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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실크로드 에 있는 #화염산 앞에 세워진 #삼장법사 일행 동상이에요. 삼장법사와 저팔계, 사오정이 자리에 앉아 쉬고 있고 손오공이 주위를 살피고 있어요.
토픽이미지
울창한 나무를 뚫고 사정없이 내리쬐는 햇살을 두 손으로 가리며 누나가 절규하듯 말했어요. 중국어로 '훠옌산'이라고 하는 화염산(火焰山)은 실크로드에 있는 긴 산을 말해요. 중국 시안에서 출발해 실크로드로 들어서면 란저우, 둔황을 지나 투루판이라는 분지로 이루어진 도시로 이어진답니다. 동서 길이가 98㎞나 되는 화염산은 이 도시 가까이에 길게 누워 있지요. 햇볕을 받은 모습이 말 그대로 화염에 싸여 활활 타오르는 것 같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대요. 햇살이 직접 내리쬐는 곳은 섭씨 80도에 달해, 계란을 얹으면 바로 익을 정도라고 해요.
"짠! 엄마가 그럴 줄 알고 파초선(芭蕉扇)을 가져왔지."
엄마가 화염산에 갔을 때 기념으로 산 파초 모양의 부채를 가방에서 꺼내 부치셨어요. 실크로드 여행을 갔다 온 지 1년도 넘었는데, 그때 산 부채를 아직도 간직하는 꼼꼼함! 역시 엄마다워요. #현장스님 이 인도에 다녀온 여행담을 주제로 재미있게 풀어낸 #소설 ' #서유기 (西遊記)'에는 화염산과 파초선 이야기가 나온답니다. 소설 속 삼장법사 일행은 인도로 가는 길에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화염산과 마주쳤어요. 이 산을 넘어야만 서쪽으로 계속 갈 수 있는데, 불길을 뚫고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지요.
"취운산 파초동이라는 동굴에 '나찰녀'가 살고 있다네. 나찰녀가 가진 파초선을 가져다가 화염산에 부채를 부치면 저 불을 끌 수 있어." 삼장법사의 말에 손오공은 나찰녀에게 파초선을 빌리려고 근두운을 타고 파초동으로 날아갔어요. 그러나 알고 보니 나찰녀는 옛날 삼장법사를 잡아먹으려다가 손오공과 싸움을 벌인 ' #홍해아 '라는 #요괴 의 어머니였답니다.
▲ 파초 잎 모양을 한 부채‘ #파초선 ’이에요.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이 못된 원숭이 녀석! 파초선 맛 좀 봐라!"
나찰녀는 아들의 원수인 #손오공 에게 파초선을 빌려주기는커녕 파초선을 부치며 싸움을 걸어왔어요. 손오공은 파초선 바람이 한 번 불 때마다 멀리 날아가 나동그라지는 바람에 나찰녀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답니다. 결국 나찰녀에게서 파초선을 빼앗았지만, 알고 보니 가짜 파초선이었지 뭐예요. 생각 끝에 손오공은 나찰녀의 남편인 #우마왕 으로 변신해 #나찰녀 를 속이고 진짜 파초선을 빼앗았어요. 소식을 들은 우마왕이 부랴부랴 달려왔지만, 손오공은 우마왕을 죽이고 나찰녀의 항복을 받아냈어요. 그리고 파초선을 부쳐 화염산의 불을 끄고 무사히 스승을 인도로 모실 수 있었답니다.
"으, 엄마가 나찰녀로 보인다. 파초선을 빼앗아야지!"
엄마한테 뛰어갔지만 내게 돌아온 건 파초선이 아니라 누나의 꿀밤이었어요.
"조금만 더 참아! 네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려."
누나는 핀잔을 주며 엄마한테 넘겨받은 파초선을 기분 좋게 부쳤어요.
"서유기 에서는 화염산이 불덩어리로 나오지만, 실제 화염산 안에는 골짜기에 시냇물이 흐르고 숲도 있대. 우리도 조금만 더 가면 시원한 계곡으로 들어설 테니 참고 걷자꾸나."
아빠가 비 오듯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말씀을 계속하셨어요.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막다른 길을 마주치게 되는데, 삼장법사 일행이 화염산 앞에서 길이 막힌 것은 그런 상황을 상징한대요. 손오공이 목숨을 걸고 싸워 파초선을 얻은 것은, 어려움 앞에서도 #용기 를 잃지 않고 꾸준히 갈 길을 가는 사람들의 의지를 #상징 하고요.
"이 세상은 그렇게 용기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조금씩 변해 가고 살 만해지는 것…, 휴…."
아빠는 힘이 들어 말을 맺지 못하고 헉헉거리셨어요.
"용기도 체력이 뒷받침돼야죠."
엄마 말씀에 우리 남매는 더위를 잊고 깔깔대며 유쾌하게 웃었답니다.
★ #이기 (利器): 실용에 편리한 기계나 기구.
강응천 역사 저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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