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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경(M118) Anāpānasati Sutta
- 대림스님 옮김 『맛지마니까야』 제4권 174-199쪽
서언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유명한 여러 장로 제자들과 함께 즉 사리뿟따 존자, 마하목갈라나 존자,
마하깟사빠 존자, 마하깟짜야나 존자, 마하꼿티따 존자, 마하깝삐나 존자, 마하쭌다존자,
아누룻다 존자, 레와따존자, 아난다 존자와 그 외 잘 알려진 장로 제자들과 함께
사왓티에 있는 동쪽 원림[東園林]의 녹자모 강당에 머무셨다.
2. 그 무렵 장로 비구들은 신참 비구들을 경책하고 훈계하였다.(*1)
어떤 장로 비구들은 열 명의 신참 비구들을 경책하고 훈계하였고
어떤 장로 비구들은 스무 명 … 서른 명 … 마흔 명의 비구들을 경책하고 훈계하였다.
그 신참 비구들은 장로 비구들의 경책과 훈계를 받아서 차차
고귀한 특별한 경지를 알게 되었다.(*2)
3. 그 무렵 세존께서는 보름 포살일의 보름밤에 자자(自恣)를 하기 위해서
비구 승가에 둘러싸여서 노지에 앉아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던 비구 승가를 둘러보시고 비구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4. "비구들이여, 나는 이런 도닦음 때문에 흡족하다.
비구들이여, 나의 마음은 이런 도닦음 때문에 흡족하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여기서 얻지 못한 것을(*3) 얻고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고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해 더욱더 정진하라.
나는 여기 사왓티에서 네 번째 달의 보름인 꼬무디를 맞을 것이다."
5. 지방에 거주하는 비구들은 세존께서 그곳 사왓티에서
네 번째 달의 보름인 꼬무디를 맞을 것이라는 것을 들었다.
지방에 거주하는 그 비구들은 세존을 뵈러 사왓티로 향했다.
6. 그러자 그 장로 비구들은 더욱더 신참 비구들을 경책하고 훈계하였다.
어떤 장로 비구들은 열 명의 신참 비구들을 경책하고 훈계하였고
어떤 장로 비구들은 스무 명 … 서른 명 … 마흔 명의 비구들을 경책하고 훈계하였다.
그들 신참 비구들은 장로 비구들의 경책과 훈계를 받아서
차차 고귀하고 특별한 경지(*4)를 알게 되었다.
7. 그 무렵 세존께서는 네 번째 달의 꼬무디 보름 포살일에
보름달 아래 비구 승가에 둘러싸여 노지에 앉아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던 비구 승가를 둘러보시고 비구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8. "비구들이여, 이 회중은 잡담을 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 회중은 떠들지 않는다. 이것은 순수하고 완전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 회중은 공양받아 마땅하고, 환대받아 마땅하며, 보시받아 마땅하고,
합장받아 마땅하며, 세상의 위없는 복밭[福田]이니
이 비구 승가는 그러하고 이 회중은 그러하다.
비구들이여 이 회중에게는 적게 보시해도 큰 [결실을] 가져오고
많이 보시하면 더 큰 [결실을] 가져오나니
이 비구 승가는 그러하고 이 회중은 그러하다.
비구들이여, 이 회중은 세상에서 친견하기 어렵나니 이 비구 승가는 그러하고 이 회중은 그러하다.
비구들이여, 이 회중을 친견하기 위해 어깨에 [먹을거리를 준비한] 자루를 메고(*5)
먼 유순의 거리라도 마땅히 찾아 가야 하나니
이 비구 승가는 그러하고 이 회중은 그러하다."
9. "비구들이여, 이 비구 승가에는 아라한들이 있다.
그들은 번뇌가 다했고 성스러운 삶을 살았으며 할 바를 다 했고 짐을 내려놓았으며
참된 이상을 실현했고 존재에 대한 족쇄를 부수었으며 바른 구경의 지혜로 해탈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비구들이 이 비구 승가에 있다.“
10. "비구들이여, 이 비구 승가에는 다섯 가지 낮은 족쇄를 부수어
[정거천에] 화생할[不還] 비구들이 있다.
그들은 그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어 그 세계로부터 다시는 돌아오는 법이 없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비구들이 이 비구 승가에 있다."
