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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순서 September 3rd 2023 11:00AM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His worshipers must worship in spirit and in truth.
경 배 와 찬 양 Worship and Praise
■ 묵 도 Silent Prayer …………… 다 같 이 All
■ 기 원 Invocation ………………… 다 같 이 All
■ 찬 송 Hymn …………………… 찬 송 278
■ 교 독 문 Responsive Reading … 44
■ 찬 송 Hymn ………………… 주만 바라볼찌라. Focus on the Lord
■ 기 도 Prayer …………………… 다 같 이 All
■ 성경봉독 Scripture Lesson from 고린도후서 2 Corinthians 5:1-4
■ 말 씀 Sermon …………………… 인도자 Leader
■ 기 도 Prayer …………………… 인도자 Leader
■ 찬 송 Hymn ……………………… 찬 송 316
□ 축복의 말씀 Sharing Blessing ……………… 함께 Altogether
기도 Prayer
이번 주 this Sunday by 정정선 집사 deaconess Chong, Cooper
다음 주 next Sunday by 정무선 집사 deaconess Muson, Chong
교독문 Responsive Reading 요한복음 John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and the Word was God.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He was in the beginning with God. All things came into being through Him,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and apart from Him nothing came into being that has come into being.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In Him was life, and the life was the Light of men.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The Light shines in the darkness, and the darkness did not comprehend it.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There was the true Light which, coming into the world, enlightens every man.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He was in the world, and the world was made through Him,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and the world did not know Him. He came to His own, and those who were His own did not receive Him.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But as many as received Him, to them He gave the right to become
children of God, even to those who believe in His name,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who were born, not of blood nor of the will of the flesh nor of the will of man,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but of God.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And the Word became flesh, and dwelt among us, and we saw His glory,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glory as of the only begotten from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 Our Dwelling from Heaven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5:1-4
For we know that if the earthly tent which is our house is torn down, we have a building from God, a house not made with hands, eternal in the heavens. For indeed in this house we groan, longing to be clothed with our dwelling from heaven, inasmuch as we, having put it on, will not be found naked. For indeed while we are in this tent, we groan, being burdened, because we do not want to be unclothed but to be clothed, so that what is mortal will be swallowed up by life. 2 Corinthians 5:1-4
이 말씀을 읽으면서 지속적으로 묻게 되는 질문은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하늘의 처소가 죽은 후의 것이냐? 아니면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 되는 일이냐?’라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기존에 갖고 있던 믿음을 좇아 이렇게도 혹은 저렇게도 내릴 수 있겠지만 여기서 궁금한 것은 과연 바울은 어떤 생각으로 이 서신을 적었을까 하는 점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면 이후의 그의 서신들을 읽어 나갈 때 그의 관점이 여전히 동일하게 적용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관점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이 질문에 대해서 만일 죽은 후의 천국이라 하여도 옳은 것이고 혹은 살아 있는 동안에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보는 관점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 드려야 할 듯합니다. 그리고 기존의 생각은 당연히 죽은 후의 천국을 염두에 두고 이 말씀을 읽게 됩니다. 그런데 4절의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는 표현을 보면 ‘이는 이 땅에서 일어나야 하는 일에 대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바울이나 우리가 모두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된다 해서 이 땅에서 죽지 않고 무한의 세월을 살기를 바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답을 일단 가지고서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된다는 표현을 생각해 본다면 이는 오히려 4장에서 바울이 말한 “예수의 생명도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는 내용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4장은 예수의 죽으심의 방식이 우리 온 인격에 나타나심으로 이해했는데 이는 분명하게 이 땅에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이루어져야 할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4장에서 예수의 생명이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는 것이 이 땅에서의 일이라면 5장에서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는 것 역시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일에 대한 것임이 마땅합니다. 이제 다음 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는 것이 무엇일까요? 물론 여기 생명은 예수의 생명입니다. 그 또한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예수의 생명이 무엇일까요?
