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전설
임병식 rbs1144@daum.ner
꽃은 어떤 꽃이나 아름답다. 꽃송이가 크거나 작거나 두루 아름다운 화형(花形)을 하고 있다. ‘그래, 그렇게 생길 수밖에 없겠군’ 하고 고개가 끄덕일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 보면 기막힌 조형미를 갖추고 있다. 거기다가 색색이 색깔도 다양하게 자기만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드러낸다. 여름이 한창인 요즈음은 어디나 흐드러진 꽃들이 성찬을 벌리고 있다. 자미화 능소화 다알리아 접시꽃 백일홍 등이 절정을 구가하고 있다. 그 사이로 키 낮추어 피는 달개비 채송화 메꽃 맥문동도 조화를 이룬다. 꽃은 봄에 많이 피는 것 같지만 실상은 여름에 피는 꽃이 많다. 그래서인지 이즘엔 화단은 물론이고 들녘에도 꽃들이 넘쳐난다. 보기에 꽃들은 꽃대며 꽃받침, 꽃잎과 꽃 수술 모두가 확실하게 자기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자기다운 개성을 한껏 자랑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피어나는 꽃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피어나 함께 어울어져 사는 것을 생각하면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꽃은 이름이 있고 꽃말이 있고 전설이 있다. 그것을 상기하며 감상하면 새로움이 느껴진다. 마치‘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말처럼 느낌이 새로워진다고나 할까. 최근에 나는 그러한 꽃말, 꽃에 얽힌 전설을 찾아보게 되었다. 찾던 중에 가장 눈에 꽂힌 것은 무궁화이다. <식물도감>에 보니 무궁화는 도합 37종이다. 흰 꽃에서부터 붉은 꽃, 그리고 단 잎에서부터 접꽃등 다양하다. 이름도 계월향 향당심 에밀레 한서등 여러 가지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어렸을 적에 나라꽃 무궁화의 이름을 몰랐다. 그냥 별칭으로 불리는 ‘눈에 피 꽃’이라고만 듣고 자라서 그렇게만 알았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시기는 해방은 되었으나 워낙에 시골 벽촌이다 보니 올바른 이름을 모르고 자랐다. 일제가 악의적으로 민족의식을 말살하기 위해 ‘눈병’을 옮기는 꽃이라고 퍼트린 것을 모르고 어른들을 따라 '눈에피 꽃'라고 했다. 이것은 어느 중심에 심어진 적은 없었다. 한갓 진 밭둑이나 울타리 가에서 자생하며 꽃을 피웠다. 그것을 보면서 보기에 꽃이 청초하고 예쁜데 누구 한 사람 신경 써 가꾸지 않는 게 의아했다. 나중 국민학교 들어갈 무렵에야 이름이 무궁화임을 알았다. 이 무궁화는 전해오는 전설도 슬프고 안타깝다. 먼 옛날 북쪽지방에 아름다운 여인이 살고 있었단다. 그 여인은 얼굴도 아름다운데다 문장과 가무에도 뛰어났다, 한데 여인의 남편은 앞을 보지 못한 장님이었다. 그렇지만 여인은 남편을 극진히 사랑했고, 돈 많고 권세 있는 사람이 꾀어도 흔들리지 않았다. 어느 날 그 지방을 다스리던 성주가 여인의 미모와 재주를 탐해 유혹의 손길을 보냈다. 흔들림이 없자 성주는 여인을 잡아들었다. 어떻게든 마음을 돌려 보려했으나 말을 듣지 않자 성주는 여인을 죽여 버렸다. 여인은 끌려갈 때 이미 각오하고 아는 사람에게 만약 자기가 죽게 되면 사신을 자기 집 마당에 묻어달라고 부탁했다. 부탁한대로 묻어주었더니 그 자리에 나무가 솟아났고 그것이 꽃을 피었는데 사람들은 이 꽃을 울타리 꽃이라고 했다. 애잔한 이야기인데 그래서 무궁화는 울타리 가에서 많이 피었던 것일까. 한편, 여름 꽃 팬지는 세 가지 꽃을 피운다. 노란색과 자주색, 빨간색이 그것이다. 노란색 팬지꽃은 사람이 웃는 모습 같기도 하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 표정 같기도 하다. 이것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살아 도로변 화분대에 많이 이용된다. 핀지는 프랑스어로 ‘생각 한다’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인간의 내면을 표현한 화가 루소는, 어느 여인에게 팬지의 그림과 함께 “당신에게 나의 모든 팬지를 바칩니다”라는 편지를 썼다고 한다. 이 꽃에는 세 가지 전설이 전해온다. 그리스 민화에 따르면, 이 꽃은 처음에는 흰색이었는데 사랑의 신 제우스가 연모하는 한 시녀의 가슴에 화살을 쏜 것이 그만 실수로 길가의 재비 꽃을 쏘았다. 그 때의 상처로 3자기 색을 지닌 팬지가 생겼다고 한다. 두 번째는 사랑의 천사 큐피드가 쏜 화살이 하얀재비 꽃의 꽃봉오리에 맞아서 3가지 색의 팬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지상으로 내려온 천사가 재비 꽃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놀라 세 번 입맞춤을 하여 세 가지 색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사색,’ ‘나를 생각해 주세요’라는 꽃말을 지닌 이 꽃을 유럽에서는 발렌타인데이에 선물하는 꽃으로 꼽는단다. 자귀나무 꽃은 마치 배드민턴공처럼 생겼다. 닭털 같은 수술이 부채 살처럼 펼쳐져서 꽃이 핀다. 이 자귀나무는 소가 가장 좋아하는 특식메뉴다. 이 이파리를 만나면 소는 코뚜레가 늘어지는 아픔을 겪을지언정 기어이 한입을 베어물고 자리를 떠난다. 이것은 부부사랑을 확인하는 꽃이다. 옛날 어느 마을에 황소같이 힘이 센 두고 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이 살고 있었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가난한 삶이 풀리게 되었다. 그는 결혼을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주위에는 마땅한 처녀가 없었다. 그는 어느 날 산속에서 고개를 넘다가 꽃들이 만발한 집을 발견했다. 그는 꽃에 취하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집에 들어섰다. 그때 마침 부엌문을 열고 한 처녀가 나왔다. 그는 보는 즉시 사랑을 느끼고 처녀에게 아내가 되어 달라고 청했다. 그리하여 승낙을 받아낸 그는 결혼을 앞두고 열심히 일을 하였다. 그러던 중, 읍내로 장을 보러간 두고는 그만 과부의 유혹에 빠져 며칠 집을 비우게 되었다. 두고의 아내는 남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하여 백일기도를 했다. 백일이 되는 날 신선이 나타났다. “언덕위에 피어난 꽃을 겪어다 방안에 꽂아 두거라.” 두고의 아내는 신선의 말대로 꽃을 꺾어다 방안에 꽂아두었다. 밤늦게 돌아온 두고는 방안의 꽃을 보고 그 꽃이 결혼할 때 자기가 아내에게 겪어주었던 그 꽃임을 알고는 아내의 사랑을 다시 깨닫고 더욱 열심히 살게 되었다. 그 꽃이 바로 자귀나무 꽃이었다. 이렇듯 꽃들은 꽃말과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꽃을 그냥 무심히 보아 넘길 일은 아니다. 찬찬히 바라보고 감상하며 꽃말과 전설까지 새겨본다면 풍미가 더해지지 않을까. 제 철을 만나 흐드러지게 핀 꽃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2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