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뒷마당에 주차장이 있다. 주차장 벽에는 마을 그림이 그려져 있다. 나지막한 동산 언덕길에는 풀을 뜯는 양무리가 살고 종탑 달린 교회가 종을 울린다. 도로 쪽으로는 바다 위로 갈매기가 난다. 여러 해 전에 주차장을 만들면서 그렸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색이 벗겨져서 새로 꾸미기로 했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동굴 벽과 천장 등에 동물 그림을 그렸다. 생활 모습과 종교의식 등을 새겨 넣기도 했다. 현대의 벽화는 건물의 특성을 이미지화하고 인테리어 효과도 첨가해야 한다. 주차장 벽화는 색이 바래 그림을 새로 그린단다. 교회 관리부서에서 용역을 주려 한다고 덧붙였다.
그 순간 우리 그림동아리가 그리겠다고 나섰다. 문화회관에서 한·중·일 교류전도 했고, 여러 차례 전시회를 열었으니 실력 발휘를 하자며 큰소리를 쳤다. 그림동아리들이 각자 시간을 내기로 의견을 모았다. 낮 시간동안은 조용하니, 교회 큰 버스를 주차장 가운데에 세워 두고 그늘을 만들어 재료와 소지품을 두기로 했다. 두툼한 파란 비닐이 깔렸고 페인트, 붓, 장갑 등도 갖추었다. 큰 사각 통에는 흰색, 중간 통에는 청, 황, 녹, 적색의 수성 페인트가 들어있다. 작은 통에는 검은색이 들어있었다. 작업복과 모자로 무장은 잘했지만, 막상 시작하려니 엄두가 안 나 난감하여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사전 지식도 경험도 없이 무모하게 덤벼들었으니, 앞이 캄캄할 수밖에, 그러나 되돌릴 수는 더더욱 없다.
그림 전시를 했다지만 학교 다닐 때 미술 시간에 그려보고 오십 년이 넘도록 잊고 살았다. 용기를 내어 그림동아리를 찾았을 때는 가슴이 두근 두근거렸고 붓 잡은 손이 떨렸다. 왕초보라 정물화부터 그리는 연습을 했다. 사진이나 그림책의 사과, 석류, 도라지꽃 등을 보고 그려보는 정도이다. 이젤에 올린 작은 캔버스의 크기가 기껏이었다. 물감도 콩알만큼 붓에 찍어서 그리는 깜냥이 경력의전부다.
페인트 말 통을 보고 놀랐고, 네 가지 색뿐이라 할 말을 잃었다. 이전의 그림은 사진으로 보관해 두었지만 널따란 하얀 벽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손바닥만 한 붓으로 어찌 마당 같은 벽을 채운단 말인가.
총무가 먼저 나섰다. 녹색 물감으로 언덕을 그리고 적당하게 폭을 나누어 각자에게 그리게 했다. 종이컵에 필요한 색을 담아 조심하며 발라 가는데 바람이 획 불었다. 종이컵이 데굴데굴 굴러가며 바닥에다 물감을 쏟아버린다. 마르기 전에 땀 닦는 수건으로 얼른 눌러 닦았다.
첫날의 시행착오를 교훈 삼아 집에 있는 대야를 가져갔다. 붓이 잘 나가게 물도 섞었다. 하루 연습했다고 큰 붓으로 동산도 쓱싹 칠하고, 양이 그려질 자리도 둥글려 두고 꽃도 그렸다. 각자 만든 물감의 농도가 달라서 동산이 짙고, 연하고, 짝짝이 되었다.
셋째 날은 비가 많이 와서 그림 그리기를 쉬었다. 다음날도 오전 내내 비가 내렸다. 날이 개자 초보 화가들이 주차장으로 모였다. 총대를 멘 총무가 녹색으로 동산을 다시 칠했지만 뒤늦게 합류한 회원이 원근이 있어야 된다며 온 벽에다 붓으로 덧칠을 했다. 늘 그렇듯이 일이 어느 정도 눈에 익으면 불평이 생기고 사공이 여럿 나타난다. 그리는 시간보다 평가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모자는 썼지만, 땡볕은 뜨겁다. 몸은 물을 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각자 바쁜 일이 있으면 일찍 가고, 늦게 오고, 들쭉날쭉 하는줄 알면서도 식사도 챙기지 않으며 시원한 물도 없이 일하게 한다며 투덜거렸다. 자기 그림에 손을 대어 이상하게 됐다고도 한다. 섭섭한 마음 조금씩 있었다.
도로 쪽으로는 부산의 상징인 바다와 갈매기를 나에게 맡겨 그리라고 했다. 갈매기는 사진으로 보고 스케치 연습을 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선으로 대강 자리를 잡았다. 모두 자기 그림에만 집중했다. 처음 올라가 보는 사다리는 무섭고 떨렸다. 누군가 사다리를 잡아주기를 바랐지만 포기했다.
떨리던 것도 새를 좋아하니 참을 수 있었다. 푸른 하늘을 마음껏 날아오르는 새가 부럽기 때문이다. 하늘을 나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노년인 지금도 구름 위를 훨훨 날고 싶다. 다리는 뭉쳤어도 마음은 편안했다. 수평선과 모래밭으로 마무리하고 파도를 그리니 엇비슷하다. 서로 삐걱거렸지만 그림은 완성되어 갔다.
주일을 앞둔 토요일. 그림동아리 회원들의 뚝심으로 마지막 손질을 했다. 선명해진 벽화를 보면서 겁 없이 달려들었던 우리들의 무모함보다, 교회와 성도들의 시행착오가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풀 뜯는 양들을 보며 그동안 살이 오동통해졌다며 미숙한 화가들이 웃었다. 서툰 솜씨의 갈매기가 더 정겹고 보기 좋다. 모두의 마음은 그림 속 양들처럼 평화롭다.
오늘도 그림 앞을 찾아간다. 벽은 딱딱하고 삭막하지만, 새는 내 마음의 꿈이며 출구이고 희망이다. 비가 와도, 여름이나 겨울에도, 밤까지 날기를 멈추지 않는 나의 갈매기가 있으니…….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