예수의 생명은 사도 요한이 가장 잘 말하였습니다. “이 생명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런데 하나님을 굳이 “예수의 생명”이라고 하신 이유는 사람이 되어 오신 점을 나타내려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수로서 이 땅에 오심만으로도 이미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삶에 나타나신다는 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이 서신을 기록할 당시는 예수의 부활 이후라 하나님이신 생명의 속성이 부활의 능력으로 나타나신 상황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예수의 생명은 이 땅에서 나타나심이 마땅한 것입니다. 4장에서는 이러한 원칙을 선언한 것이라면 5장에서는 그 방식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의 생명이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는 것”은 곧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는 과정임을 말한 것입니다. 삼킨 바라는 표현은 곧 ‘잡아먹히다.’입니다. 이는 단순히 이긴다는 비교의 표현을 더 지나서 먹힌 것이 먹은 것 자체로 변환된다는 내용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께서도 먹는 행위를 복음에 자주 사용하신 것입니다. 즉 바울은 우리가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먹는 것에서 더 지나 우리의 죽을 것이 예수의 생명에게 먹힌바 되어 예수의 생명화 되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인격의 모든 면, 성품과 감정, 사고와 몸, 모든 것을 포함하고 더 나아가서 우리의 삶과 소유, 및 관계와 환경까지도 포함하고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의 생명은 이처럼 우리의 사는 삶을 변화시킵니다.
As I read this, a recurring question comes to mind: "Does this reference to heaven pertain to life after death or something happening during our earthly existence?" The answer to this question allows us to align our actions with our existing beliefs. However, what truly piques my curiosity is how Paul conveys this in his letter. Understanding his perspective is vital, as it will continue to inform our interpretation as we progress through his correspondence.
Before delving into Paul's viewpoint, it's essential to acknowledge that whether we're talking about heaven after death or life on Earth, the prevailing concept tends to focus on the afterlife. But when we examine the phrase "to let what is to die be swallowed by life" in verse 4, we can't help but wonder if it relates to events on this earthly plane.
Paul, like the rest of us, isn't keen on living indefinitely on Earth simply because what dies is enveloped by life. If we scrutinize this expression in the context of what Paul mentioned in Chapter 4 about "Jesus's life appearing in our bodies," it becomes evident that this transformation must occur during our earthly existence.
So, if Chapter 4 implies that Jesus's life manifests in our mortal bodies here on Earth, it's reasonable to assume that in Chapter 5, the concept of being "swallowed by life" also pertains to events in this earthly realm. Now, let's explore the next question: What is it that's destined to die but will be enveloped by life? Clearly, the life referred to here is the life of Jesus.
John the Apostle offered the most fitting description of Jesus' life, declaring, "This life is God." He used the term "the life of Jesus" to emphasize that God had taken on human form. The fact that God descended to Earth as Jesus indicates that God's life is already intertwined with ours. However, when Paul penned this letter, he was alluding to a scenario where the essence of life, God, became synonymous with the power of resurrection following Jesus's resurrection.
Therefore, it becomes even more evident that Jesus's life should make a profound appearance on Earth. If Chapter 4 lays out these principles, Chapter 5 elucidates the method. In essence, "the appearance of Jesus' life in our dying body" equates to "life triumphing over death." The term "swallowed" in this context could be interpreted as 'consumed'. This suggests a transformation wherein what is consumed becomes one with the consumer, going beyond mere victory.
This is why the Lord frequently employed the metaphor of eating in the gospel narratives. In essence, Paul is emphasizing that we should go beyond simply ingesting the Word as a form of life. Instead, our mortality should be absorbed by the life of Jesus, becoming one with it. This transformation should encompass every facet of our being, including our personality, character, emotions, thoughts, physical bodies, and even our possessions, relationships, and environments. The life of Jesus, which is essentially God's life, reshapes our existence in this comprehensive manner.
축복의 말
Blessing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민수기 6:24-26
The LORD bless you,
and keep you;
The LORD make His face
shine on you,
And be gracious to you;
The LORD lift up
His countenance on you,
And give you peace.'
Numbers 6:2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