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대한민국의 의료인, 법조인, 정치인
2. 초기 생애
1964년 11월 4일, 경상남도 통영군에서(現 통영시) 태어나 통영 충렬국민학교를 졸업하였다. 통영여자중학교 3학년 때 부산직할시로 이주하여 수영여자중학교, 데레사여자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부터 치과의사로 일했다.
1996년 제38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제28기로 수료하여 한국 최초의 치과의사 출신 변호사가 되었다.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2000년대 내내 진행된 GC녹십자사의 혈우병 치료제 훽나인을 투여한 환자들의 집단 AIDS 감염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으로, 이 사건은 18대 국회 임기가 끝나고서야 합의로 마무리되었다.
3. 정치 활동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열린우리당 공천심사위원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했고,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입성하였다. 이후 서울 강남구 을에서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준비했는데, 같은 당 소속이던 정동영이 강남구 을 출마를 선언하면서 그가 전략공천을 받아 본인은 컷오프 되어 본선에 출마하지 못했다. 이때 송파구 갑 지역구에 전략공천 제의를 받았으나 고사하였다고 한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강남구 을 지역구에 출마하여 현역 의원인 새누리당 김종훈 후보를 6,624표차로 꺾고 당선되어 강남 지역에서 24년 만에 민주당계 정당의 깃발을 꽂으며 총선 승리를 상징하는 인물로 자리매김하였다. 3선 의원에 부총리급 통일부장관, 열린우리당 당내 최대 계파의 수장, 대통령 후보 등등 각종 화려한 타이틀을 가진 정동영조차도 20% 이상이나 득표율 차가 넘는 참패를 당했을 만큼 녹록지 않았던 강남 을에서 51.5%의 득표율, 7.1%p의 득표율 차를 기록한 것은 본인이 8년이 넘도록 지역구 관리에 충분히 심혈을 기울인 결실이라고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선거 분위기와 선거구 개편에 편승해서 이겼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가령 20대 총선에서는 여권 성향이 가장 강했던 대치1동, 대치2동이 강남구 병으로 편입되었기에 야권 후보가 도전해볼 만한 선거구가 되었다는 것이 그 근거다. 또한 개포주공아파트 재건축으로 개포동 보수표가 쏟아지는 단지들이 텅 비면서 보수세가 덩달아 약해진 것도 강남구 을에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는 것에 일조했다. 그 당시 개포주공2단지, 개포주공3단지, 개포시영아파트가 모두 이주해있던 상황이기에 보수세가 많이 약해진 상황이었다.
그러나 대치 1, 2, 4동의 개표 결과를 그대로 강남구 을에 합산해도 490표 차로 이길 수 있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세 동이 그대로 강남구 을에 남아있었더라면 오랫동안 지역구 관리에 힘써온 전현희 후보에게 외려 더 많은 표가 가는 쪽으로 선거가 전개됐을 개연성도 또한 충분하다. 따라서 선거구 변경 이슈는 전 후보의 당선을 폄훼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전현희의 기반은 대치동이기 때문에 더욱 빛난다.
제20대 국회에서 국토교통위원회에 배정되었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민주통합당 경선에서는 김두관 후보의 대변인으로 활동하여 비문계로 분류되었으나,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문재인 캠프의 직능특보단장으로 선임되어 문재인 후보의 당선에 기여하였다. 현재는 사실상 범친문 성향의 의원으로 취급되고 있고, 본인 스스로도 비문계 성향에서 친문계 성향으로 바뀌었음을 인정한 바가 있다.
서울특별시장 출마에 뜻을 두고 있었으나, 2018년 3월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이후에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본인 지역구인 강남구 을 지역에 공천되어 출마하였으나, 미래통합당 박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승리했던 개포2동, 일원본동, 일원2동에서 패배하고, 개포1동에서는 4년 전보다 더 큰 표차로 패배했다. 개포주공 재건축이 완료되면서 디에이치 아너힐즈, 래미안 블레스티지 입주로 보수층이 대거 유입된 영향이 컸는데, 앞으로 4년 동안 개포 래미안 포레스트, 디에이치 자이 개포, 개포자이 프레지던스 등 총 7,500세대 정도의 입주물량이 예정되어 있는 상황이라 앞으로 더욱 보수성향이 강해질 가능성이 높다.
2020년 6월 26일,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2022년 5월 10일에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국무회의 배석을 하지 못하게 하면서 "본인들이 알아서 판단"하라고 이야기하였으며,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의 권성동 원내대표는 새 정부의 성향과 맞지 않으면서 자리 지키기를 하는 것은 몰염치하다라는 말과 동시에 전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이 자진하여 물러나는 것이 관례상 맞다라고 말하며 자진 사퇴를 압박했다.
결국 장관급임에도 국무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고 대면보고도 못하고, 서면보고를 올린 후 기자회견하는 식으로 일했다.
2023년 5월 감사원의 국민권익위원회 감사에 항의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참고로 해당 감사는 2025년 감사원의 '감사원 운영 쇄신 태스크포스'를 통해 위법하고 표적 감사였음이 밝혀졌다.
2023년 6월 26일, 권익위원장 퇴임을 하루 앞두고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3년 동안 원칙을 고수하면서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라며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를 저지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라는 소회를 밝혔다.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서울 종로구에 예비후보로 등록하였으나, 2024년 2월 27일 서울 중구·성동구 갑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전략공천되었다. 해당 지역구에서 컷오프된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3월 4일 페이스북을 통해 컷오프를 수용한다고 밝히면서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나섰고, 3월 14일에는 진보당과 단일화에 성공했다. 선거 결과 국민의힘 윤희숙 후보를 5.23%p 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2024년 8월 18일, 더불어민주당 제1차 정기전국당원대회에서 차석 최고위원으로 당선되었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여권 후보군 중에서 정원오 성동구청장과 김민석 국무총리와 함께 거론되었다.
2025년 12월 1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출마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최고위원직을 사퇴하였다. 2026년 4월 9일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정원오 전 성동구청장이 확정되어 서울시장에 출마할 수 없게 되었지만, 의원직은 지킬 수 있게 되었다.
3.1. 12.3 내란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하기 위해 국회로 향했다. 당시 무서운 상황이었지만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아울러 국회경비대가 국회의사당을 봉쇄한 상황에서, 국회 담벼락을 넘어 국회 진입에 성공해 계엄 표결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다리에 피멍이 들었다.
김남희 의원이 밝힌 일화에 따르면 계엄 선포 당시,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봉쇄한 상황에서 어디로 담을 넘어야 할지 돌아보고 있던 중 국회의원들이 아직 국회 경내 밖에 있음을 발견한 시민들에 의해 “왜 아직도 여기에 있느냐”는 일갈을 들은 뒤 시민들에 의해 더불어민주당 김남희 의원, 조국혁신당 서왕진 의원과 함께 들린 뒤 국회 담장 너머로 집어 던져졌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