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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를 위하여
이 홍사
*
소리를 타고 바람을 가르고, 시간을 거슬러 백제로 왔다.
해가 설핏해지니 주막 간판의 네온이 들어왔다.
왜 해마루식당이라고 이름 하였을까?
동해안 바닷가나 바다가 보이는 산꼭대기의 식당도 아니고 전혀 해와는 상관이 없는, 내륙지방의 평범한 주막으로 보이는데 해마루라는 간판이 걸려 네온이 번쩍이고 있었다. 해거름에 왔으니 해거름식당이 더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홍랑(紅郞)은 했다 홍랑은 해마루식당의 실내가 아닌 마당가에 설치한 평상에 앉아있다. 마당가에 소나무와 잔디, 자연석으로 정원을 잘 꾸며놓은 주막이다. 정원을 보면 그 주인의 근면성을 알 수가 있다고 했다. 정원으로 미루어 식당주인의 근면성과 더불어 음식에 깃든 정성과 신선도를 가늠할 수가 있다. 정성스레 차려서 나오겠지.
둘러보니 음력으로 초순인지 손톱달이 갈대를 엮어서 만든 지붕 처마에 걸려있었다.
*바다가 하늘을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진 못했으리라* 누구의 시인지 모르지만 갑자기 생각난 구절을 흥얼거리며 홍랑은 손을 꼬아서 양손의 검지와 엄지를 맞대어 작은 사각형을 만들어 눈 가까이 대고 그 안에 갈대처마 모서리와 달을 함께 넣어본다. 손가락으로 만든 액자에 넣어보니 영판 그림이다. 홍랑은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좋은 풍경이 있으면 손가락으로 그렇게 액자를 만들어 뇌리에 각인시킨다. 산수유 마을을 돌아보면서도 몇 번이나 그렇게 만들어 꽃을 넣어 보았다. 그렇게 손가락으로 만든 액자에 넣어보니 달이 더 빛을 발한다. 전라도의 달이 아닌 백제의 달이다. 홍랑은 전라도를 여행하는 게 아니라 백제를 만나러 나비처럼 너울너울, 소리를 타고 날아온 것이다. 지금 보고 있는 액자 속 그림에 제목을 붙이라면 백제의 달이라고 붙여야 할 것 같다. *떠도는 유랑별~처럼~*
백제,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바로 아비지다. 홍랑은 계백장군이나 의자왕보다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아비지다.
아비지!阿非知
아비는 이름이고 지는 신라시대, 그의 공로를 생각해서 이름 뒤에 붙여준 미칭이다. 그는 신라의 부름을 받고 황룡사 구층 목탑을 설계한 인물이라는 건 아는 사실이고. 홍랑은 아비지가 만든 황룡사 구층 목탑의 규모나 균형미에 반한 것이 결코 아니다. 신라로 가면서 백제에 두고 온 사랑을 그리는 애틋한 심정을 짚어보니 홍랑의 마음이 짠한 것이다. 백제의 달을 보고 있으니 천오백년 전의 인물 아비지가 애틋하게 그리운 시간이다. 당시에는 사랑의 대상과 기약도 없는 먼 길의 작별이었을 게다. 기다리는 사람은 그저 맑은 물 한 대접을 떠놓고 무탈하게 돌아오기만을 빌었을 것인즉, 세월은 흐르는 강물처럼 순간적인 역류도 없이 유순하게 흘러 그 당시에 짚신을 갈아 신으며 보름이상을 걸어야 했던 아득하기만 했던 길이 지금은 반나절이 채 안 걸리는 거리가 되었다. 문명의 발달은 거리만 단축시킨 게 아니다. 소통의 수단을 진화시켰다. 지금 신라 땅에 있는 사람이 뭘 하는지 마음만 먹으면 알 수가 있다.
야, 아비지! 점심 처먹었냐? 지금 먹고 있는 중이야. 저녁 답에 갈게. 뒷물 잘하고 기다려! 오케이!
요즘 시대에 그런 애틋한 사랑이었다면 이랬을 것인데 당시의 상황을 유추하는 홍랑의 가슴은 참으로 말 그대로 짠한 시대였다.
주막에는 손님이 북적대는 게 아니다.
안을 들여다보지 않고 바로 마당가의 평상으로 자리를 잡고앉아서 모르겠지만 아마도 실내가 조용한 것으로 미루어 과객이라곤 홍랑 혼자인 모양이다. 손님이 북적대는, 시내의 잘 되는 식당처럼 음식을 만들어놓고 파는 곳이 아니라 주문을 받고 음식을 조리하는 식당인 걸로 짐작이 된다. 홍랑은 간단한 걸 먹으려고 했으나, 돼지국밥이나 따로국밥같이 간단한 게 메뉴에 없었다. 메뉴를 보니 제일 간단하고 만만한 게 닭도리탕이었다. 들어온 이상 다시 나가기도 뭣하고, 마지못해 닭도리탕을 시켰는데 언제 나올지 모르겠다. 행여나 지금쯤 닭을 잡으러 간 건 아닌지 모르겠다. 오리백숙을 시켰으면 혼자서 다 먹지도 못할뿐더러 나오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릴 것 같아 손이 쉬운 닭도리탕을 시켰는데 담배를 두 대나 피운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다. 닭도리탕은 반주가 있으면 죽이는데 쇠당나귀 때문에 반주를 마실 수가 없는 입장이다. 실내로 들어가지 않고 평상에 앉아 있으니 좋은 점은 식탁에 재떨이가 있다는 점이다. 홍랑은 또 담배를 물었다. 홍랑은 손가락에 꽂힌 담배를 보며 생각에 젖었다. 홍랑을 위해 몸을 불태우는 이 연약한 담배 한 개비. 최대한 맛있게 피워줘야지.
해가 설핏해지자 산수유 마을에서 빠져나와 저녁 먹을 곳을 찾으며 구례로 내려가던 중 주막의 잘 가꾸어진 정원을 보고 오토바이 핸들을 꺾었다. 결국은 정원의 정갈함이 홍랑을 불러들인 셈이다.
마당가에 세워둔 오토바이를 보니 참으로 애착이 간다. 하얀색으로 된 할리데이비슨 창사 105주년 기념모델로 나온 기종인데 참 정감이 간다. 오토바이? 쇠로 만든 당나귀이지만 천리마에 버금간다. 하루에 천리만 달리겠냐? 오늘 달린 것만 해도 오백리가 넘을 것이다. 오백리가 넘게 달렸는데도 거친 숨을 헐떡이지 않고 얌전히 질주의 본능을 잠재우고 서있다. 보면 볼수록 애착이 가는 참으로 훌륭한 애마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보니 산천은 의구하되* 오백 년이 아니라 오백리라고 할까? 집에서 예까지는 대충 짚어도 오백 리가 넘을 것이다.
홍랑은 집에서 아침을 먹고 오토바이를 닦으며 빈둥거리다 포근한 날씨의 유혹을 받고 느지막하게 여장을 꾸려 출발했다. 꾸린 여장이라고 해봤자 별 것이 아니다. 속옷 한 벌과 혈압약이 고작이다. 혹시나 싶어 그걸 비닐봉지에 담아 오토바이 뒤에 붙은 새들백에 넣었다. 홍랑은 아내에게는 어디를 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긴 오토바이 안장에 올라앉으면서도 어디를 간다는 작정은 없었다. 그냥 말 그대로 무작정이었고 가다가 태반은 돌아올 요량이지 싶었다. 출발할 적에는 그랬다. 구미에서 김천으로 올라갔다. 늘 다니던 길이라 그 길은 새로울 것도 없었다. 혁신도시의 새로 생긴 고가를 타고 감천의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 소사재를 넘어 거창까지 내려와서 커피를 마셨다. 소사재에는 감천의 발원지가 있고 경남과 경북의 경계가 되는 고갯마루다. 그 고갯마루를 기점으로 물길이 양쪽으로 갈라진다.
강물은 산을 넘지 못하고 산은 강을 건너지 못한단다.
그러나 말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넌다. 고로 오토바이도 산을 넘고 물을 건넌다. 소사재 꼭대기가 바로 삼도봉이다. 경남과 경북, 그리고 전북, 삼도의 경계를 이루는 봉우리라고 삼도봉으로 이름을 붙였다.
강물도 건너지 못한다는 재를 넘으며 보니 국도변에는 봄이 완전히 내려와 있었다. 홍랑은 그 고갯마루에서 시동을 꺼지 않고 오토바이 안장에 앉아 담배를 한 대 그윽하게 피우며 봄을 마음껏 들이켰다. 봄나들이인지 봄 마중이라고 해야 할지 홍랑도 아리송했다. 비록 가죽코트에 부츠를 신고 있었지만 봄의 귀퉁이에 들어와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오늘은 홍길동처럼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헌데 홍길동의 본관이 어디일까. 어디 홍 씨일까? 길동홍씨? 영어로 하면 그렇게 되는데? 길동홍씨가 있나? 그게 갑자기 궁금했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바로 내리막이다. 홍랑은 십리가 넘는 내리막을 그대로 내달리며 질주의 본능을 만끽했다.
김천을 지나면서 거창에 가서 점심을 먹으면 되겠구나 생각했는데 말의 고삐를 너무 당겼고 엉덩이에 채찍을 너무 자주 가한 까닭으로 점심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서 거창은 시장만 한 바퀴 돌아보고 길거리 자판기커피로 입을 축이고 그냥 지나쳤다.
