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겨울이다. 계획한 해외여행이 무산되고, 가까운 곳으로 눈을 돌려 둘러보니 콘텐츠는 사방에 널려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인지하는 기회가 되었다. 이번엔 강남구 논현동 소재 건축자재업체(특히 타일) 윤현상재 건물에서 개최한 <Attitude and Its Process 태도, 그리고 과정에 대하여>를 방문했다.
기업에서 화랑을 운영하는 것과 유사한 맥락에서, 요즘 사업체가 문화 활동과의 접목은 거의 필수 시대이다. 그래야 브랜드 가치도 제고된다. 아래 사진 건물 앞 영문으로 47번째 전시라고 쓰여 있는 팻말을 보고 예전부터 전시와 비즈니스를 공동 마케팅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현관 문을 열었는데 모두 일하느라 분주하다. 와중에 전시를 보러 왔다고 했다. 3층과 4층 SPACE B-E에서 관람하면 되는데, 매장 전체를 구경해도 된다고 친절하게 동선까지 알려 주셨다. 아래 사진은 그들의 일터 공간이다. 타일 중심 업체인 만큼 트렌디한 색상의 타일로 벽이 모자이크 되어 있다.

빈티지 풍의 문짝들이 무심하게 지나다니는 통로에 세워져 있다. Life is a little unsatisfying x Present is Present 등의 글귀가 눈에 띈다. 삶에 대한 만족도는 순전히 개별적인 문제이다. 자기 기준으로 남을 판단해서도 안된다.

판매용 문짝들이었다. 아래 문짝에 붙어 있는 메모 때문에 알았다. 'ooo 차장 판매완료'라는 쪽지였다^^

타일, 욕조 등등의 전시장을 둘러보고 본격적으로 <Attitude and its Process>관람을 시작했다. 아래 사진 복도 왼쪽에 길쭉한 나무 문이 있는데 그 짜투리 공간의 '얇은 문' 디자인이 맘에 들었다. 본 전시는 Archi@Mosphere, WGNB, U.LAB, Betwin Space의 디자인 작품들이다.

전시 취지는 익숙한 것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야 하는 디자이너의 태도, 각기 다른 관점과 태도로 자신만의 작업을 구축하여 결과물을 탄생시키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디자인 스튜디오들 간 콜레보로 탄생했다. 아래 왼쪽이 첫번째 전시장 입구이다.
"건축의 첫번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비밀은 세상의 다른 사물들을 수집한 다음 그것을 결합하여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by Archi@Mosphere

좁은 공간이다. 그러면서 네온 사인이 사방에 들어오는 것이 영화에서 본 미래도시에 도착한 착각에 빠질 수 있는 공간이었다. 자세히 보면 그물 망사로 이루어진 겹겹이 이루어진 책장들로 보이기도 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마지막에 우주인 아빠가 구부러진 시공간 지점인 거대한 책장 사이에 갇혀 딸과 연락하며 부유하는 장면이 연상되기도 했다.


모듈의 반복(Repeat), 잘라냄(Cut), 열린 지붕(Open)을 구성하는 프로세스를 설명하고 있다. 판형모듈은 기둥이 되었다가, 바닥이 되었다가천장이 되기도 하고 벽이 되기도 한다. 또한 가구가 되기도 한다. 모듈은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래서 가능성은 무한하다.

바닥이 유리로 되어 있다. 카메라 렌즈를 바닥에 대고 찍은 것이 아래 사진이다. 설명에 따르면, 경계 선상에서 끝없는 질문을 던지며 디테일을 발견해 나가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끝이 없다. 죽으면 이런 곳에 빠지는 것일까.

8평 남짓한 공간임에도 무한한 공간에 플로우팅(floating)하고 있는 듯하다.

두 번째 디자인이다. 3업체가 콜래보하였다. 어린 왕자 구절이 쓰여 있다. "비밀을 가르쳐줄께. 아주 간단한 거야. 오직 마음으로 봐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거야."

첫 방보다 주변이 밝아졌다. 'Conblind' 라는 글씨를 보고 이런 단어는 처음 보는데 했는데, 역시나 만들어진 합성어였다.

