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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에스라의 나무 강단이 제공하는 성경의 어휘 연구, 지난 며칠 제가 불가불 좀 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스튜디오가 마련되어 있는 대학 안의 건물에 큰 공사를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잡음이 많이 나서 촬영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그 공사가 일단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가기 때문에 오늘 다시 촬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어휘 연구 오늘은 164번째 시간입니다. '죽음'을 공부하겠습니다. 죽음을 뭐 공부할 필요가 있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의미를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기 때문에 성경적인 의미의 죽음이 무엇인지를 잠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고 유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먼저 죽음의 정의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국어사전에는 죽음을 이렇게 말합니다. '목숨이 끊어짐, 숨짐, 사망 또는 사망함.' 사람이나 생물이 죽는 걸 말하죠. 그다음에는 기계가 또는 움직이던 물체가 멈추는 거, "아, 내 시계가 죽었다" 그렇게 표현하지 않습니까? 멈췄다는 뜻입니다. 기계가 돌아가다 "아이고 기계가 죽었다" 할 때도 씁니다.
죽음과 관련된 속담 중 재밌는 것이 있습니다. '죽어서 석 잔 술이 살아 한 잔 술만 못하다.' 죽어서는 아무것도 마실 수 없다는 것을 말하겠죠. 죽어서 석 잔이 뭐 필요하냐, 살았을 때 한 잔이 더 낫다는 말입니다. 그다음 '죽은 정승이 산 개만 못하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좀 비참한 뜻을 갖고 있지만, 죽으면 아무것도 아니니 살아있는 개가 낫다는 의미입니다. 정승 집의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많지만, 정승이 죽으면 별로 사람들이 안 간다는 말도 있지요. 죽음은 정말 허무한 것입니다. 죽음은 생명이 끊어지고 생명 현상이 중단됨을 의미하며, 모든 의식과 활동과 도모가 정지됨을 가리킵니다. 삶이란 말과 생명이란 말이 죽음 또는 사망의 반대 의미입니다. 삶은 우리 말이고 생명은 한자죠. 삶과 생명은 죽음과 사망의 반대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그러면 이 죽음이 왜 생겼느냐? 죽음의 원인을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죽음에 대한 경고를 하셨습니다. "너 어떻게 하면 죽는다 조심해라" 하고 천지 창조를 하신 다음에 아담에게 하신 경고입니다. 하와가 창조되기 전에 아담에게 하신 경고죠. 창세기 2장 16절과 17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개역한글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꼭 죽는다는 뜻이니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먹으면 죽는다는 죽음의 원인을 말씀하셨고, 결국 인간은 그것을 먹고 죽었습니다.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창조자의 명령에 순종하고 그분이 지시하신 것을 이행하는 조건 하에서만 가능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 경고를 무시했기 때문에 결국 그 결과로 죽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3장 11절로 13절, 아주 비참한 얘기죠.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인간은 다 궁지에 몰리면 핑계를 대고 엉뚱한 소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결과로 아담과 하와는 죽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3장 17절로 1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셨더라."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죽음을 말합니다. 죽게 되었습니다.
불순종의 결과로, 죄악의 결과로 인간은 죽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로마서에 기록한 바울은 로마서 5장 12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헬라어로 '타나토스(Thanatos)'가 죽음입니다. 죽음에 대한 학문을 '타나톨로지(Thanatology, 죽음학/사망학)'라고 합니다. 핵심은 아담의 죄 때문에 죽었고, 우리도 죄 때문에 죽는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원인은 죄입니다. 로마서 6장 23절, 너무나 유명한 말씀이죠.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영생은 하나님의 은사, 즉 선물입니다. 죽음은 죄의 삯(The wages of sin is death)입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죽음은 죄 때문에 왔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한 철학자가 있습니다. 아주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사람인데, 그 사람이 누구냐 하면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입니다. 키르케고르는 덴마크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였습니다. 1813년에 태어나서 1855년에 죽었으니 42세에 죽었습니다. 너무나 아깝게 죽었지만, 이렇게 짧게 살아도 남긴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이 바로 1849년에 쓴 『죽음에 이르는 병』(영어명 The Sickness unto Death, 독일어명 Die Krankheit zum Tode)입니다. 이 책은 참 의미가 있고 아주 훌륭한 책으로 역사에 남아 있습니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은 절망(영어 despair, 독일어 Verzweiflung)이라는 병이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서두에 요한복음 11장 4절을 인용합니다.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예수님이 하신 반응입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나사로가 심히 아프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이 금방 가서 고쳐 주지 않고 한 이틀 머무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그러고 나서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나사로가 죽은 다음에 예수님은 "나사로가 잠들었다"고 하셨다가 "죽었다"고 하십니다. 앞뒤가 모순 같지만 여기에 예수님이 죽음에 대한 신학을 갖고 계십니다.
