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그때 선지식이 손을 잡고 이끌어 다시 좋은 길로 인도하여 안전하게 해주고는 또 말하였다. ‘딱한 사람아, 다음부터는 절대로 저 길로 가지 마시오. 저 길로 들어가면 좀처럼 벗어나기 어렵고 목숨도 잃게 됩니다.’
이 길을 잃었던 사람은 이에 감동하였다.
8-8 헤어질 때 선지식은 또 말하기를, ‘만약 길가는 사람을 보거든 친지거나 아니거나,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간에 저 길에는 여러 가지 사납고 독한 것이 많아서 목숨을 잃는다고 말하여 그들로 하여금 죽음의 길로 들어서지 않게 하라’ 고 하는 것과 같다.
길라잡이 - 일찌기 출가한 김 시 습은 금강산을 찾아 “산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하는 것은 사람의 떳떳한 정인데 나는 산에 올라서도 울고, 물에 다다라서도 우네.“
라고 하며 대자연 앞에 자기의 무력함에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마치 길 잃은 나그네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일체중생은 누구나 다 불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 세상에는 선한 이도, 악한 이도, 지혜로운 이도, 어리석은 이도 있지만, 사람이 어떤 경계에 있든 간에 부처의 씨앗은 다 갖추어 있다.”
고 하셨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미혹에 빠지든 태산같은 번뇌가 기승을 부리든 생명이 살아 있는 동안 깨달음에 도달 할 수 있다는 이아기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대자연 앞에, 또는 갑자기 닥친 시련 앞에 무기력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가 춥다 덥다 하면서 맞이하는 계절의 변화에 옛 사람들은 여름이 시작하는 하지가 되면 만물이 시드는 음의 계절의 시작이라 보았으며 겨울에 접어드는 동지를 맞으면 뭇 생물이 생동하기 시작하는 양의 계절로 보았습니다. 요즘 사람들처럼 자연을 정복하는 대상을 삼는 것이 아니라 대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서 있는 땅 속만 보더라도 수많은 물줄기가 지나가고 있기에 그 줄기를 찾아 끌어 올리면 무진장의 필요한 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철이 바뀌는 이치조차 모르는 철-부지(不知) 인생을 살아가는 것 이고 길 잃은 나그네처럼 미로의 세계를 헤매는 신세입니다.
그러면 법화경의 방황하는 비유설화를 하나를 소개합니다.
옛날 인도에 돈이 많은 장자가 살았는데 그의 아들 궁자(窮子)는 아주 어릴 때 길을 잃어 걸식하는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자기 집인 장자의 집에 이르러 걸식을 하였는데 아들의 모습을 보고 장자는 기뻐하여 서둘러 집에 들어오라고 하였지만 장자가 자기 아버지인 줄 모르고 자기가 있을 만한 집이 아니라 생각하여 멀리 도망을 갔습니다. 장자는 이웃 마을의 허름한 두 사람에게 부탁하여 궁자를 찾아 셋이 함께 장자의 집에 일꾼으로 기거하도록 하였으며 장자도 허름한 차림으로 옷을 갈아입고 아들과 같이 생활하며 이야기를 나누며 오랫동안 지내며 아들의 마음을 잡았습니다.
지장경에서는 지장보살이 큰 자비를 갖추어 죄고중생을 구출하고 악도에서 길이 벗어나 다시는 그 길을 밟지 않게 한다. 이것은 길 잃은 사람들이 험한 길로 잘못 들어갔을 때 선지식을 만나서 이끌려 나와 다시는 돌어가지 않게 되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위의 설화에서 보는 장자나 지장경에서 말하는 선지식이란 바로 죄고중생을 구제하는 또 다른 지장보살이라 할 수 있으며, 길 잃은 나그네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분이 성자(聖者)만은 아닙니다.
이웃과 더불어 열린 마음으로 수행 정진하며, 선지식 법안 스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안심정사 법우님들이 모두 그러한 성자(聖者)입니다.
조선시대에 임백호(林白湖)라는 관리가 있었지요 어느 날 그가 말을 타고 이웃 마을로 이동하려 하자 마부가 말했다.
“나리, 나막신과 가죽신을 짝짝이로 신으셨습니다.”
그러자 임백호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웃으며,
"하하... 괜찮다! 길 오른쪽에서 보는 사람은 내가 나막신을 신었다고 할 것이요! 길 왼쪽에서 보는 사람은 내가 가죽신을 신었다고 생각 할 것이다. 신경 쓰지 말고 출발하자!"
임백호처럼 남의 이목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지장경 독송과 함께 정진하며 긍정의 마음으로 오늘을 시작하시는 안심정사 법우님!
우리는 할수 있어 ! 정말 잘돼 ! 모두 잘돼 ! 더 더 더 잘돼 !
* 경주 기림사 김 시 습(호-매월당) 초상화와 김시습 사리 * 경주 기림사 천수천안 관세음 보살상 * 불우한 천재 스님 김 시 습(법호 - 설잠) 금오신화는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로 널리 알려져 있다. 중고등학교시절 국어시간에 고전소설을 배우며 누구나 익히 들어왔던 유명한 책이다. 그러나 우리는김시습의 금오신화, 김만중의 구운몽, 박지원의 열하일기, 허균의 홍길동전 하면서 제목과 작자 이름만 달달 외우던 시절이 있었지만, 문학에 깊은 관심과 조예가 없다 해도 우리의 고전문학을 아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데 유익하리라 생각된다.
