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명-힌남노가 오던 날
저-김종상(간병일지 증보판)출- 대양미디어-
-어느 노부부의 순애보- ㅣ
김종상 선생님이 간병일지 증보판 『힌남노가 오던 날』 책을 보내주셨다. 각 11편 내지 12편의 시로 10부를 구성한 시집으로 86세 알츠하이머 치매를 앓는 사모님을 간병하며 적은 책이었다. 단숨에 다 읽고 나니, 노년의 삶이 귀중한 문학으로 승화된 아카이브 (archive) 기록 문학서의 품격이 가슴에 담겨왔다.
첫째, 표제어를 <힌남노가 오던 날>로 정한 이유를 알겠다.
<다친 갈비뼈가 많이 아파서/태풍 힌남노가 북상 중인데도/휠체어에 태워서 집을 나섰다//
우산을 두 개나 준비했지만/아내는 팔을 제대로 못 쓰고/나는 휠체어를 밀어야 하니/비를 제대로 가리지 못한 채/가까운 연세재활병원으로 갔다//
치료를 하고 돌아오는 길은/우리 아파트 앞이 오르막이라/비를 맞으며 안간힘을 쓰는데/
뒤에 차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승용차에서 한 아가씨가 내렸다//
아가씨는 한 손으로 우산을 받치며/휠체어를 209동 앞까지 밀어주고는 /목례를 남기고 자기 차로 향했다/어디 사는 누구냐고 물었지만/우리 모습이 아름답다고만 하고/대답 대신 밝은 미소만 보내주고/거센 빗줄기 속으로 총총 사라졌다//
비에 젖은 초라한 두 늙은이/한 사람은 운신도 어려운 환자이고/한 사람은 쪼그라진 백발 노구인데/우리가 무엇이 아름답다는 것일까//
정말 아름다운 것은 태풍 속에서도/가던 길 멈추고 승용차를 내려서/비에 옷을 적시며 휠체어를 밀어준/그 아가씨의 고운 마음씨가 아닐까? 2022.9.5.>
※ 서로에게 남은 시간 동안 정성을 다하며 살아가는 노부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위로가 되는 기록 시였다. 그래서 선생님은 <힌남노가 오던 날>을 책 제목으로 내어놨지만 나는 <어느 노부부의 순애보 이야기>라는 책 제목으로 정리하고 싶다.
둘째, 아내의 올곧은 성품과 성실과 배려로 살아온 행적이 적힌 시들을 모아보았다.
① <병 냄새가 싫어>
② <교체된 부엌 가구>
③ <디펜드를 아끼려고>
갈아입는 일회용 팬티 안에/디팬드라는 기저귀를 받치는데/그것을 아끼려고 가위로 잘라서
자른 자리를 꿰매려는 것이다//
눈도 어둡고 손도 저리고 떨려서/바늘에 실을 못 꿰고 있었다//
그게 뭐라고 그렇게 아끼냐니까/가랑비라고 옷 안 젖느냐며/걱정 말고 잠이나 자라고 했다.
⑤ <소변을 줄이려고>
아내는 국물을 잘 먹지 않았고/자다가도 입이 자꾸 마른다며/물수건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물을 먹어 소변을 자주 보면/간병사나 내가 힘들어할까 봐/소변량과 보는 횟수를 줄이려고/
목이 말라도 그렇게 했던 것이다. 2023년 3월
⑥ <생각이 많아서>
⑦ <아내 몫이 영토>
셋째, 병마와 투쟁하는 아내를 보살피는 남편의 정성과 생각이 적힌 시들을 모아보았다.
① <하느님의 선물>
② <가족 곁에 있어야>
③ <여든여섯 살 아기>
아내가 퇴원해서 집으로 오니/거실에 전동침대가 놓이고/방문마다 안전손잡이가 달렸다//
몸에 요로 관을 꽂아서/소변 주머니를 달고 있어도/이동 변기가 따로 마련되었다//
평소에 워낙 꽃을 좋아했기에/머리맡에는 꽃바구니가 놓이고/그림으로라도 바깥소식을 보게/
시선에 맞추어 TV를 옮겼다//
여든여섯 살 아기가 된 아내/요양보호사가 양모가 되어도/곁에는 내가 있어 줘야 했다.
⑥ <나는 이제 뭐지요>
평생 해오던 집안 안팎일이/자기 손에서 떠났다는 생각에/모두를 빼앗긴 듯한 허탈감과
심한 소외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나는 알겠다며 우유를 내서/아내 보는 앞에서 마시고/양복바지도 두터운 것을 입겠다며/
옷장에서 찾아내어 갖다 보이니/그제야 표정이 조금 풀렸다. 2022. 10. 25
⑦ <꽃 한 송이라도>
⑨ <가슴에 벌레가>
아내가 가슴 속에 손을 넣고 /벌레가 기어다닌다고 했다/아내는 지네 이름만 들어도 자지러진다/옷 속에 손을 넣어 휘저었다/벌레를 잡는 척하다가/집어서 내던지는 시늉을 하며/이제 다시는 못 올 거라며/안심시켜 잠재웠다.2022년 12월
⑩ <가지 부러진 감나무>
⑪ <안전 손잡이 추가설치>
⑫ <하수관 공사감독>
※ 어떻게 노부부가 서로에게 이렇게 충실할 수 있을까?
그것은 서로에게 평생 정성을 쏟고 살아온 상대에 대한 존경심과 사랑이 밑바탕을 이룬 순애보 이야기였다.
김종상 선생님의 이 시 한 편이 내 말을 대변해 주리라.
<가슴 벅찬 일>
눈 감고도 누워만 있더라도/이렇게 함께 있다는 것이/참으로 큰 기쁨이고 행복이라/
서로에게 벅찬 인연인 것을//
우리는 노부부의 순애보 앞에 고개 숙여 배우며 닮아보려는 마음으로 자신을 닦아가고 싶어진다. 부부로, 부모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훌륭한 교훈서였다. (14매)
※ 2023년 5월 경북아동문학회 5월 공부방 연수 자료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