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오포럼 2018 서울회의 기조연설(서울 신라호텔)
중국의 왕용 국무위원님과 한국의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님을 비롯한 국내외 지도자와 경제인 여러분, ‘보아오포럼 2018 서울회의’에서 인사드립니다.
귀중한 자리를 마련하신 반기문 보아오포럼 이사장님과 리바오동 조직위원회 사무총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아시아는 장구한 세월 동안 인류 문명의 발전에 기여해왔습니다. 아시아는 서양보다 산업혁명에서 늦었고 제국주의에 정복됐지만, 그런 불행이 아시아의 영광스러운 기여를 빛바래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세계 인류가 공용하는 숫자를 만든 것은 인도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두 개의 문자 가운데 하나를 만든 것은 중국이었습니다. 금속활자를 가장 먼저 만든 것은 한국이었습니다.
육지를 통한 세계 규모의 무역은 중국에서 유럽으로 비단을 수출한 실크로드에서 시작됐습니다. 바다를 이용한 대륙 간 무역은 콜럼버스보다 80년 먼저 중국 명나라의 정화가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장보고는 정화보다 600년 빨리 동아시아 해상교역을 열었습니다.
민주정치에서도 아시아는 지체되지 않았습니다. 기원전 4세기에 중국의 맹자는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것은 국민이고, 국가가 둘째이며, 왕은 그 다음”이라는 민주사상을 설파했습니다. 한국의 동학은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했습니다.
서양이 봉건영주 통치를 세습하는 동안, 중국과 한국은 2천 년 넘게 지방행정체계를 발전시켰습니다. 특히 공직시험을 시행해 기회의 균등과 사회적 계층 이동을 보장했습니다.
이처럼 아시아는 오랜 역사와 고유한 문화로 세계 인류에 공헌해 왔습니다. 다만 아시아는 19세기 중반부터 구미 열강의 침략을 받아 20세기 들어 식민 지배를 겪었고, 독립 후에는 냉전의 포로가 됐습니다. 인도네시아처럼 비동맹 노선으로 자존의 몸부림을 치기도 했습니다. 그 기간 아시아는 피폐를 강요당했습니다.
그 후 아시아는 이내 잠재력을 회복했습니다. 국가에 따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경제성장과 정치발전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이제 아시아는 세계경제성장의 60% 이상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2050년쯤 세계경제의 50% 이상을 아시아가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러나 아시아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먼저, 4차 산업혁명의 도전입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4차 산업혁명으로 2020년까지 210만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71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런 일자리 감소의 22%는 아시아의 경제발전을 견인해온 제조업에서 나올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국가 내부 또는 국가 사이의 불평등 확대도 아시아의 당면 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2018년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경제는 세계에서 가장 활발했으나, 소득 불평등 역시 지구에서 가장 크게 확대됐습니다. 이런 추세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우려됩니다.
기후변화와 환경악화도 아시아에서 더 심각합니다. 2016년 아시아에서는 대기오염에 따른 사망자가 인구 10만 명당 100명을 넘었습니다. 서양의 2배에 가깝습니다. 아시아개발은행은 방글라데시, 부탄, 인도, 몰디브, 네팔, 스리랑카 등 환경에 특별히 취약한 아시아 6개국이 2100년까지 기후변화로 평균 8.8%의 GDP 손실을 입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저는 아시아가 다시 발현하는 잠재력과 새롭게 직면한 도전을 여러분께 말씀드렸습니다. 보아오포럼 2018 서울회의의 주제는 ‘개방적이고 혁신적인 아시아’입니다. 보아오포럼이 아시아의 잠재력을 살리고 도전을 극복하는데 부합하는 주제를 선정했다고 생각합니다. 그와 관련한 저의 몇 가지 생각을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혁신’입니다. 지금 아시아에는 4차 산업혁명에의 기대와 세계경제의 리스크가 혼재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혁신은 불가피한 대안이며, 유효한 돌파구입니다.
