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에 떠오르는 이름 (隨筆)
김인희
만추의 하오에 창 너머로 나뭇잎을 세차게 흔드는 바람을 본다. 바람을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목련 나무 무거운 잎의 떨어지는 춤사위를 통하여 볼 수 있다. 그 옆에 있는 단풍나무의 마른 가지의 떨림을 통하여 볼 수 있다. 강변에 서 있는 갈대들은 또 얼마나 부대끼며 울고 있을까 생각하니 마음에도 찬 바람이 파고든다.
가을의 깊이만큼 내 인생의 계절도 깊은 골짜기 어디쯤을 서성이고 있는지 생각한다. 나무마다 무성한 나뭇잎으로 속살을 감추고 있을 때 생각나지 않았다. 찬 바람 불어와 잎을 하나씩 떨어뜨리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앙상한 골격을 드러낸다. 만추에 떠오르는 이름, 굳이 외면하지 않고 맞닥뜨려 서 있다. 나목으로 서 있는 나무와 옷을 겹겹이 껴입은 여인이 나름대로 환상의 커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도 지금처럼 가을이 깊었다. 우리,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은 호칭이다. 단 한 번도 우리가 되어보지 않았던 사람. 이렇다 할 추억 하나 없는 사람과의 관계를 우리라고 말해도 되는지 의문이다. 그러나 찰나처럼 스쳐 간 시간 속에서 나무처럼 한 사람이 있었다. 그 나무를 바라본 또 한 사람이 있었다. 하나와 또 다른 하나, 둘이 있었으니 복수명사 우리는 문법에 들어맞는다.
그때의 시간으로 되돌리려니 나이테를 서른여섯 개 지워야 했다. 시골에서 상고를 갓 졸업하고 올라온 사회 초년생이 얼마나 촌스러웠을까. 상상만으로도 촌티가 줄줄 흐르는 모습이 선명하다. 경리로 근무할 때 업무차 자주 사무실에 오던 사람, 과장님 친구인 사람, 그 사람의 전부였다.
어느 날 갑자기 그 사람이 점심시간에 불쑥 나타나서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사무실 직원과 식사하다가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내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했다. 그 사람의 사무실에도 나와 같은 나이의 여직원이 있다고 했다. 그 직원은 식사할 때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사람에게 큰 소리로 씩씩하게 말한다고 했다. 매사 씩씩하지 못한 나를 그 사람은 사무실에 있는 여직원과 너무 다르다고 누누이 말했다. 그때 그 말을 ‘나는 촌스러운 사람’이라고 넘겨짚고 의기소침했었다.
그 후로 그 사람이 사무실에 올 때마다 씩씩한 척했다. 나는 말할 때 큰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했고 점심 식사할 때 불쑥 나타나도 당황하지 않고 차곡차곡 식사했다. 그날 점심 먹은 것이 체해서 약을 사다 먹었다. 날마다 만나다시피 하면서 주고받은 대화가 은행나무가 떨어뜨린 낙엽처럼 켜켜이 쌓여갔다.
과장님이 어느 날 그 사람에 대해 말해주었다. 군대에서 처음 만난 친구, 같이 자취하면서 지내고 있다고 했다.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아무 관계도 아닌 타인이었기에 궁금한 것이 따로 없었다. 그 사람이 사무실에 자주 오더라도 과장님을 보러 오는 것이었기에 조금도 거북하지 않았다. 시간이 가면서 자연스럽게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어느 날 사장님이 서울에 있는 사무실만 운영해야겠다고 했다. 부천 사무실을 정리했을 때 나는 용산전자상가로 출퇴근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과장님과 과장님의 친구, 그 사람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간혹 과장님과 통화할 때 먼발치로 그 사람의 안부를 듣는 것이 전부였다.
늦가을 용산전자상가에서 퇴근 후 1호선 전철을 타고 부천역에서 내리면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옷깃을 여몄다. 부천역 광장 양쪽 끝 포장마차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진한 향수를 자극했다. 고향 집 처마 아래 굴뚝에서 엄마의 밥 짓는 연기를 보듯 진한 그리움에 이끌렸다. 엄마가 보글보글 끓이는 된장찌개 냄새가 피어올랐다. 부천역 광장에 떨어진 플라타너스 낙엽이 매연을 뒤집어쓰고 까맣게 때 묻은 얼굴로 아스팔트를 배회하는 모습이 흡사 나와 같다고 생각했다. 코끝이 찡했던 그때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버스 승강장으로 가기 위해 횡단보도에서 녹색 신호등을 기다리다가 레코드 가게에 들어갔다.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선율이 강하게 내 마음을 잡아끌었다. 주인에게 흘러나오는 그 음악 테이프를 달라고 했다. 그때부터 리처드 클라이더만의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를 마음 깊숙한 곳에 저장했다. 언제든지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를 들으면 부천역 광장에 서 있는 스무 살 소녀가 있다. 역 광장을 휩쓰는 회오리바람,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포장마차, 때가 꼬질꼬질하게 묻은 낙엽이 피아노 선율에 춤추듯 되살아나곤 했다.
세 사람이 번개처럼 극적으로 만난 건 그 무렵이었다. 나와 과장님 그리고 그 사람, 우리 셋은 식당에서 식사하고 자리를 옮겨서 맥주를 마시면서 하하 호호 웃었다. 잠시 과장님이 동생을 만나러 간 사이 그 사람과 나, 둘이 남았다. 그 사람은 아버지 얼굴을 모른다고 했다. 가족은 어머니와 남동생이 전부라고 했다. 그 사람은 오랫동안 산사에서 살았고 혜원(가칭)이라는 법명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종교에 깊이 귀의했노라고 했다.
나는 그 사람에게 꼬마였을 때부터 교회에 다녔다고 말했다. 주일에는 온종일 교회에서 지낸다고 말했다. 나는 주일에 새벽기도, 주일 어린이 예배 교사, 성가대, 청년부 찬양 연습, 저녁 예배까지 한다고 낱낱이 말하면서 밝게 웃었다. 그 사람도 내 말을 들으면서 환하게 웃었다. 과장님이 돌아왔을 때 그 사람은 맥주잔에 가득 맥주를 따랐다. 나는 과장님과 그 사람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나왔다.
지천명 고갯마루에 앉아 그윽한 눈빛으로 석양을 바라본다. 스무 살 꽃다운 시절, 늦가을 저녁에 아스팔트를 배회하는 플라타너스 낙엽이 있고 향수에 젖어 눈물 글썽이는 키 작은 소녀가 있고 소녀를 위로하듯 흐르는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이 있다. 지온을 위한 발라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