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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기도회 집전순서
6월 20일 예수성심, 작은형제회/ 27일 의정부교구
7월 4일 인천교구/ 11일 청주교구/ 18일 한국순교복자수도회, 한국외방선교회
(집전 순서는 변경될 수 있습니다.)
2016.06.13.월.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마태 5,39)
강론_ 김한기 신부_원주교구 청전동성당
오늘 우리는 광화문에서 신공안통치, 신유신 반대를 위한 시국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지난 4,13 총선에서 여소야대의 정국이 조성되어 국민의 뜻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실정과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고개 숙이지 않는 박근혜 정권을 향하여 예언자적 목소리를 외치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지난 6월 9일은 고 이 한열 열사가 29년 전인 지난 1987년에 민주화를 외치며 데모를 하던 중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날입니다. 그의 죽음으로 87년 민주항쟁은 불길처럼 타올랐으며 마침내는 대통령 직선제를 위한 6·29선언이 있게 됩니다.
그 전에 일어났던 6·10항쟁은 독재타도를 외치며 전국에서 국민들이 궐기해 항쟁을 펼친 날인데, 발발 원인은 5공화국의 말기쯤인 1987년 1월 14일 물고문으로 서울대생 박종철 군이 죽은 사건이었습니다. 마침 그때는 대통령을 직접선거로 뽑을 것이냐, 간접선거로 뽑을 것이냐 하는 논의가 뜨겁던 때였기 때문에 이 사건은 큰 파문을 몰고 왔습니다. 그 파장은 추모대회와 평화대행진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민주헌법쟁취를 위한 국민운동본부”라는 범국민적 기구를 탄생시켰습니다. 순결한 한 대학생을 고문으로 죽여 놓고서도 발뺌을 하는 부도덕성이 국민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던 것입니다. 이런 흐름에 위기를 느낀 당시 정권은 4월 13일, 대통령 직선을 위해 법을 고치는 문제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라는 이른바 ‘호헌조치’를 발표하였습니다. 이에 국민들은 더욱 큰 분노를 느끼면서 불같이 일어났습니다. 호헌반대 여론이 각계각층으로 번지면서 교수, 교사, 시민단체, 예술인, 연예인 등이 잇따라 성명을 발표하고 나섰습니다.
그러던 중 6월 9일 연세대생 이한열군이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죽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러자 그 동안 마음으로만 지지를 보내던 시민들도 거리로 나섰습니다. 6월 10일, 민정당이 노태우 대표위원을 대통령후보로 추대하던 그날, 전국에서는 “독재타도”, “직선제 쟁취”의 함성이 온종일 메아리쳤습니다.
그리고 6월 26일에 있었던 평화대행진의 날에는 전국에서 180여 만 명의 국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또한 항의의 표시로 자동차는 경적을 울리고, 전국의 교회와 사찰에서는 일제히 종을 쳐댔습니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게 되자 마침내 6월 29일 노태우 대통령후보는 국민들의 대통령 직선제 뜻을 받아들이겠다는 내용의 “시국수습을 위한 8개항”을 선언하였습니다.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이 빛나는 승리를 거두는 순간이었습니다.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와 재야 단체는 즉각적인 개헌작업착수와 양심수 전원석방 및 수배해제를 촉구하는 성명 발표하게 됩니다.
항쟁 이후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의 6·29 수습 선언 이후 직선제 개헌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고, 제6공화국 새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거쳐 1987년 10월, 대통령 직선제로의 개헌이 이루어졌습니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으로 16년 만에 대통령선거가 직접선거로 치러졌지만, 정통 민주세력이자 당시 야당의 중심축이었던 김대중 통일민주당 고문과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가 대통령후보 출마를 놓고 공식 선거전을 앞둔 1987년 10월에 분열을 일으키면서 독자 출마를 강행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6월 항쟁의 중심 역할을 했던 민주세력의 통합이 불발되면서,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는 민주정의당의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었습니다.
당시 6월 민주항쟁은 비록 당장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노태우, 김영삼을 거쳐 1998년의 김대중 국민의 정부, 2003년의 노무현 참여정부 등 민주정권을 탄생시키는 불쏘시개 노릇을 하게 된 것입니다.
