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보는 하나님의 관점"( 벧 4:12-13)
{정말 견딜 수 없는 어려움에 빠졌다}고 낙심했던 기억이 있으십니까?
막상 어려움을 당하면, 그 고통이 언제 끝날지 암담하게 느껴지고
낙심하고 마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계속되는 고통이란 없습니다.
오늘 이 땅의 삶에서 아픔과 고통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님이 주시는 약속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아픔은 곧 지나갈 것이지만,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은혜는 영원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주께서 지금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축복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고통스러운 과정은 오히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경험하는, 감사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고통에 유익이 있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온 시간이 더해가면 더해갈수록, 이전에 경험했던 고통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소중한 밑거름이 되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사도 바울을 기억해 보십시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런 시기에 작성한 서신에서,
바울은 성도들을 향해 앞으로 그들에게 있을 영광과 소망을 기억해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그리고 24절과 25절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알 수 없지만 언젠가, 성경에 있는대로,
주님을 다시 이 땅에 보내실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가 영원히 그분을 만나볼 수 있게 하실 겁니다.
성경에 있는 그대로 말입니다.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아무리 고통 가운데 있다고 해도 견딜 수 있습니다.
소망이 있다고 해서, 당장 그 고통의 고통스러움이 작아진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새로 태어날 아기를 소망하는 것 때문에
출산의 고통을 견디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 역시,
그분의 손길을 경험할 수 있다는 소망에서 앞에 놓인 고통의 시간을
견딜 수 있습니다. {주님 안에 소망이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언제나 성실하게 우리를 지키시는
주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때문에 믿음에 뿌리를 두지 않은 소망은 참된 소망이 아닙니다.
오늘도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
주님으로 인해 주님 안에 누리게 될 그 영광을 소망함으로
{지금} 우리에게 있는 고통을 인내하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