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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5.3. 박정희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한다. 이는 중임까지만 허용된 당시 헌법상 그의 마지막 임기였다. 하지만 그는 장기집권의 야욕을 품고 3선개헌을 추진한다. 그런데 이때 3선 개헌에 강력하게 반기를 들고 나선 인물이 있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그의 후계자로 불렸던 정계의 거물 중앙정보부와 민주공화당을 만든 JP, 바로 김종필 의원이었다.
최원정/KBS 아나운서: 역사저널 그날 278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 그 서막이 열리는 그날, 또 시작을 해볼까 하는데요. 그게 바로 3선개헌이란 말이죠?
김지윤/정치학 박사: 5.16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들어서고 1962년에 개헌을 하죠. 당시 통과됐었던 개헌안에는 4년 중임제, 3선이 금지가 되었던 거죠. 헌법을 다시 한번 개정을 해야지만 사실은 박정희 대통령이 다시 한번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어떻게 보면 자기가 통과를 시킨 새로운 헌법을 만든 제3공화국을 무너뜨리고 다시 한번 헌법을 개정하는, 자기가 만든 시스템을 자기가 다시 무너뜨리는 그런 행동이었죠.
박상영/작가: 제가 오늘 의외로 다가왔던 부분은 박정희 대통령의 충신이자 심복과도 같았던 김종필 의원이 이거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는 게 너무나도 의외로 느껴지거든요.
이시원/배우: 솔직히 어른들은 김종필 의원에 대해서 잘 아시겠지만 저희 세대한테는 김종필 의원이 18년 동안 장기집권을 한 박정희 대통령에 대적할 만한 인물인가? 약간 의문이 들거든요. 제가 2004년 고등학교 때 한 뉴스를 봤는데 그게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김종필 의원이 유세를 갔는데 아줌마 부대들이 나와서 응원을 할려고 하는데요. 근데 외치는게 조용필 조용필 이렇게 외쳤어요. 뉴스에 찾으면 있어요.
------------------2004.4.5.동영상: 대전 유세현장, 김종필, 김종필, 안녕하세요, 대전 시민들과 만나는 김종필 의원, 감사합니다. (악수한 아줌마 갑자기) 조용필, 조용필------------------
최원정: 아니 근데 이게 설득력이 있는게 잠시 화면 사진보니까 김종필 의원이 훈남이세요.
이시원: 얼굴이 굉장히 서구적 미남, 요즘 시대 미남이신 거 같애요.
김지윤: 스마트하게 보이고 실제로도 스마트했어요.
박태균/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김종필씨는 이전의 정치인들과 대별되는 부분들이 있어요. 다른 부분들이 있었고, 35세 젊은 나이에 5.16 쿠데타를 실질적으로 설계를 한 사람이고 쿠데타 이후에 중앙정보부를 만들어서 초대 중앙정보부장을 했죠. 저는 김종필씨가 갖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애요. 이분은 다른 육사출신과는 다르게 서울대 사범대를 다니다가 군대를 갔습니다. 이 엘리트라는 부분들이 분명히 자기한테 있었고, 쿠데타를 한 이후에도 서울대에 가서 연설을 합니다. 연설을 하고 나서 그 다음에 서울대학교 대학신문사에다 짚차를 선물로 주고 가요. 취재할 때 이걸 써라, 취재하는데 차도 한 대 없이 어떻게 취재를 하느냐,
이시원: 들으면 들을 수록 엄친아 느낌이 강해요. 얼굴도 잘 생겼죠 똑똑하지 거기다가 그 당시에박정희 대통령의 브레인이었잖아요.
박태균: 그리고 또 피아노도 잘 치고요, 서예도 잘 하고,
다니엘 린데만/방송인: 너무 완벽해도 문제예요.
박상영; 지금 교수님 말씀을 들어보면은 박정희 정권의 브레인이자 핵심실세였는데 그가 3선 개헌을 막아섰다는게 굉장히 의아하게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최원정; 3선을 위한 준비는 언제부터 시작이 된 건가요?
박태균: 1967년에 대통령에 재선이 되셨죠. 대통령 재선된 다음에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애요. 아~ 이게 뭔가 한번 더 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드니까, 그럼 하기 위해서는 국회지형을 바꾸어야 합니다. 67년에 대통령 선거가 있는 직후에 바로 총선거가 있었습니다.
이시원; 그러면 재선에 당선되자마자 바로 준비를 한 거네요.
박태균: 그렇죠, 바로 준비를 하는데 기본적으로 저희가 사사오입 개헌 전에, 54년에 있었던 총선거에서 부정선거를 통해 가지고 국회에서 개헌안이 통과될 수 있는 국회의원을 확보할려고 노력했던 것과 똑 같애요. 너무 심한 부정선거였어요. 그 당시에 보면 투표조작에 다가 대리투표에다가 관권선거 공무원 동원 군인 등 뭐 할 거 없이 모든 걸 다 동원을 해 가지고 부정선거를 또 한거예요.
이시원: 개헌안을 통과할 정도로 인원수가 확보가 된 건가요?
박태균: 네, 그 당시에 3분의 2가 117석 정도가 되는데 129석이 당선이 된 겁니다. 국회든 정부든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인제 없어진 상황이 만들어진 거죠.
최원정: 그럼 이제 국회만 장악하면 3선 가능한데 그렇게 믿었던 김종필이 갑자기, 처음부터 반대의사를 표시했을 것 같은데~ 굉장히 난감했을 것 같애요.
이시원: 잘 나가고 있는데 갑자기 브레이크 딱 거는 거예요.
김지윤: 2인자잖아요. 2인자 라는 건 언제나 1인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죠. 본인의 정치세력도 그 안에 있었고 이 사람이 언젠가는 현행 헌법대로만 간다면은 그 다음은 대통령이 될 것이다 라는 걸 믿었으니까 김종필을 따르던 많은 의원들이 있었고 그 숫자가 꽤 됐죠. 한 40명 정도는 됐으니까, 129명 중에 40명이니까 이 사람들이 안된다고 하면 다음 대통령은 김종필이 되는 거죠. 개헌하면 안된다 라고 막아서면 사실은 개헌이 힘들어지는 거죠.
박상영: 어찌보면 5.16 쿠데타에 아주 핵심적인 동지였었고 또 박정희 대통령과는 단순히 정치적 동지가 아닌 어떤 가족을 맺인 혈연이잖아요.
다니엘: 그런말 있잖아요.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그런 느낌이잖아요.
박상영: 내 아군일 때는 든든했는데 적군이 되면 너무 무서운 사람이 되는 거죠.
박태균: 반대로 생각을 해야 돼요. 김종필씨의 입장에서는 3선 개헌을 하고 박정희 대통령이 또 하는 거는 자기가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히는 거죠. 반대 생각도 해야죠.
최원정: 믿었던 사람이란 걸 보세요 두분이 이렇게 속닥 속닥 지금 뭐 귀속말로 주고 받으며 이렇게 친했던,
이시원: 어우~ 가깝다,
다니엘: 겉으로는 되게 좋아 보이는데 박정희 前대통령이 이제 3선 까지 계획하고 있으니까 아~ 내 때가 온 줄 알았는데~아니네 하면서 반발심이 생기지 않았을까,
이시원: 맞아요, 이때는 권력자에 가장 가까이 있잖아요. 분명히 다음 차례는 자기라고 생각을 했을텐데, 메달도 그렇테요, 동메달을 따는 사람들 보다 은메달을 따는 사람들이 훨씬 아쉬움이 크데요. 2인자로서의 스트레스와 부러움이 가장 커졌군요.