민주 정권 10년 집권을 오늘날 여권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했으나 많은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그 나름대로 국민의 기본권을 옹호하고 권위주의가 아닌 민주주의 제도를 정착시킨 성과를 낳으면서 국민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BBK 등 온갖 비리의혹에도 불구하고 2008년에 이명박 정권이 경제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심리 때문에 집권하면서 인권은 후퇴하고 국민부채만 가중시키는 실정을 거듭하였고 경제는 내리막을 걷기 시작한 것입니다. 단군 이래의 최대의 사기사건이라고 불리는 4대강 개발로 23조원을 쏟아 부어 대형 건설사들만 배불리고 환경을 파괴하여 국토를 망쳐놓은 것입니다. 방위산업 비리, 해외자원개발 비리 등 사자방 비리로 국민을 아비규환으로 몰아놓은 것은 그 무엇으로도 설명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명박근혜’정권이라고 박근혜 정부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산하의 국정원의 댓글사건으로 부정으로 당선된 박근혜는 아버지 박 정희의 역사를 되돌리고자 국정교과서를 시도하고 있고 간첩조작 사건, 세월호 사건 은폐기도, 테러방지법 제정, 노동악법 제정 시도, 국가재정 파탄 등으로 최악의 정권임을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특히 세월호가 터졌을 때 모든 것을 진두지휘해야 할 박근혜 대통령의 밝혀지지 않은 7시간 때문에 아직도 국민들은 대통령의 베일에 싸인 그날의 시간을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보호해야 할 정부가 메르스 사태나 최근의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보듯 손을 놓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가진 자나 기업 편에 서서 있는 것은 지탄을 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또한 지난해 11월 14일 이곳 서울에서 농민의 생존권 보장을 촉구하며 평화적 시위를 하던 백남기 임마누엘 어르신에게 살인적 물대포를 살포하여 사경에 이르게 하고서도 그 누구 하나도 사과하고 책임임지지 않는 현정정권이야말로 반생명적, 폭력적 정권으로서 그 원성이 하늘을 치솟고 있습니다.
이런 일련의 사태는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들의 편에 서서 가려운 데를 긁어주고 민생을 챙겨야 할 정부가 노동자, 농민을 탄압하면서 국회 탓만 하며 국민들이 심판해 줄 것을 외치며 사전선거 운동을 한 결과로 민심의 이반현상을 불러일으켜 지난 총선에서 참패를 맛보게 한 것이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했다.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권력욕의 화신이 되어 날뛴 결과로 참담한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명심보감을 인용한 안중근 의사의 유묵에 따르면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 성경 말씀에서 예수님은 이런 역사적 사실 앞에서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마태 5,39)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얼핏 보면 국민을 도탄에 빠뜨리게 하고 있고 억압하는 자들에게 이로운 말씀으로 들리니 인간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태복수법은 함무라비법전에 나타나는 말인데 이는 원래 살인자에 대한 무제한적인 보복을 막기 위한 법규였다고 합니다. 폭력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폭력에 대한 보복은 또 다른 폭력을 낳게 되어 악순환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열성당원인 시몬이 있는데 그는 자기의 길을 버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식민지 지배세력인 로마군에게 협조하라는 뜻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백성들의 아픔을 헤아렸을 예수님께서 로마 군인들의 뜻에 결코 동조할 수는 없었습니다.
로마제국에 대한 유다인들의 태도는 다양했는데 1)로마에 협조하여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고 자기 이익을 지키던 사두가이파와 2)로마에 저항하나 가난한 사람을 무시한 바리사이파, 3)로마를 비웃으나 은둔하던 에쎄느파 쿰란공동체, 그리고 4)로마에 대한 비폭력 저항을 가르치고 가난한 사람을 존중한 예수님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폭력으로 저항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권력과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고마운 말씀일 수 있습니다. 무장투쟁을 준비하고 독립을 쟁취하던 사람에게는 맥 빠지는 애기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칼 한 번 휘두르지 않은 예수를 정치범으로 몰아 사형선고를 한 것입니까?
