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나이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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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모두들 좋은 아침~!"
라이샤의 한껏 기분좋은 인사에 모두들 미소를 지었다. 그들이 습격한지 한달이 흘렀다. 샘의 보수 공사는 이
제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 있었다. 이제는 꼼꼼히 지키기만 한다면 보수는 문제 없을 것 같았다.
늉은 린화를 데리고 어디론가로 떠났다. 린화를 데리고 있는 것이 마이샤나 일행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
이유였다. 모두들 그것을 말리고 싶었지만 비장한 각오를 한 마이샤의 얼굴을 보자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무런 말도 않은채 고개를 푹 숙일뿐이었다. 그렇게 린화는 그들의 곁을 떠나갔다.
다시는 못 보는 것이 아니었지만 린화는 충격을 심하게 받은듯 고개를 푹 숙이고 떠날때까지 아무런 말도 않
았다. 마이샤가 린화를 보고 따뜻한 말을 건네도 린화는 마이샤의 얼굴도 바라보지 않았다. 마이샤는 그런 린
화를 보며 따뜻한 웃음을 보일뿐 아무런 말도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떠나갔다.
"어? 마이샤는?"
젠스가 어두운 표정을 하며 턱짓으로 밖을 가르켰다. 밖에서는 마이샤가 쭈그리고 앉아 하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라이샤는 한숨을 내쉬었다.
"전혀 변한 것이 없군."
"마이샤에게 이만저만 충격이 아니잖아. 무슨 말을 하였는지 모르지만 자신의 말에 반응도 않는 그녀를 보면
나라도 저렇게 되어버릴 것만 같아."
"......"
나미는 푹 한숨을 쉬며 일어섰다. 이제 그녀의 몸은 완쾌되어 있었다. 퉁가리나 라이샤가 그때 어떻게 쓰러졌
는가 물을땐 그녀는 그저 표정을 어둡게만 할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어두운 모습을
보일때는 그때 뿐이었다. 그밖에는 모두 예전과 같은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장난스레 웃으며 라이샤의 다리를
걸어 라이샤를 넘어지게 하고 라이샤가 고함을 고레고레 지르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자이커도 환하게 웃는 일이 자주 있었다. 하르게가 자신을 배반했다는 것이 큰 충격인 것 같았으나 다음날에
는 웃으면서 왔다. 옛날부터 천대하던 것이 배반을 하였다는 것이 그제서야 별로 큰 충격이 되지는 않은것 같
았다. 단지 자이커는 자신의 주위에 있던 모든 동물이나 몬스터들을 되돌려 보냈다. 자신의 주위에 있으면 위
험하다는 명목을 지니고 있었지만 더 이상 자신이 아끼던 것들이 자신을 배반하는 것이 싫음을 나타내고 있었
다.
퉁가리도 예전처럼 돌아왔다. 단지 말 수가 적어졌을뿐 그렇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하지만 단지 때때로 옆에
서 보는 사람도 말리고 싶을 정도의 혹독한 훈련을 하는 것을 보였다. 무엇이 퉁가리를 그렇게 바쁘게 하는
지는 모르지만 모두들 별 말은 않았다.
젠스는 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때때로 눈빛이 선홍빛으로 변할때가 있었지만 그리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
다.
카이드라스가 라이샤의 옆에 서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큰 일은 아닐겁니다.」
"넌 내가 걱정한다고 생각하니?"
「......죄송합니다. 제가 쓸데없는 것을 물었군요.」
"하하핫, 카이드라스. 역시 넌 붉은검일때가 좋단말이야."
카이드라스는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붉은검이 상당히 마음에 드셨나보군요.」
"물론이지. 친구하고 싶을 정도였다니까?"
「......대체 무슨 짓을 하였길레...... 라이샤님의 마음에 든 것일까......」
"그렇게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마. 나를 살려주고 멋있는 역활을 했다고 상상할 수도 있잖아?"
「그런 생각이 나다가도 라이샤님의 그 웃음만 보면 쑥 들어가버린단 말입니다. 그것을 모르셨나보군요.」
"그런가?"
