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호튼(Tim Hortons)의 새벽
홍 성 자
일찍 자면 일찍 눈이 떠진다.
새벽공기는 언제나 신선해서 좋다.
여러해 전부터 새벽에 일찍 눈이 떠지면 커피향이 그리워 걸어서 15분 거리,
5시에 오픈 하는 동네 커피샵 팀호튼에 거의 매일 가다시피 한다.
겨울에 들어선 요즘 새벽 미명이지만, 사방이 조용한 어둠이 누운 거리를 걷노라면 동네 사람들 잠자는 소리가 쌔근쌔근 들리는 듯하다.
큰 길로 나서니 어둑새벽을 가르고 힘차게 달리는 버스 뒤로 쓰레기들을 실어 나르는 청소차들이 부지런히 줄을 잇는다. 살아있는 토론토를 본다.
팀호튼에 들어서니 일하는 사람들은 커피 등을 팔면서 분주히 아침 비즈니스 준비에 바쁘다. 주중 새벽 6시 경 부터는 제일 먼저 들어오는 연두색이나 밝은 주황색의 옷에 형광 띠로 표시된 작업 복장을 한, 밖에서 노동하는 분들이 줄을 서기 시작한다. 간단한 샌드위치나 베이글 등과 라지 사이즈, 혹은 엑스트라라지 사이즈의 커피를 들고 나간다.
건축 현장이랄지 도로공사, 혹은 나무 자르는 일이랄지 전신주를 타는 사람일지 등등, 그들은 30도가 넘는 뜨거운 여름이나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에서도 밖에서 일을 한다. 진심으로 고맙기 그지없다. 이른 아침을 깨우는 커피로 그들은 하루 일을 시작한다.
각양각색의 팀호튼 도너츠들을 보면 군침이 돈다. 내가 좋아하는 도너츠는 보스턴크림과 허니 컬러, 올드 횃숀, 버터 크로쌍 등 이지만 사실은 다 좋아한다. 크림 하나 설탕하나 넣은 레귤러커피나, 크림 둘 설탕 둘을 넣은 더블더블 커피나, 뜨겁고 달달한 커피 향이 환상적이다. 때로는 혈당 이유로 블랙커피도 즐기지만.......
우리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크림치스를 듬뿍 바른 베이글을 오더 할 땐 내 이름을 말한다, 저쪽에서 다 준비된 베이글을 들고 큰 소리로 ‘헬렌, 헬렌’ 부르기 때문이다.
7시 반이 넘어 8시 가까이부터는 직장인들과 학생들이 몰려 들어오기 시작한다. 영하 5도인 날씨인데 반바지 차림으로 오는 사람도 더러 있다.
“너 안 추우냐?” 물어보니, 웃으면서
“아임 케네디언” 이라고 씩씩하게 대답한다. 나도 케네디언인데 뭘 먹어서 혹한에도 안 추울까? 정말 궁금한 연구 대상이다.
내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 잠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때 커피가 있었지만 다방뿐이었다. 여학생이 돈도 없고 다방에 갈 생각은 감히 상상도 못했다. 커피가 잠을 안 오게 하는 것은 카페인 성분 때문이라는 것도 몰랐다. 지금 같아선 흔한 커피 샵에 가서 커피를 사서 마셨으면 얼마나 좋았겠나. 그 놈의 잠 때문에 공부를 못했던 기억이 새로운데, 나이드니 그 많던 잠은 도대체 다 어디로 갔을까.
팀호튼이란 캐나다의 아이스하키 선수 이름이다. 그는 캐나다의 최상위 프로 아이스하키 리그 NHL 주전 수비수로 스탠리컵을 4번이나 수상한 영웅이지만, 안타깝게도 1974년 44세 때 교통사고로 하늘나라에 갔다.
팀호튼이 세상 떠나기 10년 전 1964년에 온타리오 주 해밀턴 나이아가라폭포 가는 쪽에 ‘팀호튼 도넛츠’ 가게를, 은퇴한 해밀턴 경찰인 론 조이스와 동업으로 시작했는데, 호턴이 세상을 떠난 후 지분을 전부 인수한 조이스가 열정적인 기업으로 키워나가, 지금은 4천 곳이 넘는 체인점으로 캐나다를 대표하는 국민커피 브랜드로 성장하였다.
한국에도 며칠 전 (2023.12월 중순으로 볼 때) 강남 한복판에 팀호튼이 상륙했다고 한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어찌 팀호튼이 한국에 안 들어 가랴. 커피소비량 세계 2위라고 하는 나라가 한국이고, 1위는 프랑스라 한다. 어쩌다가 커피가 참말로 세계인의 음료가 되었나?
아무튼 내 아들 앤디도 캐나다에 오자마자 아이스하키를 시켜 대학 졸업할 때까지 10여 년간 트리플 수비수로 아이스 링크를 탔다. 20 여년이 지난 지금도 예를 들면, 허벅지와 종아리에 못을 박는다 해도 안 들어갈 정도다.
또한 참으로 현시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단면은, 커피 등을 사려고 줄을 선 사람들이나 오더 한 것들을 기다리는 사람들, 앉은 사람들이나 서있는 사람들 모두가 핸드폰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핸드폰을 안 보는 사람이 있다면 아주 비정상적인 사람처럼 되어버린 그런 세상이 되었다.
팀호튼 샵의 입구에는 아침 일찍부터 늘 출근하다시피 하는 백인 남자 40 대 정도로 보이는 베거(걸인)가 있다. 도대체 누구네 집 아들인가? 이름은 라쓰(Les) 라 한다. 가끔 커피를 사 주지만 그는 커피를 스몰 트리플 트리플로 마신다. 커피에 크림과 설탕을 세 개씩 넣으라니 커피보다도 크림과 설탕 맛으로 마시는 게 아닌가? 밥보다 고추장이 많은 격이다. 추운 날 시멘트 바닥에 그냥 앉아있으니 엉덩이는 또 얼마나 시리겠나? 나는 박스조각들을 준비해서 차에 싣고 다닌다.
“이거 깔고 앉아” 앉아보니 시멘트의 찬 기운을 막아주며, 자기 엉덩이의 체온으로 박스조각을 미지근하게나마 데워주게 되니 좋은가 보다. 나에게 엄지 척을 해 보인다. 차가운 시멘트바닥에 앉을 때는 임시방편으로 박스조각이 최고임을 나는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나도 참 웃기는 여자야, 그것도 아시안, 한국의 충청도 아줌마가 캐나다 토론토에 와서 살더니, 항상
“모 하십니까?”
감사와 즐거움으로 여는 상큼한 아침이다.
( 2023. 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