11. "비구들이여, 이 비구 승가에는 세 가지 족쇄를 부수고 탐욕과 성냄과 미혹이 엷어져서
한 번만 돌아올[一來] 비구들이 있다.
그들은 한 번만 이 세상에 돌아와서 괴로움을 종식시킬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비구들이 이 비구 승가에 있다."
12. "비구들이여, 이 비구 승가에 세 가지 족쇄를 부수어 흐름에 든[預類] 비구들이 있다.
그들은 [파멸처에] 떨어지는 법이 없고 [해탈이] 확실하며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간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비구들이 이 비구 승가에 있다.”
13. "비구들이여, 이 비구 승가에는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을 닦는 데 전념하는 비구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비구들이 이 비구 승가에는 있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 승가에는 네 가지 바른 노력[四正勤]을 …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을 …
다섯 가지 기능[五根]을 …
다섯 가지 힘[五力]을 …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覺支]를 …
성스러운 팔정도[八支聖道]를 닦는 데 전념하는 비구들이 있다.(*6)
비구들이여, 이러한 비구들이 이 비구 승가에 있다.“
14. "비구들이여, 이 비구 승가에는
자애[慈]를 … 연민[悲]을 … 더불어 기뻐함[喜]을 …
평온[捨]을 닦는 데 전념하는 비구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비구들이 이 비구 승가에 있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 승가에는 부정[관]을 닦는 데 전념하는 비구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비구들이 이 비구 승가에 있다.
비구들이여, 무상의 인식을 닦는 데 전념하는(*7) 비구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비구들이 이 비구 승가에 있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 승가에는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 데 전념하는 비구들이 있다."
(*1) “‘경책하고 훈계하였다(ovadanti anusāsanti)’는 것은
음식에 관한 친절함과 법에 관한 친절함인 두 종류의 친절로써 호의를 베풀면서
명상주제에 대한 경책과 훈계로써 경책하고 훈계하였다는 말이다.”(MA.ⅳ.137)
(*2) “‘특별함을 알았다’는 것은
계행을 구족함 등 이전의 특별함보다 더 고귀하며 그 다음단계인
까시나를 통한 준비의 마음 등의 [禪]의 특별함을 알았다는 뜻이다.”(MA.ⅳ.137)
(*3) “‘얻지 못한 것(appatta)’과 ‘증득하지 못한 것(anadhigata)’ 등은
아라한과를 말한다.”(MA.ⅳ.137)
(*4) “‘특별한 경지(visesa)’라고 하셨다.
여기 사마타와 위빳사나가 약한 자들이 수행을 하여 사마타와 위빳사나가 강하게 되었을 때
이것은 예비단계의 특별함이라 하고, 그 뒤에 고요해진 마음으로 형성된 것들[行]을 명상하면서
어떤 이들은 예류과를 얻고 … 어떤 이들은 아라한과를 얻었을 때
이것은 그 다음의 고귀한 특별함이라 한다.”(MA.ⅳ.137)
(*5) “‘어깨에 자루를 메고’라는 것은
여행 도중에 먹을 도시락을 멘다는 것으로
그 도시락을 싸가지고서라도 마땅히 친견하러 가야한다는 뜻이다.”(MA.ⅳ.139)
(*6) “여기서 37가지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들은 세간적인 것과 출세간적인 것으로 설하셨다.
그 순간에 도를 닦는(maggaṃ bhāventi) 비구들에게 이것은 출세간적인 것이고,
위빳사나를 시작한 자들에게 이것은 세간적인 것이다.”(MA.ⅳ.139)
(*7) “‘무상의 인식을 닦는데 전념하는(anicca-saññā-bhāvana-anuyoga)’에서
인식이라는 제목(saññā-sīsa)으로 위빳사나를 설하셨다.”(MA.ⅳ.139)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出入息念]
15.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거듭거듭 행하면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8)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거듭거듭 행하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을 성취한다.
네 가지 마음챙김을 닦고 거듭거듭 행하면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覺支]들을 성취한다.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고 거듭거듭 행하면
명지(明知)와 해탈을 성취한다."
16. "비구들이여, 어떻게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어떻게 거듭거듭 행하면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는가?"
17.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숲 속에 가거나 나무 아래에 가거나 빈방에 가거나 하여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9) 앉는다.