최원정: 2인자 만큼 동기부여가 많이 되는 자리도 없을 것 같애요. 조금만 더 해서 저 자리를 차지할 테니까,
박태균: 사실은 김종필씨가 어려운 일을 도맡아 했어요. 굉장히 보면은 5.16 쿠데타 직후에 유엔군 사령관이 왜 나한테 승인 안받고 군대를 움직였냐? 라고 했을 때 바로 대들었거든요. 왜 우리가 우리 군대를 움직이는데 너네가 뭐라고 하느냐 또 한국과 일본이 한일협정을 할 때 그 많은 반대가 있을 때에 김종필 의원이 일본에 가서 일본 정치인을 만나서 나중에 김-오히라 메모 때문에 문제가 되긴 하지만 그걸 자기가 맡아서 했던 측면들이 있구요.
이시원: 총대를 매는 역활을,
박태균: 그렇죠, 그 당시에 미국 대사관 보도를 보면 모든 걸 다 김종필이 했다는 얘기가 거기에 나와요. 또 뒤에 가서 왜 3선개헌 때 미국 대사관에서 김종필 보다는 박정희를 유리하게 밀려고 했는가 라는 비밀의 하나로 여기에 근원이 있습니다.
이시원: 그러면 이거 내가 다 책임지고 떠안았는데 나중에 챙겨 주겠지 이런 기대도 있었을 것 같애요.
다니엘: 제가 보는 박 대통령은 아마 김종필 의원이 그냥 걸림돌 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애요. 배신감 잠깐 들다가 나중에 그냥 걸림돌이다. 이런 의식이 생기면서 어떻게든 그냥 막아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최원정: 3선을 할려면 반대하는 김종필은 제거가 되어야 되는데, 사실 굉장히 핵심 브레인이고 정치적으로 빚이 많기 때문에 함부로 건드릴 수는 없고 이걸 어떻게 해결을 했을까요?
박태균: 이이제이 라는 말이 있죠. 어떤 사람을 막기 위해서 내가 직접 맡기 보다는 다른 사람을 통해서 막는다. 오랑캐를 통해서 오랑캐를 막는다 라고 하잖아요. 그때 이제 등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김종필씨 와는 이미지가 굉장히 다른데 같은 육사 8기에요. 한번 맞춰보시겠습니까?
최원정: 힌트를 좀 주세요.
박태균: 별명은 날으는 돈가스, 남산 멧돼지 제가 들었었어요.
이시원: 혹시 남산출신? 저분 인가요? 김형욱 정보부장, 저분이 김종필 의원을 견제하는 세력으로 떠오르는 사람이었다.
최원정: 박정희와 김종필 사이에 김형욱이 끼어드는 모습.
김지윤: 정치를 하다 보면 브레인도 필요하지만 뒷처리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거든요. 이른바 설거지를 해줄 수 있는 사람, 해결사, 지저분한 일도 맡아서 해주고 우리가 꺼리는 일들은 자기가 도맡아 불도저 처럼 밀고 나가는 사람, 그 이미지 인물이 김형욱이에요.
이시원: 그 당시 중앙정보부장까지 했으면 권력이 어마어마했잖아요. 어떤 식으로 견제를 했을까?
박태균: 사실 박정희 대통령의 딜레마예요. 5.16 쿠데타를 할 때부터 그 이후에 정권을 이루어 가는데 제일 중요한 기반의 하나가 육사8기 거든요. 이 육사 8기의 핵심은 김종필입니다. 그러면 김종필을 치면 사실 자기 기반을 쳐버리는 게 돼요. 그러니까 이걸 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끌어 안자고 하니 뭔가 부닥치는 부분이 생기고 그 싯점에서 김형욱이 등장하게 되는 거죠.
김지윤: 같이 육사 8기고 동기인데 김종필에 비해서 약간 떨어진단 말이에요.
이시원: 열등감도 좀 있었을 것 같애요. 인물의 성격을 보면 상당히 극과 극이잖아요.
김지윤: 자기 자리는 2인자인데 자기는 그게 안되니까 이번 기회에 내가 박정희 대통령이 정말 그렇게 원하는 3선개헌을 밀어부쳐서 한번 돋보이겠다 이런 생각도 분명히 가지고 있었고,
박상영: 박정희 대통령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의 이해관계가 딱 맞아떨어졌는데,
김지윤: 그렇죠, 굉장히 막무가내식이었죠. 당시 중앙정보부장을 할 때 했던 행적들을 보면은 정말 많은 사람들의 원성을 샀고 이건 여야를 가리지 않고 국회의원들이 경악한 그런 인물 중의 하나예요.
다니엘: 김형욱에 관련된 물건들이 있답니다. 여기 준비되어 있는데 내가 한번 하나씩 꺼내보면서 얘기를 나눠볼게요. 일단은 이겁니다. 장난감 군용 트럭 1대,
이시원: 이게 김형욱 부장과 무슨 관련이 있다구요?
김지윤: 성격이 정말 잘 드러나는 일화 중에 하나인데, 한일협정 당시에 대학생들이 굉장히 많은 시위를 했어요. 골치가 아프니까 각하! 저한테 트럭 1000대를 주시면 여기다가 대학생 놈들 다 실어서 서해 무인도로 가서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 버리겠습니다.
일동: 무서워!
김지윤: 근데 그 당시 시위를 주도했던 사람들이 이명박前대통령 이재호前의원 고등학생 손학규 前경기도지사가 있었죠. 봐주었으면 한국 정치사가 완전히 달라졌죠.
박태균: 사실 저런 말씀을 하시니까 차지철씨 생각도 나요. 차지철씨가 부마항쟁 때 얘기를 했죠. 탱크를 동원해서 싹 쓸어버리겠다고,
다니엘: 두번째 물건 꺼내 볼게요. 그 당시에도 무거웠군요. 사진기 1대,
박상영: 이게 원래 취미가 사진 찍고 그러셨나?
박태균: 그렇죠, 이게 정치공작 이라는 건데요. 지금은 옐로 저널리즘에서 주로 하는 것을 그 당시에는 중앙정보부장이 했던 겁니다.
최원정: 파파리치!
박태균: 야당의원들의 사생활을 찍는 거죠.
박상영: 일종의 사찰이자 협박의 성격을 가진 거죠.
이시원: 약점을 잡으려고 하는 거죠.
최원정: 불륜 사진이 있거나 그러면 너 여자관계 밝힐거야 그러구
박태균: 그렇죠, 요걸 통해서 특히 야당의원들을 돌아서게 만드는 거죠. 그런 부분들의 정치공작, 개헌 찬성파들을 더 늘리는 역할을 했던 저 카메라입니다.
다니엘; 마지막 하나 더 있어요(병 두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박태균: 손소독제 아니에요?
최원정: 독약?
이시원: 한번 냄새 맡아볼까요?
박상영: 청산가리?
이시원: (병 뚜껑을 따고 코로 냄새) 톡 쏘는 냄새? (눈물 흘리며 콜록 콜록)
김지윤: 이게 중앙정보부가 벌렸던 정치공작 증거물품들입니다. 언론에 대서특필 됐었고 이거의 타겟이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에요. 모두 다 아는 인물입니다. 바로 김영삼 前대통령, 당시 신민당 의원 이었죠.
------------------이광용/아나운서: 속보입니다. 1969년 6월 20일, 밤10시 5분경, 신민당 김영삼 의원이 자택 근처에서 피습됐습니다. 작업복을 입은 청년 세명이 김영삼 의원이 탄 차를 세우고 뒷 문을 열려고 시도했는데요. 위기를 직감한 김영삼 의원이 차를 출발시키자 이 청년들이 달리는 차를 향해 초산병을 던진 겁니다. 초산이 얼마나 독했는지 차량 페인트와 아스팔트가 그대로 녹아내렸습니다----------------
이시원: 아~ 유리병에 있었던 게 초산이었네요?
