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 시편 60편 회복을 위한 기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도 때로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좋은 부모가 자녀를 훈련시키듯이 말입니다. 건강한 훈련을 받은 자녀들이 자라서 건강한 사람이 됩니다. 오늘 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이 흩어지는 어려움 중에서도 회복을 확신하는 시인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우리가 힘든 삶가운데서 은혜를 회복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믿고 회복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1절은 기도합니다. "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려 흩으셨고 분노하셨사오나 지금은 우리를 회복 시키소서." 사실 민족이 흩어질 정도라면 낙심이 되어 기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주께 실망하지 않고 오히려 회복을 위해 기도합니다. " 주의 사랑하시는 자를 건지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응답하사 오른손으로 구원하소서." 5절.
저가 살아가며 배우는 것은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며 구하는 자가 얻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강한 약속입니다. 마태복음 7. 7-11절. "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8절.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말과 다른 근본 이유는 그것은 실행될 약속이라는 것이죠. 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하는 자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건짐을 받고 새로와집니다.
또한 하나님의 능력과 그 깊은 뜻을 믿어야 합니다. 7절에 보면 하나님은 모든 것이 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보호자며 유다는 나의 홀이며." 성경은 하나님이 진정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재자시며 소유자이심을 끊임없이 강조합니다. 주인없는 집이 없듯이 이 세상의 주인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또 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 모압은 내 목욕통이라 에돔에는 내 신을 던지리라. 블레셋아 나를 인하여 외치라 하셨도다." 여기서 모압은 내 목욕통 이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물론 근본의미는 7절의 모든 나라들과 같이 모압도 하나님이 쓰시는 소유라는 뜻입니다. 어떤 분이 이를 묵상하며 모압은 우리를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쓰시는 도구라고 했습니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때로 연단을 당해도 실은 하나님이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기 위한 깊은 뜻이 있다는 겁니다. 때로 모압이 이스라엘을 위협할 때도 실상은 하나님이 그들을, 이스라엘을 깨끗케 하기위한 목욕통으로, 사용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오늘 우리 삶에도 이런 영적 원리가 그대로 실행되는 것을 우리가 경험합니다.
로마서 5: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기치 못했던 환난을 만나거나 당했을 때도 소망을 품을 수 있는 이유는 그 환난이 나를 상하게 한 것은 맞지만, 근본적으로 우리를 깨끗게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지난 과거의 실패에 너무 사로잡혀 있어서는 안됩니다. 신약성경의 여러 삶의 루저들처럼 패배감을 떨치고 일어나는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더욱이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해야 합니다. 당시 시인은 하나님의 부재를 느낍니다. 개인의 상황을 넘어 민족적인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합니다. 그렇다면 이 크고 오랜 하나님의 부재앞에 대개 절망하고 기도를 잃어 버리기가 쉽상이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그는 계속하여 주님께 기도합니다.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는 믿음으로 계속해서 주님을 붙듭니다.
"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그러나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하리니 저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자심이로다." 10-12절.
그는 하나님이 자기민족을 버리신 것같이 보여도 사람의 도움을 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갑니다. 하나님만이 참 능력자 이심을 믿으니까요. 이 시인은 다윗인데 과연 다윗의 믿음은 대단합니다. 그의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 믿음은 여기서도 아름답게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어떤 개인적인 위기이든지, 민족적인 위기에서도- 튀르키예와 시리아, 우크라이나의 아픔중에도- 절망치 않고 우리의 회복을 위해, 또 주님의 깊은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 또 우리가 그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는 바로 그 도구가 되기 위해,
계속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 하나님의 선한 뜻이 없는 일이란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