이 책의 필명이 '안티-클리마쿠스(Anti-Climacus)'입니다. 안티-클리마쿠스라는 이름을 빌려 책을 쓰며 설명하길, 인간을 진정으로 죽게 하는 것은 절망이라고 했습니다. 절망이 영적인 죽음입니다. 절망은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희망,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주가 되시는 그분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사람은 살았으나 다 죽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안티-클리마쿠스는 이 책의 저자로 설정된 탁월한 그리스도인의 이름인데, 키르케고르는 이 인물을 빌려 영적인 질병의 개념을 탐구합니다. 우리가 육신적으로 죽는 것, 그것이 진짜 죽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극복함에 있어서는 믿음과 자의식(Self)이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내가 하나님이 만드신 바라는 자의식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고 하신 말씀은 나사로가 부활하기 전에도 맞는 말이었습니다. 영원히 죽는 죽음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참된 죽음에 이르는 병은 희망 없음, 즉 절망이며 이것이 영적인 죽음입니다. 영원히 죽는 죽음에 대한 자각이 없는 상태를 경고한 것입니다.
석가모니도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이요 회자정리(會者定離)라.' 산 자는 반드시 죽고,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기 마련이라는 뜻입니다. 석가모니도 죽음이 이르러 온다는 사실은 알고 사람들에게 그렇게 설명했습니다. 살면 죽고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인간의 천리라는 것입니다. 이 불교의 가르침에서 석가는 죽음의 원인은 말할 수 없었지만, 누구나 죽어야 한다는 사실은 인정했습니다. 생자는 필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원인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죄입니다. 죄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이 아주 분명합니다. 다른 이유를 말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죽음의 참된 원인을 말해 줍니다.
그럼 사람이 죽으면 어떤 상태에 들어가는가? 이게 아주 중요합니다. 죽음의 상태에 대해 성경은 죽음이 잠이라고 말합니다. 구약은 다윗과 솔로몬, 그리고 유다와 이스라엘의 다른 왕들의 죽음을 기술하면서 "그들이 조상들과 함께 자니라"고 표현합니다. 열왕기상하의 수많은 기록, 예레미야, 다니엘, 욥기에서도 죽음을 잠잔다고 표현합니다. 열조와 함께 잠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깰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제 저녁 밤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아침에 깨듯이, 무덤에 들어가 자다가 깰 때가 있습니다. 열왕기상 11장 43절에 솔로몬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니라고 하였는데, 지금까지 자고 있는 것입니다. 영원히 자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깨어날 것입니다. 주께서 천천만만의 천사와 함께 이 땅에 오시면 깨어날 것이기 때문에 잠입니다.
신약도 동일한 비유적 표현을 사용합니다. 야이로의 죽은 딸을 묘사하면서 예수께서는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깨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은 나사로에 대해서도 똑같이 표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 잔다고 하셨다가, 사람들이 오해하니까 죽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것은 맞지만 그것이 자는 상태라는 표현입니다. 마태는 그리스도의 부활 후에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났다"고 기록했습니다. 죽어 있던 성도를 자던 성도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누가는 스데반의 순교를 기록하면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고 했습니다. 돌에 맞아 죽은 것을 잠들었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바울과 베드로도 역시 죽음을 잠이라고 불렀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 "자던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 했고, 데살로니가전서와 베드로후서에서도 죽은 자들을 잠자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죽음은 잠입니다.