최원정: 아까, 그 유리병 코에 댄거?
이시원: 차 뒷문을 직접 열려고 했던건 초산을 직접 부울려고 했던 거잖아요. 이거 완전 테러인데 빔인은 잡혔나요?
----------이광용: 범인은 잡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김영삼 의원은 이 사건 배후로 중앙정보부를 지목했습니다. 또 한편 3선개헌을 반대하다 공화당에서 제명당했던 박종태 의원도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박종태 의원 역시 이 사고가 중앙정보부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는데요. 사고 직후 아직 사고가 났다는 걸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는데 중정 직원이 와서 치료비를 건넸다는 겁니다. 제가 파악한 소식은 여기까지 입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 스튜디오에서 전해 주십시오------
최원정: 단순한 정치공작이 아니라 한다 하면 죽이겠다는 거잖아요? 이때부터 닭의 목을 비틀기 시작했네요.
김지윤: 신민당이 야당이었고 김영삼 의원이 원내총무였지요. 정말 격분해서 그 다음날 국회에 와서 연설을 하죠. 뭐라고 하느냐면 이 독재정권을 이끌어 가는 원부가 중앙정보부다. 그리고 그 책임자인 김형욱은 민족반역자다. 나를 죽일려고 했다. 이거는 박정희 정권 차원에서 테러다. 아주 그냥 분노를 했죠.
최원정: 김형욱이라는 인물이 이렇게 대범하고 저돌적이라는 이야기예요. 그렇다면 JP 입장에서도 김형욱 하면 좀 무서웠을 것 같애요. 나에게 어떤 짓을 할지 모른다는 공포가 있었을텐데 말이죠.
박태균: 근데 사실 그 두 사람이 같은 육사 8기입니다. 어떻게 보면 어딜가면 너 몇기야 하면 나 8기야 그러면 오, 반가워, 굉장히 가까울 수 있는 이런 관계인데 5.16 쿠데타 직전에 육사 8기들이 항명을 합니다. 부정부패한 장군 숙청하고, 정군운동을 하면서 이분들이 8기 정군운동하면서 옷을 벗는데 거기에 김형욱은 참석을 안해요. 정군운동에는 육사8기, 엘리트 8기들의 핵심 멤버들이었고 김형욱은 거기에 안들어가는데 나중에는 같은 8기라서 박정희 대통령한테 김형욱을 천거한게 김종필이다 또 이런 얘기가 있어요.
이시원: 어떻게 보면 김종필씨가 김형욱에게는 굉장히 은인 같은 존재네요. 이끌어주었으니까.
김지윤: 처음에는 김형욱이 김종필에게 굉장히 잘 했어요. 내가 총을 차고 네 옆에서 너를 지켜주겠다. 어떤 위협이 있고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너는 내가 보호하고 도와 주겠다 라는 말을 할 정도로 친했어요.
박상영: 첫 눈에 사랑이네요.
김지윤: 사랑은 변하죠. 근데 중앙정보부장이 된 다음부터 변했다 라고 나중에 김종필 총재가 인터뷰를 하는 부분이 있어요. 자리가 결국 사람을 이상하게 만들더라. 나도 비슷한 반열에 올라갔으니까 이걸 뛰어 넘자 라는 마음을 먹기 시작한게 중앙정보부장이 되고 나서가 아닌가.
박상영: 어찌 보면 중앙정보부장이 되니까 나도 김종필 정도는 상대할 수 있는 깜량이 있겠는데 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네요.
김지윤: 어떻게 보면 박정희 전대통령의 용인술이 그런 부분이 있기는 있어요. 김종필 견제하기 위해서 혹은 아예 권력에 대적하는 챌린지 하고 도전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굉장히 이건 처음부터 아주 싹을 잘라야 된다고 생각을 했던 인물인데 그러기 위해 김형욱을 부추긴 거죠. 그러면서 약간 이간질도 하고 예를 들면 김종필이 임자를 왜 미워해? 없애 버려야 된다면서 하던대 빨리 날려버려야 된다고 얘기하던데, 걔 왜 그래 하면서 슬쩍 말을 건네고 그러니까 김형욱은 그 얘기 들으면 또 생각을 잘 안하잖아요. 김종필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하면서 막 달려가서 중앙정보부 직원을 시켜서 감시하게 하고 도청하게 하고 그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 누구누군지 적어오라 그러고,
최원정: 나중에 차지철 김재규도 그런 식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다루잖아요. 대단한 용인술인 것 같애요.
이시원: 경쟁을 통해서 알아서 2인자를 제거하는 그런, 지금 들어보면 처음에는 김종필의 사람으로 시작했는데 결국에는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서 김종필을 배척하는 것이네요.
--------영화 동영상, 김형욱 중앙정보부장役: 각하는 2인자를 살려두지를 않어! 태양은 하나니까, 박대통령役: 김성조가 3선개헌을 반대한다고? 김형욱 중앙정보부장役: 네, 각하, 이미 상당수의 의원들이 김의원한테 붙었습니다. 박대통령役: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김형욱 중앙정보부장役: 전, 각하 명대로 하겠습니다. 박대통령役: 임자 옆에는 내가 있잖아 임자 하고 싶은대로 해--------
박태균: 분명히 그건 제가 보기에는 서막에 불과한 것 같구요. 3선 개헌을 둘러싼 대립의 판도가 완전히 뒤집힌 사건이 일어나는 것 같애요. 그게 이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박대통령 한테 직접 보고한 시국판단서 라는 문건이 있거든요. 이게 제가 보기엔 결정타가 되는 것 같애요. 한번 시원씨가 읽어봐 주시겠습니까?
이시원: 시국판단서 내용인데요. 복지회는 여당 내 야당으로 67년 선거부정은 박정희 대통령의 책임이다.
일동: 와 세다~
박상영: 너무 세다
이시원; 그런데 복지회가 뭐죠?
박태균: 복지회 라는 건 민주공화당 내에서 김종필씨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만든 모임입니다. 그래서 김종필을 지지하는 세력들이 복지회 쪽에 많이 들어가 있는데 이분들이 만든 문건이라고 해서 폭로가 된 거죠.
이시원: 시국판단서, 박정희 대통령의 3선개헌을 저지하기 위해 세력을 확보해야 하고 71년 선거에 있어서 우리들의 대안은 오직 김종필 당의장이다. 71년을 김종필의 해로 만들어야 한다. 와, 이거 71년이면 대선이 있잖아요. 김종필 의원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된다. 이런 뜻 이네요. 이걸 듣고 박정희 대통령이 굉장히 위기의식을 많이 느꼈을 것 같애요.
다니엘: 우리 이제 지금 말처럼 그런 이야기를 대놓고 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네요.
최원정; 이거 조작인가요? 실제 있었던 건가요?
박태균: 저도 이게 조작인지 실제 있었던 건지 그건 나중에 밝혀 보아야 알겠지만 당시에 공화당 내에 있었던 김종필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저랬을 것 같애요. 실제 개헌이 안되었으면 김종필씨가 대통령이 71년에 될 가능성은 굉장히 큰 상황 이었어요. 3선개헌 안되면 어차피 박정희 대통령 못나가는 거예요. 그럼 누가 후보가 되느냐 당연히 김종필씨가 되는 거고 그런데도 저런 문건이 나오게 되는 거죠. 이 단체가 이제 국민복지회 라는 걸 통해 가지고 뭔가 개헌을 저지하고 김종필씨를 옹립해야 되겠다.
박상영: 이 정도되니까 박정희 대통령은 위기감이 엄청 났겠어요.
박태균: 그런데 문제는 뭐냐하면 이렇게 되니까 김종필씨도 사실은 위기감을 느끼는 거죠. 이러다가 내가 완전히 날라갈 수 있구나.
