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풍경
박문자
유난히 덥고 비가 많은 여름이다.
긴 비가 그치더니
땅을 녹일 듯이 이글거리는 햇살의 도전이 시작된 것 같다. 더위를 쫓느라 편 부챗살 위로 햇살이 보란 듯이 빛을 쏟아 낸다. 거만한 계절에
속수무책이 된다.
지인들 몇이서
지칠 줄 모르는 오만한 계절의 한가운데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그 계절을 절절하게 느끼려면 자연 속에 들어가 봐야 한다는 지인들의 역설에 따라
잠시 여행을 떠나 보기로 했다.
부산에서 멀지
않은 낯익은 해안 길을 지나서 도착한 곳은 자그마한 도시 속 시골이었다. 지금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 모두는 시골이란, 먼 기억 속의 고향이나
기차를 타고 몇 시간을 떠나서야 만날 수 있는 전원 풍경과 거름 냄새 나는 곳만 시골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도시에서도
몇 십 분만 나가도 바다가 인접한 곳에 배추며 파, 토마토를 심어 비지땀을 흘리며 수확을 위해 애쓰는 농부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이 가꾸는 흙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간 곳이
그런 곳이었다. 자동차 소음을 내며 달리기가 미안한 시골길 차를 그늘에 세워 두고 걷기로 했다. 작열하는 태양을 온몸으로 받으며 밭의 잡초를
뽑아내고 있는 아낙네들이 보였다.
“콩밭 메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는 노래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고달픈 가사가 그저 흥에 겨워 제 설움에 불리는 노래가 된 적이 있다. 노래
가사처럼 밭이랑에 잠시 앉아 물을 마시는 아낙네의 옷은 금방 물에 빠진 듯 땀에 절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 깊이 팬 주름은 고달플망정 서럽지만은 않은 평온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 마을은 유난히도 옥수수 밭이 많았다. 키가 자랄 대로 자란
옥수숫대는 생각지도 않았던 그늘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어른 팔뚝만한 잎사귀 사이로 옥수수가 수염을 늘어뜨리고 우리를 유혹했다. 옥수수 밭을
따라 조금 자가니 마침 큰 솥을 걸어 놓고 옥수수를 삶고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솥에서 나는 구수한 옥수수 냄새가 입 안 가득 군침을
돌게 했다. 우린 서로 물어 볼 필요도 없이 옥수수를 샀다. 앞서 샀던 술빵(막걸리로 발효한 빵)과 옥수수를 점심 삼아 들밥을 목었다. 벌들이
날아다 준 꿀인들 그 맛에 비할 수 있었을까. 나이가 들어 가면 예전에 먹던 것, 했던 것을 찾는다는데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회귀하고자
하는 자연적인 섭리라고 말들 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빵을 찌는 날이면 밤새도록 방안에 시큼한 탁주 냄새가 났었다. 아침에 보면 동글동글한 기포가 생겨 밀가루 반죽은 신기하게도 두 배로
부풀어 있었다. 반죽을 대접으로 푹 떠서는 무명베를 깐 가마솥에 콩이며 팥을 넣어 찌면 집 안 가득한 빵 냄새가 우리를 행복하게 했다. 한 번
쪄 낸 빵은 식구가 많아서 잔치라도 할 음식처럼 푸짐했다. 방금 솥에서 나온 빵을 한입 베어물면 입이 데일 정도로 뜨거웠지만 어찌나 맛있던지
뜨거운 것도 잊을 정도였다.
어찌 그뿐이랴,
거제도 섬사람이라 어린 시절 친구들은 부산이나 다른 도시로 유학을 갔었다. 방학이 되면 모두들 내려오는데 서로 잊고 지낸 몇 개월의
이야기보따리를 풀다 보면 여름밤은 언제나 짧기만 했다. 가끔 운 좋게 어른들이 외출을 한 친구 집에 모여들어 악동들의 여름 만들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집이 가난하여 늘
강냉이 죽으로 연명하던 유난히 눈이 맑은 친구가 있었는데 우린 그를 위한답시고 핑계 삼아 나섰다. 가끔씩 산새가 울 뿐인 칠흑 같은 여름, 우선
쉬운 대로 가까운 데 있는 친구 원두막을 습격했다. 제법 서리에도 일가견들이 있어 줄기는 상하지 않게 과실만 따서 품에 안고 들킬세라 웃음을
삼키며 줄행랑을 친다. 그리고 발바닥에 땀이 마르기도 전에 다시 고구마며, 옥수수 밭에서 두루두루 서리를 해서 어른들이 집을 비운 친구네 집에
가서 미리 피워 둔 장작불에 구워 먹거나 가마솥에 삶아 먹는다.
어느 정도 배가
부르면 동요처럼 옥수수 알을 길게 두 줄 남게 먹고는 서로 하모니카라고 불어 즉흥 연주회가 되기도 한다. 모깃불이 사그라지고 풀벌레가 우는
소리를 들으며 밤이 새도록 먹고, 이야기하다 나름의 시름에 울기도 하고 뭇기도 하며 누가 먼저인지도 모르게 엉켜서 잠을 자다 일어나 보면 어느새
날이 밝아 있었다. 거뭇거뭇 입가에 묻은 지난밤의 흔적들을 채 지우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다 보면 바다에 비치는 햇살이 눈부셨다. 그렇게
우리의 우정도 눈부시게 깊어졌었다.
제법 긴 세월,
한두 명은 연락이 되지만 소식도 모르는 친구들이 허다한데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배 타는 아버지를 따라 강원도로 간,
유난히 눈이 맑았던 친구도 지금은 잘 살고 있는지 그립기만 하다.
추억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다 비슷한 기억과 추억과 그리움을 가지고 있어서 새삼스럽게 오래 전 추억이 공감이 되었다. 돌이킬 수 없는 세월을 뒤로하고
혼자서 또는 간간이 그들의 추억과 섞어서 지나온 시간들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며 일행들은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갔다.
여름 해가 느리게
바다로 침몰되어 들어가는 것을 보며, 우린 속마음을 열어 추억을 파도처럼 토해 내고 있었다. 다들 가슴속에서 뜨거운 햇덩이가 던져지는 듯했다.
여자 몇이 모이면 어떻다는 속설이 있듯 우린 바다처럼 가슴을 쓸어 내리며 자식 얘기, 세상사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는 말로 서로를
다독였다. 오래 전에 가졌던 꿈들을 얘기하다가 우린 서로의 눈빛을 바라보았다. 세월을 보내면서 큰 꿈들이 작아지고 그 작아진 꿈들이 물거품처럼
사그라지는 것을 지켜보며 가슴이 아렸다. 이심전심이라고 했던가. 그 절절한 삶의 아픔들이 서로의 가슴에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여름의 한가운데서
말이다.
파도 소리가
세차졌다. 주위가 어둠으로 고요해졌음일 것이다. 우린 바다로 다가가 갈매기처럼 노래를 불렀다. 지난날을 추억하며 부르고, 지금을 추억으로 남기기
위해서 부르고, 가슴속 뜨거움을 바다에 버리기 위해 또 불렀다.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를 어설프게 부르며 하늘을 보니 달이 떠 있었다. 달집을
만들어 소망을 비는 사람들처럼 바다에 비치는 달 속에 우린 여름을 담았다. 전사처럼 여름에 맞서 본 하루였다.
저문 해가 바다에
잠겨 우리를 향해 웃는다. 내일을 약속하며 열정적으로, 이렇게 여름 풍경 속에 서 보았다. 우리들의 가슴속에 뜨겁게 기억된 그런 추억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