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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심문이 다 끝나니 관리가 관리들에게 두루 이것을 알렸다. 여러 관리들이 의논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은 운명이 다 끝나지 않았으니 올 사람이 아니다. 관리들이 저승 명부를 잘못 살피고서 이런 실책을 한 것이니, 이것을 어떻게 처리하지.”
하니, 그 중에 한 관리가 거동이 점잖은 품이 마치 우리 선대의 왕 같았는데, 그가 사사로이 박생을 끌고 자리 뒤쪽에 가서,
“지금 너에게 떡을 줄 것인데 네가 만약 그 떡을 먹으면 다시는 세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하였다. 박생이 엎드려 절하고 땀을 흠뻑 흘리고 물러났다. 과연 한 상자의 많은 떡을 가지고 와서는 박생에게 먹으라고 하였다. 박생이 거짓으로 먹는 체하고 몰래 품속으로 모두 집어 넣었다. 머리를 들고 귀를 기울여 대전 위에서 의논하는 말을 들어보니 모두들,
“이 사람을 쓸 만하니 이곳에 두고 일을 맡겨 봅시다.”
하니, 한 관리가,
“운수가 아직 올 때가 아닌데 그릇된 것을 기정사실로 굳혀버리는 것은 또한 잘못이 아니겠는가.”
하며, 변론이 왔다갔다 반복되더니 드디어 판결을 내리기를,
“돌려보내는 것이 옳다.”
하였다. 그리고 한 관리가 한 통첩에 도장을 찍는 것을 보았다. 그 통첩에,
“박효산과 윤숭례는 당상관의 품계에 올려주고, 서복경은 안악 군수를 시키는 것이 옳다”
하였으나, 박생은 이것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박생이 나오려 할 때 우리 선대왕 같은 사람이 비단폭에다 글을 쓰고 구슬함을 열쇠로 잠가 붉은 비단 보자기에 싸서 박생에게 주면서,
“너희 나라 군주에게 전하라. 너희 나라 군주의 소문이 대단히 좋지 못하니 내가 정말 무안할 지경이다.”
하였다. 박생이 하직 인사를 하고 서함을 받들고 나왔다. 처음 도착했을 때 사람을 물 끓는 가마솥에 던져넣던 곳까지 나오니 처음 체포하던 옥졸이 박생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박생이 그 옥졸에게 따지기를,
“관에서 이미 나를 놓아 주었는데 네가 감히 마음대로 구속하여 방자하게 못된 짓을 거리낌없이 하는가.”
하였더니, 그 옥졸이 독살스럽게 말하기를,
“나는 문을 지키는 사람이다. 관의 증명이 없으면 나가지 못한다.”
하였다. 박생이 서함을 보이며,
“이것이 관의 증명이 아닌가.”
하니, 옥졸이,
“그것은 문을 나가는 것과 관계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관에 가서 물어 보겠다.”
하고 가더니, 한참 있다가 돌아와서 말하기를,
“이미 관의 승인이 있으니 너는 가도 좋다.”
하고는 하얀 삽살개 한 마리를 주면서 털이 많은 그 개를 따라 경계를 나가라고 하였다. 큰 강이 있는 곳에 이르자 삽살개는 날아가는 것 같이 뛰어 건너므로 박생도 몸을 날려 뛰어드니 강 복판에 빠지고 말았다. 그런데 무엇이 받아주는 데 마치 수레에 앉은 것처럼 편안하였다.
그리고 단지 바람 소리 물소리만 들리고 어디로 가는지 몰랐다. 그러다가 갑지가 눈을 떠 보니 자기 몸은 자리 위에 누워 있으며 아내와 자식들이 옆에서 울고 있고 친척들이 모여서 막 자기를 염하려고 모든 것을 갖추어 놓고 있었다. 박생이 정신이 아찔하여 고함치며 물건을 찾으면서,
“나의 옥함서를 잃어버렸다.”
하고, 또,
“박효산과 윤숭례는 모두 옥관자를 할 것이고, 서복경은 군수의 부절을 나눠 받게 될 것이니 내가 가서 알려주어야 한다.”
하면서, 문을 열고 달려가려 하였다. 처자들은 그가 헛소리를 하고 미쳐서 달아나는 줄 알고 뭇사람들이 그를 붙잡았다. 그리고 일주일을 지나서야 비로소 생생하게 자기가 겪었던 이야기를 죽 하였다.