박상영: 목숨 걸고 정치하는 시대니까,
박태균: 그렇게 되니까 스스로 자기를 지지하는 국민복지회 사람들을 제명을 시키는 조치를 취하게 돼요. 이게 이른바 국민복지회 사건이라는 건데 본인도 정계를 은퇴를 해요.
이시원: 내가 더 커지면 오히려 제거 당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 한발 물러나는 것이죠. 김종필 의원도 굉장히 자기를 따랐던 사람들을 내치고 자기도 물러나고 굉장히 상심이 컸을 것 같애요.
김지윤: 복지회 사건 때문에 조금 타격을 입었죠. 특히 김용태 의원 같은 사람이 날라가면서 김종필계도 타격을 입긴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세력이 남아있었고, 69년에 또 하나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4.8항명이라고,
다니엘: 항명이 말 안듣는 거잖아요. 군에서 쓰는 용어 아니에요?
김지윤: 거기 중심인물이었던 사람이 권오병 문교부장관이에요. 이 사람이 원래 검사출신이고, 전에 법무부 차관, 장관한 사람인데 문제가 좀 많았어요. 굉장히 권위적이고 고압적이고 그리고 오만하고 결정적으로 국회에서 국회의원들한테 폭언을 해요. 야당에서 화가 나서 해임해야 된다. 해임결의안을 발의를 하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이걸 부결시키라고 얘길 했죠. 그런데 여기서 김종필계에서 40명이 가쪽으로 표를 던져요. 해임시키라고 그래서 해임결의안이 통과가 돼요. 그래서 박정희 전대통령이 무지하게 화가 났었다. 한 마디로 김종필계가 박정희 대통령의 명에 항명을 한 거죠. 우리는 아직 살아 있고 우리는 김종필을 지지하고 대통령이 말하는 것에 그대로 따르지 않겠다고, 이 사태로 보여준 거죠.
다니엘: 김종필씨는 정계를 은퇴했는데요. 아직 까지도 충성이 엄청나게 남았네요.
김지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이 그 다음에 바로 반당파들을 색출해서 처단하라. 주도를 했다고 여겨지는 인물 5명, 양순직, 예춘호, 박종태, 김달수, 그리고 정태성 5명을 공화당에서 제명시켜 버려요.
최원정: JP계가 완전히 풍비박산이 나네요.
박태균: 문제는 이 분들이 했던 부분들이 당시에 국민들이나 젊은 청년 대학생들이 했던 것과 같은 맥락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기집권 안된다. 이승만 정부 때 겪었던 일이다. 이걸 또 한번 장기집권 하겠다. 이건 안된다. 그래서 헌정수호성토대회를 학생들이 열기를 시작합니다. (헌정수호성토대회(1968)-서울대학교 법대생 500여명을 시작, 전국 대학으로 번진 3선개헌 반대학생운동), 이때 참여인원이 무려 33,000명, 그 정도가 참여를 했습니다.
박상영: 우리가 이전의 역사를 살펴 봤고, 4.19 혁명도 부정선거 때문에 촉발되었잖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런 대통령 선거나 개헌을 부정한 방식으로 권력이 이행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민감해 질 수 밖에 없는 그런 입장이었을 것 같고, 박정희 대통령도 이러한 국민정서를 그냥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 같애요. 아무리 그가 철의 통치를 했어도,
최원정: 고민 중에 박정희 대통령이 초강수를 두게 되는데요. 영상을 확인해 보시죠.
--------------------동영상: 3선 개헌 추진에 대한 여야 의원들의 반대는 거세졌고 시민들의 반대시위도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3선 개헌에 대한 미래가 불투명해진 가운데 박정희 대통령도 국민들에게 중대발표를 한다(1969.7.25). 박정희 대통령: 이왕에 거론되고 있는 개헌문제를 통해서 나와 이 정부에 대한 신임을 묻는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임기도중에 이러한 결심을 하지 않으면 안될 나의 심정과 입장을 여러분들도 십분 이해해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일동: 와~
박상영: 대단하네요. 이게 지금 어떤 어학적으로 볼 때 주체는 자신이잖아요. 개헌을 가장 바라는 사람은 자신인데 마치 외부에서 요구가 나오니까 나는 3선을 원하지 않지만 논쟁이 생기니 나도 어쩔 수 없이 고민한다. 이런 뉘앙스를 풍기며 담화를 한다는 자체가 프레임을 아예 새로 바꾸어 버리는 거잖아요.
김지윤: 굉장히 고도의 정치전략적인 어떻게 보면 자기의 시간 타임 라인이 있었을 지도 몰라요. 처음에 이런 얘기가 나왔을 때는 내 임기 안에 3선개헌은 없다 라고 말합니다. 좀 식어진 다음에는 지금 그런 얘기 하지 말고 연말이나 되어야지 우리가 그런 얘기 할 수 있지 않겠냐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식으로 얘기 하거든요. 왜 우리가 사극 보면 나오잖아요. 왕이 하야하겠다고 그러면 아니되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나중에 이 자리에 남겠소 하면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런 식으로 나가는 거고 이제 이때부터 사실은 본격적으로 3선개헌에 대해서 홍보를 하기 시작하죠. 대국민 홍보,
이시원: 이건 지금 이 발언 보면 장기집권에 대한 개헌의 찬반을 마치 자신과 현정부에 대한 신임을 묻는 것으로 프레임을 아예 바꿔버렸잖아요. 나와 현정부가 잘 하고 있다면 3선 개헌안에 찬성하고 이런 식으로 말하고 있잖아요.
김지윤: 이중에 굉장히 충격적인 일이 일어납니다. 김종필씨가 3선개헌 지지선언을 합니다.
박상영: 이 난리를 쳐놓고 이게 무슨 황당한~
이시원: 갑자기 그렇게 바꾸었다구요?
박태균; 김종필씨를 지지해 가지고 3선개헌을 반대했던 사람들한테도 날벼락 같은 그런 거죠. 정계 은퇴를 했지만 끝까지 갈 거란 생각을 했던 거예요.
------------동영상 김종필계 모임(1969.9월경), 김종필役: 대통령께서 결심을 하셨으니 우리도 당원의 입장에서 도웁시다. 참석자1役: 아니 당의장이 우리에게 3선개헌을 지지하라고 하니 이게 도대체 말이 됩니까? 참석자2役: 3선개헌도 장기집권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겁니다. 국민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김종필役: 4년만 더 하시겠다고 하신 것인데 그걸 우리가 반대할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참석자3役: 민족의 미래가 걸린 문제입니다. 참석자4役: 당의장, 그런 식으로 얘기할 거면 앞으로 우리를 부르지 마십시오!! 김종필役: 여러분, 나한테는 점잖게 제동을 걸고 있지만은 아마 여러분들 한테는 눈에 보이는 제동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니 각하의 뜻을 따릅시다-------------
최원정: 지지 연설을 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해야 된다는 식의 얘기까지 합니다. 서독의 아데나워 수상은 15년 동안 장기지권을 했고 경제발전을 이루지 않았냐 그리고 일본의 요시다 수상 같은 경우 오렛동안 집권해서 역시 경제발전을 시켰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해야 된다 라는 식의 이야기까지 했는데 저는 그래서 김종필씨가 대통령이 못됐다 라고 봐요. 그런데 이게 그냥 단순히 반대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적극 지지인데 무슨 이유가?
박태균: 김종필씨 주변에 계셨던 분들한테 들은 거는 한번 청와대로 불렀다는 거죠. 김종필씨를 불렀고 박정희 대통령 하고 육영수 여사가 같이 얘기를 했다는 거죠. 어차피 다음은 임자 아닌가?