그는 마음챙기면서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기면서 숨을 내쉰다."(*10)
(*8) “여기서 많은 비구들이 들숨날숨의 명상주제로 사유(abhiniviṭṭha)하기 때문에
나머지 명상주제들은 간략히 설하고 들숨날숨의 명상주제는 상세하게 설하시면서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이라고 말씀을 시작하셨다.
그러나 이 들숨날숨의 명상주제에 관해서는 모든 측면에서 『청정도론』 (제8장 §§135~244)에서
상세하게 설했기 때문에 그곳에서 설한 방법대로 경전의 뜻과
수행방법(bhāvanā-naya)을 알아야 한다.(MA.ⅳ.139)
(*9)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는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a를 옮긴 것이다.
『위방가』는 “이 마음챙김은 코끝이나 입의 표상에 확립되고 잘 확립되었다고 해서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라고 한 것이다.”(VbhA.252)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위방가주석서』는 “입의 표상(mukha-nimitta)이란 윗입술의 가운데 부분이라고 봐야 하나니,
즉 코의 바람이 닿는 곳을 말한다.”(VbhA.368)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전면(全面 혹은 前面)에(parimukhaṃ)’는 구체적으로
코끝에나, 숨이닿는 윗입술의 중간 부분에 혹은 인중(人中)
즉 코의 밑과 윗입술 사아에 오목하게 골이 진 곳에라는 뜻이다.
(*10) 다음 §§18~21에 나타나는 16단계의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은 본경의 핵심이다.
이 16단계는 『상윳따니까야』 제6권 「들숨날숨 상윳따」(Ānāpāna saṃyutta)에 포함된
20개의 경들에 모두 나타나고 있기도 한다.
이 16단계는 다시 크게 네 개로 구성된 네 무리로 구분이 되는데
이 각각은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의 각각에 배대된다.
§24는 몸에 대한 관찰, §25는 느낌에 대한 관찰,
§26은 마음에 대한 관찰, §27은 법에 대한 관찰로 종결된다.
17.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숲 속에 가거나 나무 아래에 가거나 빈방에 가거나 하여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앉는다.
그는 마음챙기면서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기면서 숨을 내쉰다."
18. "① 길게 들이쉬면서는(*1) '길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길게 내쉬면서는 '길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② 짧게 들이쉬면서는 '짧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짧게 내쉬면서는 '짧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③ '온몸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2)며 공부짓고 '온몸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④ '몸의 작용[身行](*3)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몸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19. "⑤ 희열을 경험하면서(*4)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희열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⑥ '행복을 경험하면서(*5)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행복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 짓는다.
⑦ '마음의 작용[心行](*6)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의 작용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⑧ '마음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20. "⑨ '마음을 경험하면서(*7)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⑩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8)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⑪ '마음을 집중하면서(*9)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을 집중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⑫ '마음을 해탈하게 하면서(*10)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을 해탈하게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21. "⑬ '무상을 관찰하면서(*11)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무상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⑭ '탐욕이 빛바램을 관찰하면서(*12)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탐욕이 빛바램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⑮ '소멸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소멸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⑯ '놓아버림을(*13)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14)
22.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거듭거듭 행하면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1) ‘들이쉬면서는’은 assasanto를 옮긴 것인데 이 단어는 assasati(to breathe)의 현재분사이다.
‘길게 들이쉬면서는’은 길게 들이쉴 때라는 뜻으로 ‘길게 들이쉬어야겠다.’거나 ‘짧게 들이쉬어야겠다.’하는
그런 의도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길게 들이쉴 때는 길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안다는 뜻이다.
『청정도론』 (Ⅷ.168)은 『무애해도』의 설명을 인용하여
‘이렇게 꿰뚫어 알 때 열의(chanda)가 일어나고, 또한 환희(pāmojja)가 일어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Ps.ⅰ.177)
(*2) 『청정도론』은 다음과 같이 부연하고 있다.
“온 들숨의 몸의 … 온 날숨의 몸의 처음과 중간과 끝을 체험하면서, 분명하게 하면서 내쉬리라고 공부짓는다.
이와 같이 체험하면서, 분명하게 하면서 지혜와 함께한 마음으로 들이쉬고 내쉰다.”
( 『청정도론』 Ⅷ.171) 여기서 밝히고 있듯이 이 문맥에서 몸(kāya)은 호흡 그 자체를 나타낸다.
