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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장 영광과 교만 (4)
초(楚)나라는 수십 명의 첩자들을 낙양에 심어놓고 있었기 때문에 늘 주왕실의 동태를 살필 수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낙양의 첩자로부터 예사롭지 않은 보고가 들어왔다.
- 주혜왕(周惠王)이 정문공에게 밀서를 내렸습니다. 아마도 제환공의 독주에 불안을 느낀 듯합니다.
이것은 초나라에 매우 유리한 일이었다. 초성왕(楚成王)과 투곡어토는 기대감에 차서 정문공의 행동을 유심히 살폈다.
아니다 다를까. 정문공(鄭文公)이 수지에서 동맹하지 않고 단독으로 빠져나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초성왕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주혜왕이 우리를 돕는구나."
"아직 이릅니다. 먼저 제환공(齊桓公)의 반응을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투곡어토는 신중했다.
"어떻게 말이오?"
"먼저 회수(淮水)가에 있는 현(弦)나라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만일 제환공이 지난해 소릉에서 맺은 불가침 조약을 내세워 따지고 들면 정문공의 동맹 이탈이 제환공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는 제환공(齊桓公)이 정나라 이탈에 대해 상당한 신경을 쓰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초(楚)나라의 입지는 한결 자유로워지며, 본격적으로 정(鄭)나라와 동맹을 맺어 중원으로 향하면 되는 것입니다."
현(弦)나라는 주왕실로부터 자작의 작위를 받은 나라로, 지금의 호북성 회수현 서쪽 일대에 위치해 있었다.
"현나라는 소국 중의 소국이오. 제환공이 굳이 현(弦)나라를 비호할 까닭이 없질 않소?"
"그렇지 않습니다. 현(弦)나라는 작기는 하지만 제환공과 인척 관계에 있는 나라입니다. 현나라 군주의 부인은 바로 제환공의 딸입니다. 현나라가 우리를 섬기지 않고 제나라를 추종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투곡어토의 말을 들은 초성왕(楚成王)은 무릎을 치며 감탄했다.
"과연 그대의 계책은 신묘하오."
그 해 겨울, 투곡어토는 군사를 이끌고 나가 현(弦)나라를 침공했다. 제나라만을 믿고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은 현나라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현나라 군주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제환공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무렵 제환공(齊桓公)은 정나라를 토벌할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나라를 도울 만한 여력이 없었다.
그는 구원군을 파병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현(弦)나라는 끝내 멸망하고 말았다.
또 한 나라가 역사 저편으로 사라져가고 있음이었다.
결과적으로 제환공(齊桓公)이 현나라를 돕지 않은 것은 제환공의 실수였다.
이로써 모든 것은 초나라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전개되어 나갔다.
현(弦)나라를 병탄한 투곡어토는 자신감을 가졌다. 그는 지체없이 초성왕에게 말했다.
"이제야말로 정(鄭)과 수교를 맺을 때입니다."
"제환공(齊桓公)이 정나라를 징벌하려는 모양인데, 정문공이 우리의 제안에 선뜻 응하겠소?"
"신에게 이미 생각해둔 바가 있습니다."
투곡어토는 치밀하고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정문공에게 정식으로 사자를 보내는 대신 심복 부하를 정(鄭)나라로 보내 대부 신후(申侯)에게 지령을 내렸다.
- 초. 정 동맹을 추진하시오.
대부 신후(申侯)은 원래 초나라 신하였었다. 초문왕의 유언에 따라 정나라로 귀화했으나 그의 귀화에는 수상쩍은 점이 많았다.
- 이중 첩자다.
라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그만큼 신후는 친초(親楚)정책의 지지자였다, 정문공이 수지 회맹에서 탈퇴한 것도 신후의 부추김에 의해서가 아니던가.
투곡어토의 지령을 받은 신후(申侯)는 비밀리에 정문공을 찾아가 아뢰었다.
"주공께서는 주혜왕의 밀지를 잊으셨습니까? 어찌하여 초나라로 사람을 보내지 않습니까?"
"수지 회맹에서 탈퇴한 일로 제환공(齊桓公)이 우리를 치려 한다는 소문이오."
"제환공을 당해낼 만한 힘을 가진 나라는 오직 초나라뿐입니다.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초(楚)와 제(齊)나라 모두의 원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정나라는 그야말로 오갈 데 없는 망국의 신세가 되고 맙니다."
협박이나 마찬가지였다.
정문공은 안색이 핼쑥해졌다.
"그대가 초나라를 다녀오시오."
마침내 정문공(鄭文公)은 초성왕과 비밀 우호를 맺었다.
그러나 제환공(齊桓公)이라고 어찌 귀가 없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수지 회맹에서의 일로 정나라를 응징하려던 참에 초(楚)와 비밀 동맹까지 맺었다는 소식을 듣자 제환공은 불같이 노했다.
"더 이상 망설일 까닭이 없도다!"
이듬해인 BC 654년, 주혜왕 23년, 제환공 32년, 정문공 19년 되는 해 여름이었다. 제환공(齊桓公)은 수지에서 맹약에 참가했던 송, 노, 진, 위, 조나라 등의 제후를 거느리고 정나라 신정을 향해 쳐들어갔다.
성난 파도. -
연합군의 기세는 노도(怒濤)와 같았다. 정문공은 나름대로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었으나, 제환공(齊桓公)의 기세가 워낙 강한 바람에 맞서 싸울 생각을 못하고 신정성의 성문을 굳게 닫아건 채 지키기만 했다.
연합군은 신정성을 철통같이 에워싸고 연일 공격을 늦추지 않았다.
이로써 정(鄭)나라는 하루 아침에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되고 말았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평설열국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