일반 가정집에서 설치해도 될 듯한 따뜻한 베이지색의 블라인드로 둘러쳐진 전시공간이다. 여기에 반전이 있다. 나무로 된 소재인 줄 알았던 블라인드가 콘크리트로 된 것이었다. 그래서 콘크리트(concrete)+블라인드(blind) = 콘브라인드(conblind)였다.


무겁고 차디찬 콘크리트이지만, 주변에 꾸며진 것과 합해지니 전혀 다른 물질로 보인다. 우리에게 익숙한 콘크리트에 대한 편견을, 다르게 이용하면 다른 물성으로 다가온다. 관점을 달리하거나 다른 시도를 통해 무겁다고 생각한 것들을 유연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디자인 방이다. "익숙함에서 의외의 것을 발견하고 재료 본질의 순수성을 탐닉하는 것을 즐겨 한다." by Betwin Space

건물을 이용한 디자인방이다. 본 감상기의 첫 사진의 건축 형태를 보면 기울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도시의 부산물'이라는 부주제를 가지고 있는 방이다. 모든 것을 재활용품으로 만들었다.

재활용품으로 만든 것으로 자신의 본래 모습을 지우고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했다. 태블릿이 함께 전시되어 있어, 관련 작품들이 제작되는 과정(process)을 보여준다.

철사가 마구마구 엉켜 있는 작품인데, 지금은 이런 모습이지만 본래 어떤 형태로 어떤 기능을 했던 물질이었다가 폐기된 것이다.

그 옆에 아래와 같은 좁은 공간이 있다. 저 끝에 거울이 있어 반대쪽 끝에서 촬영하는 나를 비춘다. 저 의자 등 모든 것이 재활용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제 지구엔 더 이상 버릴 데가 마땅치 않다. 기존의 것을 재활용하거나, 부수어 다른 물질로 만들어 사용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경계선상에서 촬영했다. 왼쪽 전시방과 오른쪽 전시방의 경계이다.

그 옆으로 또 다른 좁은 세로 긴 복도 공간이 있다. 왼쪽엔 의자가 있었지만, 오른쪽에는 불상이 하나 떡하니 놓여 있다.

쓸모없는 쓰레기에게도 애정을 주어 필요한 어떤 것으로 만들고, 그것이 또 쓰레기가 되고, 그렇게 불교에서처럼 윤회하는 것인가 한다.

네 번째 디자인 방이다. <무형의 벽돌 Invisible Brick>이라고 써 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 무형의 상상들을 하나씩 탄생시키고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과정을 표현한 것이다. 수많은 시도와 그 과정들을 '무형의 벽돌'로 형상화했다.

저기 의자에 앉아 보이지 않는 벽돌을 쌓아가 보기로 한다. 몇 분 앉아서 익숙한 것에서 새로운 것들을 상상해 볼까 했는데, 그냥 다리가 아파 잠시 쉬어가는 의자로 활용했다^^ 무형이 아니라 유형인데, 만든 자가 무형이라면 무형이지 생각하며 앉았었다.

4층에서의 4개 디자인 방을 거쳐 3층으로 내려왔다. 전시가 이어진다. 이곳은 전시 작가들의 아카이브실로 꾸며져 있었다.

작업 노트이다. 내용을 자세히 몰라도 북북 그은 manuscript만으로 운치가 충분하다. 앞으로는 여행할 때 스케치도 좀 해볼까 생각했다^^


마늘육종이 모티브가 되어 제작된 의자가 전시되어 있는 이곳이 디자이너들이 작업한 용품들과 그 이상을 전시해 놓은 아카이브 공간이다. 오른쪽으로 작가들의 태도(atitude)와 그 작업 과정(process)에 대한 영상도 흐른다.

모든 작가들이 창조적인 작품을 하나하나가 탄생시킬 때마다 사소한 에피소드가 숨겨 있을 수 있다. 우연히 예상치 못하게 탄생하는 경우도 많다. 그것이 과정, 즉 프로세스이다. 동 전시의 작가들의 태도에 더하여 모든 인간은 개별적이다. 70억 인구 한명한명의 태도는 70억개이다.

층계를 내려갈 때마다 회사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각기 다른 세면대들이 전시되어 있는 가 하면, 또 한층 아래로 내려가면 욕조가 있고 그렇다.

세면대이다. 세수하거나 손 씻을 때 즐겁게 아이들이 있는 집에 놓으면 좋을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