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써니투어에서 진행하는 번개여행에 참가했습니다. 북경시 석경산구에 있는 세 곳을 둘러보는 하루 코스 여행인데 꽤 괜찮았습니다.
첫번째 들른 곳이 전의묘입니다. 명대 환관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았던 당시의 권력자였습니다. 명대의 환관들은 기세가 등등했지요. 황제의 최측근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고 공적을 세운 환관도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대선단을 이끌고 아프리카까지 항해했던 정화를 들 수 있지요.
차가 다닐 수 있는 길까지 택시를 타고 가서 시장통 골목을 지나야 전의묘가 나옵니다. 마장이라는 땅콩소스를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화과 요리 먹을 때 찍어먹는 소스입니다.
이런 시장 골목을 꽤 한참 걸어가야 합니다. 규모가 매우 큽니다.
점도 칩니다. 인간의 이성과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없어지기 힘든 무속신앙이지요.
이곳이 전의묘 입구입니다.
그냥 묘 하나 달랑 있는 게 아니라 규모가 꽤 큽니다.
원래 전의묘 하나가 있었는데 후대에 많은 환관들이 이곳에 묻히길 원해서 이렇게 규모가 커졌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환관의 무덤의 집중되어 있는 곳이 있습니다. 서울 창동에 초안산이라고 있는데 그곳이 조선시대 환관들이 죽으면 묻히는 곳이었습니다. 우리나라 환관들은 중국 환관들처럼 권세를 누리지도 못했고 돈도 많지 않았습니다. 상대적으로 불쌍한 인생을 살았다고 봐야죠.
문표를 사면 이렇게 안내 찌라시를 줍니다. 중국 최후의 태감이라는군요. 태감은 중국에서 환관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우리말의 내시와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내시라는 말도 원래는 부랄없는 고자를 가리키는 말은 아니었다고 하지요.
내시 총관의 사진입니다. 청나라 말기에 찍은 것 같군요.
무관.
이런 석조물만 봐도 전의라는 환관이 당시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었는지 짐작이 됩니다. 세 명의 황제를 모셨다는데 죽은 후에 이런 호화로운 무덤을 조성할 수 있었다는 것은 당시 권력의 정점에 가까웠다는 얘기겠죠. 명나라는 환관정치 때문에 망했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환관의 권세가 막강했습니다.
묘실에 들어가서 구경할 수 있도록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저는 안 내려가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