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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 주제 : 생명책에 내 이름이 녹명된, 성령으로 거듭난 자의 참 믿음
♡착하고충성된교회 (G&F 미니스트리), 2024. 1. 21. (1월 3째 주일예배)
⚫예배의부름: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눅14:38)
⚫교독 말씀 : 시편 27장
⚫찬 송 : 회개 찬송 : 338(279) / 3(5), 135(150) 387(349) 498(441)
⚫대표 기도 : 조OO 형제 (and 주님 가르치신 기도)
⚫성경 말씀 : 요한복음 18 : 10 ~ 27
⚫설교 주제 :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합심 기도문 낭독 / 축도
3년 반 동안 주님께로부터 복음을 듣고, 또 반석같은 신앙고백을 해서 주님께 크게 칭찬을 받았던 수제자 베드로가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한 사건은 참으로 충격적인 일입니다. 4 복음서에 자세히 기록된 사건인 것을 보면, 우리 성도들에게도 타산지석으로서의 교훈을 깨달으라고 주신 말씀인 것 같습니다. 그럼, 베드로는 왜 크나 큰 과오를 저질렀을까요?
1.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주님을 위하여 내 목숨을 바치겠다”라는 베드로의 주님을 향한 충성 맹세는 굳센 의지와 함께 진실된 마음에서 우러나온 고백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요한복음 13장36.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 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 37.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를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주님께서 오늘 밤에 모두 다 주님을 버릴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을 하셨을 때에, 역시 성질이 불같은 베드로가 수제자답게 펄쩍 뛰면서 가장 먼저 주님의 말씀을 부인하고 나섰습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마16:16)라는 위대한 신앙고백을 베드로가 했을 때,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것을 네게 알게 한 분은 혈육(을 가진 사람)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주님께서도 그의 참 신앙고백을 칭찬해주시고 인정하셨듯이, 이번에도 “주여, 모두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 만큼은 단 한순간도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라고 다짐하는 베드로의 고백은 허풍이 아니라, 진실되고 순전한 충성 맹세인 것 같습니다.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언제든지 주님을 버리지 않겠나이다”(마26:31)
심지어는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를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요13:37)라고 다짐하는 것을 보아도 베드로의 충성맹세는 굳센 의지와 진실된 마음에서 우러나온 참된 신앙고백임이 분명합니다.
마태복음 26장 31.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33.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2. “오늘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눅22:34)” 는 주님의 청천벽력 같은 예언의 말씀을 듣고서도, 베드로는 물러서지 아니하고 “절대로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목숨 걸고 죽도록 주님께 충성하겠습니다.”라고 더욱 강력하게 주님께 충성을 약속하고 맹세하였습니다.
또 베드로에게 질세라하고 다른 제자들도 다 이와같이 주님께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요13:3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마26: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35.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마가복음 14장29.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찌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 3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31.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눅22:33. 저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감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마음의) 준비를 (다)하였나이다. 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 다 도망갔었지만, 베드로와 요한은 주님을 버리고 도망친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서 또 주님의 안부도 염려되어 대제사장의 집까지 뒤따라 갔습니다. 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다고 호언장담했던 베드로는,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연약하다"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이 떠올라서 자신의 약한 믿음을 깨닫고 부끄러워하며 몰래 뒤따라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세 번 부인할 것이라는 주님의 경고는 깜박 잊어버렸나 봅니다.
요한복음 18장 17.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25.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아니라 하니 26.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베어 버리운 사람의 일가라 가로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던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27.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마가복음 14장70.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당이니라 71.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의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72. 닭이 곧 두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번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생각하고 울었더라
4. 그러면, 베드로와 제자들은 주님의 경고를 듣고도 어찌하여 호언장담했던 그들이 이처럼 혼비백산이 되어서 다들 도망갔으며, 수제자인 베드로도 어찌하여 주님의 경고 말씀을 듣고서도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하는 비참한 지경에 처하게 되었을까요?
1) 자기의 심중에 숨어있던 기대감이나 야망이 좌절될 때에 낙심하게 되어 제자들은 주님을 배신하고 도망쳐버렸던 것입니다. 나의 믿음에도 기복신앙이나 정욕과 야망이 숨어있지 않은가 철저히 회개하여, 순전한 믿음으로 재 무장하지 않으면 나도 주님을 배신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여전히 바로왕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준 모세처럼, 우리 주님을 로마황제의 식민지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켜주실 민족의 메시야로만 알고, 주님께 충성하면 높은 자리와 부귀영화를 차지하게 될것이라고 기대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계속적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실 것이라고 예고하시며, 오직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만 말씀하셨습니다. 급기야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주님께서 작별인사를 하시며 성만찬과 세족식을 하신 후에는 잠시후에 체포되시면 죽으시어 제3일에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고 말씀하실때, 내심으로는 무척 당혹스러웠을 것입니다. 부활에 대한 말씀은 잘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속수무책으로 싸움 제대로 한번 하시지도 않고 무참히 죽게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니, 참으로 닭 좇던 개처럼 허망한 신세가 되었고, 자칫하면 주님의 제자로 따라다닌 죄로 인하여 덩달아 체포되어 주님처럼 신성모독죄를 뒤집어쓰고 나무에 매달려 죽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까지 엄습해 왔을 것이 충분히 예상됩니다.