(*3) “여기서 ‘몸의 작용[身行, kāya-saṅkhāra]’은 들숨날숨을 말한다.
비록 이것은 마음에서 생긴 것이지만 그것의 존재가 몸에 묶여 있고
몸을 통해 형성되기 때문에 몸의 작용이라 부른다.”(Pm.220)
신행(身行)을 한역되는 kāya-saṅkhāra를 본서 전체에서 역자는 들숨날숨을 뜻할 때는 ‘몸의 작용’으로 옮기고,
다른 곳에서는 12연기의 두 번째인 의도적 행위를 설명하는 문맥에서는 ’몸의 의도적 행위’로 옮긴다.
(*4) “두 가지 방법을 통해서 ‘희열을 경험한다(pīti-paṭisaṃvedi).’
그것은 대상을 통해서와 미혹하지 않음을 통해서이다.
① 그는 희열이 있는 초선과 제2선에 든다. 그가 그것에 드는 순간에 禪을 얻음으로써 대상을 경험했기 때문에 대상을 통해서 희열을 경험한다.
② 희열이 있는 두 선에 들었다가 출정하여 선과 함께한 희열을 파괴되기 마련이고 사라지기 마련이라고 명상한다.
그가 위빳사나를 하는 순간에 특상을 경험하기 때문에 잊어버리지 않음을 통해서 희열을 경험한다.”( 『청정도론』 Ⅷ.226~227)
즉 ①은 사마타를 닦아서 禪에 들었을 때의 희열이고,
②는 禪에서 출정하여 무상·고·무아의 특상을 꿰뚫는 위빳사나를 할 때의 희열을 말한다.
(*5) 『청정도론』은 ‘행복을 경험하면서(sukha-paṭisaṃvedī)’도 희열의 경험과 같은 방법으로 두 측면에서 아해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① 사마타를 닦아서 禪에 들었을 때의 행복과
② 禪에서 출정하여 무상·고·무아의 특상을 꿰뚫는 위빳사나를 할 때의 행복을 말한다.
다른 점은 행복은 초선부터 제3선까지에서 경험된다는 것이다.( 『청정도론』 Ⅷ.229)
(*6) “마음의 작용[心行, citta-saṅkhāra]은 느낌의 무더기[受蘊]와 인식의 무더기[想蘊]를 말한다. …
네 가지 禪들로 ‘마음의 작용을 경험한다(citta-saṅkhāra-paṭisaṃvedī)’고 알아야 한다.”( 『청정도론』 Ⅷ.229)
(*7) “‘마음을 경험하면서(citta-paṭisaṃvedī)’란 네 가지 禪들로 먀음을 경험한다고 알아야 한다.”( 『청정도론』 Ⅷ.231)
(*8)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abhippamodayaṃ cittaṃ)’ :
여기서는 삼매와 위빳사나의 두 가지 방법으로 기쁘게 한다. 어떻게 삼매를 통해 기쁘게 하는가?
희열(pīti)이 있는 두 禪에 든다. 그 증득의 순간에 그 선과 함께한 희열로 마음을 반갑게 하고 기쁘게 한다.
어떻게 위빳사나를 통해 기쁘게 하는가? 희열이 있는 두 禪에 들었다가 출정하여 禪과 함께한 희열을
파괴되기 마련이고 사그라지기 마련이라고 명상한다.
이와 같이 위빳사나를 하는 순간에 禪과 함께한 희열을 대상으로 삼아 마음을 반갑게 하고 기쁘게 한다.”( 『청정도론』 Ⅷ.232)
(*9) 『청정도론』 Ⅷ.232는 두 가지로 ‘마음을 집중하면서(samādaha citta)’를 설명하고 있는데,
하나는 네 가지 선에 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찰나삼매(khaṇika-citt-ekaggatā, 순간적인 마음이 한 끝에 집중됨 刹那心一境性)를 통해서이다.
찰나삼매는 “그 禪에 들었다가 출정하여 禪과 함께한 마음을 파괴되기 마련이고 사그라지기 마련이라고 명상할 때
그 위빳사나를 하는 순간에 특상을 통찰하는 것”이라고 『청정도론』 (Ⅷ.232)은 정의하고 있다.