이시원: 프로회유러 네요
박상영; 어쩌면 공수표의 달인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박태균: 근데요 자기가 정권 장악 근처에 갔을 때 그 생각을 한번 해보세요. 정권 최고 책임자가 임자 다음은 임자야. 아! 내가 조금만 조용히 있으면 돼지 않을까 이런 유혹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이시원: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런 회유에 넘어갈 거로 생각하세요?
최원정: 아니, 그래도 이 정도 반대를 했으면 무슨 소리입니까? 이제 물러 나셔야죠. 이런 얘기를 한번 할 수 있는 기개는 보여줘야 되는 거 아니에요?
이시원; 전에 행보를 보면 그랬을 것 같은데 저는 그래서 이런 회유에 넘어갔다기 보다는 자신의 한계라든지 그 흐름에 따른게 아닐까?
박상영: 솔직히 이렇게 까지 진행을 해놓고선 의지를 굽힌게 결정적 계기가 아닌가?
김지윤: 결정적 이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마 미국의 입김이 들어갔었던 것 같애요.
일동: 미국이요?
김지윤: 네, 미국도 박정희 대통령의 3선을 지지했던 입장이고,
최원정: 3선을 지지했다구요?
박상영: 민주주의의 수호자 아니었나요?
김지윤: 헌법을 파괴하는 건 본인들의 관심사도 아니고 일단 박정희 라는 사람이 대통령직에 그대로 남아 있어주기를 원했던 게 미국의 생각이었죠.
다니엘: 민주주의를 어느 정도 제일 지지하고 상징하는 나라인데 결국은 박대통령이 있어야 미국한테도 유리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인데~
김지윤: 그렇죠, 우리가 그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지금의 미국은 누가 뭐랄 수 없는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당시는 냉전시대였고 소련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상대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한국이 독재정권이고 반인권적인 정권이라고 하더라도 반공,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정권에 대해서는 사실 전폭적으로 지지를 많이 했어요. 개인적으로 김종필 인물에 대해서 안좋아 했던 것도 있죠. 김종필이란 인물이 5.16 쿠데타를 하면서 이런 거 다 꾸몄던 브레인이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위협적으로 느끼고 여러가지 일에서 특히 한일협정할 때 대학생이 반대를 하는게 한일협정 자체도 있지만 김종필이 너무 싫어서 반대한다. 이런 것도 있었고 그리고 공산주의자에 가깝다 라는 얘기도 있어요.
박태균: 제가 이 시기에 대해서 쭉 공부를 하면서 문서를 보고 놀랐던게 있어요. 왜 이렇게 김종필을 미국이 제거를 할려고 할까? 제가 제일 흥미로웠던 문서중의 하나가 하도 미국 대사가 김종필이 물러나야 한다 라고 주장을 하니까 그 당시에 미국 백악관에 국가안보회의에서 로버트 코머라는 사람이 그 당시 주한미국 대사한테 편지를 보내요. 혹시 너 김종필이 한테 돈 꿔주고 못받은 거 있냐? 사적 감정인데 왜 이렇게 김종필을 싫어하느냐 그런데 제가 이걸 풀기 시작한거는 61년 5.16 직후부터 문서를 보면 그 당시에 문화담당 참사관으로 그레고리 핸더슨 이란 분이 있었는데 이분이 김종필씨에 대한 논문을 써요. 그 내용을 보면 김종필은 공산주의의 경향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다. 굉장히 좌파적인 색채가 강하다. 그 다음에 정권을 잡았을 경우에 미국의 정책과 조율을 통해서 한국의 정책을 끌어가기 위해서는 적합한 인물이 아니다 라는 이런 평가들이 굉장히 강했던 것 같애요.
최원정;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이 빅 브라더 역할을 했네요.
박상영: 상당히 아이러니한 게 일단 투박하게 보자면 반공을 위해서 민주주의적 가치가 훼손 되는 걸 눈감아 주겠다 라는 그런 의도가 있는 거 잖아요.
김지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반공이라는 것을 가지고 이념화시켜서 장기집권을 하려는 사람들이 이용을 한 거죠.
박태균: 또 하나 미국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생각했던 부분은 그 당시에 베트남 전쟁 기간이고 한국이 베트남에 전투부대를 파견했다. 다른 나라들은 조금 조금 도와 주었지만 한국은 베트남에서 미국 다음으로 큰 병력을 파견한 나라였거든요. 그거에 대한 고마움도 있었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시원: 이걸 들어보면 미국까지도 자신을 탐탁치 않아 하고 또 이 개헌에 대한 찬반에 지금 정부에 대한 신임으로까지 프레임도 바뀌고 그러면 김종필 의원으로서는 아~ 내가 어쩔 수 없이 물어나야겠구나 내가 어쩔 수 없구나 도리가 없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박상영; 어찌보면 이때 이런 선택으로 인해서 한때 대권을 넘봤던 김종필 의원이 다시 영원한 2인자로 남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최원정: 김종필 의원이 이렇게 돌아서서 박정희 대통령에게는 큰 산을 넘었다 라는 판단으로 안심이 되었겠지만 김종필계 JP계 의원들은 지금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 건가요?
김지윤: 반정도는 돌아셨어요. 반정도는 남아 있는데 아까도 얘기했지만 129명 중에 117명을 확보를 해야되는데 반이면 부족하거든요. 이 정도 많은 사람들이 필요한 상황이었죠. 그래서 공화당에서 비공개토론에서 의총이라고 할 수 있죠. 지금의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의총을 열었는데 원래는 3선개헌에 반대를 했었던 이만섭 의원(나중에 국회의장)이 한가지 제안을 해요. 전제조건으로 그러면 김형욱과 이후락을 내쳐라. 당시 이후락은 비서실장이었죠. 그러면 우리가 개헌안을 받아들이겠다.
박상영: 와~ 이거 정말 엄청난 딜이네요. 박정희 대통령 너 3선하고 싶으면 수족을 내쳐라.
최원정: 어차피 대통령의 의지를 꺾을 수 없으니까 정치적으로 얻어낼 꺼 다 얻어낸다.
이시원; 딱 그거 같애요. 서로 맞바꾸는 것, 나는 차를 버릴 테니 너는 포를 버려라.
박상영; 저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김형욱 정보부장이 오죽했으면 이렇게 딜하는 카드로 쓸만큼~
김지윤; 꼭 그 얘기 하니깐 거기에 있었던 의원들이 김형욱 해임선행 조건에 막 손뼉치고 환호하며 좋아했데요.
이시원: 실제 국회 위에 존재했던 중정인데 김형욱한테 당한 국회의원들이 많찮아요.
김지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이 그걸 받아들여요. 그런데 그대로는 아니고 원래는 먼저 축출하고 그 다음에 개헌안을 받아들이겠다는 게 의원들의 뜻이었는데 지금 여러가지 사정도 그렇고 일단 개헌안 통과된 후 다음에 김형욱, 이후락을 축출하겠다고 라고 하면서 받아들입니다. 3선개헌을 받아들이자 122명이 받아 들입니다. (개헌선 117명을 넘어선).