대체로 박효산과 윤숭례는 의원이며 서복경은 사가 서거정의 서자였다. 나라에서 벼슬길에 서자 출신들은 벼슬하지 못하도록 제정하고 있었다. 박생은 또 평생을 서복경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있었으므로 마음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얼마 안 되어 연산주가 특별히 박효산과 윤숭례에게 절충장군의 직을 제수하였다.
서복경은 궁녀의 연줄로 훌륭한 반열에 끼이게 되어 안악 군수가 되었으니 그 말들이 모두 증험이 있었다. 옥함서는 흡사 연산군의 주색에 빠지고 음란함을 경계한 말 같으나 내내 무슨 말을 하였는지 알지 못한다. 박생의 이름은 세거로 지금은 내의원에서 벼슬하고 있는데, 의술이 아주 정통하다고 세상에 이름이 나 있다. 일찍이 그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 매우 상세하여 내가,
“그대의 말은 마치 불교에서 세상을 속이기 위한 말과 똑같다. 괴상한 말과 이단을 말하는 것은 군자가 하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저 의원들이 관직에 올라 영화를 누리는 것과 서자가 분수에 넘치는 직분을 무릅쓰는 따위는 진실로 혼조(연산군)의 문란한 정치였으니, 거기에서 무슨 운수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있으리오. 모든 인간의 이득과 손실, 화와 복, 업(을 경영하고 구하기를 도모하는 따위는 모두 그 사람의 잘하고 못함, 어리석거나 간사한 데에 달려있는 것 같으나 사실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전생에서 미리 정해진 운수인 것이다. 때가 되어 이 운수가 펴지게 되면, 반드시 신묘하게도 일들이 척척 들어맞아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이 운수를 타서 성공하게 하는 것인데, 성공해서 사람들은 이러한 것도 모르고 망령되게 그 사람의 지력이 어떠하다고들 하면서 마음을 피로하게 하고 정력을 소비해서 죽을 때까지도 그치지 않으니, 가소로운 일이다. 그러나 성하고 쇠하고 갚고 받는 것이 사람의 선함에 달려있는 것은 정칙이다. 이 정칙을 가지고 미루어 보면 운수라는 것도 옮길 수 있는 것이다. 저 의원과 서자들이 얻었던 것이 눈에 차지도 않았으며 연이어 그것도 잃고 말았으니, 어찌 함부로 엿보고 훔쳐서 자기 분수를 돌아보지 않은 소치가 아니겠는가.”
하였다.
○ 강릉에 성은 이씨이고 이름은 전손이라는 선비가 있었다. 집 담장 사이에 큰 뱀이 구멍을 뚫어놓고 때로 뜰에 나와서 꾸불꾸불 서리고 있었는데 차저는 고문에 자저이다. 그 모양이 이상스러웠다. 이전손이 보기 싫어 지팡이로 때려 쫓아 버렸다. 뱀이 쫓겨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서너 번을 거듭하니, 이전손이 화가 나서 담장 구멍을 파헤치고 기어이 쫓아버려 뱀이 밭 사이 풀을 쌓아둔 무더기 속으로 들어갔다.
이전손이 그곳에 불을 질러 풀무더기를 태워버렸다. 생각하기를 불이 뜨거우면 뱀이 반드시 딴 곳으로 달아날 줄 알았으나 뱀이 그 속에 엎드려 있다가 타 죽고 말았다. 그리고 조금 있으니 뭇 뱀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어 빙빙돌다가 목을 들고 그 불에 타 죽으면서 마치 비분한 뜻이 있는 듯하더니 무려 수백 마리의 뱀들이 불에 들어가 죽었다. 이전손이 그제서야 그 신령스러움을 깨닫고는 놀라고 뉘우쳤다. 이로부터 가산이 날로 줄어들었다.
이전손이 매양 말하기를,
“이것은 뱀을 태워 죽인 보복이다.”
하였다. 그 뒤에 이전손이 과거에 급제하기는 했으나 벼슬은 크게 못하였다. 뱀이 비록 독물이지만 그것에도 남이 뺏지 못할 천성이 있어서 큰 뱀은 군장이고 뭇 뱀들은 신하와 종들인 것이다. 신하 뱀들이 임금의 재난에 와서 죽는 것을 마치 자기 집에 돌아가듯이 쉽게 하니 전횡의 의사인들 어찌 이보다 훌륭할 수 있으리오.