(*10) “‘마음을 해탈케 하면서’ :
초선을 통해 장애들로부터 마음을 벗어나게 하고 해탈하게 하면서,
제2선을 통해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 고찰[伺]로부터, 제3선을 통해 희열로부터,
제4선을 통해 행복과 고통으로부터 마음을 벗어나게 하고 해탈하게 하면서 들이쉬고 내쉰다.
혹은 그가 그 禪에 들었다가 출정하여 禪과 함께한 마음을 파괴되기 마련이고 사그라지기 마련이라고 명상한다.
그가 위빳사나를 하는 순간에 무상의 관찰로 영원하다는 인식(nicca-saññā)으로부터,
무아의 관찰로 자아라는 인식(atta-saññā)으로부터, 염오의 관찰(nibbidānupassanā)로 즐김(nandi)으로부터,
탐욕의 빛바램의 관찰로 탐욕(rāga)으로부터, 소멸의 관찰로 일어남(samudaya)으로부터,
놓아버림의 관찰로 가짐(ādāna)으로부터 마음을 벗어나게 하고 해탈하게 하면서 들이쉬고 내쉰다.”( 『청정도론』 Ⅷ.233)
(*11) “‘무상을 관찰하면서(anicca-anupassī)’라고 했다. 여기서 무상한 것이란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이다.
왜 그런가? 그들은 일어나고 멸하고 변하는 성질을 가졌기 때문(uppāda-vay-aññathatta- bhāvā)이다.
무상한 성질(aniccatā)이란 그들에게 존재하는 일어나고 멸하고 변하는 성질이다. 혹은 생겼다가 없어지는 것이다.
생긴 무더기[蘊]가 그 본래의 모습으로 머물지 않고 순간적인 부서짐(khaṇa-bhaṅga)을 통해 부서진다(bhada)는 뜻이다. 무상의 관찰이란 그 무상함으로 물질 등에 대해 무상하다고 관찰하는 것이다.”( 『청정도론』 Ⅷ.234)
(*12) “‘탐욕이 빛바램을 관찰하면서(virāga-anupassī)’ :
여기 탐욕의 빛바램은 파괴로서의 탐욕의 빛바램과
절대적인 탐욕의 빛바램(khaya-virāgo ca ac-canta-virāgo ca)의 두 가지가 있다.
여기서 파괴로서의 탐욕의 빛바램이란 형성된 것들[行]이 순간적으로 무너지는 것(khaṇa-bhaṅga)이다.
절대적인 탐욕의 빛바램이란 열반이다.
탐욕의 빛바램을 관찰함이란 이 둘의 관찰로 일어나는 위빳사나의 도(magga)이다.
‘소멸을 관찰하면서(norodha-anupassī)’라는 구절에도 이 방법이 적용된다.”( 『청정도론』 Ⅷ.235
(*13) “여기서도 ‘놓아버림(paṭinissagga)’은 두 가지이다.
버림으로서의 놓아버림과 들어감으로서의 놓아버림이다.
놓아버림의 관찰이란 놓아버림 그 자체가 관찰(anu-passanā)이다. 이것은 위빳사나의 도의 동의어이다.
① 위빳사나는
㉠ 반대되는 것으로 대체하여 [과보로 나타난] 무더기들과, 업형성력(abhisaṅkhāra)들과 함께 오염원(kilesa)들을 버리기 때문에
㉡ 형성된 것에 대해 [무상 등의] 결점을 보고 그 [형성된 것의] 반대인 열반으로 기울어짐으로써 열반에 들어가기 때문에
각각 버림으로서의 놓아버림과 들어감으로서의 놓아버림이라 한다.
② 도는 ㉠ 근절(samuccheda)로써 무더기를 생기게 하는 업형성력들과 함께 오염원들을 버리기 때문에
㉡ 열반을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열반에 들어가기 때문에 각각 버림으로서의 놓아버림과 들어감으로서의 놓아버림이라 한다.
이 두 [위빳사나의 지혜와 도의 지혜]는 각각 이전의 지혜를 계속해서 따라 보기 때문에 관찰[隨觀]이라 한다.”( 『청정도론』 Ⅷ.236)
(*14) 『청정도론』의 설명에서 보듯이
⑫번째까지의 앞의 세 번째의 네 개조까지는 사마타와 위빳사나의 방법이 둘 다 적용되었지만
이 네 번째의 네 개조는 위빳사나의 방법만이 적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