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쿠라 대불, 가마쿠라 다이부쓰 , 鎌倉大仏>
1. 방문지 대강
명칭 : 가마쿠라 다이부쓰 , 鎌倉大仏
주소 : 神奈川県鎌倉市長谷4-2-28
전화: 0467-22-0703
입장료 : 300엔, 경로우대 없음, 뱃속입장료 50엔
방문일 : 2023.8.29.
2. 둘러보기
가마쿠라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 지금은 대불만 남아 있다. 들어가면 웅장한 기세에 압도되지만 대불만 달랑 하나 있어 허망하다는 생각도 들 수 있다. 하지만 대불 안으로도 들어갈 수 있고, 대불 등으로 창까지 나 있는 등 규모 외에도 대불이 매우 섬세하고 차별성 있게 축조되었다는 것을 발견하면 그리 서운하지 않다. 대불 뱃속을 구경하는 데는 시간과 관람료가 또 필요하므로 간단한 구경거리도 아닌 셈이다.
더구나 원래 있던 불전이 사라지고 대불만 남았음을 알면 역사적 맥락이 그리 간단치 않음을 알게 되어 덩그란 대불에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읽을 수 있게 된다.
1) 소개
가마쿠라 대불은 가마쿠라의 상징이다. 대불이 속한 사찰 고덕원을 따서 고토쿠인 대불(高徳院大仏), 지역 명칭 장곡을 따서 하세의 대불(長谷の大仏)이라고도 불린다. 가마쿠라 대불은 나라 도다이사(동대사, 東大寺)의 비로자나불(본카페 별도 항목으로 소개)과 도야마현의 다카오카(高岡)의 즈이류지[瑞龍寺] 대불과 더불어 일본의 3대 대불로 알려져 있다.
가마쿠라대불은 높이 11.39m, 중량은 약 121톤의 대형 불상이다. 원래 1247년 목조상으로 제작하였으나 태풍으로 불전과 함께 파괴되어 1252년 다시 청동으로 제작하였다. 불전이 사라진 후에는 지금처럼 바깥에 놓여 있게 되었다. 불상이 목상에서 청동상으로 두 번 제작된 셈인데, 제작자는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서양의 수많은 종교화가 대부분 화가가 밝혀지지 않은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불교화에는 개인의 창의력보다 신앙을 표현하는 고정된 화법이 우선하므로 화가는 그 기법을 따라 그리는 장인일 뿐이어서 이름을 드러내는 것이 별 의미가 없어서가 아닌가 한다. 또 우리 화원처럼 종교에 속한 직업으로서의 화가일 뿐이어서 이름을 드러내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얼굴 표정이 가볍지 않고 근엄하고 우아하여 상당한 경지의 조각가 불상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일본 불상의 표정은 기계적이거나 권위적인 느낌이 나서 온화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데, 이 불상은 우리 불상의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라의 박물관에서 불상만 전문적으로 전시한 것을 보고 일본 불상의 느낌을 잘 알 수 있었다. 시기적으로 우리 고려 시대 후기의 불상인데, 아직 한일 불교의 교류가 활발해서인가.
대불 내부 관람에는 50엔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1)불상 내부 입장이 가능한 경우는 처음이다. 2)나가노의 선광사에 가면 불교참배 체험이라고 해서 불상 후면 아래로 내려가 한바퀴 돌아오도록 하는데, 완전 껌껌하여 무섭고 불안해서 비명이 절로 나온다. 이곳은 뱃속인데도 다 보인다.
바로 옆의 3)장곡사에는 변천굴이라는 지하 굴이 있는데 내부에 지장보살 및 부처가 모셔져 있다. 컴컴한 내부에 불을 켜놓아 순례하듯 돌아보게 하고, 마지막 부처 봉안처는 등을 여럿 켜놓아서 사진도 참배도 훤한 가운데 가능하도록 하였다.
보이는 곳도 안 보이게 하는 방식과 원래 컴컴한 뱃속인데 다 드러내 보여주는 방식, 보이는 부처를 안 보이는 가운데 모셔두고 집중해서 보도록 하는 방식이 서로 대조적이다. 어떤 불교적 자세가 부처님의 참모습을 보게 하는 데 더 적절한지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석굴에 있는 3)은 있지만 1)2)의 경우는 없다. 석굴암 또한 굴이 그리 길고 크지 않고, 불상만 크게 모셔져 있으므로 장곡사3)과는 조금 양상이 다르다.
대불의 경우에는 우리는 최근에 만든 대불은 여기저기 많이 있는데, 이렇게 오래된 대불은 없는 것으로 안다. 한일의 불상과 불상을 대하는 종교적 자세 및 시대적 차이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종교적 차이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생각해봐야 할 거 같다.
