겨 있는 대접은
어른들의 소중한 기억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