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달에는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의 <너는 지금을 이겨낼 수 있다 : 인생의 고비마다 나를 일으켜 세우는 하나님의 은혜> 중 “06.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으라!”(p.89-100)를 정리해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많은 유익이 있기를 바랍니다. 진 상열 목사 드림.
- 나는 대기실에 앉아 있다. 접수창구에서 내 이름과 보험 정보를 기록하더니 손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앉아 계세요. 차례가 되면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본다. 한 엄마가 잠든 아기를 안고 있다. 정장을 차려 입은 남자는 <타임>을 보고 있다. 신문을 읽던 여자가 시계를 보더니 한숨을 쉬고 그 시간에 해야 할 일을 계속한다. 기다림이다.
- 대기실, 검사실이 아니다. 검사실은 복도 끝에 있다. 진찰실도 아니다. 진찰실은 벽 안쪽에 있다. 처치실도 아니다. 검사실, 진찰실, 처치실은 전부 나중에 들를 방이다. 지금 당장 해야 일은 우리가 앉아 있는 곳, 즉 대기실에서 해야 할 일은 기다리는 것뿐이다. 그래서 나는 기다린다.
- 그러나 나는 기다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기다릴 때면 시간이 알래스카 빙하처럼 굼뜨게 느껴진다. 초침은 일 초가 아니라 오 분에 한 번 움직이는 것 같다. 누군가 일시정지 단추를 누른 게 분명하다. 슬로 모션으로 움직이는 인생. 우리는 기다리는 게 싫다. 우리는 빨리빨리 세대이다. 그래서 이리저리 차선을 바꾸면서 빠른 길을 찾는다. 우리는 기다리는 게 싫다.
- 하나님은 어떤가? 잠시 주위를 둘러보자. 지구는 하나님의 대기실이다. 구석에 있는 부부가 보이는가? 두 사람은 아기가 생기길 기다린다. 서류 가방을 들고 있는 남자는? 그는 전국에 이력서를 뿌린 후 취업 소식을 기다린다.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할머니는? 미망인이다. 상처한 지 일 년이 넘었지만 하루라도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모두들 기다린다.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도우시고, 고쳐주시길 기다린다. 하나님이 오시길 기다린다. 우리는 올린 기도와 받은 응답 사이의 기다림의 땅에 살고 있다.
- (기다림의 땅에 사는 인생들) : 하나님의 대기실 안 광경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요셉일 것이다. 문제는 요셉의 이야기가 짧다는 데 있다. 우리는 창세기를 한 시간 안에 읽을 수 있다. 그래서 그에게 닥친 모든 시련이 아침밥을 먹기 전에 다 일어났다는 인상을 받는다. 요셉의 이야기는 이십 년에 걸쳐 읽는 게 더 현명할지도 모른다.
- 말라버린 우물 속에 들어가 (창37장)을 펼쳐보자. 따가운 햇볕을 참으며 두어 시간 앉아 읽어보자. (39장)의 첫 구절은 두어 달 읽고 또 읽자.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요셉이 도단에서 테베까지 삼천리를 걷는 데 그 정도 시간이 필요했을 테니까. 경매장에서는 하루나 며칠, 몇 주가 걸렸을 것이다. 게다가 보디발의 집에서는 하인들을 관리하고 주인의 일을 처리하고 이집트어를 배우는 데 아마도 십 년이 더 필요했을 것이다. 똑딱. 똑딱. 똑딱. 외국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움직인다.
- 그리고 감옥에서는 시간이 멈춘다. 요셉은 환관에게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당신이 잘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나는……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창40:14-15) 환관의 대답이 들리는 듯하다. “약속하지. 기회가 생기자마자 바로에게 자네 일을 아뢰겠네. 내 곧 연락하겠네.”
- 요셉은 서둘러 감방으로 돌아가 소지품을 챙겼다. 연락이 오면 바로 떠날 채비를 했다. 하루가 지났다. 이틀이 지났다. 일주일……한 달……반년이 흘렀다. 소식이 없었다. 실상은 이랬다.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창40:23)
- 성경에서 이 구절과 다음 구절 사이의 행간은 머리띠보다 좁다. 행간을 지나가는 시선이 일초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요셉에게 그 행간은 이 년의 세월이었다. (41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만 이 년이라니! 24개월의 침묵. 104주의 기다림. 730일의 의문. 식판 개수만 2,190개이다.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지만 침묵 외에는 들리지 않았던 17,520시간. 원한과 냉소, 분노를 키우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동료 수감자들은 더 짧은 기간에 더 사소한 이유로 하나님을 포기했다. 그러나 요셉은 포기하지 않았다.
- 왕은 지난밤 잠을 설쳤다. 꿈 때문에 좀처럼 눈을 붙일 수 없었다. 그는 요셉의 재능에 대해 들었다. “네가 꿈을 해몽하는 재주가 있다고 들었다. 내 참모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하는구나. 네가 해몽해보겠느냐?” 요셉의 마지막 두 만남은 끝이 좋지 않았다. 보디발 부인은 그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 환관은 그를 까맣게 잊었다. 요셉은 그때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했었다. 생각을 밝히지 않고 믿음을 숨기는 편이 좋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실 것입니다”(창41:16)
- 요셉은 하나님을 자랑하면서 감옥에서 부상했다. 그의 믿음은 감옥에서 꺾이지 않았다. 도리어 깊어졌다. 당신은 어떤가? 감옥에 있지도 않아도, 아이가 생기지 않거나 의욕이 생기지 않거나 불확실한 처지에 있거나 실직자로 있거나 건강이나 도움, 주택, 배우자를 찾고 있지는 않는가. 당신은 하나님의 대기실에 앉아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이 알아야 할 게 있다. ‘당신이 기다리는 동안 하나님이 일하신다!’
