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따뜻한 개미
정동식
장마철 새벽에 엄청난 비가 퍼부었다. 그 비는 오전 10시경 내가 집을 나설 때쯤 잦아들었다. 아파트 남쪽 문을 향해 걷는데 보도블록 위에 은빛 물체가 반짝였다. 혹시 착시현상인가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곤충의 날개인 듯한 것이 움직이고 있었다. 길쭉한 모양으로 보아 매미 날개 같았다. 성체에서 떨어진 날개는 생명력이 없어 스스로 이동은 불가하다. 그런데 움직이고 있다.
개미 두 마리가 자기 덩치보다 수십 배나 되어 보이는 한쪽 날개를 전리품인 양 옮기는 중이었다. 물고 가는지 이고 가는지, 한 놈은 앞에서 또 다른 놈은 날개 중간쯤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 수려한 먹이를 어디서 구해 어디로 향하는 걸까. 나는 그들의 행선지가 궁금했다.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을 지켜봤다. 자세히 보니 큰 날개를 물고 뒷걸음질 치면서 간다. 어느 정도 움직이다가 푸르스름한 보도블록 사이의 녹색지대에서 멈췄다. 여기에 머문 이유가 쉬러 간 것인지 운전 부주의인지는 알 수 없다. 앞에서 끄는 녀석이 힘들어 목을 축이러 갔다면 사막의 오아시스요, 운전이 서툴러 잘못 들렀다면 장애물에 걸린 셈이다. 개미들이 십여 분 동안 움직인 거리는 겨우 3m 남짓에 불과했지만 그들은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개미들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전진을 계속하다 두 번째 오아시스에서 다시 동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내려야 할 나들목을 깜빡 지나친 걸까, 아니면 먹고사는 일보다 더 급한 일이 생긴 걸까. 선두에서 물고 가는 개미는 계속 끌어당기고 다른 녀석은 정찰병인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더니 또 합세하곤 한다.
그러다 난관에 봉착했다. 멀쩡히 마른땅을 두고 길섶 물이 괸 방향으로 슬금슬금 가더니 한동안 꼼짝달싹하지 못한다. 끌고 가던 날개가 물에 젖고 말았다. 다행히 개미들은 멀쩡했다.
개미가 이 근처까지 왔다면 집이 있을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 다른 개미들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시선을 따라가 봤다. 반질반질한 경계석 위로 잘 가꿔진 화단이 눈에 들어온다. 앙증맞은 클로버 새싹이 돋아난 돌틈 아래 오밀조밀 개미집 같은 것이 보였다. 여기저기 구멍이 뻐꿈뻐꿈 뚫려 있는 형상으로 보아 개미왕국이 분명한 것 같다. 이제 한 가지 의문은 풀렸다. 행선지는 이 개미 왕국의 어느 한 곳이다. 그렇다면 얘들은 이 큰 먹이를 어떻게 그들의 왕국까지 운반한단 말인가.
크메르 왕국의 앙코르와트처럼 코끼리를 이용할 수도 없지 않은가? 경계석은 얼핏 봐도 상당히 높았다. 배롱나무 줄기보다 매끈한 경계석이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보였다. 개미들이 커다란 먹잇감을 물고 수직절벽을 오르는 일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이 부근에 집이 있는 것으로 보아 개미들이 길을 잘못 든 것은 아니었다. 집 근처까지 잘 찾아온 것이다. 짐작컨대 절벽 앞에서 먹이의 이동방안이나 용처를 심각하게 고민 중인 것으로 보였다. 지면에 깔린 듯 얕은 물은 큰 문제가 아닐 것 같다.
벌써 정오가 가까워지는데 아직도 개미 몇 마리는 날개와 씨름 중이다. 그 광경을 보면서 얼른 손으로 집어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러나 개미의 자존심을 침해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을까, 잠시 망설이며 한눈을 파는 사이 개미가 사라지고 말았다. 먹잇감을 남겨둔 채 어디로 행방을 감추었단 말인가. 허탈한 나는 주변을 애타게 살폈지만 두 개미는 보이지 않았다.
빨간 머리띠 같은 것으로 표시를 해 둔 것도 아니어서 내 눈에는 모두 그 개미가 그 개미처럼 보였다. 마치 시장에서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에게 또래의 모든 아이가 자신의 아이로 보이는 것처럼. 나는 동료들에게 원군을 요청하러 갔으리라고 추정했다.
관찰하던 개미를 놓친 나는 다른 개미들의 경계석 절벽 타기 실력이 궁금했다. 원숭이가 나무 타기를 밥 먹듯이 하듯 수직 등반과 하강을 능숙하게 할 수 있으려나? 그 찰나 개미 한 마리가 경계석 절벽을 타고 쏜살같이 내려왔다. 아주 능수 능란하게 벼랑을 오르내린다. 무엇을 찾는지 더듬이를 활용하여 요리조리 조심스럽게 내려오는 녀석도 있다. 아주 빠른 녀석은 우사인 볼트처럼 단숨에 절벽을 내려와 보도블록에서도 쏜살같이 달린다. 오늘 내가 본 개미 중 가장 빠른 개미였다. 어디로 그리 황급하게 달려가는 것일까. 아까 그 개미가 건망증이 있어서 불현듯 두고 온 날개가 생각나 부랴부랴 가지러 온 것일까. 나는 이 총알개미가 먹잇감을 운반하던 개미일지 몰라 십 여분 이상 눈을 떼지 않고 따라다녔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개미는 아니었다.
하루종일 구름 속에 놀던 해가 잠깐 얼굴을 내밀더니 서쪽 하늘로 저문다. 운무에 핀 엷디 엷은 노을이 보일락 말락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까 그 장소에 다시 가봤다. 하루를 마무리했는지 개미가 북적이던 거리는 조용했고 물고 왔던 매미 날개는 그 자리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그 날개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두 마리의 일개미들은 그 먹잇감을 처음부터 개미 왕국으로 보내려 한 것이 아니다. 아마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사회에 기부하고 갔을지도 모른다. 또한 습지에 날개를 두고 초연히 사라진 것도 행여 날개가 바람에 날리랴 물에 적셔 잘 보관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마치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눔을 실천했던 경주 최부자처럼 따스한 가슴을 지닌 개미라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