기복신앙으로, 예수 믿으면 이 땅에서도 축복을 받고, 죽은 이후에는 천국에 간다고 하니 양수겹장으로 오로지 복을 받고 싶어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도리어 신앙때문에 세상으로부터 박해를 받게 된다면, 허망한 기대와 야망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 주님을 배신하고 서로 먼저 도망치려고 안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겸하여 섬기는 자들은 가장 먼저 주님을 배신하고 세상과 적그리스도의 품으로 도망칠 것입니다.
누가복음 22장 19.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24. 또 저희 사이에 그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2) 주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무조건 주님께 충성하겠다고 다짐한다면, 도리어 큰 사고를 쳐서 주님의 거룩한 이름을 능멸하거나 주님의 뜻을 거역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 말씀을 잘 읽고 기도하면서 주님의 참 뜻을 깨닫고 확실히 알아야만, 주님께 온전히 충성하면서 “주님의 나라와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고백하며 제대로 주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8장 11.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검을 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마가복음 14장47. 곁에 섰는 자 중에 한 사람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 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누가복음 22장50. 그 중에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오른편 귀를 떨어뜨린지라
51.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방금 목숨을 다바쳐 충성하겠노라고 충성을 맹세한 대로, 베드로는 칼과 몽둥이로 무장한 무리들로부터 우리 주님을 지켜드리고 피신시켜 드리기 위해서, 가장 용감하게 앞장서서 적들과 싸웠습니다. 예수님을 잡으려고 달려드는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칼로 내리 쳤습니다.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선두에 서서 용감하게 싸우는 베드로는 역시 수제자답게 얼마나 용감한 행동입니까? 우리들이 오늘 이 장면을 상상만 해도, 우리가 본 받을만하고, 또 주님께로부터 잘했다고 칭찬을 받을 만큼 베드로는 참으로 충성된 종으로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베드로는 주님께로부터 책망을 당하였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도 우리 주님을 지켜드려야만 한다는 제자로서의 사명감도 있었겠지만, 적들과 싸우다보면 우리 주님께서 드디어 말씀 한마디로 적들을 모두 다 쓰러뜨리시고, 나아가 로마 군병들도 다 물리쳐 승리하여 마침내 꿈에도 소원인 이스라엘 독립국가를 건설하실 것이라는 인본주의적 민족적 신앙관이 하나님의 뜻보다 우선했었기 때문에 주님의 뜻을 도리어 훼방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나라와 그 의를 추구하지 않으면, 자칫하여 인본주의 나라와 자기의 의지를 구하여, 오히려 주님의 뜻을 거역하고 주님의 대적하는 마귀의 편이 되는 끔찍한 짓을 할 수가 있습니다. 본인은 도리어 하나님께 충성한다고 착각하여, 열심히 주님을 대적하는 줄도 모른 채 마귀에게 이용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의 신앙좌표를 점검하고 경계해야만 합니다.
예를 들면, 저희가 그동안 열심히 동참해왔던 박근혜탄핵 반대운동, 태극기부대의 애국운동, 문재인 좌파 독재 반대 운동, 반중 반북 자유통일운동, 코로나백신 독재반대운동, 심지어 부정선거규탄 운동이나 반동성애 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시시때때로 우리가 추구하는 운동의 목적과 목표와 방향이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뜻에서 이탈하지는 않는지? 인본주의와 나의 의지와 야망이 어느새 틈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수시로 말씀의 좌표와 성령님의 네비게이션을 통해 점검하고 반성하고 회개하면서,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뜻에 합치하는데 소홀함이나 차질이 없도록 힘써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낙심하여 주님을 버리고, 세상의 넓은 길, 죄악의 길로 도망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26:51.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에 하나가 손을 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54.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 56.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우리 주님의 말씀처럼, 빌라도 총독의 로마 군대 숫자보다 더 많은, 12 군단이 넘는 천군 천사들을 불러내 동원하셔서, 로마 황제 군대와 싸워 마침내 승리하셔서, 이스라엘 민족의 기도와 소원을 이루어주실 능력이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바벨론에게 멸망당한지 600여 년 만에, 로마에게 마카비왕조가 멸망당한지 100년 만에, 이스라엘 독립 국가를 다시 회복시켜 주시지 않고, 도리어 어린 양처럼 너무나도 무력하게 십자가에 벌거벗긴 채로 매달려, 피 흘리며 비참하게 죽으신 이유와 목적은, 오직 죄인들을 용서해주시고 거저 은혜로 구원해주시려는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와 그 뜻(the Will of God)을 성취하시는데 있는 것입니다.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12군단 더 되는 천군 천사를 아버지께 구하여 보내시게 한다면) 이런 일(체포되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구원사역의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3)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체포되어 십자가에 매달려 죽을 것이 두려웠기 때문에 모두 다 주님을 버리고 도망친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제자라는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면, 자기도 현장에서 체포되어, 주님처럼 수사받고 심문과 고문을 받다가 십자가에 처형될 것이 두려웠기 때문에,
