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 베던 날 / 곽주현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넓은 들녘에 콤바인 굴러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논을 한 바퀴 돌아올 때마다 누런 알곡이 오지게 털려 나온다. 가벼워진 볏짚은 이제 제 몫을 다했다는 듯 논바닥에 드러눕는다. 길가로 트럭이 따라다니며 타작한 알갱이를 모아 담는다. 사람 손을 거의 거치지 않고 기계가 다한다. 조금 전까지 가득하던 논배미가 눈 깜짝할 사이에 텅 비워져 휑뎅그렁하게 보인다. 고개 숙인 이삭을 건드리며 지나가던 참새와 산들바람도 벌써 자취를 감췄다. 해마다 가을 이맘때가 되면 손으로 벼를 베던 분산한 시절이 문득 떠오른다.
오래된 어떤 가을날이다. 아마 50여 년 전쯤이었을 거다. 어머니와 나는 논둑에 서서 일할 채비를 하고 있다. 태풍이 올라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어 급히 논으로 나왔다. 강력한 비바람을 동반하는 것이어서 피해가 클 것이라 한다. 하필 벼 수확 시기와 맞물려 농민들의 걱정이 태산 같다. 모두 자기 일하느라 일손을 구할 수가 없다. 광주에서 학교를 다니다 마침 토요일이어서 고향 집에 내려왔다. 중 3, 고 1 하여튼 그 비슷한 무렵이다. 형제가 다섯 남매나 되었는데도 무슨 연유였는지, 집에는 나와 어머니 둘뿐이었다.
잘 왔다며 어머니가 애절하게 반긴다. 인사할 틈도 주지 않고 빨리 논으로 가자며 등을 떠민다. 우선 낫을 갈아서 시퍼렇게 날을 세웠다. 도착해 보니 주변 논들은 거의 다 비웠다. 맞바람이 칠 때마다 잘 여문 벼 이삭이 이리저리 크게 쓸리고 있다. 작업할 넓은 들을 보니 심란해서 잠깐 바라보고 있는데 어머니는 벌써 바쁘게 낫질하며 저만큼 나아가고 있다. 나도 몇 포기를 잘라 손에 쥐고 들어 올렸다. 제법 묵직하다. “올해 농사가 잘된 것 같아요.” 큰소리로 외쳤다. 대답 대신 흡족한 미소만 짓는다. 벼가 누렇게 익어 있으면 모두 다 잘 여문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이렇게 벼를 베어 봐야 풍년과 흉년을 가름할 수 있다.
잠깐 허리를 펴고 섰다. 바람이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짙은 회색 구름이 빠르게 달음박질친다. 하늘에서 금방 무엇이 쏟아질 것 같다. 마음이 급해져 다시 엎드려 열심히 낫질해 보지만, 저만치 앞서가는 어머니를 따라잡기 어렵다. 온 힘을 다해 베다가 잠깐 일어서서 아픈 팔을 잠깐 흔들고 있으면 그 틈에 또 금세 멀어진다. 모친은 태풍이 다된 곡식을 덮칠까 봐 허리 한 번 펴지 않고 쫓기듯 그렇게 앞만 보고 내닫았다. 늘 혼자 모든 일을 감내해야 해서 농사일에 이골이 났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어머니를 두고 치마 두른 남자라며 혀를 내둘렀다. 상머슴도 힘든 농사를 홀몸으로 다 짓고 있으니 그런 말 들을 만하다.
둘이서 쉬지 않고 베었지만, 남아 있는 면적이 훨씬 더 넓었다. 도저히 내일까지 못 끝낼 것 같다. 해 짧은 가을날이 점점 어두워져 갔다. 이미 상현달이 떠 올라 있다. 계속하기가 너무 힘들다. 그러나 그만하자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달빛에 의지해 더듬더듬 포기를 잡고 낫질을 계속해 나간다. 밤 9시쯤 되어서야 집에 가자며 어머니가 허리를 못 펴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섰다. 집까지 20여 분이 걸린다. 아무 말 없이 걷다가 중간쯤 왔을 때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구름에 가려 있던 달이 얼굴을 내밀었다.
이튿날도 새벽에 일어나 다시 작업하러 갔다. 나는 세 줄, 어머니는 다섯 줄을 맡아 맞은편 끝까지 베어 간다. 한두 포기를 잡고 낫질을 하는데 어머니는 서너 포기를 한꺼번에 베었다. 죽을 둥 살 둥 쫓아가도 뒤처지기에 안 되겠다 싶어 나도 세 포기를 거머지고 잘랐다. 힘은 더 들었지만, 속도는 빨랐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아 더 서둘렀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낫이 삐끗하는가 싶더니 왼손을 쳤다. ‘앗’하고 소리 지르며 주저앉았다. 붉은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가운뎃손가락 뼈마디가 허옇게 보인다. 오른손으로 잡고 눌렀지만, 피가 계속 솟아 나왔다. 어머니가 달려와 논둑의 쑥을 짓이겨 붙여도 피가 멈추지 않았다. 다급해진 그분은 낫으로 치마폭을 찢어 동여맸다. 그녀는 벤 손가락을 잡고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갑자기 손등으로 물방울이 뚝 떨어졌다. 비가 시작되나 보다 했다. 둘러봐도 아직 그런 기미가 안 보인다. 고개를 숙이고 내 손을 잡고 있던 어머니가 헛기침하며 괜찮냐고 묻는다. 빗방울이 아니었다. 모친 혼자서 남은 것을 끝냈다. 논둑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얼마나 미안하던지 지금도 얼굴이 뜨거워진다.
오늘도 상현달이 떴다. 그 상처는 흉터를 남겼다. 엷어졌지만 지금껏 지워지지 않고 있다.
첫댓글 폭풍우가 몰려오는데 못 다한 일을 다급하게 하려는 장면이 생생하게 느껴지네요.
흉터를 보면 그 때의 추억이 늘 또렷이 되새겨지겠어요.
어머니의 눈물이 뚝뚝.
먹먹합니다.
눈 앞에 그려져, 뭐라 댓글을 써야 할지 막막합니다. 글 고맙습니다.
중학생때 학교에서 농촌 일손 돕기로 보리 베러 다닌 적이 있었어요.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일이라 낫에 손을 베인 아이들이 있었거든요. 얼마나 놀랐던지 무서워 나는 보릿단 나르는 일만 했어요.
선생님 글 정말 좋아요.
고단한 어머니의 마음, 어머니를 바라보는 아들의 시선이 읽는 이를 울컥하게 하는 글입니다.
저도 중학생 때까지도 학교에서 노력봉사 명분으로 보리베기 갔었어요. 낫이 너무 무섭게 보여 아주 조금 잡고 했어요.
생생하게 쓰셔서 글로도 아픔이 전해옵니다.
선생님 글을 읽으면서 울컥했습니다. 그 당시 농촌의 풍경이 그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