한결같이 잠이라 표현하는 죽은 사람들의 상태는 의식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모릅니다. 전도서 9장 5절에 "산 자들은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며"라고 했습니다. 진짜 모릅니다. 임사 체험이라는 것, 죽었던 사람들이 깨어나서 무언가를 보았다는 것은 진짜 의식이 활동한 것이 아닙니다. 뇌의 일시적인 현상일 뿐입니다. 죽으면 사고가 멈춥니다. 시편 146편 4절에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생각이 멈춥니다. 영혼불멸설은 틀렸습니다. 우리가 죽으면 영혼이 몸으로부터 분리되어 의식 활동을 계속한다는 것은 비성경적인 말입니다. 호흡이 끊어지면 생각이 없고 모든 활동이 중단됩니다. 전도서 9장 10절에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아무 활동도 없는 상태이니 그야말로 잠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깊은 잠에 들어가면 아침에 깰 때까지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꿈을 꾸는 것은 살아 있기 때문에 꾸는 현상입니다.
또한 죽으면 아무런 감정도 없습니다. 전도서 9장 6절에 "그들의 사랑과 미움과 시기도 없어진 지 오래니"라고 했습니다. 애정도 시기도 아무것도 없이 그냥 멈추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과도 상관이 없어집니다. "해가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 중에서 그들에게 돌아갈 몫이 영원히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들은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합니다. 시편 115편 17절에 "죽은 자들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 데로 내려가는 자들은 아무도 찬양하지 못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장차 깨어날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28절과 29절에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겪는 죽음입니다.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러면 이 죽은 자들은 어디에 있는가? 거처를 보겠습니다. 구약은 죽은 사람들이 내려가는 거처를 '스올(Sheol)'이라 불렀고 우리말 성경에는 주로 '음부'로 번역되었습니다. 영어로는 지하 세계나 죽은 자들의 거처(the grave)를 뜻합니다. 신약성경의 헬라어로는 '하데스(Hades)'라고 합니다. 지하에 특별한 공간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무덤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창세기 37장 35절에 야곱이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고 했습니다. 요셉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나도 무덤으로 내려가겠다는 슬픔의 표현입니다. 거기서 사후에 만난다는 뜻이 아니라 무덤으로 가겠다는 표현입니다. 민수기 16장 30절 고라의 반역 때 "만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사 땅이 입을 열어 이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유물을 삼켜 산 채로 스올에 빠지게 하시면"이라고 했습니다. 땅 구덩이에 빠져 무덤으로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시편 30편 3절에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죽어서 가는 곳은 흙구덩이, 즉 무덤입니다. 사도행전 2장 27절에도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라고 하여 '하데스'가 쓰였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3절에는 부활 때의 장면으로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아무런 의식 없이, 활동 없이 잠들어 있다가 나중에 하나님이 깨우시면 부활하여 나오게 됩니다.
죽음의 종류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죽음과 둘째 죽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다가 수명이 다해 죽는 것은 첫째 죽음입니다. 첫째 죽음, 즉 첫째 사망은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이르러온 불가피한 결과입니다. 에녹과 엘리야를 제외한 모든 인간이 겪는 공동 운명입니다. 생자필멸의 운명을 지닌 모든 인간이 겪는 불가피한 죽음입니다. 이 죽음이 있은 다음에 선인에게는 생명의 부활이, 악인에게는 심판의 부활이 기다립니다. 앞으로 다 일어납니다. 선인도 악인도 다 일어난 다음에 운명이 갈라집니다.
둘째 죽음이 있습니다. 둘째 사망은 회개하지 아니한 죄인들, 즉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사람들의 마지막 형벌로서의 죽음입니다. 부활했다가 다시 겪게 되는 최종적인 죽음입니다. 이 죽음 다음에는 부활이 없는 최후의 멸망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3절과 14절에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죄의 그림자와 함께 사망 자체가 영원히 멸망하여 없어집니다. 악인도, 악한 천사도, 마귀도 불못에 던져져 완전히 소멸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하셨습니다. 둘째 사망은 영원히 고통받는 지옥이 아니라, 완전히 소멸하여 죽어버리는 지옥입니다.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둘째 사망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1절에 서머나 교회에 보내는 기별 중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6절에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하셨으니, 이제 죽음이라는 현상 자체가 영원히 사라짐을 뜻합니다. 참으로 복된 소식입니다.
