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존재하게하라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있을까?
미국 독립 선언서에 규정된 양도 불가한 권리 중 하나는 "행복 추구"입니다. 미국 건국의 선조들이 "행복"이라는 단어 대신 "행복 추구…."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행복 자체가 "생명"과 "자유"처럼 권리가 아닌 이유는 무엇일까요? "추구"에 대한 설명은 무엇인가요?
※ 미국 독립 선언서 중 “We hold these truths to be self-evident,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that they are endowed by their Creator with certain unalienable Rights, that among these are Life, Liberty and the pursuit of Happiness.”
한 설명에 따르면, 제퍼슨이 "추구(persuit)"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오늘날의 "쫓다." 또는 "찾다"와 같은 의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획득하다." 또는 "경험하다."에 훨씬 더 가까운 것을 의미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다른 두 가지 권리(생명, 자유)와 똑같습니다.즉 모든 사람은 단순히 행복할 권리가 있고, 행복을 경험할 권리가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좋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삶에서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은 대부분 사람이 동의할 만한 생각입니다, 하지만 자유로운 현대 사회, 즉 하나님 덕분으로, 잔인한 독재자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과거의 일인 것처럼 보이는, 자유와 권리가 기본 상태와 같은 그런 세상에서조차, 그렇게 자기 삶에서 행복의 권리를 누리며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행복은 분명 누구나 추구해야 할 것이지만, 모든 사람이 단순히 "행복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다소 비현실적으로 들립니다.
“당신이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토라 전체에서 가장 무섭고 소름 돋는다고 할 만한 구절이 있습니다. 토케이카(tocheichah) 즉 "책망"으로 알려진 이 구절에서 모세는 백성들에게 새로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끔찍한 벌을 내리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45절에 걸쳐 끔찍한 일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므로, 오늘날 회당에서는 이 구절을 낮은 억양으로 읽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입니다.
※ 토케이카(Tocheicha)는 레위기 26장에 나오는 구절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법을 따르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못할 경우의 결과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28장 15~68절에도 모세가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못한 결과로 선포한 일련의 저주가 나와 있습니다.
대학살 속에서 토라는 그러한 암울한 결과를 초래하는 원인을 다음과 같이 명시합니다." 이 모든 저주가 너희에게 닥칠 것이다…. 너희가 모든 것이 풍족할 때 행복하고 기쁜 마음으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Deuteronomy 28:45-47)
이러한 비극의 원인이 되는 핵심 문제는 무엇일까요?
"당신이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쁨은 감정입니다. 영원한 행복의 비밀을 찾기 위해 수백만 가지의 생각과 방법들이 경쟁하듯 우리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대로 켤 수 있는 마법의 행복 스위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을 느낀다면 다행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행복하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유대교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는 위대한 짜딕(tzadik-전적으로 의로운 사람. 카바드 문학의 맥락에서 보면 동물적 충동을 정복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경외심으로 가득 찬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섬길 때 지속적인 기쁨을 기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토라는 모든 사람에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기회에 한결같이 열광할까요? 만약 내가 그렇지 않다면? 내가 느끼지 못하거나, 더 나쁜 상황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무언가가 내개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에게 마법의 스위치가 있기를 기대하나요?
존재로 생각하기
대답은 "물론입니다!"입니다.
유대현자들은 기쁨과 같은 감정을 단순히 불러일으키는 것이 반드시 쉬운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이에 대해 길게 논의했습니다.
이 주장은 대조를 통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것에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유대감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좋아하고 그것에 대해 행복해하기 쉽습니다. 야구를 좋아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야구에 대해 흥분하고 진정으로 행복해하거나 경기를 관람하고 동료 팬들과 토론하거나 뒷마당에서 공을 던지는 경험을 즐기기가 쉽습니다.
그건 쉬운 부분입니다.
유대 현자들은 카발라의 세계에서 인간의 영혼, 즉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일부인 내면의 영적 불꽃은 하나님을 향한 자연스러운 성향을 보인다고 설명합니다. 그저 하나님을 사랑할 뿐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영혼과 그 영혼이 삶에 불어넣어 주는 영적 에너지를 의식하는 사람들에게는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쉽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좋아하는 것의 자연스러운 결과물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사실, 대부분 사람이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을 존재하게 하라!" 현자들은 이렇게 외칩니다. 토라를 배우거나 미츠바를 하는 것에 대해 설레지 않다면, 이것이 하나님과 연결되고 영혼을 느낄 수 있는 기회라는 사실을 떠올려 보십시요.
이것이 바로 인간 경험의 놀라운 부분입니다. 물론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느끼기가 더 쉽지만, 그것이 잘되지 않는다면 충분히 생각함으로써 마음을 끌어당길 수 있습니다. 무언가에 대해 행복하고 설레기로 선택하면, 때가 되면 행복하고 설렐 수 있습니다.
행복 스위치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영혼의 노력은 삶의 모든 경험에서 같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행복을 추구한다"라는 것은 (오늘날의 의미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며, 때로는 완전히 불가능해 보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이 단순히 "행복해지기"에 너무 많은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는 각 개인의 고통과 어려움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가지 좋은 소식은 우리 인간은 선택의 능력을 타고났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모아 놀랍도록 긍정적인 방식으로 무기화할 수 있는 능력 말입니다. 무언가에 대해 명상하고 집중하며, 자신이 행복해지고 싶다는 것, 정말 나에게 기쁨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누가 무슨 말을 하든 무슨 행동을 하든 "나는 이제 행복해질 거야!"라고 스스로에게 확신시키는 것입니다.
모자를 뒤집는 것만으로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라는 토라의 기대는 허황된 요구나 우스운 기대가 아니라, 인간의 조건에 대한 강력한 진리입니다: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낙담해 있나요? 인생이 너무 어둡고 힘들어서 미소나 밝은 순간을 상상할 수 없나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자신의 행복에 대한 주도권을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평화로운 장소를 찾아 즐거운 일에 대해 생각하고 "나는 지금 행복하고 싶고, 다른 일은 상관없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당신을 위해, 그것이 정말로 그렇게 되게 두십시오.
By: Rabbi Aharon Loschak
그림: Sefra Lightstone
번역/편집: <월간샤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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