예수님이 이렇게 폭력을 반대한 것은 자비가 정의를 이길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겟세마니 동산에서 체포하려 했을 때 예수님과 같이 있던 자가 칼로 대사제의 종의 귀를 베자 “칼을 칼 집에 도로 꽂아라. 거두어라.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마태 26,52)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불의한 폭력에 정의로운 마음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같은 폭력의 악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지난 2011년 7월 22일 지구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이자 노벨상을 수여하는 평화에 나라 노르웨이에서 끔찍한 테러사건이 일어났습니다. 32세의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이라는 청년이 총기를 휘둘러 77명이 사망하고 정부청사에 폭탄을 던지는 등 난동을 일으켜 온 세계가 떠들썩해진 것입니다.
그는 부유한 사립학교를 거쳐 대학원을 마칠 정도의 지성인이며 큰 유기농장의 주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영국 런던에 주재했던 외교관(경제전문) 아버지와 간호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는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는데, 15세 이후로는 아버지와 전혀 접촉이 없었던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범행 후 그가 기독교 근본주의자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는 백인우월주의자로서 모슬렘 세력을 유럽에서 몰아내고 이민자 수용을 반대하며 다국적 문화주의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 범행동기였다고 합니다.
25일 저녁, 매년 노벨평화상 시상식이 열리는 오슬로 시청 앞 광장은 15만 추모 인파가 만든 거대한 장미꽃 물결로 뒤덮였습니다. 사흘 전 초대형 참사를 겪은 시민들은 범인에 대한 분노 대신 평화와 국민 화합에 대한 염원과 다짐으로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습니다.
오슬로 시민들은 이날 오후 6시가 되자 모두 일손을 멈추고 손에 손에 장미꽃을 들고 시청 앞으로 향했습니다. 이날 모임은 정부나 관이 아니라 시민 스스로가 조직한 ‘시민 추모 대회’였습니다. 일부 청년들이 주말부터 페이스북을 통해 시청 앞 광장에서 대성당까지 ‘추모 행진’을 벌이자는 사발통문을 돌렸습니다. 추모행진에 참여하겠다는 서명자가 하루 새 2만 명을 웃돌자, 오슬로 시청은 급히 연단을 마련했고 총리와 왕족도 참여의사를 표시했습니다.
불과 30여분 사이에 시청 앞 광장은 사무실, 가게, 아파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15만 인파(오슬로 최대일간지 VG의 추정치)로 입추의 여지없이 가득 찼습니다. 예상외 인파에 시민들 스스로도 놀라는 표정이었습니다. 한 60대 시민은 “오슬로 시내에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모인 것은 2차 대전 종전(終戰) 축하 집회 이후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6시 20분 시민들이 조용히 행사 시작을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스피커에서 안내문이 고지됐습니다.
“톨레랑스와 화합을 위해” 테러 앞에 노르웨이가 내민 15만 송이 장미… 그 어떤 폭력과 증오가 이 장미를 이기랴…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서 25일 충격과 슬픔을 극복하고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기 위한 집회가 열렸습니다. 이날 오슬로 시청 앞에는 15만 여명이 모여 장미꽃을 들고 묵념을 하는 추모제를 열었습니다.
하콘 왕세자와 스톨텐베르그 총리가 잇따라 연단에 올라 국민들에게 단합과 관용을 호소했다.