큰 뱀이 죽으면서 달아나지 않은 것은 정말 모를 일이다. 뱀들도 나라를 위해서 죽고 영토를 지키는 의리가 있어서 그러했는가. 아, 관저 새의 부부와 승냥이와 수달의 부자와 벌과 개미의 군신이 각각 그 한 가지씩의 의리를 지켜 타고난 천성을 저버리지 않았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 되어서 저들 미물보다도 못한 점이 많으니 어찌 통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송원의 어떤 선비가 한 산을 얻어 집을 지으려 하였다. 처음 그 터를 닦아 흙을 두어 자쯤 삽으로 파니 흙과 돌 사이에 거북 같은 여러 벌레들이 한군데 엉켜 있는데, 깊이 팔수록 더욱 많았다. 그 벌레들을 모두 잡아 죽이고는 집을 다 짓고서 그곳으로 이사해 갔다. 1년이 못 가서 그 선비의 아내가 갑자기 미친병이 나서 귀신 같은 말로 선비에게 말하기를,
“네가 어떤 사람이기에 감히 우리 사는 곳을 빼앗아가며 우리 종자를 모조리 죽였는가. 우리는 땅속의 금돼지라서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데 사람이 도리어 우리를 이렇게까지 몰살시키는가.”
하니, 그 선비가 놀라고 괴상히 여겨 묻기를,
“네가 금돼지라면 내가 너희 족속들을 죽인 일이 없는데 어찌 그런 말을 하는가. 네가 내 아내를 병들게 하니 사실은 너희들이 사람에게 해독을 끼치는 것이다. 내가 너희들의 집을 모두 파헤쳐서 가차없이 다 죽여버릴 것이다.”
하니 아내가 말하기를,
“너에게 잡혀 죽은 거북 같은 벌레가 모두 나의 종들이다. 나는 깊이 황천 밑에 살고 있으니 비록 온 나라의 군사들을 다 동원해서 손끝이 닳도록 파헤쳐도 어찌 그 단단하고 두터운 것을 다 통하도록 판단 말인가.”
하였다.
선비가 공손하게 사과하고 말하기를,
“저승과 이승이 같지 않으며 깊은 곳과 얕은 곳이 서로 다른데 어찌하여 이다지도 서로 방해를 한단 말이오.”
하니, 그 아내가 말하기를,
“이미 우리 무리들을 죽였으니 어찌 다시 용서하겠는가.”
하였다. 말이 끝나자 아내의 병이 더욱 심해져 죽고 말았다.
선비가 두렵고 겁이 나서 가족들을 데리고 이사하고 말았다. 그리고 몇 년 되지 않아 병이 식구들에게 퍼져 결국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모두 죽어버렸으니 매우 괴상한 일이다.
옛날 송나라 장군 조빈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집이 너무 허름해서 자제들이 수리하도록 청하였다. 장군이 말하기를,
“지금은 한 겨울인 만큼 담장이나 기왓장 사이에 벌레들이 칩거하고 있을 것이니 그들의 생명을 해쳐서는 안 된다.”
하였다. 어진 사람들의 마음씀이 이러하여야만 옳은 것이다. 그런데 저 선비는 거북 같은 벌레를 모두 다 죽였으니, 하늘이 낸 생물들을 거의 표독스럽게 죽여버렸던 것이 아닌가. 생물들의 원한에 대한 갚음이 이치상 없을 수 없다. 예
를 들면, 수후의 사주와 공유의 거북과 인 같은 것을 이루 다 거론할 수 없다. 수후가 뱀이 상처를 입은 것을 보고 약을 발라 치료해 주었다.
그 후 어느 날 뱀이 명월주를 물고 와서 보답하였다. 진 나라 공유가 거북을 샀다가 다시 놓아 주었다. 그랬더니 거북이 왼쪽을 돌아보면서 사라졌다. 공유가 봉후가 되어 금구를 만들려 했더니 거북의 모양이 삐뚤어지기를 세 번이나 하였다. 그 거북은 흡사 자기가 살려주었던 거북과 비슷하였다.
○ 옛날에 한 재상이 남도의 관찰사로 갔는데 그는 성품이 몹시 엄격하여 사적인 요구에는 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뭇 고을들이 엄숙한 풍조가 있었다.
화산(안동)의 아리따운 계집이 재상과 정이 꽤 두터웠으나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듯 담담하게 보였다. 세숫물을 떠오고 소제를 맡아 보는 기생들이 조금만 잘못하여도 용서하지 않으니, 고을 기생들이 모두 걱정하였다.
아리따운 계집이 기생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저 놈의 영감을 한 번 욕보일까 보다.”
하니, 기생들이,
“어떻게 욕을 보인단 말인가.”
하고 물었다. 그 계집이,
“한껏 술을 마실 때 세숫대야에다 회는 세수하는 것이고, 잡은 세수하는 그릇이다. 술을 가득 부어서 욕을 보이겠다.”