라이샤는 계속해서 웃었다. 카이드라스도 결국은 피식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때 어디선가 여자의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이드라스, 왜 그렇게 바보스럽게 웃는 거야? 진짜 바보같잖아~.」
「하이네...... 그런 농담은 싫어.」
「어머, 미안해. 하지만 네가 싫다고하면 난 더욱 더 하고 싶은걸?」
「......넌 역시 붉은검에 있었어야 해.」
「호호호~. 칭찬으로 듣겠어.」
요즘 카이드라스에겐 고민이 생겼다. 다 좋은데 저 하이네가 다시 깨어나버린 것이었다. 하이네는 카이드라스
에게 대체 무엇이 불만인지 만날때마다 시비의 꼬투리를 잡고 늘어졌고 카이드라스는 그것을 침묵으로 일관했
다. 그러면 하이네는 혼자 말하다 지쳐 어디론가로 가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말상대를 한다면 끝도
없이 물고 늘어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카이드라스는 가끔씩 히스테리적인 신경질도 내었다. 물론, 어지간히
열받지 않으면 그러지 않았다.
"나 좀 밖에 나갔다 올게."
퉁가리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나미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또?"
"난 아직 멀었는걸."
퉁가리는 희미하게 웃으며 돌아섰다. 그리고는 문을 열고 나갔다. 모두들 그런 퉁가리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퉁가리가 나가고 자이커가 뛰어들어오며 말했다.
"우리 오늘 놀러가요!"
"놀러? 어디로?"
"어디든지 좋으니 소풍 비슷한 분위기로 놀러가요! 난 여기와서 한번도 제대로 논적이 없는 것 같아. 놀고 싶
어요~!"
이미 자랄데로 자란 자이커였지만 아직은 어린아이였다. 애교스럽게 몸을 비비꼬자 모두들 귀엽다는 느낌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단지 한명을 제외하고.
"징그러, 이자식아!"
"우리 모두 놀러가요. 예?"
자이커는 쉽게 라이샤를 무시했다. 처음 라이샤를 보고 떠났을 정도의 행동을 보이던 그와는 너무 먼 행동이
었다. 라이샤는 어느새 자신을 우상으로 바라보고 있는 자이커에게도 무시당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음...... 그러고보니 한번도 나가서 논적이 없는걸?"
"그렇지. 항상 이 샘을 지킨다고 뛰어다니기만 하였을뿐 제대로 한 번 놀아본 적도 없잖아."
"그럼 우리 요 앞의 작은 동산에 소풍이나 갈까? 기분전환도 할겸 말이야."
"그거 좋은 생각인걸?"
자신의 생각대로 모두들 만장일치가 되자 자이커의 얼굴에는 어린아이의 웃음이 피어올랐다. 단지 한명만 제
외하고 말이다.
"난 반대야. 그렇게 놀았으면 됐지 또 놀려고......"
"그럼 난 도시락을 싸도록 할게. 내가 여기서 유일한 여자이기도 하니까 말이야."
"오호, 천하의 나미도 결국은 가정부신세로 떨어지고 말았나?"
"이봐, 네 목에 이 식칼이 꽂히기 전에 조용하는 것이 좋을껄?"
".......죄송합니다, 누님."
식칼을 들고 무서운 표정을 짓는 나미의 표정에 젠스는 질려버렸다. 결국은 그녀에게 누님이라는 무서운 표
현까지 사용하고 만것이다. 하지만 나미는 그 표현이 마음에 들었는지 휘파람을 불며 식당으로 들어갔다. 나미가 식당으로 들어가자 젠스가 뒤로 돌아서며 작게 중얼거렸다.
"밥 먹고 나면 좋은 기분은 다 사라지겠군."
"......"
젠스의 경어사용은 사라졌다. 너무나 친숙해서인지 이제는 님자를 붙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약간 어색했지만
지금은 더 좋았다. 경어를 사용하지 않는 젠스가 더욱 친근감있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봐, 왜 모두들 내 말을......"
"그럼 난 검이나 손질할까, 할 일도 없으니."
젠스는 그렇게 휘파람을 불며 밖으로 나갔다. 곧 숫돌에 무언가가 갈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색검같은 7개의
검들은 충분히 날카롭기에 특별히 애써주지 않아도 된다. 특히나 무색검은 모양을 변형시킬 수 있기에 그럴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어찌되어서 인지 젠스는 자주 무색검을 숫돌에다 갈아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다. 왜 그
러는지는 젠스 혼자만이 알고 있었다.
