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의 눈, 강원을 담다
③강릉 구산서원(오봉서원)
미인을 닮은 강릉의 산수
성리학은 조선을 이끌어간 통치이념이다.
현대를 사는 유학자들도 자신이 어느 계파에 속하는지 잊지 않고 그 정신을 바탕으로 오늘을 살고 있을 정도다.
문화란 사람들이 살았던 당시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시대적 배경은 문화를 이해하는 줄기이다. 선비들은 수시로 벌어진 당파 싸움으로 인해 희생되는 일이 많아지자 정계 진출을 하지 않고 산천에 묻혀 사는 운둔문화는 만들었다. 또한 자신이 거쳐하는 지역의 산수화를 그림에 담아내는 진경산수화 흐름을 만들어 냈다. 조선의 수묵화는 검소하고 선비들의 이런 정신을 표현해낸 백자와 비교되기도 한다.
강릉의 산수를 보는 느낌을 한마디로 정리한 분이 있다. 1714년 관동과 금강산을 다녀오는 등 시문과 여행으로 세월을 보낸 담헌 이하곤(1677-1724)은 『두타초』에서 ‘산수를 유람하는 것은 미인을 보는 것과 같다(觀山水如觀美人·관산수여관미인)’고 쓰고 있다.
관동의 산하를 돌아보며 답사기와 그림, 시를 남기는 것은 당시 사람들의 문화이자 생활의 한 단편이었다. 정철의 관동별곡은 강원도로 가는 일정에 따라 글이 이어져 여행에 대한 환상은 물론 유람문화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단원 대관령을 넘다
대관령을 넘은 단원은 탁 트인 바다를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산줄기 마다 소나무들이 동행하고 있다. 멀리 바다 주변에 호수가 보인다. 바다와 호수 사이엔 산이 오뚝 솟아 있다. 강문이다. 지금의 강문은 현대에서 지은 호텔이 차지하고 있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지점에 성황당이 있다. 지금도 현대 씨마크 호텔 아래에 작은 산신각 건물이 있다. 이 성황당은 물, 불, 바람의 삼재를 막는 제사를 봉행되고 있다. 나무 기둥에 3마리의 오리가 올라간 조형물(?)은 삼재를 막는 신앙물처럼 여기며 사람들은 진또배기라 부른다. 바닷가 사람들이 자연의 피해로부터 보호 받기 위해 올리는 염원이 들어 있다.
자연이 만든 호수인 경포대는 기라성 같은 선비들이 찾아가 발자취를 남겼다. 작가에게는 이곳은 선망의 대상이자 꼭 방문해야 하는 버킷 리스트(Bucket list)다. 남대천을 따라 이어진 옛길은 구산으로 향한다. 산자락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는 민가 위로 구산서원이 보인다. 지금은 오봉서원으로 불린다. 아흔 아홉 구비를 돌며 강릉 방향으로 가던 (구)영동고속도로 마지막 휴게소 이름이 구산휴게소였다. 지금은 구산이라는 이름이 거의 사라지고 성산이란 이름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지금도 구산리, 구산교, 구산자원이라는 지명과 간판이 잊혀져가는 옛 과거를 움켜쥐고 있다.
강릉의 자연은 아름답다. 대표적인 자연물은 역시 소나무이다. 지금은 여러 높은 건물에 가려 소나무가 가려있다. 조선의 강릉풍경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주요건물이라고 해야 관아와 서원, 향교, 정자가 전부였다. 단원이 남긴 구산서원(오봉서원)은 조선시대 강릉 모습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구산서원 그림은 서원과 마을이 정겹게 그려져 있다. 현재의 사원 입구엔 배롱나무 두 그루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뒤뜰의 사계절 푸르른 소나무는 선비의 절개를 상징하듯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다.
인향만리(人香萬里)라는 말이 있다. 사람의 향기는 나라 경계를 넘어 만리를 간다는 말이다. 선비들은 갈고 닦은 문향이 오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너도 나도 100일 넘게 꽃을 피워내는 배롱나무를 심어 학문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구산서원과 성산봉
성산초교는 주변은 옛 그림처럼 소나무들이 둘러쌓고 있다. 아마도 소나무 숲 가운데로 학교가 들어섰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구산서원 그림은 남대천이 보이고 소나무 숲 서원과 민가들이 점점이 박혀 있다. 오른쪽 하단에 보이는 현재 학교 주변이 모두 소나무 숲으로 그려져 있다. 도시의 확장으로 민가, 농협, 주유소 등이 소나무 주변으로 건물들이 생겼다. 학교가 세워지고 도로가 나면서 소나무들이 사라졌고 현재도 소나무 서식지에 학교 체육관이 들어서는 등 옛 모습이 지워지는 중이다.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자라는 땅은 교육청부지로 성산초교에서 관리하고 있다. 성산초교 야외무대 주변에는 160여 그루의 소나무와 학교 건너 주유소 입구에 6개의 소나무, 학교 오른쪽 귀퉁이에 26그루의 소나무 등 190여 그루의 소나무가 남아 있다. 학교 주변에 서 있는 그 밖의 나무는 히말라야 시타 19그루, 은행나무 11그루, 잣나무, 단 단풍나무 등이 있다.
단원의 그림의 특징은 드론사진처럼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그려졌다. 그림이 그려진 위치를 찾기 위해 칠봉산 1봉인 성산봉(279m)에 올랐다.
구산교를 건너 등산로에 접어드니 누리장나무가 꽃망울을 달고 있다. 간간히 발견되는 초피나무도 이 지역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등산로 초입의 소나무들이 늘씬한 건강미를 뽐내고 있다. 8부 능선에 들어서자 소나무 키들이 작아져 햇살을 피할 곳이 없어졌다. 비지땀을 흘리며 올라가자 정상부근에 정자가 나타난다. 정자에서 바라본 풍경은 잔뜩 기대했던 마을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나무들이 마을로 내려가는 시선을 가려 성산면의 전체를 조망하기 어렵다. 정자의 높이를 조금 높여 단원의 그림 속으로 여행을 했으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한다. 30도를 웃도는 폭염은 아쉬운 발걸음을 지치게 만든다. 과거 말을 타고 지나간 화원들의 행적을 따라 자동차를 이용하는데도 따라가기가 벅차다. 아름다운 풍광을 갖춘 해운정, 경포대, 방해정으로 이어지는 답사 길을 생각하면 고단함은 금세 기대감으로 변한다.
강릉=김남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