아시아 주요 국가들은 이미 혁신으로 질주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중국제조 2025’와 로봇, 빅데이터에 대한 국가전략 등으로 이미 미국 다음으로 많은 유니콘 기업을 탄생시키고 있습니다. 인도는 ‘디지털 인디아’를 기본전략으로 삼고, 사물인터넷 프로젝트 등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싱가포르는 ‘스마트 국가’ 비전의 달성에 국력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혁신성장을 3대 경제정책의 하나로 채택해 획기적 혁신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GDP 대비 세계 최대 규모의 R&D 예산을 해마다 투입하고, 인구 대비 세계 최다 수준의 혁신인재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아시아는 미국과 유럽의 원천기술을 개량하고 실용화하면서 부가가치를 만들어왔습니다. 4차 산업혁명도 미국과 유럽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시아는 종래와 다른 양상으로 주도력을 키워갈 것이라고 저는 판단합니다.
둘째는 ‘개방’입니다. 세계는 이미 하나의 지구촌이 됐습니다. 경제와 문화, 고용과 심지어 가정에서도 국경은 낮아졌습니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개방경제체제를 갖추며 선진국 대열에 일찍 합류했습니다. 중국과 인도도 대담한 개혁개방정책을 채택해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고속 경제성장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경제개발 초기부터 외국과의 교역에 크게 의존하며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이미 52개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었습니다.
아시아는 ASEAN, ASEAN+3, APEC, EAS 같은 지역협의체를 통해 개방성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같은 지역경제협정에 대한 논의도 활발합니다.
이런 다양한 모색을 통해 우리는 시장을 더 개방하고 기술혁신의 기회를 극대화해야 합니다. 세계 강대국 사이에서 꿈틀거리는 보호무역주의와 자국우선주의의 조류에 아시아는 자유롭고 공정한 개방주의로 공동 대처할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는 ‘포용’입니다. 개방과 혁신이 기술사회의 기회를 극대화하는 방안이라면, 포용은 세계화와 기술사회가 봉착하는 도전을 완화하는 대안입니다.
불평등의 심화는 세계적인 과제가 된지 오래지만, 아시아에서 더 두드러집니다. 이대로 방치하면 사회공동체의 유대와 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위험을 예방하는 대안이 바로 ‘포용’입니다.
반기문 포럼이사장께서 유엔사무총장으로 봉사하시며 설정하신 유엔 지속가능개발목표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을 것’을 전제로 했습니다. OECD는 2012년부터 ‘포용적 성장’을 논의해왔습니다. APEC도 2030년까지 ‘포용적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분야별 협력을 진전시키고 있습니다. 세계는 이미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옛적부터 아시아에는 약자를 배려하는 문화가 뿌리를 내렸습니다. 부자가 빈자를, 부국이 빈국을 배려하는 아시아의 전통적 문화를 지속가능한 제도로 발전시킬 지혜와 리더십이 절실합니다. 그래야 아시아의 도약이 계속되고, 세계를 위한 아시아의 기여가 확대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의 경제철학도 성장의 과실을 고루 향유하게 하는 ‘포용성장’을 핵심으로 합니다. 한국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과정을 보장해 정의로운 결과를 얻도록 하는 ‘포용국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넷째는 ‘협력’입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는 다양한 개발전략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은 ‘신남방 정책’을 통해 2020년까지 아세안과의 교역을 2017년보다 34.2% 늘어난 2천억 달러로 확대하려 합니다. 또한 ‘신북방 정책’으로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등 유라시아 국가들과의 교통과 물류, 에너지와 인프라를 연계해 공통의 신성장동력을 창출하려 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일대일로’, 인도와 러시아는 각각 ‘신동방 정책’,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각국의 그런 정책과 전략을 서로 연계하고 함께 협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상승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서로 견제한다면, 효과는 반감할 것입니다.
다섯째는 ‘평화’, 특히 한반도 평화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한반도는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군사적 긴장이 극도로 고조됐습니다. 그런 한반도가 지금은 항구적 평화정착과 공동번영의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는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것입니다. 한반도 평화는 남북한을 포함한 아시아 전체의 경제에 새로운 활력소로 작용하며, 아시아에 더 많은 가능성과 기회를 열어 줄 것입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협력이 필수적입니다. 한국정부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국제사회의 신뢰와 지지를 얻어가며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향해 꾸준히 노력할 것입니다. 동북아시아의 화약고로 세계에 걱정을 주었던 한반도가 평화와 공동번영의 발신지로 인류에게 희망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저는 염원합니다. 그렇게 되도록 여러분이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보아오포럼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최대의 지역경제포럼으로 이미 성장했습니다. 이제 보아오포럼이 아시아를 넘어 인류의 행복과 세계의 번영에 공헌하는 지혜의 산실로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