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문화: 깍두기]
깍두기는 문자 그대로는 무를 육면체로 썰어 만든 김치를 뜻하지만, 전통적인 한국의 어린이 놀이문화에서는 독특한 사회적 의미를 지니기도 했다. 놀이에서 ‘깍두기’는 대개 나이가 어린 아이, 신체적으로 능력이 다소 부족한 친구, 혹은 서로 경쟁하는 두 집단 중 어느 한쪽에도 분명하게 속하기 어려운 아이를 가리켰다. 그러나 이런 아이는 놀이에서 배제되지 않았다. 오히려 어느 한편에 엄격하게 소속되지 않은 채 놀이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 관습에서 특히 중요한 점은, 깍두기가 기술이나 나이, 신체적 능력과 관계없이 놀이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두 집단은 그런 아이를 외부인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양쪽 모두 암묵적으로 그 아이가 놀이에 참여할 권리를 인정했고, 그 결과 깍두기는 두 집단 사이를 오가며 친구들이나 나이가 많은 아이들과 계속 어울려 놀 수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깍두기는 포용을 가능하게 하는 한국문화 특유의 장치로 기능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습은 두 집단에 동시에 속하는 행동을 불충이나 기회주의로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도덕적 전통과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한국의 놀이터 문화에서 깍두기가 두 집단 사이를 오가는 것은 반드시 배신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오히려 어린이 놀이의 일상적인 규칙은 나이가 어리거나, 힘이 약하거나, 놀이에 서툴거나, 그 밖의 이유로 소외될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을 위해 예외를 허용할 수 있었다.
이러한 비공식적인 놀이터 규칙을 통해 아이들은 함께 논다는 것이 반드시 모두에게 동일한 기준을 요구하거나 모든 사람이 정확히 똑같은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다. 이 맥락에서 평등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우하는 것을 반드시 의미하지 않았다. 오히려 평등은, 그렇지 않았다면 배제되었을 사람도 공동체에 속할 수 있도록 규칙을 조정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깍두기는 단순히 과거 한국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문화적 풍습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이해할 수 있다. 깍두기는 작지만 의미 있는 포용의 윤리(ethics of inclusion)를 구현한다. 즉, 공동체가 다른 사람의 참여와 소속을 지켜주기 위해 경쟁의 엄격한 규칙을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깍두기 관습에는 분명히 민주적인 요소가 담겨 있다. 여기서 민주주의란 공식적인 정치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그렇지 않았다면 배제되었을 사람을 위해 자리를 만들어 주는 일상적 문화 실천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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