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의 시작- 홍준표 시집
출-잉어등(127쪽)
독정- 2025.1.23. 목
서문에서 ‘마모 삐딱한’에서 예리한 성찰을 배웠고, 4장으로 된 각 장에 20편씩 실린 80편 시가 하나같이 격조 높은 성찰과 사물의 속성을 낯선 표현으로 그려낸 시들이라서 신선했다. 평론도 좋았다. 처음 들어보는 어려운 낱말들이 있어 사전을 찾아보며 공부하는 재미도 있었다. 그래서 시집 한 권 읽는 내내 설레었고, 놀랐고, 좋은 가르침 주는 스승 같은 시집이라서 행복했다. 공부 될 시들을 정리해보니 원고지 34매 분량이다. 아, 이렇게 참 좋은 시들을 선물해준 그 분께 재미있었다고, 감사하다고 인사 올리고 싶다.
<활불>
슬그머니 네가 산이라 이르신다. 뿌리로 바위 감싸는 수령 깊은 소나무가/ 돌 틈 풀꽃에게 하는 말도/ 다르지 않다
※평-그 너름새( 너그럽고 시원스럽게 말로 떠벌려서 일을 주선하는 솜씨)가 무량하고 웅숭깊을 (생각이나 뜻이 크고 넓다)수 있는 도처에서 우리는 존재의 선처를 궁구한다. 투덜투덜 돌아서는 내가 바로 부처의 근경이라 시공간으로 둘러싼 자연의 그윽한 입말로 들린다. 삶의 도량에서 수행이나 수양인 점수의 형태로 비견될 수 있다. 다르지 않음은 무조건적 동일성이나 복제 의미가 아니라 이질적 것들과 세속적 구별이 일정한 깨달음의 지경에서 분별을 벗은 반열의 의미믈 지니는 뉘앙스를 가진다. 활불이 지닌 다양성은 세속 규범 굴레에 갇힌 것조차 도 다른 의미로 전이되고 기꺼이 확장되는 존재로서 궁극에 가까운 본질적 이데아에 가 닿 는 차원이다
<질문의 시작>
난 그리던 꿈으로 떠날 참인데/ 그 사람은/ 이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둘인 듯 하나인 사연을 줌의 거리에 둔다
<가을 거처>
속살 맑은 알몸으로 태어나/만나고 헤어지고 부둥켜안다가/ 길 뗘날 길 들어서는 가을 자리. 강보 속 도토리도 굴러떨어지는 자리/추락의 무게가 마른 풀등을 치기 전/ 하얀 공중에 마지막 쓰는 편지는/ 그 자리 내내 평안하시길/ 선한 얼굴로 그늘을 걸어온 시간이/ 머물 자리 찾아 이리저리/ 돌 틈 모서리라도 굴러가려 한다.
<가지치기>
자라는 대로 자라는 가지고 싶었는데/다짜고짜 전기톱을 디밀어요//
천편일률/ 남보다 키 좀 컸다고 싹둑 잘라버려야 한 대요//
무던한 것일수록 오래 남는다고/ 팔다리 더는 흔들지 말라고 하네요//
아직도 시대의 그늘에 묻어가는 당신은/ 그러면 얼마나 행복한가요
<동상이몽> 꽃병이 꽃을 지배한다고 믿는 데는 자라기를 멈춘 꽃이 놓여 있기 때문
<불안한 외출>
방전의 끝에서/ 돌아가야 할 그 집까지/ 허둥대고야 말 23%
<진화의 트랙>
바닥 내리치고도/ 풀리지 않는 의문의 빗줄기가. 바지 밑단을 잡는다//
멈추려 해도 멈추지 못하는 비/ 돌던 운동장 몇 바퀴째인지를/ 나 자꾸 까먹는데/ 플라타너스잎에 머물던 큰 물방울이/ 이마를 탁탁 친다// 두 발등에 내리던/ 비 그쳤는가 싶었는데/ 어디가 시작인지 어디가 끝인지//잃어버린 내 우매를‘ 죽비인 듯 일깨운다
<아직도 기슭>
사람이 나무가 되고 싶은가 보다/ 그래서 나무도 사람이 되고 싶었던가 보다/ 우두커니 서 있던 사람은 제 혼자 나무를 닮고/ 길 잃을 리도, 길 버릴 리도 없는 나무는/ 제 자리가 좋다며 버티고 있다./ 걷지 않아도 걸을 수 있는 나무는/ 나무여서 좋다
<둥긂을 품다>‘느릿한 걸음이어야. 거미 가둔 풀숲 볼 수 있지
<들불>
땅에 꽃씨 떨구었더니/닫혀 있는 껍질이/열린다//
피는 얼굴 아슴아슴하다./ 얼어 있던 서랍 속 아지랑이가/단숨에 폭발한다
그대에게 주려고/꽁꽁 싸매 두었던 마음/활활 지천에 옮겨붙는다.
