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골목길을 접어들 때, 어디선가 따라가고 싶은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아들이 유아기 때, 중국집 앞에서 좋은 냄새가 난다며 잠깐 머물다 가자고 했던 것처럼 나도 향기에 취해 킁킁거리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창으로 새어나오는 담배냄새였다. 다른 사람에게는 혐오 기호식품 향이지만 내게는 그리운 아버지냄새다. 스치는 담배 향을 따라 어느새 상념은 고향 집으로 간다.
2) 어렸을 적 친정집은 마당을 가운데 두고 큰 채와 사랑채로 나누어져 있었다. 아버지가 출타하고 나면 사랑채를 지키기 위해 그 방에 머무는 것이 일상이었다. 아버지는 담배를 즐겨 태우셨기 때문에 온통 담배 냄새가 배어 있어 빈방이라는 느낌이 없을 정도였다.
3) 낮이면 사랑채에는 항상 어른 분들이 계셨다.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사람. 담소를 나누는 사람 등. 점심시간이면 아버지는 당신 밥상에 숟가락만 몇 개 더 올리라고 말씀하셨지만 우리가 먹을 밥이 부족해도 정성껏 밥상을 올렸다.
4) 성장기에 아버지를 보면서 남자란 배려심이 많고, 쉽게 화내지 않으며 매사에 신중한 삶을 사는 줄 알았다. 이른 아침이면 큰 머슴을 불러 놓고 하루 일과를 지시하고 당신은 소금, 담배, 문방구 등의 상업에 열중하였다 엄마는 아버지가 머슴들을 따라다니며 감독하지 않는다고 끝없이 잔소리를 늘어놓아도 타박하거나 여자를 무시하는 일은 없었다. 말없이 지켜보는 것이 전부였다.
5) 아버지는 해마다 추수가 끝나면 산 아래에 살고 있는 장애인 집에 보리쌀과 쌀을 갖다 주었다. 가을이면 햅쌀 한 가마니씩을 한 부모 가정에도 어김없이 갖다 주었기 때문에 가끔 엄마와 의견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 어린 내 눈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우리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6) 당신이 어렸을 때,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형님 아래서 고생을 해서 그런지 몰라도 머슴에게도 보리밥은 주지 말라고 당부했다. 젊은 날 아버지는 여러 가지 일을 해서 몇 해마다 농지를 늘려 나갔다. 아버지가 이룬 살림살이로 내가 자랄 때는 부잣집 딸이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살면서 부모님의 형편이 내 살림보다 경제적으로 훨 낫다고 생각되어 아버님께 용돈 한 푼 드린 적 없이 주는 것만 야금야금 받아먹었다. 지금은 돌이킬 수 없는 후회로 남았지만 그 때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7) 내 고향 마을은 그리 높지 않은 산들이 병풍처럼 처져 있고 들판이 넓었다. 어느 해엔 경지정리를 해서 구불구불하던 논들이 사각으로 반듯반듯 해지고 사이사이로 농로가 나서 농사짓기에 편리하도록 만들어졌다. 하루는 어떤 농부 아저씨가 우리 집에 찾아왔다. 당신 논 번지가 면장과 부면장의 논과 바뀌었으니 억울함을 밝혀 달라고 애원했다. 아버지는 밤잠을 설쳐가며 갈등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논의 번지가 바뀐 것을 증인이 되어 증명해 주어야 하는데 면장과 부면장이 사촌 오빠와 또 다른 친척이었기 때문이다. 정의를 따르자니 조카들의 공무원 직책이 날아갈 판이고 모른 척하자니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오랫동안 마음 앓이를 하는 것을 보았다.
8) 최선이 아닌 차선으로 억울한 농부를 설득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면서도 도리를 벗어나지 않는 중재로 오랫동안 괴로워하시며 담배를 더 많이 태우셨다. 아버지는 장기간의 흡연으로 기관지에 이상이 생겨 병원에 입 퇴원을 반복했다. 담배가 아버지 건강에 지장을 주었지만 나는 지금도 그 담배 냄새가 좋다. 길을 가다가도 담배 냄새가 나면 그리운 아버지 생각에 발길을 멈춘다. 내가 30살 무렵에 산후 우울증으로 심하게 아팠던 적이 있다. 체중이 37kg으로 뼈만 남은 상태여서 어린자녀들을 두고 죽을 것만 같았다. 하루하루가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9) 어떤 친구의 권유로 소문난 신점을 하는 점쟁이를 찾아갔다. 그분께서 하시는 말씀이 “너는 절대로 일찍 죽지 않는다.” “너희 아버지가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고 옷 없는 사람에게 옷을 벗어준 그 공덕으로 시들시들해도 오래 살게 될 것”이니 걱정 말라고 하셨다. 그분 말씀대로 아버지가 쌓은 공덕으로 어느새 내 나이 여든을 바라보게 되었다.
10) 엄마는 열 번째 자식으로 태어난 내가 못생긴 딸이라고 밤낮으로 구박을 했다. 남의 등에 업혀본 기억이 없는 나는 영아기 때, 엄마와의 애착형성 부재로 두려움이 많고 자존감이 낮은 편이다. 무슨 일이든지 쉽게 도전하지 못하고 망설임이 많다. 그런연유로 살면서 얻는 것보다 눈앞에서 잃는 것이 더 많았다. 엄마는 나를 업둥이 취급을 하면서도 이율배반적으로 꽃은 열심히 가꾸는 분이었다. 계절마다 집 앞뒤뜰 화단은 꽃향기로 가득했고 마을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11) 어릴 때 엄마를 향한 거부감 때문인지 외람되게도 나는 꽃을 싫어한다. 아름다운 모습이나 향기가 문제가 아니다. 지금도 꽃을 보면 바로 엄마 생각이 나기 때문에 선물로 받은 꽃은 집으로 가져오지 않는다. 애써 외면하고 싶어 가정에서도 꽃을 가꾸지 않는다. 유년에 저장된 엄마와의 나쁜 기억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는 정반대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남들이 좋아하는 꽃향기에는 관심이 없고 모두가 싫어하는 담배 냄새가 내게는 또 다른 그리움의 향으로 남았다. 나는 내 자녀들에게 어떤 향기로 남을 사람일까?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일단 아버지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2단락에선 '그 방'이 두 번 나오고 '방'은 세 번 나옵니다.
7단락은 특별한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9단락의 앞 두 문장은 8단락에 붙여주어야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정리하고 다시 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