할리데이비슨의 특징은 엔진이 슬로우 상태에서 말발굽소리가 나는 게 특징이다. 그 말발굽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오토바이가 오래된 것인데 그 올드바이크는 희소가치가 높아 가격이 엄청나다. 마니아들은 말한다. 올드바이크의 소리에 반하고 가격에 놀란다고. 그런 올드바이크가 아니라도 할리데이비슨을 타는 사람은 천천히 주행을 하면 연신 말발굽소리를 듣는다. 하여, 라이더들은 그 소리를 잘 들으려고 욕심을 내서 머플러를 소리가 크게 나도록 튜닝을 하는 것이다. 중고로 산 홍랑의 오토바이도 튜닝을 한 것이다. 그 말발굽소리 때문인지 누구나 할리데이비슨을 말에 비유한다.
아무튼, 커피로 입을 축이고 다시 함양으로 향했다. 태평양을 건너온 미국제 말은 봄바람을 가르며 잘도 달렸다. 함양읍내를 지나다가 길가의 중국집 간판을 보고 말, 아니, 쇠당나귀를 세우고 들어가 간단하게 짬뽕으로 점심을 때웠다. 간판이 보이기에 그냥 들어간 집인데 짬뽕이 국물이 진한 게 얼큰하게 요기를 잘 했다. 누가 말했다. 같은 값이면 전라도에 가서 먹으라고. 경상도 음식과 전라도 음식은 맛이 다르다고 했는데 거기를 지나쳐 전라도로 넘어가기에는 너무 늦은 점심이 될 것 같아 그냥 때운다는 기분으로 들어갔는데 얼큰한 걸 좋아하는 홍랑의 입맛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함양! 거기서 잠시 홍랑은 갈등을 했다. 산청으로 내려갈까? 남원으로 넘어갈까? 진즉에 정해놓은 코스는 없다. 거기서 수가 틀리면 길을 되짚어 집으로 가더라도 무방하다. 왜 돌아왔느냐고 묻거나 따질 위인이 없을 것이다. 허나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압도적이었고 무엇보다 말이 더 달리고 싶다는 눈치를 보냈다. 그건 기수. 아니, 라이더로서 외면할 수가 없는 문제라고 홍랑은 생각했다.
산청으로 내려가 하동으로 빠지는 것보다는 남원으로 가는 게 라이더의 코스로는 운치가 있고 스릴을 더 느낄 것 같아 이정표에 길을 물어 인월로 향했다. 홍랑은 인월로 가는 길은 언제나 차를 가지고 고속도로를 이용했었다. 하여 국도는 길을 잘 모르는데 이정표를 보고 고개를 두 개나 넘고 내를 따라 내려오니 그 길 끝에 인월이 매달려 있었다. 인월은 행정구역상 남원인 전라도다. 거기에 도착을 하니 비로소 멀리 왔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가 있었고 드디어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오늘이 인월 장날이었다. 시골의 오일장 구경은 그만인데, 이미 파장분위기였다. 홍랑은 오토바이를 타고 인월 읍내를 천천히 한 바퀴 돌고 산내로 빠지는 변두리 슈퍼 앞에 오토바이를 세웠다. 길가 슈퍼에서 가게 밖에 설치해놓은 간이탁자에 앉아서 캔으로 된 커피를 마시며 느긋하게 숨을 돌렸다. 봄볕은 거기도 내려와 있었다. 홍랑은 인월에서부터는 길을 안다. 구례로 넘어가는 지리산 종주도로를 안다. 길을 더듬다보니 다녀간 지가 실로 오래 전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도로가 곳곳이 바뀌었다. 굽은 도로를 직선화시켜 놓았고 돌아가는 길은 다리를 놓아 질러가게 고쳐놓았다. 그건 오토바이 라이더로서는 지극히 실망스런 일이다. 그만큼 코너를 돌면서 만끽하는 스릴이 줄기 때문이다.
집에서 출발할 적에 집 앞 봉곡네거리에서 좌회전 신호가 먼저 터졌더라면 홍랑은 이리로 오지 않았을 거다. 아마도 경주 쪽으로 내려갔을 것인데 신호가 걸리는 바람에 신호를 받지 않고 김천 방면으로 바로 우회전을 한 것이다. 그 때 좌회전 신호가 바로 터졌더라면 지금쯤 경주의 황룡사지나 남산의 폐사지를 초승달을 보며 홍랑 혼자서 쓸쓸하게 거닐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아하! 신라의 밤이여! 불국사의 종소리가* 그 잠깐의 신호가 신라와 백제를 엄중하게 갈라놓았다.
하여간, 인월에서 산내로 들어가 실상사를 보았다. 실상사 스님들은 밀짚모자를 쓰고 절 앞의 텃밭 일구기에 울력을 하고 있었다. 한 스님이 소를 대신해 멍에를 메고 쟁기를 끌고 있었고 쟁기손잡이를 잡은 스님이 이랴! 이랴! 소를 부리듯 소리를 쳤다. 오랜만에 보는 정겹고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확실히 봄이 온 모양이다. 홍랑은 실상사의 석등에 새겨진 연잎을 보다가 가릉빈가를 떠올렸다. 가릉빈가는 신라불교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 가릉빈가를 보려면 연곡사의 부도를 보아야 한다. 그 부도에는 가릉빈가를 선명하게 새겨놓았다.
연곡사를 꼭 가보아야지.
그때까지 정처가 없었는데 가릉빈가를 생각하고서야 홍랑의 목적지가 정해진 것이다. 홍랑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가죽외투를 벗어 오토바이 안장에 걸쳐두고 경내로 들어가 철조 여래좌상 앞에 삼배를 대신해 간단하게 합장을 하고 경내에 있는 보물과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들을 둘러보았다. 통일신라시대의 조각들인데 조선 세조 때 화제로 절이 전소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철조 여래좌상과 돌로 된 석등이나 석탑은 상륜부까지 온전히 남아 잘 보존되고 있었다. 지금은 중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절이 조선중기 이백 년가량 폐허로 남아 있었다는 말이 홍랑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는데 홍랑의 눈에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지리산 종주도로에서는 스릴을 만끽할 수가 있었다. 말발굽소리를 들으며 코너를 지그재그로 돌며 오르막길을 올랐다. 오르막이 아무리 급경사라도 엔진의 힘은 남아돌았다. 오토바이에 미치면 마누라를 팔아서도 오토바이를 산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는 걸 홍랑은 실감할 수가 있었다. 그 길을 오르며 백제로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잠시 한 것 같다. 지그재그 코스에서 얼마나 스릴이 있었는지 팔뚝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그 고갯마루에는 휴게소가 있었다.
휴게소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그림처럼 겹겹이 둘러쳐진 지리산, 산하를 둘러보고 바로 내려왔다. 내리막길에서도 스릴은 장난이 아니었다. 내리막길이 거의 십리는 족히 넘을 것이다. 내리막에 들어서면 남원이 아니라 구례인 것이다. 내리막에서는 오토바이가 내는 말발굽소리를 더 선명히 들을 수가 있었다. 홍랑은 자신이 오래된 아메리칸 흑백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이 일 정도였다. 아! 오토바이에 이렇게 미치는구나.
그 내리막 끝에는 천은사가 매달려 있다. 천은사는 창건 당시 감로사였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자주 절이 소실되곤 했는데 조선 중기에 천은사로 이름을 바꾸어 현판을 걸고부터 불이 나지 않고 절이 번성했단다. 홍랑은 천은사 경내에 들어가지 않고 주차장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지리산의 자연수인 감로수로 입을 축이고는 바로 화엄사로 향했다. 홍랑이 알기로는 천은사는 화엄사의 말사다. 말사보다 본사부터 먼저 보는 게 순서일 거라는 생각에 화엄사로 핸들을 꺾은 것이다. 화엄사를 실로 오랜만에 찾은 홍랑이었다. 언제 다녀갔는지 기억도 없다. 홍랑이 화엄사에 오면 법당 뒤에 있는, 돌로 된 사자 네 마리가 떠받치고 있는 삼층석탑을 항상 먼저 본다. 오늘도 그랬다.
절 입구 주차장에 오토바이를 세우지 않고 공사차량이나 스님차량이 드나드는 옆문으로 돌아들어가 절 안 작은 마당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들어갔다. 물론 입장료도, 주차료도 내지 않았다. 절에는 중창불사를 하려는지 기와를 씌우는데 쓰려고 가져다 놓은 황토더미 옆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법당 뒤로 올라갔다. 삼층석탑은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된 석탑으로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홍랑은 숨을 헐떡이며 언덕길을 올라가 숨을 고르며 합장을 하고 탑을 살펴보았다. 정교한 균형미, 상승감과 안정감을 자랑하는 탑은 홍랑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그 자리에 있었다.
언제나 그랬지만 구례에 오면 볼 데가 많아 마음이 바쁘다.
화엄사가 구례를 먹여 살리고 구례가 화엄사를 먹여 살린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평일인데도 절을 찾은 사람들로 경내는 복잡했다. 올라오면서 개울 건너 주차장을 힐끔 보니 관광버스가 여러 대 서 있었다. 연일 어디서 그렇게 오는지 모르겠다. 석탑을 보고 내려오는 언덕길에 남향이라 그런지 산수유 꽃이 피어 있었다. 마치 설산에서 도화, 복숭아꽃은 본 듯 신기했다. 그 꽃을 한참 보다가 산수유 마을을 떠올렸다.
그래! 거기로 가자. 지금쯤 절정일 거다.
홍랑은 속으로 외쳤는데 언제 꺾었는지 산수유 꽃가지가 홍랑의 손에 들려있었다. 홍랑은 그 꽃가지를 들고 내려와 오토바이 핸들에 매달았다.
정말 닭을 잡으러 갔는지 닭도리탕은 꿩 구워 먹은 소식이다. 혹시 달걀을 품어 병아리를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주인아주머니는 보이지 않고 물병과 컵 하나를 가져다 놓은 게 고작이다. 어둠이 설핏하게 내려앉으니 국도변에 세로로 세워놓은 해마루식당의 간판 네온은 더욱 빛을 발한다. 가죽외투를 벗어서 걸쳐둔 오토바이 안장 위에도 어둠살이 내리고 있었다. 홍랑은 또 오토바이에 눈길을 던진다. 참 잘생겼다. 보면 볼수록 정감이 간다. 이런 맛을 포만하려고 마니아들은 오토바이를 두 대나 많게는 서너 대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예전에는 미친놈이라고 힐난을 했는데 그 심정을 조금 이해하겠다.
