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자비의 가르침 -
붉은 옷을 입은 찐짜 (52)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의 불교 공동체가 확립되고 라자가하에 이어 웨살리. 사왓티.. 고삼비에 차례라 정사들이 건립되자 비구와 비구니의 숫자는 급속도로 늘어났다.
도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찬탄하며 그 제자들에게 예배하고 보시하는 이들도 거리마다 증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예전에는 없던 새로운 문제들도 안팎에서 발생하였다. 지혜와 덕행을 배우기보다 명성을 탐하는 비구와 비구니가 생겨나고, 종족과 계급으로 우열을 논하며 무리를 짓는 이들도 생겨났다.
강가(Ganga). 야무나(Yamuna). 사라부(Sarabhu). 아찌라와띠(Aciravati). 마히(Mahi) 다섯 개의 강이 하나의 바다로 흐르듯 오직 열반을 추구하며 물과 젖처럼 화합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타일렀지만 교단 안에는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 교만을 탐하는 이들이 늘어만 갔다.
깨달음을 이루신 후 7년, 사왓티에 머무시던 부처님은 제자들의 나태함을 경책하기 위해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조용히 가사와 발우를 들고 사라졌다.
즐거움이 가득한 하늘나라 삼십삼천으로 올라간 부처님은 그해 우기를 제석천과 어머니 마야부인 그리고 천녀들에게 설법하며 지내셨다.
우기가 끝날 무렵 지난 과오를 반성한 대중의 요청에 의해 마하목갈라나가 도리천으로 올라가 부처님을 다시 청하였다.
부처님께서 물으셨다.
“사부대중이 수행에 게으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마하목갈라나, 사부대중을 교화하기에 힘들지는 않습니까?
서로 다투지는 않습니까? 외도들이 소란스럽게 하지는 않습니까?”
“모든 비구와 비구니들이 자신의 오만과 게으름을 뉘우치고 있습니다.
모든 우바새와 우바이들이 부처님을 뵐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두 뿔을 자른 소처럼 온유한 그들에게 외도의 비방과 소란은 조금도 문제 되지 않습니다. ”
“사라뿟따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세존이시여, 사리뿟따는 새로 출가한 오백 명의 비구들과 함께 상깟사(Sankassa)에서 안거하고 있습니다.”
“전하십시오. 이레 뒤에 상깟사로 돌아가겠습니다.”
소식을 들은 수많은 비구와 비구니들이 상깟사로 향하였다. 라자가하에 머물던 수부띠(Subhuti, 須菩提) 역시 그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수부띠는 걸음을 옮기다 부처님은 형상으로 뵙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발길을 돌렸다.
칠 일 후 부처님은 상깟사 성문 밖에 하강 하셨고, 기다리던 대중들이 부처님을 맞이하였다. 부처님은 그곳에서 사리뿟따와 수부띠의 지혜로움을 칭찬하고 사왓티의 기원정사로 돌아오셨다. 지난 잘못을 참회하며 스스로를 가다듬는 승가의 모습에 부처님과 제자들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사왓티 사람들의 마음이 아지위까와 니간타를 떠나 불교에 쏠리게 되자, 시기와 질투로 이성을 잃은 외도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거리에서 떠들었다.
“사문 고따마가 고행을 통해 깨들음을 얻었다면 우리도 고행을 했으니 고따마처럼 부처님이 아니겠는가? 왜 사문 고따마에게만 보시하는가? 우리에게 보시하는 자도 큰 과보를 받을 것이니 우리에게 보시하라.”
외도들은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어떤 방법으로든 부처님과 제자들의 명예를 실추시켜야 했다. 외도들이 모여 대책을 강구하고 있을 때였다. 젊고 아름다운 바라문 소녀 찐짜(Cinca)가 외도들의 사원을 찾았다. 공손히 세 번이나 인사하는 찐짜에게 그들은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당황한 찐짜가 물었다.
“저에게 무슨 잘못이라도 있나요?”
“누이여, 당신에게 잘못이 있어 이러는 것이 아니요, 우리는 고따마 때문에 지금 골치가 아파 죽을 지경이요."
외도 수행자들의 관심과 칭찬을 목마르게 기리고 있는 찐짜였다.
“무슨 일로 곤란을 겪으시는 겁니까? 혹시 제가 도울 수는 없을까요?”