그럼 이 둘째 죽음을 피하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그것을 알아야 영원한 사망에 이르지 않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고 의지하면 됩니다. 신명기 30장 19절과 20절입니다.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청종하며 의지하면 영원한 생명을 확보합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어야 합니다. 신약성경에 더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요한복음 3장 14절로 16절, 너무나 유명한 구절입니다. "모세를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영생을 얻는 방법은 바로 그를 믿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11절에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하셨으니 영생이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36절에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하셨고, 요한복음 6장 40절에는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3절 다 같이 읽어봅시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 알아야 믿을 수 있습니다. 알아야 믿으니 전도하는 것이고 성경을 보는 것입니다. 덮어놓고 모르면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서 나를 위해 돌아가셨고 그를 믿으면 산다는 것을 알아야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에 이 지식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요약합니다.
성도 여러분, 죽음에 대해서 확실한 성경적 개념을 가지시고, 둘째 사망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생명의 근원이 되신 예수님을 알고 믿는 것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확실히 새기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신앙의 궁극적 목적이며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가장 고귀한 지식입니다. 이 지식에 우리 모두 참여하여 둘째 사망을 피하게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죽음에 대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죽음을 히브리어로는 '마트(math)', 헬라어로는 '타나토스'라고 합니다. 이 두 번째 타나토스를 경험하지 않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 핵심 요약정리
죽음(타나토스, 마트)의 성경적 기원과 원인
성경이 말하는 죽음의 근본 원인은 인간의 불순종, 즉 '죄'입니다.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고 경고하셨고, 인간이 이를 어김으로써 죄의 결과인 사망이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로마서 6장 23절 말씀처럼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불교의 '생자필멸'처럼 죽음의 현상만 인정한 세상 철학과 달리 성경은 원인을 명확히 밝힙니다.
죽은 자의 상태: '잠'과 의식의 부재
성경은 일관되게 죽음을 '잠'으로 묘사합니다. 구약의 왕들이 "조상들과 함께 자니라"고 기록된 것과 신약에서 예수님이 야이로의 딸이나 나사로를 두고 "잔다"고 하신 표현, 스데반의 순교를 "자니라"고 한 표현이 모두 대변합니다. 어침에 잠에서 깨어나듯 장차 주님 재림 때 부활하여 깨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는 전도서 9장의 증언대로 아무런 의식이나 감정(사랑, 미움, 시기)이 없으며 사고가 완전히 소멸(시 146:4)하고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과 상관이 끊어집니다. 따라서 인간이 죽은 후 영혼이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의식 활동을 한다는 '영혼불멸설'이나 사후 세계를 보았다는 '임사 체험'은 비성경적인 오해입니다.
죽은 자들의 거처: 스올(음부)과 하데스
구약의 '스올(Sheol)'과 신약의 '하데스(Hades)'는 사후에 영혼이 고통받는 신비한 지하 세계가 아니라, 단지 의식 없이 흙으로 돌아가 눕는 '무덤(the grave)이나 구덩이'를 완곡하게 일컫는 성경 원어적 표현입니다.
두 가지 종류의 죽음 분별
첫째 사망:아담의 범죄 이후 에녹과 엘리야를 제외한 모든 인류가 보편적으로 겪는 육신적인 죽음(잠)입니다. 이 죽음 이후에는 선인은 생명의 부활로, 악인은 심판의 부활로 무덤에서 일어나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둘째 사망:요한계시록 20~21장에 명시된 불못의 형벌입니다. 최종 심판 때 회개하지 않은 악인들과 마귀, 그리고 사망 자체가 영원히 불태워져 흔적도 없이 완전히 소멸하는 '영원한 최종적 멸망'을 뜻합니다. 영원히 고통받는 유황 지옥이 아니라 죄의 흔적 자체가 우주에서 영구히 지워지는 소멸의 형벌입니다.
둘째 사망을 피하고 영생을 얻는 유일한 방법
첫째 사망은 인간의 힘으로 피할 수 없으나, 영원한 파멸인 둘째 사망은 완벽히 피할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은 신명기 30장의 교훈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이며, 요한복음 17장 3절 말씀처럼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알고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영원한 생명(영생)의 선물이 주어져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