정말이지 오토바이는 잘 빠진 엉덩이를 지닌 말이다. 쓰다듬어 주고 싶은 심정이다. 홍랑은 또 손가락으로 액자를 만들어 눈 가까이 대고 오토바이를 액자에 넣어본다. 영판 사진이다. 잘 빠진 사진이다.
헌대, 가만히 생각하니 아직 오토바이에게 그럴 듯한 이름을 지어주지 못했다. 적토마? 아니다. 하얀색 오토바이이니 적토마는 어울리지 않는다. 백마? 이름이 너무 흔하고 평범하다고 홍랑은 생각했다.
인터넷 사이트에 오토바이 매물을 보러 들어가면 전부가 오토바이에 제 나름대로 붙여놓은 이름을 밝힌다. 사진 밑에 부연 설명으로 제 적토마를 팔려고 합니다. 삼 년간 애지중지하던 애마인데요. 제 백마 2호를 매각하려 합니다. 잘 빠진 말인데요. 제가 타던 천리마는....... 항상 이런 식이다.
그럴듯한 이름을 지어주어야 하는데 얼른 생각나는 게 없다.
당나귀라고 할까, 말이라고 할까, 아니면 말과 당나귀의 혼혈인 노새라고 할까.
일단 그것부터 확실히 정하고 세부사항을 더듬어야 되겠다고 홍랑은 생각했다.
전장에 나갈 일이 없으니 말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다. 말발굽소리를 내니 전부가 말이라고 칭하는데 그건 좀 진부하다. 그냥 유람삼아 타고 다니니 당나귀라고 하는 게 친근감이 일 것이다. 그래 당나귀로 하자. 화이트 돈키, 하얀 당나귀? 아니면 쇠당나귀? 아이언 돈키? 그럼 돈키호테가 되는 게 아닌가? 홍랑이 돈키호테가 되는 건 좋은데 이건 부르는데 혀가 잘 돌아가지 않아 성가시겠다. 아니다. 당나귀라고 하지 말고 노새라고 하는 게 더 어감이 부드럽겠다. 백노새? 어딘가 모르게 어감이 어색하다.
*청노새 안장위에 실어~어 주던 아~아~ 엽전 열~닷냥*
그 가락이 갑자기 홍랑의 입에서 맴돈다. 청노새는 아니고 하얀색 오토바이이니 백노새? 하얀 노새가 있는지 모르겠다. 헌데 노새를 영어로 뭐라고 하지? 홍랑은 모르겠다. 아무튼, 타고 다니긴 했는데 여태 그럴 듯한 이름을 지어주지 못했다. 백노새는 어감이 좀 그렇고. My nose! 나의 노새!
그거 어감이 괜찮은데? 쌈빡해!
순간적으로 떠오른 거지만 그거 특이하고 상큼한 이름인데?
홍랑은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중얼거려보았다.
-마이노새! 마이노새?
경상도 말로, 많이 노세! 그 말과 상통하는 뜻이 된다. 그래. 타고 다니며 많이 놀자. 마이노새.
그거 괜찮다고 생각하는 순간, 바로 옆에 붙은 국도에서 말발굽소리가 들렸다. 홍랑은 반사적으로 소리가 나는 곳으로 눈길을 던졌다. 소리만 들어도 머플러를 튜닝을 한 오토바이다. 홍랑은 마니아가 아니지만 얼마나 원음에 가까운 소리인지는 안다. 사철나무로 된 주막의 낮은 울타리 너머로 보니 할리데이비슨 올드바이크다.
식당 앞에서 주막마당으로 들어오려는 듯 멈칫하다가 그대로 지나쳤다.
-아, 거 참한 말인데, 좀 아쉽네!
홍랑이 그 말을 하면서 입을 쓰다듬는 순간, 식당 입구를 지나친 올드바이크가 한산한 국도에서 무단으로 유턴을 했다. 그리고는 되돌아와 식당 마당으로 들어서서 홍랑의 마이노새 옆에 오토바이를 세웠다. 홍랑처럼 가죽갑옷에 부츠까지 신은 키가 후리후리한 사내였다. 날씨가 풀렸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오토바이를 타려면 가죽코트가 필수다. 가슴팍에 바람이 들어온다고 오뉴월에도 가죽코트를 입는 작자들도 있다. 아무튼, 그런 오토바이가 들어오면 다가가서 관심을 가져주는 게 예의지만 홍랑은 자신도 모르게 일어섰다. 그리고 평상아래 벗어둔 부츠를 급하게 신고 다가갔다.
-이야! 이거 올드바이크네요? 몇 년 식이예요?
홍랑은 다소 과장된 어투로 감탄하는 듯이 물었다. 그게 인사다.
-칠십오 년 식입니다.
75년이면 얼른 생각해도 거의 마흔다섯 살 먹은 오토바이다. 그때가 할리데이비슨의 전성기였고 오토바이 마니아인 후배 오처사가 가진 것과 같은 기종이다. 이런 오토바이는 값이 꽤 나간다. 오토바이는 연료탱크와 물받이를 도색하지 않고 청동색 그대로 두어 올드바이크의 운치가 있었으며 토크가 길어 앞바퀴가 한참이나 길게 앞으로 빠져 나와 있어 홍랑의 오토바이와 나란히 세워놓으니 차체가 한참이나 더 길었다. 토크가 길면 고속주행에서 안정감이 있다. 미국의 마니아들이 대륙을 횡단할 적에 토크가 긴 오토바이를 선호하는 것도 후배에게 들어서 알고 있다.
-이 집 주인이신가요?
사내가 헬멧을 벗으며 홍랑에게 물었다. 헬멧을 벗는데 보니 사내는 꽁지머리를 하고 있었다. 한 눈에 보아도 아집이 있어 보이는 오토바이 마니아다.
-아닙니다. 구미에서 라이딩을 왔는데 저녁을 먹으려구요.
-구미요? 멀리서 오셨네요.
그렇게 말하는 사내에게 구례에 사느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했다. 대전에서 내려왔다는 것이다. 밥 먹을 곳을 찾다가 홀랑의 말 아니. 오토바이를 보고 들어왔다는 것이다.
-잘 됐네요. 저도 저녁 먹으려고 닭도리탕을 시켜놨는데 토종닭이라고 하니 아무래도 혼자서는 다 먹기가 힘들지 싶습니다. 같이 드시는 것이 어때요?
-초면에 실례가 되지 않겠습니까?
-아이고 뭐 사람 사는 세상인데, 이런 일도 있지요. 혼자서 밥이 넘어가겠습니까? 헤어스타일이 상투거사님이시네요. 오토바이와 잘 어울리십니다.
홍랑은 꽁지머리를 걸고 넘어졌다. 꽁지머리의 사내는 키가 홍랑보다 한 뼘이나 커보였고 목소리가 서글서글해서 인상적이었는데 꽁지머리를 정수리에 묶어 영판 상투였다.
-이건 창사 105주년 기념으로 나온 모델인데? 귀한 모델인데요.
사내는 홍랑의 오토바이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아무것도 아닌 말이 홍랑을 우쭐하게 만들었다.
-예! 중고를 구하긴 했는데 아직 초보입니다.
사람은 처음 만나도 공동관심사가 있으면 금세 친숙해지는 법이다. 아마도 오늘 은 오토바이가 그 공동관심사의 매체를 담당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꽁지머리는 홍랑에게 키를 달라고 하더니 홍랑의 마이노새의 시동을 걸었다. 홍랑은 오토바이 이름을 마이노새라고 확정을 지은 모양이다. 상투거사는 오토바이를 만지는 모양새가 어딘가 모르게 익숙해 보였다. 그리고는 엑스레이더를 당기며 소리를 가늠했다. 마니아들은 오토바이를 소리로 타는 것이라고 했다. 홍랑도 소리를 타고 예까지 왔고 상투거사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두 번 더 엑스레이더를 당기며 가속을 시켰다가 슬로우로 낮추고 살펴본 뒤에 입을 열었다.
-캬브레타 정렬도 제대로 했고 머플러 튜닝도 잘한 차이네요. 그냥 타시기만 하면 되겠네요.
홍랑도 상투거사의 오토바이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홍랑은 상투거사가 세운 오토바이 안장에 올라앉아보았다. 삐딱한 차체를 일으켜 세워보니 마이노새보다 훨씬 펑퍼짐한 게 보기보다 상당히 길어 핸들 너머로 앞바퀴가 보일 정도였다.
-혹시 지은 이름이 있나요?
홍랑이 말, 아니 오토바이 안장에 앉은 채 물었다.
-이 놈은 만리향입니다. 향기가 만 리를 가라고 꽃 이름을 붙였어요. 이것 말고 울트라도 한 대 있는데 그 놈은 천리향이고요.
할리데이비슨 울트라? 그것 욕심이 나는 기종이다. 1200cc 급으로 한국에서는 경찰들이 교통단속을 하고 무슨 행사가 있을 때 보이콧을 하며 타는 기종이다. 울트라는 거의 경찰 오토바이가 사용기한을 넘겨 공매로 나와 풀린 기종이 태반이다. 홍랑도 처음에는 그 기종을 사고 싶었는데 후배 오처사가 그건 입문용으로 너무 커서 형님 힘으로는 이기지도 못할뿐더러 차체가 길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홍랑의 건물 현관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잘라서 말했다. 그걸 타려면 오토바이 차고를 마당에 따로 지어야 한다고 하면서 오처사가 골라준 기종이 마이노새였다.