한 외도가 귀찮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고따마 때문에 사왓티 사람들이 우리에겐 관심도 없소. 그대가 우릴 돕고 싶다면 저 고따마의 명성을 한번 떨어뜨려 보시오.”
“그런 것이라면 제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찐짜의 큰 소리에 외도들은 기뻐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날 이후 찐짜가 기원정사에 모습을 나타내곤 하였다. 곱게 화장을 한 그녀는 화려한 옷차림으로 향과 꽃다발을 들고 해질 무력 기원정사로 향했다. 설법을 듣고 기원정사를 나오던 사람들은 눈길을 끄는 그녀에게 물었다.
“이 늦은 시각에 어딜 갑니까?”
“내가 어디서 자든 당신들이 알아 무엇하게요?”
퉁명스럽게 시치미를 떼고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발걸음을 돌려 부근의 외도 수행자들의 처소에서 잠을 잤다.
그리고 아침이면 설법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을 기다렸다가 기원정사 문 앞에서 마을을 향해 걸어갔다.
“이른 시각에 어디서 자고 오는 길입니까?”
“내가 어디서 자든 당신들이 알아 무엇하게요?”
매일같이 이렇게 하다 한 달쯤부터는 비밀이라도 알려주듯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사실 기원정사에 있는 고따마 방에서 자고 오는 길이에요.”
삼 개월쯤 지나 찐짜는 천을 배에 감고 임신한 여자처럼 붉은 옷을 입었다. 그녀는 기원정사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여러분, 나는 사문 고따마의 아기를 가졌답니다.”
배에 감은 천을 두껍께 늘리던 찐짜는 여덟 달이 지나고 아홉 달이 되자 둥근 나무그릇을 끈으로 동여맨 뒤 산달이 가까웠다는 표를 내기 위해 소의 턱벼로 피부를 문질러 거칠게 하였다. 이윽고 어느 화창한 오후, 당당한 걸음으로 기원정사로 들어가 설법하는 부처님 앞에 섰 다. 수많은 신자들의 웅성거림을 즐기기라도 하듯 찐짜는 갖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대사문이여,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설법하고 계시는군요. 그렇지요. 당신의 속삭임은 참 아름답지요.
당신의 입술은 또 얼마나 달콤합니까. 그런 당신이 나에게 준 선물이 이 아이지요....”
사정을 모르는 이라면 누구나 동정을 느낄만했다. 웃고 울기를 마음대로 하는 찐짜의 무서운 연극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달이 차서배가 부르도록 당신은 나에게 음식은커녕 다리 펴고 누울 방 한 칸도 마련해주질 않는군요.
저야 어차피 버린 여자라지만 배 속의 애가 무슨 죕니까? 당신 아이가 불쌍하지도 않는가요?
사람들 눈 때문에 직접 할 수 없다면 다른 사람을 시킬 수도 있지 않나요? 국왕이 당신의 제자이고 수닷따 장자가 당신 제자인데 그것 하나 마련해 줄 수 없나요? 당신은 참 몸쓸 사람이군요.”
땅을 치며 울부짖다가 고함을 치고 머리를 쥐어뜯는 그녀를 부처님은 그저 물끄러미 바라만 보셨다.
웅성거리던 신자들의 눈길이 모두 부처님에게 쏠렸다. 부처님의 얼굴에는 조금의 변화도 찾아볼 수 없었다.
부처님이 조용히 말씀하셨다.
“여인이여, 그대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오직 그대와 나만이 알 것이다.”
“그렇지요, 당신과 저만 알지요. 그 비밀스런 짓거리 때문에 오늘 이렇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때였다. 몸부림이 지나쳤는지 동여매었던 끈이 풀어지면서 옷 속에 감추었단 나무그릇이 발등에 떨어졌다.
설법을 들으려 기원정사를 찾았던 사람들은 찐짜에게 침을 뱉었다. 지옥에 떨어질 가증스런 죄를 지은 찐짜는 사왓티 사람들이 던지는 욕과 흙덩어리를 뒤집어쓰고 기원정사 밖으로 쫓겨났다.
이 사건으로 외도들은 더욱 비난받게 되었고, 사왓티 사람들은 잠시나마 부처님을 의심한 자신을 책망하며 믿음을 더욱 견고히 하였다.
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