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주의 정선 이야기31
도적에게 곳간을 내어준 정선사람들
<이웃사촌의 정>
정선은 산천 좋기로 전국 최고입니다. 그 때문일까요. 산천을 닮은 정선사람들의 마음도 전국 최고입니다. 모습은 참 수수해도 머리는 지혜롭고 삶은 정이 넘치는 고장입니다. 정선에 한 번이라도 왔던 사람은 넘치는 정과 경치에 꼭 다시 찾게 됩니다.
“정선 같이 살기 좋은 곳 놀러 한 번 오세요/ 검은 산 물밑이라도 해당화가 핍니다.”
어쩌면 이런 멋진 사설로 아라리를 불렀을까요. 정선아라리 구절구절은 세계 어느 나라 어느 시인의 시보다도 뛰어납니다. 아무리 살기 어려워도 노래하고 춤추며 알콩달콩 꽃피우며 사는 삶이 이 한 구절에 드러납니다. 하! 정말 감탄이 절로 나는 사설이지요.
소로 논밭 갈고 호미로 밭매던 시절에는 밤낮 어디를 가더라도 이런 아라리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전통 지금도 이어받아 세계무형유산이 되었습니다. 아라리 사설처럼 이웃끼리 보듬고, 가족끼리 살갑게 지내는 정에 해당화처럼 아름다운 꽃이 사람들 마음마다 피었습니다.
이런 예쁜 사연은 정선의 설화에도 그대로 전합니다. 그 가운데 도적을 감화시킨 절절한 이웃 사랑 이야기기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도적이 절친이 된 사연>
정선에는 <전 생원이 도적을 감화시키다>라는 제목의 설화가 있습니다. 이야기를 줄여 소개합니다.
조선조 효종 때 전 생원이라는 사람이 있었지요. 그는 벼슬할 생각이 없어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딸 잔치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고자 친구에게 소를 한 마리 빌려 정선 우시장에 가서 팔았습니다. 신월리 엇재에 이르렀을 때 한 도적이 나타나 돈을 요구했습니다. 전 생원은 사정을 얘기했으나 도적은 막무가내였지요. 그러자 전 생원은 소 판 돈 반만 소 주인에게 돌려주라고 했으나 그것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모든 돈을 도적에게 주었습니다. 바로 그 장면을 멀리서 지켜보던 순라군 일행이 다가와서 도적을 포박했습니다. 그리고 전 생원에게 뺏어간 돈을 돌려주니 전 생원은 돈을 받지 않고 말했습니다.
“저 사람이 내 돈을 뺏으려 한 게 아니오. 내가 저 사람에게 꾸어 쓴 돈을 갚지 못하였다가, 오늘 장터에 함께 갔었는데 내가 소 판 것을 알고 돈을 돌려달라고 하였으나, 마침 딸 시집보낼 혼수 준비에 써야 할 형편 때문에 옥신각신하던 참이므로, 저 사람을 절대 도적으로 몰지 마십시오.”
전 생원의 말을 들은 순라군 일행은 도적을 풀어놓고 가던 길을 갔습니다. 그러자 도적은 전 생원 앞에 엎드려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 은혜는 평생을 두고 갚으려 해도 갚을 길이 없습니다. 저를 가엾게 여기시고 선생님을 이웃에서 모시고 살게 해 주십시오.”
전 생원은 그를 데리고 돌아와 이웃하며 형제와 같이 화목하게 살았으며, 도적은 전 생원에게 감화하여 선량한 사람이 되었다고 전합니다. (『정선군지』, 2004.)
<도적을 배불리 먹인 사랑>
<장지온이 도적을 감화시키다>라는 설화도 있습니다. 줄거리를 보면 이렇습니다.
옛날 남면 무릉리에 학문이 뛰어나고 주민들에게 존경을 받아온 장지온이라는 사람이 있었지요. 그는 미리 올 일을 아주 잘 맞혔습니다. 어느 날 군청에서 일을 보다가 집에 도적이 들것을 알고 곧바로 집으로 갔습니다. 집에 가서 가족들에게 도적이 올 것이니 음식을 풍족하게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정말 도적 떼가 집에 들었고, 집안사람들을 윽박지르며 약탈하려 했지요. 그때 장지온은 그대들이 올 것을 알고 미리 음식을 장만했으니, 배불리 먹으라고 권합니다. 그리고 얼마나 힘들었으면 도적질을 하겠냐며 도적의 사정을 알아주며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도적들은 자신의 처지를 알아준 장지온을 향해 눈물을 흘리며, 뉘우칩니다. 장지온은 이들에게 곳간을 털어 엽전 백 냥씩 주며 생업에 밑천으로 삼아 열심히 살라고 하자, 도적들은 더욱 감화하여 백배사죄하고 돌아갔습니다. 그 후 정선에는 도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정선군지』,2004.)
<실천하는 동행>
요즘 이웃의 아픈 사연 알아주는 사람, 억울한 사연 들어주는 사람, 사랑으로 감화시키는 사람, 이런 사람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남이 힘든 사연 이야기하면 오히려 못난 사람 취급하며 깔보고 멀리합니다. 억울하고 힘든 사연 이야기하면, 죽도록 노력하지 않고 일하지 않고 뭐 했나라는 말을 건넵니다. 앞에서는 들어주는 척하고 뒤에서는 뒤통수 때리는 일이 허다하지요. 그런데 정선사람들은 정선아라리나 설화의 내용에서 보듯 이웃 사랑이 진실합니다. 그리고 함께 좋은 세상을 꾸미며 살고자 하는 마음이 절절하게 나타납니다. 이것이 정선사람들의 정체성이 아닐까요.
※삽화: 이예령 <새엄마 찾기> 애니메이션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