------------------1969년 9월 13일, 비장함이 감도는 국회, 3선개헌안 표결은 이제 국회의 몫으로 남았다. 개헌에 반대하는 의원들은 개헌안 투표를 막기 위한 마지막 방법으로 본회의장을 점거했다. 자정이 넘은 시각, 결국 이효상 국회의장은 정회선언을 하고 이틀뒤인 15일, 다시 국회를 열 것을 선포한다--------------그날이 알고 싶다. 이광용입니다. 방금 보신 것처럼 국회의장이 본회의에 자동연기를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왜 여당 소속인 국회의장이 그것도 3선개헌에 찬성하는 국회의장이 본회의 연기를 왜 이리 자연스럽게 그냥 받아들이는 걸까요. 국회 본회의가 끝난후 개헌반대 의원들은 본회의장에 남아 철야농성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개헌찬성 의원 122명은 국회 근처 호텔에서 비상대기에 들어갑니다. 다니엘; 비상대기요? 웬 비상대기~ 이광용: 개헌반대파 의원들이 본회의 연기선언을 듣고 방심한 바로 그때, 당신이 잠든 그 밤, 지금 시각 새벽 두시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아! 개헌 찬성파 사령탑의 지침이 내려왔어요. 다니엘; 어떻게 나왔을까~ “가로등 소등! 흡연금지!” “국회별관으로 이동하라” 일단 가로등을 소등합니다. 오! 깜깜해졌어요. 시내 한 가운데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빠졌습니다. 이시원; 어둡게 하고 뭔 짓을 하려고~ 뭔가 나쁜 일을 꾸미는 거 아녜요. 사복요원 200여명의 삼엄한 경비를 받으면서 122명의 의원들은 국회 앞을 피해서 시청 뒤 무교동 길로 몰래 이동합니다. 이들은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요? 그렇습니다. 당신이 잠든 사이 개헌에 찬성하는 122명의 의원들은 국회별관 3층으로 이동, 당원과 비서들이 2중으로 바리케이드를 친 가운데 본회의를 시작합니다. 이시원: 무슨 야밤에 기습작전을 펼치는 것 같애요. 새벽 2시32분 개헌안 투표가 시작되었고요. 단 6분만에 2시 38분에 투표는 종료되었습니다.
박상영; 무슨 6분 이라뇨, 개헌이란 중대한 사안을 단 6분만에 결정했다구요?
이시원: 잠깐만 122명이 투표를 했는데 그거 밖에 안걸렸다구요? 계산을 해보면은 한명당 3초 밖에 안걸린건데~ 이게 말이 되나요? 이상한데~ 투표를 하긴 한 거예요?
------------------이광용/국회의장役: 국회의장입니다, 가결선포를 해야 하는데~ 의사봉이 있어야 되는데~, 이시원: 국회의장님 지금 투표도 불법인 거 같은데~ 국회의장役: 의사봉은 지금 국회에 있는데~ 이시원: 우선 불을 켜 주세요, 투표도 불법인데~, 국회의장役: 그래도 할 건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오~오~ (주전자 뚜껑) 이게 있네요, 지금 시각 2시 50분, 122명 전원 찬성으로 개헌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딱~딱~딱~
이시원: 투표도 엉망, 의사봉도 주전자 뚜껑으로 치고, 지금 뭐하는 겁니까?
최원정: 각설이 타령입니까?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이시원: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광용: 그것은 국회의장에게 가서 따지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날이 알고 싶다 이광용입니다. 그리고 개헌안 통과와 동시에 별관 뒷문으로 의원들은 퇴장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요? 바로 이렇게 후다닥 모두 고개를 숙이고 겁먹고 부끄러워서,
다니엘: 고개를 다 숙이셨네요,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지~
최원정: 그런데 시원씨 야당 의원 하면 잘 하실 것 같은데요?
이시원: 반대파를 지금 해 봤는데 목에 핏대를 세우고 반대를 해도 날림으로 처리를 해버리시니까~
최원정: 드러누웠어야죠~
이시원; 그랬어야 되나요?
박상영: 진짜 이렇게 거의 도둑들도 이렇게 불 꺼놓고 훔쳐가듯이 한 거잖아요.
최원정: 주전자 뚜껑으로 치다니~
박상영: 아니, 그런데 국회본청에서 철야농성 까지 하면서 반대했던 의원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허탈하고 허무했겠어요?
박태균: 그러니까요 사실 이 소식을 듣고 야당의원들이 이제 몰려 온 거죠. 그래서 기표소 기물을 부수며 날강도들아 하고 울부짖고 그런데 어쨌든 개헌안은 통과가 된 거예요.
이시원: 6분만에 이렇게 날치기 통과됐으면 얼마나 허탈했을까요?
박상영: 사실은 제가 다 분통이 터지네요.
박태균: 사실은 주전자 뚜껑 개헌이죠. 그럼 이걸 어떻게 합리화 할 것이냐? 국민투표를 하는 겁니다. 사실은 모든 국민투표는 항상 정부에 유리할 수밖에 없어요. 기본적으로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조직들이 있거든요. 심지어는 저희가 72년에 유신이 통과된 이후에도 문제가 있고 반대한다 라고 하니까 또 하나 던진게 그때도 국민투표를 하거든요. 그것도 통과됩니다. 그렇게 반대가 많아도~
이시원; 그러면 박정희 대통령은 뜻대로 된 거네요.
박태균: 그렇죠, 그래서 69년 10월 17일에 대선을 2년 앞두고 3선 개헌안 찬반투표가 열립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투표율 77.1%에 찬성이 65.1%, 3선 개헌통과
박상영; 투표 이전에 개헌반대파가 그때 내걸었던 조건이 이후락 비서실장,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의 해임이라는 조건을 분명히 딜로 걸었잖아요. 그런데 개헌도 성공했는데 박정희 대통령의 선택이 과연 어떻게 되었을지? 너무나도 궁금한데요.
----------------------동영상 영화, 박대통령役: 이번 3선개헌 수고했어, 중앙정보부장役: 각하, 감사합니다, 박대통령役: 좀 쉬지 그래, 마 여론이 안좋아, 야당도 그렇고 여당도 난리야, 좀 살살 했어야지-------------------
김지윤: 3선개헌 성공하고 3일만에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의 책상이 치워져 있어요. 끝난 거지요. 워낙에도 악명이 높았으니까 계속 두고 보는 것도 부담스럽고 대통령 입장에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국회의원이 돼요. 전국구 국호의원이 1971년 선거에서 되긴 하는데 항상 두려운 거죠. 그때 두려움과 배신감에 분노도 되고 배신(토사구팽) 당했다는 생각도 들고 그리고 악행을 저질렀으니까 원한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이 사람들한테서 잘못했다 미안하다 빌기도 하고 그러다 결국은 미국으로 망명을 갔다가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이 돼죠.
박상영: 실종이라는 것이~?
이시원: 착하게 살아야 돼요. 어떤 의미에서는 박대통령이 참 대단한 것 같애요. 2인자로 키웠다가 제거를 하므로서 자기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들을 한번에 제거하는 거잖아요. 참 그걸 보면 사람을 쓰는 방법이 대단해요. ---------독재정권에 영원한 2인자는 없다--------------
최원정; 정치,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니엘: 이런 것들 보면 사실 민주주의라는 체제가 아직 정말 지금 대한민국 처럼 잘 되지 않은 나라에서는 계속 그런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니까 정말 똑 같아요. 역사는 반복되는데~007 영화 얼마 있으면 나올 것 같은데, 그 예고편 보니까 거기에서 그런 말을 해요. History is never been kind to people who play God (신의 흉내를 내는 자들은 모두 역사의 심판을 받는다).
다니엘: 저는 그 말이 되게 좋은 것 같은데 특히 박정희 前대통령의 어떤 끝을 보면 이제 그 말도 맞는 것 같다고 생각도 들어요.
김지윤: 착한 권력이란 없다. 권력은 착할 수가 없어요. 권력이란 것 자체가 속성이 누군가를 통제해서 거기부터 나오는 파워를 내가 혼자 다 갖는 게 권력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걸 견제해야 되는 세력이 분명히 존재해야 됩니다.
박태균: 그러니까 저희가 어떤 국가나 사회에서 강한 정부라는게 있다면 다른 한쪽에서, 시민사회 라는 게 견제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 이런 견제가 없을 때 정권이 결국은 어떤 방향으로 가는가 라는 걸 보여주고 출발점의 하나로서 3선개헌이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원정; 또한 권력은 중독단계에 들어서면 결코 헤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의 한 페이지 함께 하셨습니다. 끝. (KBS 역사저널 그날 278회에서 정리).