2) 소개2
鎌倉大仏
「露坐の大仏」として名高い高徳院の本尊、国宝銅造阿弥陀如来坐像。像高約11.3m、重量約121t を測るこの仏像は、規模こそ奈良東大寺の大仏( 盧舎那仏) に及ばぬものの、ほぼ造立当初の像容を保ち、我が国の仏教芸術史上ひときわ重要な価値を有しています。北条得宗家の正史『吾妻鏡』によれば、その造立が開始されたのは1252( 建長四) 年。制作には僧浄光が勧進した浄財が当てられたとも伝えられています。もっとも、創建当時の事情には不明な部分が多く、未だ尊像の原型作者すら特定されるに至っていません。当初尊像を収めていた堂宇については、『太平記』と『鎌倉大日記』に、1334( 建武元) 年および1369( 応安二) 年の大風と1498( 明応七) 年の大地震によって損壊に至ったとの記録を見いだすことができます。以後、露坐となり荒廃が進んだ尊像は、江戸中期、浅草の商人野島新左衛門( 泰祐) の喜捨を得た祐天※・養国の手で復興をみました。尊像の鋳掛修復に着手し、「清浄泉寺高徳院」と称する念仏専修の寺院を再興、当時、浄土宗関東十八檀林の筆頭であった光明寺の「奥之院」に位置づけたのも、祐天の事績にほかなりません。今日、創建750 年余を経た尊像は、仏教東伝の象徴として、国内外、宗派の別を問わず数多の仏教徒の信仰を集めています。
※ 小石川伝通院の住職を務めた後、増上寺第36 世法主を拝命した高僧 (고덕원 홈피)
가마쿠라 대불
「노좌의 대불」로 유명한 고덕원의 본존, 국보동조 아미타 여래좌상. 상고 약 11.3m, 중량 약 121t를 측정하는이 불상은 규모야말로 나라 도다이지의 대불(노사나불)에 미치지 않지만, 거의 조립 당초의 상용을 유지해, 우리나라의 불교 예술사상 한층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호조 득종가의 정사 「아즈마 거울」에 의하면, 그 조립이 개시된 것은 1252(건장 4)년. 제작에는 승정광이 권진한 정재가 맞았다고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창건 당시의 사정에는 불명한 부분이 많아, 아직도 존상의 원형 작자조차 특정되기에 이르지 않습니다. 당초 존상을 거둔 당우에 대해서는 '태평기'와 '가마쿠라 다이니키'에 1334(건무원)년 및 1369(응안2)년의 바람과 1498(명응7)년의 대지진 에 의해 손해에 이르렀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후, 노좌가 되어 황폐가 진행된 존상은, 에도 중기, 아사쿠사의 상인 노지마 신자에몬(태우)의 희망을 얻은 유천※·양국의 손으로 부흥을 보았습니다. 존상의 주조 수복에 착수해, 「청정천사 고덕원」이라고 칭하는 염불전수의 사원을 재흥, 당시, 정토종관동 18단림의 필두였던 광명사의 「오쿠노인」에 위치시킨 것도, 유천의 사적 밖에 없습니다. 오늘, 창건 750년여를 거둔 존상은, 불교 동전의 상징으로서, 국내외, 종파의 별개를 불문하고 수많은 불교도의 신앙을 모으고 있습니다.
※ 고이시카와 전통원의 주직을 맡은 후, 조조지 제36 세법주를 배명한 타카 스님 (구글번역기 번역)
3) 고덕원 소개
高徳院の宗旨
高徳院(詳名: 大異山高徳院清浄泉寺)は、法然上人(1133 ~ 1212 年)を開祖とする浄土宗の仏教寺院です。法然上人は、善悪、男女、年齢、身分などの別なく、万人の救済を本願とされる西方極楽浄土の教主、阿弥陀如来に帰依されました。人は誰しも「南無阿弥陀仏(阿弥陀仏に帰依します)」と称えれば、その御加護に与ることができ、臨終に際しては極楽浄土に迎え入れていただける。これが法然上人の説かれた浄土宗の教えです。(고덕원 홈피)
고덕원의 종지
고덕원(상명: 대이산 고덕원 청정천사)은 법연상인(1133~1212년)을 개조하는 정토종의 불교사원입니다. 법연상인은 선악, 남녀, 연령, 신분 등 따로 없이 만명의 구제를 본원으로 하는 서방극악정토의 교주, 아미타여래에 귀의되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미나미 무아미타불(아미타불에 귀의합니다)」이라고 칭하면, 그 가호에 걸릴 수 있고, 임종 시에는 극락 정토에 맞이해 받을 수 있다. 이것이 법연상인의 설된 정토종의 가르침입니다. (구글번역기 번역)
仁王門. 고덕원 입구다. 우리 일주문과 천왕문이 합쳐져 있는 거 같다. 이곳에서도 역시 천왕은 둘이다. 천왕은 4천왕이라는 통념이 일본에 오면 깨진다.
*아래는 다시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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