-아주 좋은 이름입니다. 제 건 마이노새입니다. 말처럼 달리지 말고 노새처럼 천천히 가라고. 나의 노새. 경상도 말로 많이 노세!
그 말을 들은 상투거사가 호탕하게 웃었다. 뭐가 잘못되었나? 홍랑이 돌아보자 상투거사가 호탕하게 웃고 나서 말했다.
-우리 통성명도 하지 않고 오토바이 통성명부터 먼저 했군요.
-그런가요? 정말 그러네요. 저녁 먹으면서 천천히 하죠.
그때 식당 안에서 큰 양은쟁반에 음식을 차려서 들고 나오던 여주인, 주모가 소리쳤다.
-한 분이라고 하시더니 두 분이시네요.
-네. 이제야 막 도착하셨네요. 밥만 한 그릇 더 주시면 됩니다.
홍랑이 오토바이 안장에 앉은 채 돌아보고는 소리쳐 대답했다. 주인아주머니는 음식 쟁반을 가져다 평상위에 놓인 장방형 앉은뱅이 식탁에 가지런히 차려놓고 들어갔다.
-밥부터 먹으면서 얘기하죠.
홍랑은 꽁지머리와 식탁에 마주 앉았다. 곧이어 주인아주머니가 밥 한 그릇과 수저를 쟁반에 담아 들고 나왔다. 닭을 어지간히 큰 놈을 잡았는지 도리탕이 큰 쟁반에 한가득 넘쳤다. 밑반찬도 연근조림부터 숙주나물까지 여러 가지가 올라와 있었다. 먹음직스러웠다. 음식이 차려진 상을 둘러보며 상투거사가 말했다.
-전라도에 오면 차려주는 음식을 보고 놀란다니까요. 저는 이쪽으로 올 일이 있으면 가급적이면 전라도에 들어와서 밥을 먹습니다. 우리 숟가락을 들기 전에 통성명부터 하죠? 저는 대전에서 온 상투입니다.
꽁지머리는 서글서글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상 너머로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의 투박한 손을 잡으며 홍랑도 말했다.
-저는 구미에서 온 랑입니다. 연배가 비슷하겠는데요.
그 말을 하면서 홍랑이 나이를 밝혔고 상투거사는 동갑이라며 반갑다고 하면서 다시 악수를 청해 손을 잡아야 했다.
-빅바이크는 처음이신가요?
-네 작년에 시작했습니다. 면허도 작년에 냈구요. 앞으로 많이 배우겠습니다.
-상당히 늦은 나이에 시작하셨군요. 늦게 배웠으니 스릴에 엄청 빠져들 겁니다. 드시죠.
홍랑은 초등학교라는 서당의 후배 오처사, 오토바이를 고치는 처사라고 곽 씨라는 성을 두고 오처사로 통용되고 있는데 오처사의 말마따나 오토바이를 이기지도 못할 나이에 시작을 했다. 후배 오처사는 오토바이를 손보러 갈 적마다 영감탱이가 이기지도 못할 나이에 가로 늦게 웬 오토바이냐고 밉지 않은 핀잔을 주곤 했다. 오처사의 오토바이 작업장에 커피를 마시러 자주 들렀지만 할리데이비슨인지 야마하인지 오처사가 주물럭거리는 오토바이는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소 닭 보듯이 지내던 중 작년에 오토바이에 호기심이 이는 동기가 있었다.
그 동기는 다름 아니라 바로 오기였다.
고등학교라는 서당 동기 중에 시청에 근무하는 한 놈이 거창한 할리데이비슨을 몰고 계모임에 나타난 것이다. 할리데이비슨은 오토바이를 사고 그 오토바이 인테리어를 하고 장비를 갖추는데 오토바이 한 대 값이 든다는 말은 오처사에게 들어서 알고 있다. 그 자식이 타고 온 오토바이는 인테리어를 얼마나 했는지 화려함을 넘어 찬란하기까지 했다. 그 자식이 그 오토바이를 타고 계모임 장소인 전원식당에 나타나자 친구 녀석들이 마당에 세워둔 오토바이를 에워싸고 의견이 분분했다. 오토바이 가격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수천만 원이 넘는다는 말을 하는 놈도 있었고 이 정도로 장식을 하면 억대가 된다고 하는 놈도 있었다.
그 자식은 이 년 전인가, 아내를 잃고 홀아비가 된 놈이다. 헌데, 작년에 하나 있는 딸을 시집보내고 나서 새 마누라를 들인 것이다. 소문에 듣기로는 그 새로 얻은 마누라는 이혼녀인데, 위자료를 많이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상당한 재력가라는 소문이 들렸다. 재력가를 떠나서 홀아비 혼자 살기보다는 마음이 맞는 여자가 생겼다면 같이 살면 궁색해보이지 않고 늙는 모양새가 깔끔하겠다고 긍정적인 생각을 홍랑은 하고 있었다. 헌데, 녀석은 결혼 조건으로 할리데이비슨 새 오토바이를 사주면 결혼을 하겠다는 조건을 붙였고 결국은 그 오토바이를 한 대 받고 살림을 합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 오토바이라면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이 없는 공무원으로서는 언감생심인 물건이다. 게다가 녀석은 말년에 아내 병수발을 삼 년이나 해서 가세가 기울었고 딸 시집을 보내는데도 퇴직금 일부를 당겨서 쓴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녀석이 그 억대가 된다는 오토바이를 타고 등장한 것이다. 친구들 모두 입을 모아 늦복이 터졌다고, 부럽다고 했지만 홍랑은 다른 생각을 했다.
도대체 오토바이가 뭐 길래, 그 정도로 빠져들어 결혼조건에 붙일 정도로 집착을 하는가? 오토바이에 무슨 마력이 있는가?
상당히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성격, 이성적인 사고를 지닌 친구인데 그런 천박하고 비열한 조건을 재혼의 전제로 세운 그 친구를 홍랑은 납득하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른 친구들은 녀석이 갓끈 떨어질 때가 다 되었으니 갓끈 떨어지면 노리개 삼아서 오토바이를 타려고 장만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도대체 오토바이가 무슨 마력을 지녔을까?
그것을 찾는데 오기가 발동을 했다.
홍랑은 후배 오처사의 작업장에 갈 때마다 할리데이비슨을 한 번 타보자고 졸랐다. 오처사는 면허도 없는 영감탱이가 무슨 할리데이비슨이냐고 번번이 핀잔을 주었지만 홍랑은 놀고 있는 오토바이를 막무가내로 끌고 나왔다. 오처사는 정식으로 오토바이 가게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니아들을 통해서 오토바이 튜닝과 인테리어 도색을 해주며 밥벌이를 한다. 녀석은 할리데이비슨 외제오토바이 차체만 있으면 미국에서 부품을 이것저것 직접 수입하여 오토바이 완성품을 만들어 내는 신의 손을 지니고 있는 작자다. 그래서 그의 작업장에는 수리를 마치고 놀고 있는 외제오토바이가 많았다. 하루는 이것 다음날은 저것, 오토바이를 끌고 나와 멀리는 못가고 기껏해야 김천으로 가는 한산한 도로를 달리며 무슨 마력이 있는가를 테스트했다. 테스트를 한 결과 오토바이 면허를 내야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친구의 기분을 조금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면허는 따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오처사녀석의 핀잔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면허를 따야했다.
자동차 운전면허로는 빅바이크를 못 탄다. 오토바이 전용 면허가 따로 있다. 2종 소형면허인데 그것을 내야하는 것이다. 빅바이크를 타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수반된다. 자동차보험을 따로 가입해야하고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하며 자동차세도 내야하는 것이다. 250cc가 넘으면 대형 바이크로 분류된다. 학원에 등록을 하고 무조건 열 시간 기능 연습을 이수해야만 과거를 칠 자격이 생긴다. H는 학원에서 연습을 해서 한 번 떨어지고 두 번 만에 기능시험에 합격을 했다. 운전면허가 있으니 필기시험은 면제였지만 쉬운 게 아니었다. 국가고시 기능시험에 급제를 하고 일주일 만에 오토바이 전용면허를 받았다. 그게 작년 여름이었다.
-구미에서 어느 길로 오셨나요?
닭도리탕이 칼칼하면서 연하다면서 맛있게 먹고 있던 상투거사가 씹기를 멈추고 상 너머로 물었다.
김천을 거쳐 거창, 함양을 거쳐 인월, 그리고 지리산 종주도로로 넘어왔다고 하면서 홍랑은 오늘 온 길의 기억을 되짚었다.
-아! 스릴 있는 길을 더듬었군요. 헌데, 그 길보다 김천에서 무주로 넘어가셔서 구천동 골짜기를 타고 올라와 함양으로 오시면 더 운치가 있고 스릴이 있습니다. -예! 그 길은 생각을 못했습니다. 밥을 한 공기 더 시킬까요?
상투거사는 그러자고 했다. 보기보다 먹성이 좋은 꽁지머리였고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체면을 차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고개를 돌리는데 보니 꽁지머리를 정수리에 묶어 영판 상투다. 안에 있는 주모를 소리쳐 불러 밥을 한 공기 더 시켰다.
-대전에서는 어느 길로 내려왔습니까?
홍랑은 그것이 심히 궁금했다.
금산으로 내려와서 진안, 장수를 거쳐 남원에서 만복사지를 보고 주천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그 길은 지금 산업도로가 생겨서 고속주행이 가능하다면서 스피드를 즐기기에 그만이라고 하면서 추가로 나온 밥을 반 공기 뚝 잘라서 자기 그릇에 담고 남은 반 공기를 홍랑 앞으로 건네주었다. 닭도리탕보다 그 음식 쟁반에 남은 양념 맛이 그만이었다. 홍랑도 건네주는 밥을 꽁지머리처럼 양념에 비볐다.