<집착> 3
감자탕집 점심상에/ 들깻잎 장아찌 올랐다./떼이지 않는 틈새/젓가락질로 을러
들깻잎 씹는데/혀 위에선 겉도는 입과 잎/푸른 것들 찰싹 붙어 있더니/더 질겨졌다.
<약풀>
모르면 잡초, 알면 약초/당신이 그렇다는 거다
(중략)
흩어져 있든지. 모여 있든지/알면 잡초, 모르면 약초/당신이 그렇다는 거다
<연애의 정석>
있는 데도 없다고 우기는 사람들 사이에서/나는 그냥 나대로의 존재인 걸요
<네모의 번지>
떼어내면 떼어낸 만큼/시간의 보풀도 함께 떨어질까 봐/저지 못해 그냥 두기로 한다
<천리향> -
이 어린 것 키워 향기를 얻으려면/ 햇볕의 맨살을 만지게 하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적셔주어야 해/ 긴 수고와 감내할 시간이 필요하지//
매일매일 사랑을 나누어 주다 보면/ 천리만리 퍼져갈 기쁨도 얻을 걸세//
향기로 긁는 등이 벌써 시원하다.
<길눈>
철 지난 기억의 길, 허락 없이 진압하려는데/ 무성해진 풀들이 일제히 머리를 든다// 팔다리 뭉개지 말고 예서 꺼지라며/ 발걸음을 가로막는다//길은 버려져 고독해진 지 오래다.
<출항의 꿈> 먼바다로 가기 위해 부력을 꿈꾼다
<버팀목>
레미제라블, 생의 첫 막에서부터 죽음은 절름거린다/ 그럴싸한 대개의 삶이란 해피엔딩이이어야 하니까/누구에게 한 사랑은 버팀목으로 남아야해/
‘코젯트, 너 하나 보고 살았다’는 말 한마디가/ 공연 끝난 무대에서 집까지 따라왔다.
<홍시처럼>- 전 시
스치는 연한 바람에도
미련 없이, 툭
떨어지려면
정수리 뜨거운 땡볕도
기품 있게
참아내야 한다
덜 떨어진 풋것은
움켜 쥔 손 놓지 않는다
게센 바람에도
저절로 떨어지려면
몸의 꼭지까지도
더 벌겋게. 더 물컹하게
달궈야 한다
<풍경을 찍다>
누구나 중앙을 고집하여 위치를 잡아도/ 산에서 들러리 나무들이/ 풍경의 주인공
<허술한 밥상>
하릴없이 단풍나무 흔들던 손이 /거머쥔 숟가락은/따뜻했다//
반성에 든 나도 이제는/붉어질 만큼 붉어졌으니/아름다운 추락을 고민해야 할
바로 그때인 것을
<마지막 성장통>
간절하게 소원하는 게 있으면/불쌍해 보일 때까지 빌어 보세요
<아하즈이 해시계>
중략
필드를 향해 날아가던 작고 하얀 공은/두 손의 욕망을 기도 속으로 굴립니다
제가 돌릴 수 있는 건 돌려 놓을게요/아픔을 깨뜨려서라도 돌려 놓을게요
제가 바라볼 수 있도록
열 칸 물린 해시계 그림자를 돌려주세요
하즈키야의 신음 들으신 그때처럼
<산 꽃>
길 없는 길가에서 나는 널 두고/보잘것없는 외발 바람에도
걷어차여 속상해던 너를/나, 용서의 눈빛으로 물끄러미 바라본다.
<잔불 바라보기>
불꽃에 매달려 흔들리면서 한참을 더 타려는 욕망이 마지막 등불을 본다. 암울한 예후에도 조금 더 살아달라는 희망으로 볼 부비는 살붙이들
<응시> 그분까지 미워지네. 도무지 찾기 싫은 그를 찾으라는 게 너무 싫네. 그런데 그가 양이었다. 말하시네 ‘얼마나 순했는데 그래! 그 어린 게 뿔이나 제대로 돋았겠어?’
그렇지만 밀어낼 수가 없네. 더 깊이 숨기만 바랐던 그가 나인 걸 나만 몰랐네. 나는 내 결점인 그가 지금도 밉네
<편파 방송>
어깨 쳐진 벚나무가 막무가내 피워댄 꽃의 무게 아래, 냉이가 산다. 길게 배 올린 목덜미로 저도 꽃노래 따라 부를 수 있다고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변두리 길가에서 낮게 살아가는이야기가 더 절실한 노래로 들릴 때 향기 그득 옮겨놓으면 지나는 발목들, 잔뜩 낮춘 팔다리로 그늘에 드러누워 꽃 피운 냉이의 자세는 편안하다. 또 다른 난청 지대로 안테나 세우러 가야한다고 간지럽게 떨어지면 꽃잎이 남기는 말도 천의 손 활짝 펼쳐 받아낸다.