주님의 제자가 아닌 것처럼 위장하려고 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반드시 주님을 부인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체포되면 재산이 몰수되고, 가정이 쑥대밭이 되어 가족들도 위험해지며, 자신도 처형되어 죽게될 것이 두려웠기 때문에, 자기만이라도 살기 위해서 자신의 신앙을 부인한 것처럼, 우리들도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주님의 제자요 목사, 장로, 집사라는 직분을 숨기며, 심지어 기독교 신자인 크리스챤이란 사실도 비밀로 부치고, 불신자인 척하며 침묵하고 외면하며 군중 가운데에 위장술로 숨어버릴 것입니다. 조만간에 장차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목사와 장로, 크리스챤들을 식별해 내기 위해, 여러모로 정책을 남발하면서 우리의 신앙을 시험할 것입니다. 비근한 예를 들면, 왜 백신접종을 거부하는가? 왜 팬데믹 정책에 반대하여 굳이 교회의 예배 집회에 참석하려고 하는가? 왜 동성애를 반대하는가? 왜 CBDC를 반대하고 굳이 현금 사용을 고집하는가? 왜 아이들에게 백신접종을 맞히지 않으려고 변명하고 회피하는가? 왜 음모론에 빠져서 국민을 선동하는가? 등등...
특히, 궁극적으로는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말라고 왜 선동하는가? 왜 CBDC 화폐를 몸에 이식하려는 사람들을 짐승의표라고 거짓선동하여 방해하는가? 등등ᆢ 질문과 의심을 베드로처럼 주변 사람들로부터 받게 될 때에, 만약에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반드시 우리도 주님의 제자와 크리스챤이라는 거룩한 신분을 위장하고, 신앙을 부인하고,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며, 자기 목숨만 살기 위해서 세상의 넓은 길, 안전한 길, 살 길로 줄행랑을 치게될 것입니다. 그러나,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짐승의 표를 모른 손이나 이마에 받는 즉시, 회개할 기회가 원천 봉쇄되어 불가역적인 배도의 문으로 들어선 자에게는 영원한 지옥불못에 던져지는 심판에 직면할 것입니다.
짐승과 적그리스도의 박해를 두려워하거나,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 까 하는 불안 근심 두려움이 엄습한다면, 필경 마귀의 밥이 될 타겟이 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여 짐승의 핍박을 두려워하면, 결국 주님을 버리고 배도하여 지옥불못에 제1순위로 떨어집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 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But the fearful, and unbelieving, and the abominable, and murderers, and whoremongers, and sorcerers, and idolaters, and all liars, shall have their part in the lake which burneth with fire and brimstone: which is the second death.
4) 주님의 경고 말씀대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있지 못했기 때문에 베드로는 주님을 배신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말씀과 기도하면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만 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성령님의 일깨우심과 지도하심을 받지 못하면, 육신의 정욕(먹거리, 즐길거리)과 안목의 정욕(볼거리, 아름다운 얼굴과 자태, 구경거리), 세상의 안일과 자랑(성공과 부귀영화)에 빠져들면 영적으로 깊이 잠들어 마귀에게 미혹되기 십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에는 인내하며 신앙을 지켜내고자 하는 소원이 비록 있더라도, 우리의 육신이 연약해서 두려워하거나 미혹되어 실족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4:37.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누가복음 22장40.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46.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5) 마침내 부활 승리하신 주님을 친히 만나본 이후, 사명을 저버리고 세상 길로 빠져나갔던 베드로가 세 번 부인했던 죄과를 떨쳐버리기 위해 세 번이나 주님께 사랑의 고백을 다시 드림으로써, 사명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었다. 우리도 죄를 회개한 만큼, 사랑을 고백합시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용서해 주시옵소서”
“내 양을 먹이고 돌보고 장성한 믿음의 용사로 양육하라”는 사명을 다시 받게 됩니다.
6)성령님께서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탄원기도해 주시기 때문에 베드로가 회개하고 돌이킬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도 가끔 실족하더라도 속히 회개하고 돌이켜야만 합니다.
누가복음 22장 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롬8:26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7) 제자들은 주님의 승천후, 성령 충만하여 기쁨으로 충성하다가 순교할 수 있었다.
성령충만함을 받지 못하면 시험과 미혹에 빠지고, 위협과 박해에 굴복할 수 있다.
회개와 순종하면서 주님께 성령충만을 구하면 얼마든지 부어주실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 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