-어디를 가신다고 정해놓은 목적지가 있습니까?
상투거사가 닭도리탕의 양념을 푹 퍼서 밥을 비비면서 물었다.
-딱히 정해놓은 목적지는 없고 그냥 내키는 대로 오다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사실이었다.
-라이딩은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한 군데나 두 군데 들릴 곳을 정하고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돌아가실 때에는 절대로 왔던 길을 되짚어 가시지 말고 다른 길로 돌아가야 합니다. 왔던 길로 가면 굉장히 피곤합니다. 다른 길로 돌아가야지 신선함을 만끽할 수가 있습니다. 목적지를 정해놓고 한 바퀴 돈다는 생각으로 라이딩을 해야 합니다.
-아! 그렇겠군요. 한 수 배웠습니다. 저는 내심 연곡사의 부도를 꼭 보아야겠다고 오면서 생각했습니다. 그러시는 선생님은 가실 곳을 정하고 오셨습니까?
상투거사는 지리산에 사는 오토바이 타는 시인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헌데, 남원까지 와서 전화를 했더니 그 시인이 공교롭게도 부산에 어느 작가의 출판기념회에 갔는데 내일 오전에 올라온다고 해서 내친걸음에 여기까지 왔노라고 했다. 지리산에서 오토바이를 타는 시인? 홍랑도 풍문으로 그 시인의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
-선생님도 시인이십니까?
홍랑은 그것이 또 궁금했다. 상투거사는 아니라고 했다. 오직 그의 독자이며 오토바이를 통해서 같이 라이딩을 하면서 알게 된 사이인데 친하다고 했다. 그 시인이 가끔 오토바이를 타고 대전에 올라오면 상투거사의 집에서 잔다고 했다.
-그럼 오늘밤은 어디서 주무실 생각이십니까?
홍랑이 물었다. 홍랑은 잘 곳을 정해놓지 않은 상태였다. 객지에서 날이 저무니 조금 서글퍼진다는 생각을 하며 오늘 저녁을 어디서 보낼까 고심하던 중이었다.
-구례에 내려가서 만만한 모텔이나 민박집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아, 저도 그래야겠군요. 거기까지 동행을 하면 되겠네요.
저녁상을 물리고 상투거사가 홍랑에게 담배를 내밀며 말했다.
-담배를 피우십니까?
-예, 애연가 수준을 넘어서 아주 골초반열에 듭니다.
-골초? 오랜만에 듣는 말이군요. 우리집안 내력이 골초입니다, 완전히 골초집안이죠.
그 말을 서두로 상투거사가 입을 열었다. 우리나라에서 작금은 담배를 가지고 너무 요란을 떤다고 했다. 그 말에는 홍랑도 동의를 한다. 상투거사의 증조부와 증조모는 옛날 대담배를 물고 사셨단다. 그랬는데도 두 분 다 당시에 아흔이 넘어서 상투거사가 중학교에 다닐 적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옛날의 기다란 장죽에 상투거사는 늘 증조부모님 담뱃대에 불을 붙여주는 게 어릴 적 일이었다고 했다. 증조부모님을 물려받아서 할아버지도 담배를 많이 피우셨다고 했다. 누구 손님으로 오면서 담배를 한 보루 들고 오면 그 손님을 특별하게 대접할 정도라고 했다. 담배 한 개비 피우면 수명이 몇 초가 짧아진다는 말은 근거를 어디에 두고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그 골초인 할아버지도 아흔다섯까지 건강하게 사셨다고 했다. 아버지는 지금 아흔셋이라고 했는데 매일 담배를 두 갑 이상 피우신다고 하며 세금을 더 거두기 위해 담뱃값을 올리면서 이유를 국민 건강을 빙자하는 건 파렴치하다고 꽁지머리는 피력했다. 흉측한 그림이나 사진만 넣을 게 아니라 진정으로 국민건강을 생각한다면 니라 아예 담배이름을 에쎄나 레종, 이런 식으로 쓰지 말고 후두암이나 폐암, 더 나아가서 황천길이나 저승길, 이런 식으로 이름을 붙이면 어떠냐고 홍랑에게 물었다.
그때 상투거사는 담배 한 개비를 다 피우고 줄담배로 다시 한 개비를 꺼내 물고 있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상투거사가 말을 이었다.
-담뱃가게에 가서 폐암 한 갑 주세요. 저승길 한 갑 주세요. 이렇게 해야 맞는 거 아닙니까?
-하하하. 그렇게 하면 백성의 행복추구권에 위배가 된답니다.
홍랑의 그 대답에 꽁지머리가 더 핏대를 세웠다.
국민행복추구권을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담배 곽에 그려놓은 사진부터 지우는 게 순서라고 하면서 옛날에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하던 코미디언이 왜 폐암이 걸린 줄 아느냐고 홍랑에게 묻고는 그 답을 자신이 내렸다. 홍랑도 그 양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그 양반은 말년 병상에서는 코에 호스를 꽂고 금연홍사대사라는 이름으로 텔레비전에 나와서 금연을 외치고 타계해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 국회의원직을 발로 차버리고 희극무대로 다시 돌아간 진정한 코미디언인데 상당히 불운하게 생을 마감했다.
-그 양반 담배 때문에 폐암에 걸린 게 아닙니다. 하나있는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고 사흘 만에 무대에 서야 했어요. 그 양반에게는 일이었지만 다른 직장인들과는 달리 자신을 슬픔을 감추고 남들을 웃겨야만 했어요. 그런 아이러니를 지녔으니 그 심정 오죽했겠습니까? 그 당시에 가슴에 맺힌 비애나 비통의 덩어리가 삭지 못하고 암으로 발전한 겁니다. 그 양반은 아들이 미국에 유학을 할 적에 무법천지 미국에서 교통사고 날까봐 차도 사주지 않고 애지중지했다고 들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그런 자식을 가슴에 묻었으니 오죽했겠어요?
-그 심정은 이해가 됩니다만 담배를 많이 피워서 좋을 건 없지요.
-정부에서 담뱃값을 올리면서 뭇 백성들 건강을 빙자해서 등치고 간을 빼어 먹기에 한 소리입니다. 제가 담배에 대해서 너무 핏대를 세웠나요?
상투거사는 좀 머쓱한 투로 물었다.
-아닙니다. 바른 말씀만 하셨는데요. 아직도 밤이 되니 조금 쌀쌀하네요.
평상에 쌀쌀한 기운이 내리고 있었다. 둘은 담배를 피우고 일어섰다. 닭도리탕은 깨끗하게 비운 뒤였다. 평상에 던져둔 가죽갑옷을 입으면서 보니 상투거사의 가죽으로 된 갑옷이 상당히 특이해 보였다.
-재킷이 상당히 좋아 보입니다.
-할리데이비슨에서 나온 라이딩 전용 재킷입니다. 넘어져서 미끄러져도 팔을 다치지 않도록 이렇게 여기가 꽉 조이게 되어 있지요. 여름에도 이걸 입어야 안전하다고 여름에 이걸 입고 라이딩을 하는 작자들도 있습니다.
상투거사가 팔꿈치 부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비쌀 것이다. 홍랑은 재킷의 가격이 궁금했으나 묻지 않았다. 홍랑의 가죽재킷은 오토바이 전용으로 입는 재킷이 아니다. 지난겨울 초입에 파커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니 가슴에 바람이 술술 들어와 인터넷으로 가죽재킷을 찾다가 한 사이트에서 중고가 헐값에 나와 찜을 했다. 양복 위에 입는 롱코트인데 사이즈가 맞아 바로 구매를 하고 택배로 받은 것이다. 받아보니 놀랍게도 홍랑의 형편으로는 새것은 꿈도 꾸지 못할 유명메이커 제품이라 만족해하고 겨울 내내 오토바이를 타는 날이면 입었다. 가격이 있으니 가죽이 두텁지 않고 얇아서 바람막이로는 그만이고 활동을 하기에 투박하지 않아서 오토바이 전용재킷보다 마음에 들었다.
-구례까지 바꾸어서 타고 갈까요?
상투거사가 만리향을 가리키며 제의 했다.
-아닙니다. 상투거사님! 제가 아직 초보라서 저 정도면 이기지도 못할 겁니다.
그렇게 홍랑이 사양하고 각자의 오토바이에 올라앉았다. 시동을 걸고 나니 두 필의 말발굽소리가 장단을 잘 맞추어 듣고 있으면 저절로 흥이 날 지경이었다. 둘 다 머플러가 튜닝이 된 까닭에 주인아줌마, 주모가 던지는 작별의 인사말도 듣지 못하고 홍랑은 아줌마에게 손만 흔들었다.
두 대가 달리는 밤의 국도는 좀 요란했다. 두 대가 달리자 정적에 깃든 도로는 일제히 잠에서 깨어났다. 홍랑은 정속주행을 하고 상투거사는 갓 대신에 헬멧을 쓰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속력을 올렸다가 줄였다가하면서 홍랑의 마이노새를 보이콧했다. 국도는 한산하다 못해 텅 비어있었으므로 달리기에 그만이었다.
아! 이런 기분에 떼거리로 무리지어 라이딩을 하는구나.
홍랑은 기분이 고조되었고 무리지어 라이딩을 즐기는 라이더들의 기분을 조금 이해할 수가 있었다. 고가의 오토바이를 재혼의 조건으로 삼은 서당 동기 녀석의 기분도 이제야 조금 알 듯 하다. 오늘은 배우는 게 좀 많은 날이다. 무릇 배움은 도처에 늘려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
-아니, 이 양반은 도대체 어딜 간 거야?
H의 아내 김말자여사는 거실바닥에 모로 누워 텔레비전에 눈길을 주다가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끔 보며 혼잣소리를 뱉었다. 소파가 있지만 혼자 있으면 거실바닥에 눕는 게 훨씬 편해서 늘 그렇게 하는데 버릇이 되었다.
