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민족주의 Linguistic Nationalism 语言民族主义
아멜 선생님은 프랑스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이해하기 쉬우며 가장 확실한 언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프랑스어를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선생님은 사람들이 노예가 되었을 때에도 자기 나라의 말을 간직하고 있다면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그런 다음 선생님은 그날 배울 문법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이것은 프랑스의 소설가 알퐁스 도테(Alphonse Daudet)의 <마지막 수업> 중 한 대목이다. 작가는 어린 알자스 소년의 회상을 통하여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프랑스인의 자부심을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프랑스가 1871년 독일연합에 패하여 알자스 지방을 독일에 할양하면서 독일어를 써야 하는 상황을 그린 소설이다.
여기서 알퐁스 도테가 말한 것은 언어의 민족주의다.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감정적 일체감이 민족이고, 그 민족의 정치경제적 공동체가 민족국가이며, 이 집단이 가진 이념과 사상이 민족주의다. 이것을 훔볼트(Wilhelm von Humboldt, 1767 ~ 1835)는 그 민족의 언어가 그 민족의 정신이고 그 민족의 정신이 그 민족의 언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훔볼트의 언어철학은 언어의 내적 원리와 그 언어가 쓰이는 상황을 고려한 화용론의 관점이다. 그는 모국어에는 선험성이 있다고 보고 데카르트와 칸트의 이성주의를 언어철학에 접목했다. 훔볼트에 의하면 언어란 모국어가 가지고 있는 세계이해의 방법이므로 언어공동체로 태어난 사람들은 동일한 세계관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인간의 언어생활은 말이나 글의 문제를 넘어서 철학, 역사, 사상, 인식 등이 개입하는 언어적 세계관(worldview)의 문제이다. 또한 훔볼트는 언어의 개별성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민족어의 주체는 개인이고 그 개인들은 각자의 언어를 가지고 있으며 개인들의 언어적 집합이 민족이라고 이해했다. 그런데 언어사용 주체인 개인은 민족의 정신적 힘인 에네르기아(energia)를 표출하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동일언어 사용자와 유기적 관계를 맺는다. 이처럼 언어적 관계를 강조한 것을 언어유기체론이라고 하며 민족정신과 민족감정을 강조한 것을 언어민족주의라고 한다. 사전적인 의미에서의 언어민족주의는 인종 또는 민족이나 국가가 다른 언어를 배제하며 자기 민족어를 유일한 민족의 언어로 간주하는 민족주의 이념이다. 또한 아멜선생님과 같이 모국어인 민족어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민족어를 지키고 발전시키자는 다소 배타적인 이데올로기다.
민족주의적 언어관을 가진 훔볼트에 의하면 언어란 인간의 내면형식(inner form)과 내면생활(inner life)이 규칙적으로 표출되는 역동적인 정신활동이면서 의미를 부여하는 사유작용이다. 하지만 훔볼트는 휴머니즘을 토대로 개성을 보편성의 전제로 보기 때문에 민족 전체성이 강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데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동질성이 있기 때문에 민족정신이 동질적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 특히 개인의 언어에 차이가 있듯이 각 민족의 언어에도 차이가 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세계관이 다른 것이고 그래서 언어를 정확하게 옮기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런 훔볼트의 언어철학은 언어적 민족주의라고 할 수 있으며 훗날 언어민족주의의 토대가 된다.
훔볼트에 의하면 같은 언어사용자는 공동체의식을 공유하는데 그 공동체의식은 개인에게 민족구성원이라는 점을 일깨우며 이데올로기인 언어민족주의를 내면화하도록 만든다. 그러므로 언어가 다른 것은 인식의 방법과 표현의 방법이 다른 것이고 환경과 역사가 다른 것이며, 결국 세계관과 철학이 다른 것이다. 또한 언어는 유기체이고 전체성 속에서 작동되기 때문에 분절적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내적 맥락에 의해서 통일된다. 때문에 동일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은 동일한 인식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고 민족의식과 민족감정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 반면 단일언어를 지향하는 이념을 언어순혈주의(言語純血主義)라고 하고, 식민지민들에게 제국주의의 언어를 강제하는 것과 다른 언어를 지배하고 수탈하는 지배적 언어이념을 언어제국주의(言語帝國主義)라고 한다.
충북대교수 김승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