“오늘 밤 오슬로 거리는 사랑으로 가득 찼습니다. 비극적 사건이 일어났지만 관용과 자유의 정신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왕세자)
“악마가 한 인간을 죽일 수는 있지만 인류를 패퇴시킬 수는 없습니다. 오늘 행진은 민주주의와 관용, 화합을 향한 위대한 발걸음입니다.”(총리)
시민들은 지도자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며, 장미꽃을 높이 치켜들고 흔들며 공감을 표시했습니다. 이어 나지막한 음성으로 추모곡을 합창했습니다. 곁에 서 있던 사람과 포옹하고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시민도 보였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라는 말씀은 결코 “악을 묵인하지 마라.”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악인은 분명 우리 안에 존재하여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있지만 같이 폭력으로 맞설 때는 악마가 더 기승을 부릴 구실을 제공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폭력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악인은 우리가 손을 쓰지 않아도 스스로 하느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제 1독서에 나오는 아합 왕의 왕비인 이제벨이 나봇의 포도밭을 불의하게 뺏은 죄로 주님께서는 “개들이 이제벨을 들판에서 뜯어 먹을 것이다.”(1열왕 22,23)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우리는 무엇이 선하고 악한 것인지 제대로 식별하는 지혜를 주십사고 하느님께 기도하면서 시대의 징표를 잘 읽어 참된 평화를 이루는 성숙한 그리스도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드’ 무기체계는 한국에 전혀 필요하지 않아
미국이 중국과 겨루는데 유리하기 때문에 배치
박석분 부산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상임운영위원
오늘은 지난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해 참혹하게 희생된 故 심효순, 심미선 양의 14주기 추모일입니다. 2002년 당시 심효순, 심미선 두 소녀는 중학교 2학년 어여쁜 여학생들이였습니다. 두 소녀는 그날 친구의 생일에 가던 길에 훈련을 마치고 벽돌이 장차 기지로 가던 50t가량의 장갑차에 의해서 깔려 숨졌습니다.
우리가 더 분노한 것은 그 해 7월에 열린 이 사건의 재판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검찰은 사법 사상 처음으로 미군에 대한 재판권을 넘겨달라고 요청했지만 미군은 넘겨주지 않았습니다. 한미 소파에는 형사재판권에 대해서 한국이 미군에게 요청 하면 미국은 그것을 호의적으로 고려한다고 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호의적으로 고려한 결과 미국은 미군에 대한 재판은 우리가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11월 동두천에 있는 캠프 케이시에서 열린 재판에서 두 미군은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판결의 근거는 이런 것 이였습니다. 장갑차 안으로 들어가면 거기에는 운전병과 관제병 두 사람이 타게 되어있는데 장갑차 특성상 두 사람은 육성으로는 서로 소통 할 수 없고 헬멧을 통해서만 서로 통신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운전병인 마크워크는 사각지대에 있어서 아이들을 보지 못했고, 관제병 페르난도니노는 아이들을 보았고, 그래서 운전병에게 통신을 했지만 통신장비가 고장 나서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두 미군은 무죄판결을 받고 본국으로 무사히 돌아갔습니다. 이에 분노한 한국민들은 효순이를 살려내라, 미선이를 살려내라, 진상을 규명해라, 살인미군 처벌하라, 소파를 개정해라, 미국 대통령은 한국민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라고 외치면서 광화문으로 광화문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그해 2002년 12월 14일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대사관을 애워 싸는 촛불의 함성이 하늘까지 울려 퍼졌습니다. 그러나 그런 촛불에 힘에도 불구하고 사건은 그냥 묻혔습니다.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 제가 일하는 평통사를 비롯한 민변 쪽에서 이 사건의 진상규명에 나섰습니다. 의정부 검찰청에 수사기록 공개를 요청 하는 등 2005년 수사기록 일체를 넘겨받았습니다. 수사기록 검토결과 우리는 너무도 중대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운전병 마크워크는 두 소녀를 볼 수 있었고 통신장애가 없었다는 사실 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 만으로는 다시 재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번 재판이 끝난 피해자에 대해서는 다시 재판을 청구하지 않는다, 라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는 다른 증거를 찾기 위해서 미국본국에 재판 기록 전부를 요구했습니다. 왜냐면 한국에서 받은 재판기록이나 수사기록은 빠진 것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현장검증 비디오테이프 같은 건 아예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재판기록과 수사기록 전체를 빠뜨리지 말고 공개할 것을 요청했지만 미국은 이것을 거절했습니다.