이 양반은 전화도 받지 않고 아침나절에 나가서 종무소식이다.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술래*
내가 뭐 술래야? 맘대로 하라지. 늦게 배운 도둑질 밤새는 줄 모른다고 가로 늦게 오토바이를 배우고 면허를 따더니 살짝 맛이 갔다. 허구한 날 오토바이만 주물럭거리고 헬멧을 얼마나 자주 바꾸는지 현관에 있는 헬멧만도 대여섯 개는 되지 싶다. 또 오토바이 소리를 얼마나 크게 만들어서 타고 다니는지 오토바이를 끌고 나가면 삼이웃이 다 알 정도이고 나갔다가 들어올 때면 골목 앞에서부터 소리가 들려 삼층,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어도 안다.
딸애는 회식이 있어서 늦을 거라고 했다.
경기도 안 좋다는데 공무원들이 눈치가 없으면 체면이라도 있어야지 무슨 회식이 그리 잦은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회식을 빙자해서 예비신랑이 되는 놈과 또 어디서 노닥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다음 주에 예단을 보내기로 되어 있다.
못마땅한 건 사위가 될 작자가 사대종손이라는 점이다. 상견례를 하면서 일 년에 제사가 여덟 번이라는 소리를 듣고 기가 막혔다. 눈치가 있는지 없는지 안사돈이 될 위인은 그걸 자랑삼아 상견례자리에서 얘기했다.
공부만 했지. 음식이라곤 라면도 하나 제대로 끓이지 못하는 딸애가 그 살림을 해낼지 걱정이다. 남편이라는 작자는 그런 점에는 아랑곳이 없다. 그저 요즘은 돈만 주면 다 해결된다고 하면서 천하태평이다. 혼사를 앞둔 김말자여사는 그저 초조하다. 위에 딸 둘을 시집보내면서 혼사를 치러보았건만 하고나서 돌아서서 생각하면 뭐가 빠져도 빠진 게 있다. 남의 혼사에는 참견하여 이것저것 챙겨보기도 했건만 정작 자신의 혼사에는 어디부터 손을 써야할지 모르겠다.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게 혼사다. 나중에 마음 쓰이지 않게 알뜰살뜰 챙겨서 보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어디서부터 손을 쓸지 모르겠다.
메모지에 예단으로 보낼 품목을 적다가 골머리가 아파 윗목으로 밀어두고 텔레비전에 눈길을 주고 있었다. 그걸 하나하나 적으려고 하니 더 생각이 나지 않는다.
손 없는 날을 골라서 날을 잡고 예식장은 일찌감치 예약을 해두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혼사를 준비해야 되는데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당장 다음 주에 보낼 예단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요즘은 예단을 현금으로 보낸다는데 물론 현금도 좀 보내야겠지만 그래도 덤으로 딸려 보낼 음식이 있을 거다. 과일바구니와 떡은 생각이 나는데 그 다음이 문제다. 시부모가 될 분들의 이불은 보아둔 게 있다. 남편더러 예단을 보낼 때 끼워 넣어 보낼 편지를 손으로 한 통 쓰라고 했는데 그런 격식은 필요 없고 마음만 보내면 된다고 일축했다.
그런데 이 양반은 도대체 어딜 간 거야?
아침나절에 오토바이를 끌고 나가기에 잠깐 동네나들이나 친구의 타이어가게에 가서 커피나 마시고 올 줄 알았는데 종무소식이다. 딸아이 결혼식 날을 잡았으니 초상집에 가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거늘, 또 누구네 초상집에 가서 밤을 지세우고 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정말 그랬다간 두고 보자.
헌데, 상가에 갔다면 전화라도 받아야 될 거 아니야?
골목에 오토바이 소리가 난다. 이제 오는 모양이군! 헌데. 오토바이소리는 집 앞을 사정없이 지나쳐 옆 골목으로 사라졌다.
-얼레, 아니네.
보나마나 베이징의 자장면 배달하는 놈일 것이다. 머플러가 터진 걸 고치지 않고 그냥 타고 다니니 서방님 오토바이 소리와 비슷하다. 가만히 생각하니 남편의 오토바이 소리보다 좀 찢어진 소리를 내는 것 같아 귀에 거슬리기도 했다. 남편의 오토바이 소리는 어떻게 된 게 소리가 커도 리듬이 있어 귀에 거슬리지는 않는다. 저 놈의 오토바이 좀 고쳐서 타지........ 비스듬히 누워 중얼거리던 김말자여사는 벌떡 일어난다.
오토바이소리 때문이 아니라 텔레비전에 한국의 기행을 시작하고 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다. 요즘은 해외여행을 워낙 많이 나가니 한국에도 볼거리가 많다고, 흥청망청 쓰는 해외여행을 자제하라는 홍보차원에서 하는지 한국의 기행을 재미있게 제작을 해서 방영하고 있다. 직접 가서 보는 것보다 텔레비전 화면으로 보니 더욱 재미가 있다. 해설도 적당히 곁들여 그 지역의 시대상이나 여행을 가면 모르고 지나칠 국보나 보물들을 하나하나 발췌해서 시청자들 귀에 속속 들어오도록 알려주고 있는 유익한 프로그램이다.
오늘은 전남 구례편이다.
화면에는 구례의 너른 들을 배경으로 시작해서 화엄사를 알려주고 있었다. 김말자여사는 화엄사에는 서너 번 가본 적이 있다. 허나, 텔레비전 화면으로 보니 색다르다. 다니는 절에서 방생법회를 가면서 들렀고, 주부산악회에서 지리산 등산을 가면서 들렀고, 또 무슨 일로 갔는지는 다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서너 번은 가보았지 싶다. 하지만 화면으로 보니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이 보이는 것이다. 화엄사 다음에는 천은사가 나오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김말자여사는 화면에서 눈길을 떼지 못한다. 화엄사는 670년 통일신라시대에 의상대사 창건한 절이라고 했으니 천오백 년이 된 고찰이다. 몰랐던 사실이다. 국보인 각황전을 보니 예전에 단체로 법당에 들어가 멋모르고 삼배를 했을 때보다 감회가 벅찼고 사자탑은 공중에서 앵글각도를 잡아 촬영을 했으니 주변의 산세와 함께 잘 어우러졌다.
화엄사 각황전이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재건하면서 얽힌 이야기들을 해설로 전해주었다. 의미를 알고 나니 가이드를 따라다니며 주마간산 훑어보는 해외여행보다 하루 시간을 내어 구례를 둘러보면 훨씬 유익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패키지를 따라가면 강제로 쇼핑센터에 데리고 가는 통에 환장을 하는데 한국의 기행에 나오는 코스를 알고 가면 최소한 그런 일로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을 게다.
화엄사 다음에는 천은사가 나올 줄 알았는데 아니다.
연곡사의 부도다. 국보로 지정된 동부도와 북부도를 보여주고 있는데 해설에서는 마치 밀가루반죽으로 만들 듯이 다듬었다고 밀가루반죽에 비유했다. 김말자여사는 돌이 아니라 밀가루반죽이라 하더라도 저렇게 만들 수가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정교한 균형미. 안정감과 상승감의 조화라고 했다. 그걸 잘 맞추었단다.
-어쩜 돌로 저렇게 만들 수가 있을까?
김말자여사는 감탄을 했다. 옥개석은 돌로 목조주택의 모양의 그대로 옮겨온 거라고 하며 서까래와 지붕의 기왓골의 섬세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서까래의 굵기는 새끼손가락보다 가는데 그 끝에 연꽃 문양을 넣었다고 했다. 기왓골의 곡선과 서까래의 곡선이 예술이다. 해설을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탑신에 새겨진 연꽃과 신라불교에서는 보기 힘든 가릉빈가에 대해서도 설명을 했다. 가릉빈가가 뭔가? 궁금한데? 역시 텔레비전이다. 해설자는 그걸 잘 설명해주었다. 그걸 보고 있는데 딸애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회식이라더니?
김말자여사는 텔레비전에 눈길을 주고 물었다.
-응. 밥만 먹고 바로 빠져나왔어. 아빠는?
-모르겠다. 아침나절에 나가더니 소식이 깡통이다. 말 시키지 마라. 지금 중요한 장면이다.
여전히 텔레비전의 다각도로 보여주는 가릉빈가에 눈길을 주고 대답했다. 피아골 연곡사라고 했다. 참 참하다. 아담한 저 부도에 가봤는지, 못 가봤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본 것 같기도 하고. 빛을 관통시켜 대칭이 되는 균형미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측정하고 있다.
-엄마! 나 시집가지 말까봐.
-마음대로 하렴.
-정말?
-응.
대수롭잖게 던져놓고 텔레비전에 눈길을 박고 있다가 김말자여사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너 방금 뭐라고 그랬어?
-시집가지 말까봐 그랬어.
-왜? 무슨 일이 있니? 싸웠어?
-아니, 내가 시집가고 아빠가 밖으로만 나다니면 엄마 심심할까봐. 텔레비전만 보다가 혹시 우울증이라도.......
-아이구 얘야! 간 떨어지겠다. 농담이라도 큰일 앞두고 절대 그런 말 하지마라. 부정 탄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딸애와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에 텔레비전 화면은 바뀌어 구례의 들판을 비추고 있었다. 아쉽다. 그때 또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귀를 기울이니 베이징의 자장면 배달원인지 또 마당 앞 골목을 사정없이 스쳐지나갔다. 거, 참! 신경 거슬리네. 김말자여사는 은근히 짜증이 일었다.
딸애 결혼식 전에는 시간이 없을 거다.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보내 놓고 남편과 함께 피아골의 연곡사로 나들이를 한 번 했으면 좋겠다.
아, 연곡사의 부도!