① 1961.5.16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들어서고 1962년에 개헌, 당시 개헌안에는 4년 중임제, 3선 금지, 1967.5.3 재선에 성공한 박정희, 헌법을 개정해야 대통령이 다시 한번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상황, 자기가 통과시킨 새로운 헌법을 만든 제3공화국을 무너뜨리고 다시 한번 헌법을 개정하는, 자기가 만든 시스템을 자기가 무너뜨리는 행동, 그는 장기집권의 야욕을 품고 3선개헌을 추진, 그런데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그의 후계자로 불렸던 정계의 거물 중앙정보부와 민주공화당을 만든 JP, 바로 김종필 의원이 3선 개헌에 강력하게 반기를 들고 나선다. 김종필씨는 이전의 정치인들과 대별되는 부분들이 있었고, 35세 젊은 나이에 5.16 쿠데타를 실질적으로 설계했고 쿠데타 이후에 중앙정보부를 만들어서 초대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씨는 다른 육사출신들과는 다르게 서울대 사범대를 다니다가 군대를 갔다. 그에게는 분명히 엘리트 의식이 있었다,
② 1967년에 대통령에 재선이 되니까 자신감이 생겼다. (그럼 국회지형을 바꾸자. 67년에 대통령 선거 직후 바로 총선거, 기본적으로 사사오입 개헌 전에, 54년에 있었던 총선거에서 부정선거를 통해 가지고 국회에서 개헌안이 통과될 수 있는 국회의원을 확보할려고 노력했던 것과 똑 같았다. 너무 심한 부정선거였다. 투표조작에다 대리투표에다 관권선거 공무원 군인동원 등 모든 걸 다 동원한 부정선거를 했다). 역사는 반복되었다. 개헌안 통과할 정도로 당시 3분의 2가 117석인데 129석이 당선, 국회든 정부든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없어진 상황, 국회만 장악하면 3선 가능한데 믿었던 김종필이 처음부터 반대의사 표시,
③ 김종필은 5.16 쿠데타의 아주 핵심세력이었고 박정희 대통령과는 단순한 정치적 동지가 아닌데 이제 박정희 대통령이 3선 까지 계획하고 있으니, 반발심이 생기고, 사실 김종필씨는 5.16 쿠데타 직후에 유엔군 사령관이 왜 나한테 승인 안받고 군대를 움직였냐? 라고 했을 때 바로 대들었다고, 왜 우리가 우리 군대를 움직이는데 너네가 뭐라고 하느냐 또 한국과 일본이 한일협정을 할 때 그 많은 반대가 있었을 때에 김종필 의원이 일본에 가서 김-오히라 메모를 작성,
④ 3선을 할려면 반대하는 김종필을 제거해야 되는데, 굉장히 핵심 브레인이고 정치적으로 빚이 많기 때문에 함부로 건드릴 수는 없었다, 이이제이를 쓴다, 김형욱 정보부장이 김종필 의원 견제세력으로 박정희와 김종필 사이에 끼어들었다. 김형욱은 박정희가 꺼리는 일들을 도맡아 불도저 처럼 밀고 나갔다. 박정희 대통령이 5.16 쿠데타를 할 때부터 그 이후에 정권을 이루어 가는데 제일 중요한 기반이 육사8기, 이 육사 8기의 핵심은 김종필이다. 김종필을 치면 자기 기반을 쳐버리는게 되고 이걸 치기도 어렵고 끌어 안자고 하니 부닥치는 부분이 생기고 그 싯점에 김형욱이 등장하였다.
⑤ 김형욱도 육사 8기고 동기인데 김종필에 비해서 떨어진다. 인물의 성격상 극과 극, 굉장히 막무가내식이었다. 자리는 2인자인데 자기 능력이 안되니까 이번 기회에 박정희 대통령이 원하는 3선개헌을 밀어부쳐서 한번 돋보이겠다 라는 생각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김형욱이 당시 중앙정보부장 할 때 했던 행적들은 많은 사람들의 원성을 샀고 여야를 가리지 않고 국회의원들이 경악한 인물 중의 하나였다.
⑥ 1969년 6월 20일, 밤10시 5분경, 신민당 김영삼 원내총무 자택 근처에서 피습, 작업복 차림 청년 세명이 김영삼 의원이 탄 차를 세우고 뒷 문을 열려고 시도했는데 위기를 직감한 김영삼 의원이 차를 출발시키자 청년들이 달리는 차를 향해 초산병을 던졌다. 초산이 얼마나 독했는지 차량 페인트와 아스팔트가 그대로 녹아내렸다. 차 뒷문을 직접 열려고 했던건 초산을 직접 부울려고 했던 것, 범인은 잡지 못했고, 김영삼 의원은 이 사건 배후로 중앙정보부를 지목했다. 3선개헌을 반대하다 공화당에서 제명당했던 박종태 의원도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김영삼 의원은 격분해서 그 다음날 국회에 와서 연설을 하였는데 이 독재정권을 이끌어 가는 원부가 중앙정보부다. 그 책임자인 김형욱은 민족반역자다 나를 죽일려고 했다. 이거는 박정희 정권 차원에서 테러다. 아주 그냥 분노를 했다.
⑦ 5.16 쿠데타 직전에 육사 8기들이 항명한다. 부정부패한 장군 숙청하는 정군운동 하면서 8기들이 옷을 벗는다. 정군운동에 육사8기, 엘리트 핵심 멤버에 김형욱은 빠졌는데 나중에 김종필이 박정희 대통령한테 김형욱을 천거, 처음에는 김형욱이 김종필에게 굉장히 잘 했다. 내가 총을 차고 네 옆에서 너를 지켜주겠다. 어떤 위협이 있고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너는 내가 보호하고 도와 주겠다고, 근데 중앙정보부장이 된 다음부터 변했다. 나중에 김종필 총재가 자리가 사람을 이상하게 만들더라고. 김형욱은 중앙정보부장이 되니까 나도 김종필 정도는 상대할 수 있는 깜량이 되었다는 깨달음을 얻은 듯,
⑧ 복지회는 민주공화당 내에서 김종필씨를 지지하는 의원들이 만든 모임, 복지회의 시국판단서에서 67년 선거부정은 박정희 대통령의 책임이다라고 했다고, 김종필을 지지하는 의원들이 이 문건을 만들었다는 폭로, 당시 공화당 내 김종필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개헌이 안되면 김종필씨가 71년에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굉장히 큰 상황이었다. 3선개헌 안되면 어차피 박정희 대통령은 못나가니까 후보는 당연히 김종필씨가 되고 이 정도되니까 박정희 대통령은 위기감을 엄청 느꼈다. 이렇게 되니까 김종필씨도 위기감을 느끼고 이러다가 내가 완전히 날라갈 수 있겠다. 그렇게 되니까 스스로 자기를 지지하는 국민복지회 의원들을 제명 시키고 본인도 정계를 은퇴한다. 이게 복지회 사건, 복지회 사건 때문에 김용태 의원이 날라가면서 김종필계도 타격을 입긴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세력이 남아있었다.