사건이 지난 지 14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걸 포기해야할까요? 세월호에 아이들이 무참히 죽음을 당한 이 일이 만약에 진상이 규명되지 않아 십년 이십년 흐르면 그러면 우리가 이 일을 포기해야 합니까? 그럴 수 없는 것이 저희들의 마음이고, 이미 효순이와 미선이는 개인의 딸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의 딸이기 때문에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반드시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 여기계신 여러분과 우리 모두의 우리 국민들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012년 10주기를 맞았을 때 일본대사관 앞에 소녀상을 세운 김서경, 김은성 작가 손으로 두 소녀를 상징하는 추모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추모 조형물을 사고현장에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사고현장에는 미군들이 세운 추모비만 놓여 있습니다. 이제 추모 부지를 마련하고 싶습니다. 부지를 마련하는데 미군 당국과 우리 행정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 100평되는 땅을 마련하지 못해 이러고 있습니다. 정말 저희들이 너무 무능합니다. 그러나 다시 오늘 14주기를 맞아 저희들이 아이들의 꿈을 표현한 조형물을 현장에 놓아주자 그리고 그걸 통해 우리가 이루지 못했던 진상규명을 위한 마음들을 모아보자고 다시 다짐했습니다.
미선이와 효순이의 죽음이 본질적으로 보면 한미관계가 여전히 불평등하고 14년이 지났어도 어는 것 하나 이룰 수 없을 정도로 미국과 한국의 관계는 여전히 정말 너무 한심하기 이를 때 없습니다. 그 단적인 사례가 사드 배치입니다.
‘사드’라고 하는 무기체계는 전혀 한국에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드가 필요한 이유는 오로지 미국이 동북아에서 중국과 겨루는데 유리하기 때문에 우리 땅에 갖다놓으려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드가 이 땅에 생기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사드가 배치되는 특히 사드 레이더가 배치되는 그 땅에 주민들은 다시 대추리 주민들처럼 쫓겨나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드가 들어오는 것을 극구 반대하는 것이 중국과 러시아 특히 중국입니다. 왜? 특히 사드 레이더로 중국을 샅샅이 들여다 보려고 하는 것이 미국이기 때문이죠. 미국은 사드를 배치해서 동북아의 MB를 구축하려 합니다. MB는 동북아 뿐만아니라 이미 유럽, 그리고 중동에 세계 MB를 연결해서 미국이 전 세계 군사적 패권을 장악 하려고하는 의도가 숨겨져 있는 너무나 무서운 무기체계입니다. 이것을 우리 돈으로 우리 땅을 내서 우리 주민들에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면서 갖다놓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14년전 효순이와 미선이를 죽게 했던 미국의 본질과 무엇이 다릅니까. 그때는 효순이 미선이뿐 이였지만 이제는 온 국민을 위협으로 몰아넣고 있는 겁니다.
사드가 배치되면 우리는 동북아에서 중국과 미국의 대결 아니죠. 미국과 일본과 그리고 거기에 종속되는 한국, 여기에 맞선 중국과 러시아, 북한의 대결구도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평화, 우리의 안전, 우리 생명에 얼마나 위협적인 것인가는 더 설명 드리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올해 효순이 미선이 14주기는 바로 이와 같은 한반도의 평화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미국의 대권적 의도를 다시 생각해야 되는 정말 심각해야 되는 상황에 맞았습니다. 효순이 미선이를 생각하면서 저희들은 정말 효순이 미선이가 원했던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한반도가 평화로워야 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저해하는 미국을 비롯한 그 어떤 세력과도 우리가 평화의 대결을 해야 한다는 그런 다짐입니다.
오늘 미선이 효순이의 죽음 말고도 기억해야할 죽음이 너무 많습니다. 구의역 청년의 ㅈ구음, 세월호 아이들의 죽음, 죽음보다 더 어쩌면 고통스러운 우리 청년들의 삶의 문제들,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들, 이 모든 문제들을 정말 하나하나가 무거운 과제 이지만 우리가 꼭 해결해야 될 그런 십자가라고 생각하고 이 자리에서 우리 모두가 더 힘을 내어서 기어이 이 땅의 평화와 생명이 존중되는 그날을 위해서 한걸음 한걸음씩 서로 손잡고 같이 마음 모았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