하니, 기생들이,
“네 약은 너이다. 가 정말 그렇게만 한다면 우리들이 술잔을 받들어 너의 장수를 빌겠다.”
하였다. 그 계집이,
“두고 보기만 하라.”
하였다.
봄날 밤에 백옥 같은 달이 휘장 사이로 보여 잠을 자다 잠깐 열고 보니, 꽃 그림자는 창문에 걸려있고 원앙금침은 훈훈하게 따스하여 정과 경치가 엉켜 있었다. 그때 갑자기 창밖에서 가벼운 신발 소리가 나고 또 가벼운 기침 소리도 들렸다. 기침을 하다가도 억지로 참고 하는 것이 마치 주저주저하며 방안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재상이 그 계집을 흔들어 깨우고,
“밖에서 소리나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니 계집이 귀를 기울여 듣더니,
“꼭 우리 어머니 기침 소리 같습니다.”
하였다. 재상이,
“한 번 나가보라.”
하여 계집이 나가서 한참 있다가 돌아와 문을 닫고,
“늙은이도 참 쓸데없는 일을 하지.”
하고는, 원망이 채 가시지 않은 듯 중얼거리는 폼이 마치 성난듯이 보였다. 재상이 무슨 영문인지 캐물었다. 계집이 고개를 숙이고 수줍어 하는 태도로,
“무식한 시골 노파라 사또에게 아뢸 것이 못 됩니다.”
하였다. 다그쳐 묻자, 천천히 말하기를,
“시골에서는 봄과 가을이면 신을 모시는 풍속이 있어서 무당들이 이웃들을 모이게 하는데 마침 집에서 담근 술이 아주 좋습니다. 관찰사께서 맛볼 만하지는 못하지만, 밤이 아름답고 관찰사께서도 심심하기도 하시겠고 아전들도 모두 흩어져 고요하고 인적이 없으니, 사또에게 한 잔 올렸으면 하는 것이 천한 정성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마음은 진심이지만 일이 매우 외람된 것 같기에 꾸짖어 보냈습니다.”
하였다. 관찰사가,
“괜찮다. 네가 어찌 그리 싫어하는가. 빨리 가서 데려와라. 빨리 가서 데려와.”
하고 재촉하였다. 계집은 사양하는 체하여 사또의 뜻을 더욱 굳게 하였다. 계집이 거짓으로 나가 늙은 어미를 부르는 척하고 낮은 소리로 사또에게 말하기를,
“들고 온 것이 단지 한 개의 술통뿐이고 술잔은 없습니다. 밤이어서 그릇은 모두 부엌에 치워 두었습니다. 지금 옥잔을 꺼내려 하면 시종들이 모두 일어나게 될 것이니 남들을 번거롭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새로 사온 깨끗한 세숫대야가 탁자 위에 있습니다. 그렇게 더러운 것은 아니지만 그것으로는 너무 공손하지 못하오니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니, 관찰사가 기뻐하며 말하기를,
“질그릇에 탁주라는 말도 있는데 이러한 시골이고 보면 놋 세숫대야가 질그릇 탁주보다도 사치스럽다.”
하고는 술을 따르라고 재촉하였다. 두 차례 마시고 나서 하는 말이,
“옥동서와 금파라 모두 잔의 이름이다. 같은 잔들보다도 좋다.”
하고, 이어서 계집에게,
“제발 누설하지 말라.”
하고 부탁하였다. 물론 이 계집이 일찍부터 계획한 일인 줄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기생들은 개미떼처럼 벽에 붙어서 숨을 죽이고 창문을 통해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고을 원이 어떤 일로 책망당할 일이 있어 성적 심사에서 하의 하등급을 받게 되었다. 원이 이 계집을 불러 말하기를,
“만약 네 힘으로 나의 등급 문제를 해결해 주면 한 살림 넘도록 톡톡히 보답하마.”
하니, 계집이 사례하며,
“마음을 다해 보겠나이다.”
하였다.
심사가 있던 날 저녁에 계집이 문틈으로 몰래 듣고 있었더니, 과연 그 고을 원을 하등에 두려고 하는 것이었다. 계집이 병풍과 휘장 사이에서 갑자기 신음소리를 내면서 마치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형상을 하였다. 관찰사가 몰래 변소에 가는 척하고 나와서 계집의 등을 쓰다듬으며,
“무슨 병이 그리 심하지.”