내용을 알고 나니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근데 오토바이에만 정신이 팔린 이놈의 영감쟁이가 들어나 줄려나? 설마 거기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가자고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
모텔은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었다.
구례읍내로 들어가니 초입에 모텔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텅 비어있는 주차장에 만리향과 마이노새를 나란히 세우고 방을 두 개잡았다. 시골이라 그런지 숙박료는 민박집과 별반 차이가 없는 듯했다.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면서 얼른 씻고 한잔하자고 상투거사가 제의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서 하룻밤을 자게 되면 저녁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그게 홍랑의 마음속 숙제였는데 그 문제는 깔끔하게 해결된 듯했다.
대충 씻고 나니 상투거사가 홍랑의 방문을 노크했다.
둘은 모텔을 나서며 보니 주차장 구석을 힐끔 보니 상투거사의 만리향과 홍랑의 마이노새는 나란히 서 있었다.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었다. 주차장을 빠져나와 앞길을 상점들을 훑으며 내려갔다. 시골이라 그런지 상점들은 일찌감치 문을 닫았는지 불 꺼진 점포들이 많았다. 금방 저녁을 잔뜩 먹었으니 어디 주막에 들어가지 말고 슈퍼 같은 데서 간단하게 맥주를 마시자고 상투거사가 제의 했다. 홍랑도 그게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저 아래까지 장터를 구경하고서 다시 올라와 저 슈퍼에서 마십시다.
홍랑이 옆에 있는 편의점을 지나치며 제의했다. 금세 저녁을 먹었으니 소줏집에 들어가 삼겹살이나 다른 고기를 먹기에는 좀 부담스러웠다. 둘은 컴컴한 읍내 거리를 걸어서 내려갔다. 손톱만한 달이 따라오고 있었다. 둘 다 가죽으로 된 갑옷은 벗었지만 신발은 롱부츠였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좀 괴이한 작자들이라고 여길 거라고 홍랑은 생각했다. 저자거리를 따라서 쭉 내려가니 좀 전에 보았던 편의점보다 더 큰 편의점이 길 모퉁이에 있었다. 밖에서 보니 편의점 안에는 간단하게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의자와 탁자가 놓여 있어 고객들의 편의를 제공하고 있었다.
-저기가 좋겠군요.
홍랑의 말에 상투거사는 딴지를 걸지 않고 따라 들어왔다.
편의점을 지키는 아르바이트생은 고등학생쯤으로 앳되어 보이는 소녀였다.
-여기는 물이 좋은가, 규수가 예쁘구먼.
그 말을 하고 상투거사가 냉장실 앞에 서성이며 진열된 맥주를 살폈다. 국산맥주는 비싼데 반하여 수입맥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팔고 있었다. 네 캔을 사면 플러스 원이라는 글귀가 냉장실 유리문에 붙어 있었다. 결국 네 캔의 가격으로 다섯 캔을 먹을 수가 있다는 말이다. 편의점에서 병맥주는 어울리지 않는다. 상투거사는 카운터 앞에 놓인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고 와서 홍랑을 보고 맥주를 골라보라고 했다. 수입맥주는 여러 종류가 있었다. 그러나 가격은 동일했다.
-맛은 마시지 않아서 모르겠고 모양만 좋을 걸로 고르지요.
홍랑이 그 말을 할 때 상투거사는 벌써 캔 하나를 꺼내서 따서 홀짝 맛을 보고 있었다. 그걸 본 아르바이트생이 앳된 소리로 계산부터 하고 따야 된다고 했다. 무안해진 상투거사는 말했다.
-그럼 학생이 이리 와서 좀 골라줘요. 뭐가 뭔지 모르겠네.
백제의 규수가 다가와 외국맥주는 일곱 종류가 있다며 몇 개나 사실 거냐고 물었다. 홍랑이 포 플러스 원이 맞느냐고 물었고 학생은 그렇다고 했다. 그러면 열 캔을 골라달라고 했다. 규수는 이미 꽁지머리가 딴 것을 합쳐서 아홉 개를 종류별로 골라 바구니에 담고는 계산대로 가서 바코드를 찍었다. 그러는 사이에 홍랑은 게맛살과 안주가 될 만한 육포를 골랐다. 계산을 마치고 플라스틱 탁자에 바구니 채 얹어놓고 홍랑은 상투거사와 마주 앉았다.
-외국맥주를 이렇게 싸게 팔아서 국산맥주가 자리 잡을 틈이 있겠어요? 외국맥주가 시장점유율이 상당한 모양인데요. 이런 시골까지 들어와 있는 걸 보니까.
-그러게 말이에요. 우리 같은 소비자야 좋지만.
홍랑이 맞장구를 쳤다. 상투거사는 바구니에 든 맥주를 하나하나 꺼내서 어느 나라 제품인지 살피고 있었다.
-이건 칠레산이고, 이건 독일 맥주고. 이건? 호주맥주네요. 세계 각국의 맥주가 다 모였구먼!
상투거사는 덩지에 비해서 좀 꼼꼼한 데가 있어보였다.
-아니, 그 작은 글씨가 보입니까?
노안이 비교적 일찍 온 홍랑은 맥주보다 그 글씨를 읽어내는 상투거사가 신기했다. 상투거사는 호주산부터 마시겠다고 했고 홍랑은 칠레산이라고 골라주는 맥주의 뚜껑을 땄다. 그리고 마주앉은 꽁지머리에게 제의했다.
-우리 처음 만났는데 건배는 한 번 하고 마셔야죠?
-당연히 그래야겠죠. 건배구호는 무엇으로 할까요?
상투거사의 물음에 홍랑은 생각하고 있던 바를 말했다.
-백제를 위하여로 하죠. 저는 지금 전라도 구례에 온 것이 아니라 백제로 시간여행을 온 기분이 들거든요. 저는 지금 백제의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다는 생각에 괜히 서글퍼지기도 하고. 삼국 중에서 가장 먼저 망했고, 삼천궁녀가 백마강으로 뛰어 내릴 정도로 찬란한 슬픔을 지니고 있죠. 백제를 소제로 한 노래는 언제나 구성지고 슬프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백제를 잡아먹고 통일신라시대에 백제 출신의 장인들로 하여금 찬란한 불교문화의 꽃을 피웠습니다. 백제를 위하여가 어때요?
-백제를 위하여? 아주 좋습니다.
상투거사의 그 말을 기화로 둘은 캔 맥주를 들었다. 그리고는 앞으로 내밀며 홍랑이 소리쳤다.
-백제를 위하여!
-위하여!
마치 백제의 무사들 같이 건배구호가 너무 컸던가? 삼천궁녀의 후예 아니, 카운트에 있던 백제의 규수가 놀란 눈으로 넘어다보았다. 홍랑은 반 쯤 마시고 내려놓았는데 상투거사는 벌꺽벌꺽 목울대에 소리를 내며 한 캔을 단숨에 마시고 빈 캔을 내려놓았다.
-맥주를 좋아하시나 봐요?
육포를 찢어 상투거사에게 건네며 홍랑이 물었다.
-이거 한 캔이 생맥주 반잔이 채 되지 않습니다.
육포를 씹으며 상투거사가 빈 캔을 움켜쥐고 캔을 쭈그리며 대답했다.
-우리는 지금 백제에 들어와 있습니다. 백제 하면, 선생님은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뭡니까?
홍랑이 화제를 돌렸다.
-생각나는 거? 삼천궁녀하고 백마강이죠.
-아 그런가요? 저는 아비지입니다.
-아 그 양반도 있네요. 우리 술은 같이 마시더라도 가급적이면 정치판 얘기는 하지 맙시다.
상투거사가 못을 박았다.
-술맛 떨어지는 얘기를 왜 합니까?
홍랑이 맞장구를 치고는 아비지에 대해서 아는 대로 얘기를 했다. 황룡사 구층 목탑의 규모, 거기에 동원된 장인들, 그리고 백제 땅에 두고 온 사랑에 대해서도 유추하며 얘기를 했다. 안타까운 건 그 기록이 없다는 점이라고 못을 박으면서 출발할 적에 좌회전 신호가 터졌다면 경주로 가서 신라의 달밤을 거닐었을 건데 아무래도 꽁지머리, 상투거사인 그대를 만나려고 이쪽으로 오게 된 모양이라고 장황하게 얘기를 했다.
상투거사는 이 쪽으로 잘 오셨다면서 만나서 반갑다고 하면서 자기도 아침에 나설 적에 라이딩을 자주 가는 부여와 익산 쪽으로 가려다가 핸들을 꺾었다면서 특별히 어디를 간다는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출발을 했는데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했다. 지리산 시인이 부산을 가지 않았다면 못 만날 수도 있었겠다고 말하며 혹시 구미 쪽으로 라이딩을 가면 소주 한잔 사달라고하며 웃었고 구미에 가면 뭐 볼 게 있느냐고 물었다.
라이딩 코스로는 도리사가 그만이라며 홍랑은 낙동강을 따라서 도리사로 가는 도로를 설명해주고 도리사를 창건한 신라의 아도화상인 묵호자에 대해서 아는 대로 설명을 하며 금오산을 들렀다가 김천의 직지사와 묶어서 돌아보면 당일치기 라이딩 코스로는 그만이고 정통 신라불교를 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상투거사는 홍랑의 말을 들으며 또 캔을 움켜쥐었다. 꽁지머리는 맥주를 마시고 빈 캔이 되면 손 안에 넣고 아귀에 힘을 주어 찌그러트리는 버릇이 있었다. 그렇게 찌그러트린 캔을 세어보니 일곱 개나 되었다.
그때 상투거사가 제의했다. 맥주를 몇 개 더 사가지고 밖으로 나가자는 것이었다. 아마도 맥주를 마시니 담배가 당기는 모양이었다. 사실이지 홍랑도 담배가 당기기는 마찬가지였다. 둘은 카운트에서 텔레비전에 눈길을 주고 있는 백제의 소녀를 불러 캔 맥주 다섯 개를 더 골라달라고 하면서 남은 맥주와 남은 안주를 비닐봉지에 넣어 달라고 주문을 했다.
