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별은 끝이 아니다.
30년 전, 교회에서 그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우리는 참 많이 달랐습니다. 처음엔 낯을 가리며 거리를 두던 나와 달리, 친구는 늘 환한 미소를 지으며 먼저 다가와 주었습니다.
마음의 빗장을 스르륵 열고 자신의 가장 깊은 속내까지 아낌없이 보여주던 그 따뜻함에, 저 역시 서서히 마음을 열었습니다.
그렇게 1년 남짓, 우리는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눈빛만 보아도 서로의 슬픔과 기쁨을 알아채는 사이, 내 모든 비밀을 털어놓아도 안전한 사람.
저는 그 친구를 내 인생의 '진정한 친구'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 시절, 친구와 함께 보낸 시간들은 제게 커다란 행복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출장으로 멀리 지방으로 내려가던 길이었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교회 동생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습니다.
"형, OO이가... 오늘 새벽에 심장마비로 소천했어요."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눈앞이 아득해졌습니다.
심장이 쿵 가라앉는 충격 속에서 황급히 차를 돌려 서울의 장례식장으로 향했습니다.
차창 밖으로 흐려지는 풍경을 보며 미친 듯이 핸들을 잡았습니다. 믿을 수 없었습니다.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장례식장에 도착해 마주한 영정 사진 속 친구는 여전히 바보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그 미소가 너무 야속해, 저는 그 자리에서 목놓아 엉엉 울었습니다.
'이렇게 허망하게 가다니... 하나님, 왜 하필 이 친구입니까? 왜 이 착한 친구를 벌써 데려가셨나요?'
마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을 하나님께 강제로 빼앗긴 것만 같은 지독한 상실감과 원망이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차가운 발인을 마치고, 화장터의 뜨거운 불길 속에서 한 줌의 하얀 재가 되어 나온 친구를 마주했습니다. 우리는 친구의 마지막 흔적이 담긴 유골함을 들고 나지막한 산에 올랐습니다.
바람이 부는 언덕에 서서, 우리는 돌아가며 친구의 유해를 허공으로 날려 보냈습니다.
그때 제 눈에 들어온 것은 고작 스물여섯 살이었던 친구의 아내였습니다.
품에는 돌도 지나지 않은 어린 딸아이가 세상모르고 안겨 있었습니다.
남편을 잃은 슬픔으로 온몸이 무너져 내릴 법도 한데, 그녀는 바람에 흩날리는 남편의 재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주님을 향한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눈물 가득한 목소리로 신앙을 고백하며 남편을 천국으로 배웅하는 그 처연하고도 숭고한 모습을 보며, 제 가슴은 찢어지다 못해 짓뭉개지는 듯 아팠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저는 마음의 문을 쾅 닫아걸었습니다.
'이제 내 인생에 진정한 친구는 없다.'
일종의 저주이자 다짐이었습니다.
그렇게 3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정말 말이 씨가 되었던 걸까요.
그 친구가 떠난 후로, 제 곁에는 그 어떤 사람도 그만큼 깊이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마음을 주지 않으니, 누구와도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시간은 흘러, 스물여섯의 어린 미망인이었던 자매는 어느새 머리가 희끗해진 세월을 맞이했습니다. 주위에서 수없이 재혼을 권유했지만, 그녀는 홀로 묵묵히 시련의 무게를 견디며 그 어린 딸을 당당하고 훌륭한 숙녀로 키워냈습니다.
이런 사별의 아픔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깊고 시린 마음의 빈자리를, 세상 그 누가 대신 채워줄 수 있었겠습니까.
오늘날, 그때의 저처럼 소중한 사람을 잃고 슬픔 속에 마음의 문을 닫아걸어 둔 이들을 향해 고백하고 싶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어째서 그 사람을 이토록 빨리 데려가셨나요?"라고 하늘을 향해 원망 섞인 질문을 던지지 마십시오.
그 눈물겨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지금 이 땅에서는 들을 수 없습니다.
먼 훗날, 우리가 삶의 소임을 다하고 저 하늘나라에 이르는 날, 우리는 비로소 그 거대한 뜻을 완벽하게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과거에 대한 미련도, 가버린 이에 대한 집착도 조금씩 내려놓으십시오.
그래야 슬픔과 상실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던 나 자신이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래야 비로소 내 인생의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딛을 수 있습니다.
인생은 수많은 만남과 이별의 교차로입니다. 이미 떠나간 이의 옷자락을 붙잡고 우는 것은 앞으로 걸어갈 길에 걸림돌이 될 뿐입니다.
흘러간 과거를 과감히 보내주십시오.
그리고 눈앞의 현실을 담담히 직시하며, 앞으로 다가올 또 다른 소중한 인연과 만남을 기대하십시오.
사별은 모든 것의 마침표가 아닙니다.
그것은 남겨진 이들이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하는, 또 다른 시작의 쉼표일 뿐입니다.
먼 훗날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 "너를 보내고 나도 참 열심히 아름답게 살다 왔다"고 웃으며 말할 수 있도록, 오늘의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으시길 소망합니다.
2026.8.2. 김성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