- (하나님이 일하신다) :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요5:17) 하나님은 가만히 앉아서 두 엄지손가락을 빙빙 돌리시는 법이 없다. 그분은 멈추시는 법이 없다. 그분은 휴가도 가지 않으신다. 그분은 천지창조 일곱째 날은 쉬셨지만 여덟째 날 다시 일터로 복귀하신 후로 쉬신 적이 없다. 당신이 노닐고 있다고 해서 하나님도 그러실 것이라 생각하지 말라.
- 요셉의 이야기는 40장에서 멈춘 듯했다. 영웅은 쇠고랑을 찼다. 기차는 탈선했다. 역사는 착륙대기 상태였다. 하지만 요셉이 기다리는 동안 하나님은 일하셨다. 하나님은 등장인물들을 모으셨다. 환관을 요셉의 손에 맡기고 기묘한 꿈으로 왕의 단잠을 깨우고 바로의 참모들을 혼란에 빠뜨리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적시에 요셉에게 임무를 맡기셨다.
-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서도 일하고 계신다. 그분의 대기실 벽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46:10a)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므로 당신은 웃을 수 있다. 그분이 일하시므로 당신은 가만히 있어도 된다. 그분이 바쁘시므로 당신은 쉴 수 있다.
- 성경적으로 말해서 기다린다는 것은, 나쁜 결과를 예상하는 것도 걱정하는 것도 불평하는 것도 무리한 것을 요구하는 것도 조종하는 것도 아니다. 또 무기력하게 손을 놓고 있는 것도 아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흐트러짐 없이 기도와 믿음으로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다. 기다린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잠잠히 참고 기다리면서 불평하지 않는 것이다(시37:7 참조)
- (기도와 믿음으로 하나님께 집중하라) : 느헤미야는 우리에게 기다림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 대한 회고록이다. 그는 한 날짜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 월에 내가 수산궁에 있는데……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느1:1-2) 그들은 나쁜 소식을 전했다. 적대 세력이 도시를 보호하는 성벽을 무너뜨린 것이다. 성문마저 잿더미로 변했다. 얼마 남지 않은 유대인들은 큰 환란을 당하고 능욕을 받고 있었다.
- 느헤미야는 기도했다.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느1:11) ‘이 사람’은 페르시아의 군주 아닥사스다 왕이었다. 느헤미야는 왕에게 몸소 술을 따르는 관원이었다. 그는 일주일에 7일, 하루 24시간 일해야 했다. 자리를 비우고 예루살렘에 갈 수 없는 몸이었다. 그래서 그는 기도하면서 주님을 기다리기로 했다.
- 느헤미야가 얼마나 기다렸는지는 (느2:1)에 나온다. 그가 왕의 예루살렘 위원회의 위원으로 임명된 것은 ‘니산월’이었다. 얼마 후였을까? 넉 달이다. 느헤미야는 그날 당장 이뤄달라고 청했다. “오늘 종이 형통하여” 그러나 하나님은 느헤미야의 청을 넉 달이나 지난 후에 들어주셨다.
- 다니엘은 긴 시간 전심으로 하나님께 매달렸다. 그의 민족은 칠십 년 가까이 억압을 받았다. 다니엘은 민족을 위해 장기 기도에 돌입했다. 21일 동안 좋아하는 음식과 고기와 와인을 금했다. 전력을 다해 기도했다. 끈기 있게 필사적으로 간청했다. 응답이 없었다. 그런데 22일째 돌파구가 열렸다.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난 것이다. 천사는 다니엘에게 기도 응답이 연기된 이유를 밝혔다.
- 사실 다니엘의 기도는 첫날 응답되었고 같은 날 천사가 파견되었다.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받았으므로 네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그런데 바사 왕국의 군주가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 왕국의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가장 높은 군주 중 하나인 미가엘이 나를 도와주므로”(단10:12-13)
- 지상에서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니엘의 기도는 단단한 돌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하늘에서 보면 천상의 전투가 일어나고 있었다. 삼 주 동안 두 천사가 치열하게 접전을 벌였다. 다니엘이 기다리는 동안 하나님은 일하고 계셨다.
- 다니엘이 포기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믿음을 잃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나님을 등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더 좋은 질문이 있다. 당신이 포기한다면 어떻게 될까? 믿음을 잃는다면? 하나님을 등진다면? 그러지 말라. 제발, 부탁한다. 그러지 말라. 하늘 전체가 당신을 위해 싸우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머리 위와 몸 주변에서 하나님의 사자들이 일하고 있다. 계속 기다리라.
-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40:31)
- 새 힘, 새 활력, 지치지 않는 튼튼한 다리. 하나님을 기뻐하면 당신의 영혼은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을 누릴 것이다. 당신은 대기실의 시간을 너끈하게 통과할 것이다. 주의 깊게 살피면 뜻밖의 놀라운 일을 발견할 것이다. 의사가 진료실에서 나와 당신 옆에 앉을 것이다. “기다리시는 동안 같이 있겠습니다.” 모든 의사가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의 의사는 그렇게 할 것이다. 결국 그분은 ‘위대한 명의’이니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