문학이란 당대의 현실을 당대의 언어로 진실 되게 표현하는 것이 작가들의 임무이기 때문이며, 그러한 작품들을 통해 후세대들은 전대의 문화와 사회상을 알게 되며 그들의 삶을 통한 체험을 통해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데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김시습이 살았던 15세기는 유교가 지배적인 사상이었기에 불교와 도가의 사상을 넘나들었던 그가 당시의 사대부들에게 멸시와 핍박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어지럽고 모순된 현실정치에서 떠나 출가하여 자유로운 방랑생활을 하였지만 그의 의식은 늘 현실에 머물러 있었으며, 그가 실현하고자 했던 이상이 어그러진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고뇌하였던 종교인이며 지식인이며 사상가였다.
그는 여러 곳을 떠돌며 숱한 시구와 함께 글을 남겼는데, 금오신화는 그가 30대 때 7년을 머물렀던 경주 남산의 한 봉우리인 금오산의 산사에서 쓰여 졌다고 한다. 그가 스물 한 살 되던 해에 세조의 왕위찬탈이 있었고, 그러한 정쟁 속에서 미친 중의 행색으로 세속을 떠났던 그가 십여 년이 지난 후 금오신화를 지은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는 매우 불운한 삶을 살았던 사람으로 열 다섯의 나이에 그의 맹모같았던 어머니가 죽었고, 이후 남효례의 딸과 결혼하였으나 이후의 내용들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그 결혼생활이 오래가지 않았다는 사실과 그가 마흔이 훨씬 넘어 환속했을 때 다시 재혼하였으나 곧 아내가 죽어 다시 방황을 거듭하다가 세속을 등졌다는 이야기뿐이다.
어렸을 때 천재소리를 들으며 장차 나라의 큰 일을 하리라 뜻을 품었던 사람이 졸지에 자신의 큰 뜻과 이상이 무너지고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모순 투성이의 세상을 바라보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짐작이나 할 수 있으랴!
어찌되었든 금오신화에는 다섯 편의 소설이 실려 있는데, 소설에 단종의 손위(遜位)와 수양대군의 찬탈을 바라보는 김시습의 시각이 배어 있다고 보았다.
‘만복사저포기’ 에서 여인의 화신이 양생을 끝까지 받들겠다고 약속한 것이나 ‘이생규장전’ 의 최 낭자가 정조를 지킨 것은 김시습이 세종의 은혜에 보답하고 세조 정권에 지조를 팔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 된다. ‘취유부벽정기’ 에서는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긴 기준의 딸은 단종을 가리키고, ‘남염부주지’ 에서 박서생이 염라왕의 다음 직책을 맡는 것은 찬탈자 세조를 저승에서나마 처단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 된다. ‘용궁부연록’ 에서는 한씨(韓氏) 성을 가진 선비는 작가 자신을, 용왕은 세종을, 용녀는 문종과 단종을 가리킨다고도 말한다.
모두가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고, 용궁을 오가며, 남염부주를 다녀오는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상세계를 그리고 있다. 그의 소설에서 주인공은 귀신이거나 신선이며 초월자이다. 그는 소설에서나마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이루고자 했던 것일까?
그가 당시의 분위기에서는 상상조차 어려웠을 판타지같은 이야기를 쓰면서 어떤 생각들을 했을지... 우리들은 그저 불행한 시대를 고뇌하며 절망하며 다만 글을 통해 자신을 표현했던 한 특별한 사상가, 철학자, 문학가의 일면을 짐작해볼 뿐이다.
김시습의 '나의 삶(我生)'
我生旣爲人 (아생기위인) : 나는 이미 사람으로 태어났네
胡不盡人道 (호불진인도) : 어찌 사람의 도리를 다하지 않으리오.
少歲事名利 (소세사명리) : 젊어서는 명리를 일삼았고
壯年行顚倒 (장년행전도) : 장년이 되어서는 세상에 좌절하였네.
靜思縱大뉵 (정사종대뉵) : 가만히 생각하면 너무 부끄러우니
不能悟於早 (불능오어조) : 어려서 깨닫지 못한 탓이네
後悔難可追 (후회난가추) : 후회해도 돌이키기 어려워
寤벽甚如도 (오벽심여도) : 깨닫고 보니 가슴이 방아 찧듯 하네.
況未盡忠孝 (황미진충효) : 하물며 충효도 다하지 못했으니
此外何求討 (차외하구토) : 이외에 무엇을 구하고 찾겠는가.
生爲一罪人 (생위일죄인) : 살아서는 한 죄인이요
死作窮鬼了 (사작궁귀료) : 죽어서는 궁색한 귀신이 되리
更復騰虛名 (갱부등허명) : 다시 헛된 명예심 또 일어나니
反顧增憂悶 (반고증우민) : 돌아보면 근심과 번민이 더해지네.
百歲標余壙 (백세표여광) : 백년 후에 내 무덤에 표할 때는
當書夢死老 (당서몽사로) : 꿈꾸다 죽은 늙은이라 써주시게나
庶幾得我心 (서기득아심) : 행여나 내 마음 아는 이 있다면
千載知懷抱 (천재지회포) : 천년 뒤에 속마음 알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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