하고 물으니, 계집이 노하여 답하기를,
“병이 아닙니다. 우리 고을 원이 미치광이 취급을 받는 것이 서러워서입니다. 옛말에도 있으니, ‘사람을 사랑하면 그 집 지붕의 까마귀까지 사랑한다.’ 하였습니다. 하물며 우리 고을 원님이 하등이 되는 것을 보았음에 있어서이겠습니까. 어지신 어른이 한결같이 이 천첩을 보아서라도 한번 봐주시지 않으시렵니까.”
하고, 관찰사의 귀에 대고 속삭이기를,
“일이 위급하니 다시 풀어 놓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천첩의 생사가 여기 달려있나이다. 천첩이 다행하게도 사랑하시는 은혜를 입었는데 어찌 뒷날까지 길게 누릴 단 한 번의 혜택도 주지 않으시렵니까.”
하니, 관찰사가 다시 한 번 생각하며 말하기를,
“이미 보좌관들이 결정한 것이니 어찌 한단 말인가.”
하였다. 계집이 울며 원망하고, 이윽고 두 다리를 관찰사의 어깨에 올려놓고 목을 조르면서,
“늙은이에게 형틀을 씌운다.”
하니, 관찰사가 웃으며,
“형틀치고는 좋구나.”
하며, 승낙하고 나가서 그 고을 원을 중의 중등급을 매겼다. 관찰사는 후일 정승에까지 올랐으며 풍채와 도량도 상당히 있었다. 심하구나. 요염한 여자가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 조그마한 여자가 허다하게 간교한 꾀를 감추고, 마치 벌레가 물건을 갉아 먹듯이 하여 매끄러운 살결은 뼈까지 녹이고 마는 것이다. 그리하여 단단한 사람을 솜처럼 약하게 하고 강한 사람을 기름처럼 부드럽게 하고, 엄한 사람을 흐리멍덩하게 하고, 힘써 일하는 사람을 완만하게 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우둔하게 하며, 명석한 사람을 혼미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리하여 자애로운 사람은 자애를 잃게 되고, 효도하는 사람은 효도를 잃게 되며, 충성을 해치고 신의를 빼앗아버리며, 친우을 해치고 형제간의 우애를 끊어버리는 것이 모두 계집의 요염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저 황하를 뛰어 건너는 용기, 눈을 후벼내는 횡포, 칼날 앞에 맞닿아서도 눈을 잠깐도 깜박거리지 않는 것은 모두 기개가 심히 장한 것이고, 백만 군사를 거느리는 장수나 천자를 보필하는 재상들은 말하고 웃으면서 사람을 죽여도 사해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 위엄이 매우 무거운 것이다.
그러나 모두 침상의 베갯머리에서 달콤한 부인의 말에 제재를 받고 마음이 달라져서 자신을 해치고 집안을 망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의리와 예절을 지키며 사욕을 버리지 못하면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이다.
모든 천지 만물은 일정한 운수가 없는 것이 아니니, 진실로 지혜나 어떤 계획으로 이것을 바꾸어 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힘을 용납하지 않으면서도 사람이 하는 대로 따르는 것이니 스스로 끝까지 밀고 나아가서 궁진함이 없는 것도 이치인 것이다.
공자께서 운명에 관해서는 드물게 말하였고, 정자가 소강절의 술수를 배우지 않았던 것은 일정한 운수와 운명이 없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사람의 노력이 폐해지는 것을 싫어해서이다. 말하기를,
“명을 모르면 군자가 될 수 없다.”
하였고, 또,
명 아닌 것이 없으나 순순히 그 정당한 명만을 따르는 것이다.“
하였으니, 진실로 일정한 명이 있는 것이다. 말하기를,
“천도는 선한 자에게 복을 주고 음란한 자에게 화를 내린다.”
하였고, 또,
“화와 복은 자기가 스스로 구하지 않는 것이 없다.”
하였으니, 이 말은 화와 복이 옮겨가는 이치를 말한 것이다.
또 말하기를,
“교만한 것은 손해를 초래하고 겸손한 것은 이익을 받게 된다.”
하였으니, 곱하거나 제하고, 가고 오는 이치는 또 그림자와 메아리가 서로 어긋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소강절의 원회ㆍ운세의 학설과 모란이 성하다가 없어진다는 시초점은 부정공이 서경 유수로 있을 적에 모란이 만발해 있었다. 그때 문로공 사마단명과 소선생을 불러 함께 모였다. 앉았던 손님이,
“이 꽃이 언제 모두 시들겠습니까.”
하니, 소선생이 시초점을 치고 말하기를,
“이 꽃들은 내일 오시에 모두 없어질 것이다.”
하였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