⑨ 69년에 4.8항명이 일어난다. 중심인물은 권오병 문교부장관, 이 사람은 원래 검사출신이고, 법무부 차관과 장관을 한 사람인데 문제가 많았다. 국회의원들에게 굉장히 권위적이고 고압적이고 오만하고 결정적으로 국회에서 국회의원들한테 폭언을 하니까 야당에서 화가 나서 해임결의안을 발의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이걸 부결시키라고, 그런데 김종필계에서 40명이 가쪽으로 표를 던져서 해임결의안이 통과가 된다. 박정희 대통령이 무지하게 화가 났다. 김종필계가 박정희 대통령의 명에 항명, 우리는 대통령이 말하는 것에 그대로 따르지 않겠다, 김종필씨가 정계은퇴를 했는데도 아직 까지도 세력이 남아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주도 인물 5명, 양순직, 예춘호, 박종태, 김달수, 정태성 5명을 공화당에서 제명, JP계가 완전히 풍비박산, 문제는 이 분들의 주장이 당시에 국민들이나 젊은 청년 대학생들이 했던 것과 같은 맥락에 있었다는 것, 장기집권 안된다. 이승만 정부 때 겪었던 일이다. 1968년 학생들이 헌정수호성토대회를 연다. 서울대학교 법대생 500여명을 시작, 전국 대학 3선개헌 반대학생운동에 무려 33,000명이 참여, 4.19 혁명도 부정선거 때문에 촉발되었고, 대통령 선거나 개헌을 부정한 방식으로 해 권력이 이행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민감해 질 수 밖에 없었다. 3선 개헌 추진에 대한 여야 의원들의 반대는 거세졌고 시민들의 반대시위도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고민 중에 박정희 대통령이 초강수를 둔다. 3선 개헌에 대한 미래가 불투명해진 가운데 박정희 대통령도 국민들에게 중대발표를 한다(1969.7.25). 개헌문제를 통해 나와 이 정부에 대한 신임을 묻는다. 개헌을 가장 바라는 사람은 자신인데 마치 외부에서 요구가 나오니까 나는 3선을 원하지 않지만 논쟁이 생기니 나도 어쩔 수 없이 고민한다. 3선 개헌문제 자체를 새로운 프레임으로 아예 바꾸어 버렸다. 나와 현정부가 잘 하고 있다면 3선 개헌안에 찬성하라고,
⑩ 이 와중에 김종필씨가 3선개헌 지지선언, 김종필씨를 지지했던 사람들한테도 날벼락 같은 소리, 김종필씨가 정계 은퇴를 했지만 끝까지 갈 걸로 생각을 했었다. 1969.9월경 김종필계 모임에서 김종필은 대통령께서 결심을 하셨으니 우리도 당원의 입장에서 도웁자 라는 발언에 참석자들은 모두 반대하며 김종필씨와 관계단절을 선언한다. 이후 김종필은 박정희 대통령 장기집권 지지연설을 통해 서독의 아데나워 수상과 일본의 요시다 수상을 예를 들며 박정희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해야 된다 라는 이야기까지 했는데 이래서 결국 김종필씨는 대통령이 못됐다. 이건 단순 반대가 아니라 아주 적극 지지를 했다.
⑪ 박 대통령이 김종필씨를 청와대로 불렀고 육영수 여사도 있는데 어차피 다음은 임자 아닌가라고 말했다고, 김종필은 박 대통령이 다음은 임자야 라고 했는데 내가 조금만 조용히 있으면 돼지 않을까 이런 유혹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래도 김종필씨가, 이제 물러 나셔야죠. 이런 얘기를 한번 할 수 있어야 되는데 그런 의지와 기개가 없었다. 결정적 이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마 미국의 입김이 들어갔었던 것 같다고, 미국은 박정희 대통령의 3선을 지지했던 입장이고, 박대통령이 있어야 미국한테 유리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지만 그 당시는 소련과 냉전시대였고 소련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미국은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정권에 대해서는 사실 전폭적으로 지지를 많이 했다.
⑫ 당시 미국 대사가 김종필이 물러나야 한다 라는 주장을 했다고, 그 당시 문화담당 참사관으로 그레고리 핸더슨은 논문에서 김종필은 공산주의의 경향이 굉장히 강하고 굉장히 좌파적인 색채가 강하다고. 다음에 정권을 잡았을 경우에 미국의 정책과 조율을 통해서 적합한 인물이 아니다 라고 평가를 했다고, 또 그 당시에 베트남 전쟁 기간이고 한국이 베트남에 전투부대를 파견했다. 다른 나라들은 조금 도와 주었지만 한국은 베트남에서 미국 다음으로 큰 병력을 파견하였다. 그거에 대한 고마움도 있었다고, 미국까지도 자신을 탐탁치 않아 하고 또 개헌에 대한 찬반이 정부에 대한 신임으로 프레임도 바뀌고 김종필은 내가 어쩔 수 없구나 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이때 이런 선택으로 인해서 한때 대권을 넘봤던 김종필 의원은 영원한 2인자로 남게 된다.
⑬ 김종필 의원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돌아섬으로써 김종필계 의원들은 어떤 입장을 취하였냐 하면 반정도는 돌아섰고 반정도는 남아 있었다. 129명 중에 117명을 확보 해야되는데 반이면 부족하다. 공화당은 비공개로 의총을 열어서 3선개헌에 반대 했었던 이만섭 의원(나중에 국회의장)이 제안을 한다. 전제조건으로 김형욱과 이후락을 내쳐라. 그러면 개헌안을 받아들이겠다. 박정희 대통령 너 3선하고 싶으면 수족을 내쳐라. 어차피 대통령의 의지를 꺾을 수 없으니까 정치적으로 얻어낼 것 다 얻어낸다. 거기에 있었던 의원들이 김형욱 해임선행 조건에 손뼉치고 환호하며 좋아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그걸 받아들였다. 122명이 받아 들인다. (개헌선 117명을 넘어선).
⑭ 1969년 9월 13일, 비장함이 감도는 국회, 3선개헌에 반대하는 의원들이 개헌안 투표를 막기 위한 마지막 방법으로 본회의장을 점거, 자정이 넘은 시각, 이효상 국회의장은 정회선언을 하고 이틀 뒤인 15일, 다시 국회를 열 것을 선포, 개헌찬성 의원 122명은 국회 근처 호텔에서 비상대기, 사복요원 200여명의 삼엄한 경비를 받으면서 122명 의원들은 국회 앞을 피해서 시청 뒤 무교동 길로 몰래 국회별관 3층으로 이동, 당원과 비서들이 2중으로 바리케이드를 친 가운데 본회의를 시작, 새벽 2시32분 개헌안 투표가 시작되었고, 단 6분만에 2시 38분에 투표는 종료되었다.
⑮ 어쨌든 개헌안은 6분만에 통과, 이걸 어떻게 합리화 할 것이냐? 국민투표를 한다. 사실 모든 국민투표는 항상 정부에 유리하다. 기본적으로 정부는 동원할 수 있는 조직들이 있다. 69년 10월 17일에 대선을 2년 앞두고 3선 개헌안 찬반투표, 그 결과는 투표율 77.1%에 찬성이 65.1%, 3선 개헌통과, 3선개헌 성공하고 3일만에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의 책상이 치워졌다.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1971년 전국구 국회의원이 된다. 워낙에 악명이 높았으니까 박 대통령 입장에서 계속 두고 보는 것도 부담스럽고 항상 두려운 거다. 김형욱은 토사구팽 당했다는 생각도 들고 악행을 저질렀으니까 원한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이 사람들한테 가서 잘못했다 미안하다 빌기도 하고 결국은 미국으로 망명을 갔다가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이 되었다. 독재정권에 영원한 2인자는 없다. 민주주의 체제가 아직 잘 되지 않은 대한민국에서는 계속 그런 비슷한 일들이 일어난다. 역사는 반복된다. 신의 흉내를 내는 자들은 모두 역사의 심판을 받는다. 특히 박정희 前대통령의 끝을 보면 그 말도 맞는 것 같다. 착한 권력이란 없다. 권력은 착할 수가 없다. 선진국처럼 그걸 견제해야 되는 건강한 시민단체 세력이 분명히 존재해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