맥주와 안주가 든 비닐봉투는 홍랑이 들었다.
편의점을 빠져나오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을 담배를 빼물었다. 컴컴한 읍내거리를 빠져 나오면서 담배를 물고 있던 상투거사가 물었다.
-아까 영국사를 가신다고 하셨나요?
-아니, 영국사는 천태산 영국사, 충북 영동과 금산 사이에 있는 절이고 피아골의 연곡사를 목적지로 정했다고 했습니다.
-아! 피아골 연곡사.......
읍내 저자거리를 빠져나오자 바로 너른 들판이 펼쳐졌다. 아, 무정한 여편네 같으니라구, 홍랑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침나절에 나와서 여태 소식이 없었는데 전화 한 통이 없다. 이젠 정나미가 떨어졌는지 종일 보이지 않아도 찾지도 않는군! 오래 묵은 친구가 좋다고 했는데 마누라는 다른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전화가 들어 있을 윗도리 주머니를 지그시 눌러보았다. 어? 없네. 휴대폰이 없는 것이다. 아마도 모텔에 벗어둔 가죽갑옷 주머니에 넣어두고 그냥 나온 모양이다.
-저기가 좋겠군요.
상투거사가 가리킨 곳은 팔각정이었다. 읍내 초입에 노인들이 쉬라고 만들었는지 팔각정이 있고 안에는 나무로 마루를 만들어 두었다.
-오늘 우리가 올 줄 알고 깨끗이 청소를 해서 비워둔 모양이네요.
상투거사가 부츠를 벗고 마루로 올라서며 말했다. 홍랑도 마루에 걸터앉아 부츠를 벗었다. 조금 컴컴했지만 마주앉아 맥주를 마시기에는 불편함이 없었다.
-연곡사에는 뭐가 볼 게 있나요?
맥주 뚜껑을 따며 상투거사가 물었다.
-볼 게 많지만 특히 부도이지요. 동부도와 북부도가 있는데 두 점 다 국보로 지정.......
홍랑은 연곡사의 부도에 대해 아는 대로 설명을 했다. 신라불교에서는 볼 수가 없는 가릉빈가가 두 점의 부도에 다 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고 그 가릉빈가를 보기만 해도 최소한 지옥고는 면한다는 말을 했다.
-가릉빈가가 뭐죠? 처음 듣는데.
상투거사가 홍랑의 설명을 잘랐다.
-일명 극락조로 불리는 불경에 나오는 상상의 새죠. 머리는 사람 얼굴 형상이고 몸통의 새의 깃털로 되어 날개가 달린 동물을 말합니다. 그 가릉빈가가 삼천 년에 한 번씩 지구상에 나타난답니다.
홍랑은 언제 연곡사를 다녀갔는지 기억조차도 희미하다. 최소한 십오 년은 넘었을 것이다. 구획정리지구에 상가 건물을 짓기 전이었으니까. 상가건물을 짓고부터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일층은 세를 주고 이층은 사무실로 쓰며 삼층은 주택으로 꾸며서 살고 있다. 아마도 마지막 왔을 때가 상가건물을 짓던 해 겨울이었지 싶다. 부도의 옥개석을 보고 그 상가건물 지붕을 설계변경해서 한옥지붕으로 꾸미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니. 그러니 어림잡아도 십오 년이 넘었을 거다. 그때 북부도를 보고 참 안타까운 마음으로 돌아갔다. 잔설이 남은 산길을 걸어서 북부도를 보러 갔는데 부도는 보이지 않고 폴리스라인이 쳐져있었고 돌의 잔재는 푸른 천막으로 덮어씌워 놓았었다. 이게 뭐야? 홍랑은 라인을 넘어서 들어가 천막을 들추어 보았다. 돌의 잔재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부도를 재정비하려고 해체해서 돌을 가지런히 놓아둔 게 아니었다. 실망감을 안고 연곡사로 내려왔다. 한 스님을 잡고 북부도가 왜 저러느냐고 물었더니 눈이 심하게 오는 날 도굴꾼들이 뭘 탐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부도를 넘어트렸다고 했다. 눈이 오는 소리에 법당에 있던 스님들도 몰랐노라고 했다. 홍랑은 실망감과 분노, 안타까움을 안고 돌아갔었다.
홍랑은 그 얘기까지 상투거사에게 들려주었다.
-부도가 다치지는 않았나요.
-모르겠습니다. 넘어트리는 과정에서 돌과 돌이 부딪쳤으니 상처야 좀 났겠지요. 옥개석을 통째로 목조주택 지붕을 만들어서 기왓골이나 서까래 하나라도 흠집이 났겠지요. 담배 굵기 만한 서까래 끝에 연꽃문양을 넣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었는데 그렇게 무너뜨리면 돌과 돌이 부딪혀 성할 리가 있겠습니까? 조금이라도 흠이 생기면 그런 낭패가 없지요. 그때 오고는 저도 처음입니다.
-내일 오전에 연곡사에 그 부도를 보러 가실 겁니까?
-그럴 생각입니다.
-이 상투도 따라 붙이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정말 혼자보기는 아까운 작품입니다. 아니,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됩니다.
상투거사가 동행하겠노라고 했다. 오토바이 두 대로 라이딩을 즐기면서 피아골 끝까지 오토바이가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 올라가면서 봄의 자연풍을 즐기다가 내려오면서 연곡사를 보면 되겠구나 생각했다.
-거기를 보고 지리산 시인의 오토바이를 구경하시지 않겠습니까? 올드카인데 멋지게 꾸며 놓았거든요. 시인이 어떻게 사는가도 보시고.......
시인이 어떻게 사는가에 대해서는 궁금하지 않은데 그 잘 꾸며 놓았다는 오토바이는 구미가 당긴다.
-거기 가서 한잔하게 되면 하룻밤 더 유하시고 올라가시면 되구요. 지리산 시인의 집에는 누추하지만 방이 많습니다.
-폐가 되지 않을까요. 초면에.
홍랑은 그것이 걱정이었다.
-안되는 게 어디 있습니까? 사람 사는 세상에? 올라가실 때에는 섬진강을 따라 화개장터에 들렀다가 하동으로 올라가서 산청으로, 산청에서 합천으로, 합천에서 성주로 가서 왜관을 거쳐 구미로 가시면 왔던 길을 되짚는 것보다 신선함을 만끽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아니, 남도의 지리를 어떻게 그렇게 잘 아셔요? 손금 들여다보시듯 하시네요?
홍랑은 상투거사가 짚어주는 길에 놀랐다. 아니.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도리사를 얘기할 적에 그렇게 진지하게 들어주더니.
-그렇지 않아도 그길로 돌아가면 어떨까 생각하던 중이었습니다.
돌아갈 길은 아득했다. 아득하면서도 즐겁고 설렌다. 그 길로 가면 지리산을 한 바퀴 도는 셈이 된다. 첫 번째 라이딩으로는 성공이다.
-제가 할리데이비슨 삼십 년입니다. 오토바이를 오래 타다보면 저절로 알게 됩니다. 국도로 다니는 길이야 빤하지 않습니까? 이야! 오랜만에 나왔더니 별이 죽이는데요.
상투거사는 맥주를 홀짝이다가 고개를 빼고 별을 쳐다보고 있었다. 달이 지고 나니 별이 빛을 발하는 것이다.
-그러네요. 백제의 별이네요.
-아! 백제의 별.
상투거사는 백제의 별을 보고 또 감탄을 했다. 홍랑도 이렇게 많은 별은 오랜만에 본다. 북두칠성과 페가수스자리가 선명하다. 어렴풋이 은하수도 보인다. 어릴 적에는 별이 그렇게 많았다. 헌데 지금은 없다고들 한다. 별은 결코 사라지는 게 아니다. 지금도 별의 개체는 예전과 똑같이 많지만 단지 인간이 못 볼뿐이다. 별을 보는데 방해하는 쓸데없는 채광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별은 그렇게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는지 꽁지머리는 홍랑을 넘어다보았다.
-양손을 이렇게 꼬아서 손가락으로 사각형액자를 만듭니다. 그리고 이 팔각정 처마와 별을 액자에 넣어서 크기를 가늠하면서 보시면 훨씬 아름다운 그림이 됩니다.
상투거사는 단박에 따라하며 사각형을 만든 손가락을 조금 뻗었다가 눈 가까이 대었다가 가늠하며 감탄을 연발했다.
-이야! 이렇게 보니까 더 죽이는데.......
-지리산에 자주 오십니까?
손가락 사이에 별을 넣어 감상하며 감탄하는 상투거사에게 물었다.
-가끔, 오지요. 헌데, 신음소리가 지겨워요. 지리산 시인은 그 소리에 발목이 잡혔다고 했지만 저는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너무 시적이라서 알아듣기 힘듭니다.
홍랑의 물음에 상투거사는 손을 풀고 맥주를 홀짝이고 말을 이었다.
-돌이키면 참으로 아픈 역사를 품은 산이죠. 곳곳에 상흔이 남아 아직도 신음하는 산입니다. 우리의 아픈 역사를 대변하는 산이죠. 그 신음소리가 때로는 사람을 부르고 때로는 쫓기도 하지요.
-지리산 시인이 그런 말씀을 하셨나요. 전적으로 공감입니다.
홍랑은 들판너머의 컴컴한 지리산을 바라보았다. 멀리 지리산이 부상을 당한 거대한 짐승처럼 웅크리고 울부짖음을 삼키고 있었다.
-아! 지리산이여!
신음처럼 산을 호명하는데 전율이 일며 팔뚝에 소름이 돋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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