모두들 자신의 말들을 무시하고 자기 할 일만 하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라이샤는 마지막 희망인 자이
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자이커는 라이샤의 얼굴을 바라보자 마자 말했다.
"아, 맞다. 퉁가리 형이 그걸 하라고 했는데. 그럼 전 이만......"
말이 무섭게 자이커는 사라졌다. 라이샤는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은따라는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자신의
옆에서 주절주절 떠드는 두 시끄러운 정령들을 바라보았다.
'......'
마이샤의 마음속에는 그 어떤 생각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말그대로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이 왜 그런 짓을 하고 있는 지도 몰랐다. 그저 그러고 싶을 뿐이었다. 마이샤는 계속해서 푸른 하늘을 바
라보았다.
이제 가을에 접어들어 하늘도 꽤나 높아져 있었다. 그리고 더욱 푸르러 보였다. 문득 마이샤의 눈에 무언가가
보였다. 마이샤가 움직이지 않으려는 자신의 몸을 어기고 고개를 돌려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퉁가리가 서
있었다. 온몸을 무언가게 묶고서 가만히 있었다. 마이샤는 하늘보기를 멈추고 퉁가리를 바라보았다. 퉁가리는
눈을 감고서 뭐라뭐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마이샤는 계속해서 무심한 눈으로 퉁가리를 바라보았다. 퉁가리는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퉁가리의 눈이 뜨여졌다. 그리고 퉁가리의 몸을 묶고 있던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파편하나 남기지 않고.......
힘이 방출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퉁가리는 헉헉대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무
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얼굴에서는 환희의 웃음이 떠오르고 있었다. 얼마만에 보는 퉁가리의 웃음인지 모
른다. 하지만 지금의 마이샤에게는 그런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퉁가리가 일을 끝내자 마이샤는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향했다. 하늘은 변함없이 푸르렀다.
'......'
'......'
'......푸르네.'
마이샤의 마음속에 떠오른 첫 말이었다. 하지만 한동안 아무런 생각도 이어지지 않았다.
'.......'
'.......'
'.......변함이 없어.'
마이샤는 소늘 가만히 내려다 놓았다. 땅의 차가운 기운이 손을 타고 마이샤의 몸속으로 들어왔다. 마이샤는
가만히 손을 쥐어 자신의 손안에 있는 흙을 바라보았다. 흙속에는 방금 이슬을 먹어서 인지 물방울이 간간히
보였다.
'.......'
'.......'
'.......차가워.'
마이샤는 흙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푸르네.'
'변함이 없어.'
'차가워.'
마이샤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의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것이 자신을 비웃는 것만 같았
다. 푸른 가을 하늘도, 흙도.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이 자신을 보고 비웃는 것 같았다. 마이샤는 이곳이 두려웠
다.
마이샤는 푸른검을 들고 다닌다. 또 무엇이 좋은지 푸른색 옷을 자주 입고 푸른색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것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 속은 차갑기 그지 없었다. 자신을 좋아하는 한 여자를 냉정하게 뿌리친 그였다.
그 여자는 자존심마저 버리고 마이샤에게 매달렸건만 마이샤는 한번도 그녀를 제대로 바라본 적이 없었다.
마이샤는 두려웠다.
"음...... 좀 짠가?"
나미는 자신의 손가락을 쑥 입에 넣으며 말했다. 하지만 곧 웃으며 말했다.
"에이 뭐....... 괜찮겠지 뭐."
그리고는 그 손가락을 씻지도 않은채 빵을 만져 햄버거를 만들기 시작했다.
"어? 조금 타버렸네. 뭐...... 별 말들이야 있겠어?"
시커멓게 타버린 고기는 그런 나미의 말에 항의하려는 듯 하얀 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김은 곧 사
라졌다. 나미가 식칼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왠지 자신이 요리를 한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옛날에는 그런 자신을 생각하면 욕이 나올정도였지만 지금은
이상하리만큼 즐거웠다.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 느낌이 들 뿐이었다. 나미는 자신의 손가락으로 약
간은 눅눅한 스프를 저으면서 행복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