하늘 두레박- 엘리베이트
<해설- 삶의 다의성과 거룩한 통속성의 시학>유종인. 시인. 평론가
<달랑 김치 하나 두고>
어스름 쑥국을
숟가락 들고 떠먹었다
제데로 맛 든
쓸쓸한 어둠이
아삭아삭 씹힐수록
외로움은 몰려오고
느릿느릿 웃는 당신은
쑥 짙은 향이 되어
목구멍을 넘는다
꿀꺽!
말라 있던 목이
아프다.
※평-음식에 대한 세심한 감각과 인상적 눈길. 음식과 마음의 관계를 하나로 도드라지게 반영, 쑥 짙은 향이 되는 마음의 음식으로까지 전환되는 계기를 만든다. ‘외로움’이라는 통속 정감이지만 존재 내부를 들여다보는 하나의 포털(입구 사이트) 구실을 하기도 한다.
<숨겨둔 고백>
허기에 뜨끈한 밥 터 담아주는 무료 급식소가 있다/ 한 끼 언덕만 한 밥/하루가 목구멍 같아서/ 욱여넣고 꾹꾹 씹어 삼킨다.
※평-솔직한 몸의 고백을 누군가를 향해 지향할 때 생겨나는 실천 공감의 채취이자 거룩한 세속의 자세이기도 하다. 살아있음의 뭇 생명들을 향한 연한 감정과 습습한 눈길을 가졌다는 점에서 공동체 의식의 습습힌 정서를 시적 언어로 잘 추슬러낸다.
<인공눈물>
어제 본 이런 것들이/ 하늘과 땅 사이 눈썹에 뜸뜸이 붙어/ 눈 뜨기 거북해졌다/ 물 묻은 거울에 비친 눈 벌리고/ 인공 눈물 명 방울 짜 넣고 나자/ 다시 새날 볼 준비를 한다/ 먼 하늘까지 맑아진 하루여서/ 날아가는 새 꽁지까지 보았으면 한다.
※ 평- 불가피한 현실의 소소한 관계적 상관물들을 해소해야 한다는 입장을 화자는 부정적으로 회피하지 않고 회피를 통해 타계될 일상의 불편함은 그리 많지 않을뿐더러 유예된 현실의 잉여분은 해소되지 않은 채 존재 주변에 적체된다. ‘새날 볼 준비’를 열어가는 준비 자세는 통속적 외부의 현실을 끌밋한 내면의 진정성으로 트여가고자 하는 일종의 세속적 각성이다 일상화된 혼돈의 현실을 돈오하고 생활 속 실천으로 접수해나가는 방편은 맑아진 하루라는 영원의쪽매를 획득한다.
<삶의 다의성과 거룩한 통속성의 시학> 평론가는 유종인 시인이었다.
최근 들어 속이 탁 트이게 평론해 준 시인을 만나 반가웠다. 시인의 격조 높은 성찰과 사물의 속성을 신선한 낯선 표현으로 그려낸 시에 걸맞게 적확하게 해설해 준 능력이 우러러보였다.처음 들어보는 어려운 낱말들이 있어 사전을 찾아보며 공부하는 재미도 있었다. 시학 공부에 많은 도움을 주는 책 한 권 얻어 부자가 된 기분으로 행복해진다.
<사전을 찾아 본 좋은 어휘들>
• 숨 튼 것- 숨을 받은 것이라는 뜻으로, 여러 가지 동물을 통틀어
• 끌밋한-모양이나 차림새 따위가 매우 깨끗하고 훤칠하다.
• 범박한-데면데면하여 구체적이지 못하고 범위가 넓다.
•기율 紀律-여러 사람에게 행위의 표준이 될 만한 질서.
• 돈오 頓悟-갑자기 깨달음. 소승에서 대승에 이르는 얕고 깊은 차례를 거치지 아니하고, 처음부터 바로 대승의 깊고 묘한
• 쪽매-얇은 나무쪽이나 널조각 따위를 붙여 댐. 또는 그 나무쪽이나 널조각. 목기(木器) 따위를 꾸미는 데 쓴다.
• 에스프리 [프랑스어]esprit-정신, 기지(機智)라는 뜻으로, 근대적인 새로운 정신 활동을 이르는 말. 특히 문학에서는 자유분방한 정신 작용을 이른다. 유의어-기지, 재치, 정신
• 궤적 (軌跡/軌迹)-수레바퀴가 지나간 자국이라는 뜻으로, 물체가 움직이면서 남긴 움직임을 알 수 있는 자국이나 자취를 이르는 말. 어떠한 일을 이루어 온 과정이나 흔적.
예)항공기의 비행 궤적.한국 서예의 궤적을 보여 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어떤 일정한 성질을 가진 점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도형. 주로 곡선이다. 유의어-역사, 자국, 흔적
• 너름새( 너그럽고 시원스럽게 말로 떠벌려서 일을 주선하는 솜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