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소재 백운산 등산로
2007년 8월 22일 수요일, 새벽에 억수로 쏟아지는 비에 걱정이 앞섰지만, 곧 비는 그치고 맑게 개어 등산하기엔 안성맞춤이었습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바지, 목엔 스카프, 챙이 넓은 캡, 배낭, 등산화에 스틱까지 완벽하게 준비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습니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며 등산로에 들어섰습니다.
백운산은 부드러운 흙으로 된 산길에 경사가 완만하여 우리가 걷기에 적당하고, 근처에 우아하고 분위기 있고 음식 맛이 좋은 한정식집이 있어서 이 번달 산모임을 이곳으로 정했다는 리더의 언급이 있었습니다.
"애~앵" 얼굴 주위를 맴돌면서 계속 따라오는 비행 물체가 있었습니다.
이야기 삼매에 빠져 처음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따끔거리며 가렵기 시작했습니다.
노출된 얼굴과 팔은 물론 옷으로 가려진 부분까지 여기저기가 동시다발적으로 가려웠습니다.
눈앞에서 알짱대는 것은 새까만 몸에 하얀 줄무늬가 있는 지독한 산모기였습니다.
캡을 벗어 부채질해도 산모기는 절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앵앵거리며 따라왔습니다.
고즈넉한 산길에 등산객은 우리 일행 열 명뿐이었습니다.
우리를 기다리던 불청객 산모기는 잔치라도 벌일양 기세등등하게 끈질기게도 쫓아다니더라고요.
앞쪽에서 따라오는 한 두 마리뿐인 줄 알았는데, 세상에나, 앞서 가는 친구의 등 뒤 쪽에 한무리의 새까만 모기떼가 친구를 공격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습니다.
내 등 뒤에도 꼭 같은 상황임은 안 봐도 비디오입니다.
친구들은 그냥 걷기만 하면 되지만, 나는 디카 들고 적당한 피사체를 찾느라 계속 좌우를 두리번 거려야 하고, 걸음을 멈추고 초점을 맞춰 셔터를 누르다 보면 일행과 보조를 맞추기가 힘들어집니다.
비 온 뒤라 화려한 색상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각종 버섯류와 빗방울에 세수하고 나서 더 싱싱하고 예쁜 야생화가 자주자주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습니다.
이럴 때 산모기는 절호의 찬스를 놓칠세라 무차별 공격을 가했습니다.
목적지의 사분의 삼쯤 되는 지점에서 나는 왔던 길을 되돌아오기로 했습니다.
천천히 맘 놓고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죠.
산모기는 내가 찍은 사진의 숫자보다 더 많은 수십 개의 자취를 내게 남겨줬습니다.
집에 와서 보니 상황은 생각보다 더 심각했습니다.
빨갛게 부어오르고 가려워서 긁으면 더 부어오르고, 한 번 긁기 시작하면 시원하기는커녕 점점 더 가려워지는 것입니다.
자면서 무의식 상태에서 긁어 아침이면 더 빨갛게 부어있습니다.
약방에서 구입한 바르는 약은 전혀 도움이 안 되었습니다.
약을 덧바르면서 '이걸 약이라고 팔아?' 화가 나서 중얼거렸지요.
이 집으로 이사 오고 난 후, 세 번의 여름을 보내는 동안 모기에게 물린 적이 없었기에, 가려움을 더 심하게 느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사 오기전 살던 아파트엔 여름엔 물론이고 제법 선선한 이른 봄 늦은 가을까지 모기가 출몰하곤 하였지요. 우리 아이들은 모기가 한 마리라도 있으면 잠을 못 잤습니다.
한밤중에도 '모기 출현'을 알리면 나는 집안 구석구석을 다 뒤져서라도 모기를 잡고 아이를 안심시켜야 했습니다.
이미 아이들에게서 배불리 먹은 모기는 몸이 무거워 동작이 둔한 상태가 됩니다.
벽이나 천정에 붙어 조용히 쉬고 있기 마련이지요.
이럴 때 파리채로 덮치면 백발백중 성공입니다만, 후유증이 큼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하얀 벽에 빨간 피칠, 그 건 잘 지워지지도 않습니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아이를 사랑하는 모성본능이 기어코 문제 해결을 해내고야 말았습니다.
아주아주 깔끔하고 이상적인 방법으로 말입니다.
모기가 잔뜩 배불리 먹고 빨갛게 부풀린 몸집으로 벽이나 천정에서 쉬고 있음을 발견하면, 의자를 가져오고 잼을 담았던 입구가 넓은 병과 뚜껑을 양손에 들고 의자에 올라섭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예민한 모기가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하면서도 은밀하고 신속하게 이뤄져야 합니다. 의자와 병을 갖고 오면 벌써 생명의 위험을 감지한 모기가 다른 곳으로 숨어 버리는 경우가 있거든요.
이렇게 되면 모기 수배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요.
의자에 살며시 올라가서 빈병을 전광석화같이 빠르게 모기 위에 덮어 씌웁니다.
뒤늦게 사태 파악을 한 모기는 정신없이 병안에서 탈출을 시도하느라 야단법석 난리입니다.
모기가 병 아랫부분에 있다 싶을 때, 전광석화보다 더 빠르게 뚜껑을 닫아야 합니다.
뚜껑 닫는 속도가 조금이라도 느리게 되면 '어~휴 큰일 날 뻔 했잖아!' 라며 유유히 날아가 버리는 수가 있으니까요. '다 된 죽에 코 빠뜨리기'지요.
병뚜껑을 닫으면 완전히 성공입니다.
그다음은 모기가 잠을 자든 난리를 피우든 난동을 부리든 자살을 시도하든 신경 끄시면 됩니다.
독방에 감금된 모기, 지가 어쩌겠어요.
배속에 채워놓은 영양분과 병 속의 산소가 소진될 때까지는 버티겠지요.
아무런 흔적 없이 깔끔하게 처리하는 모기 잡이는 한 번 두 번 하는 사이에 노하우가 생겨 성공률은 점점 올라갔습니다.
백발백중 명사수(?)가 된 나는 아이가 '앗, 모기다, 엄마 모기가 들어왔어요' 하면 게임을 하듯 즐거운 기분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이 과정을 즐기게까지 되었습니다.
이렇게 모기와의 한 판승부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두면서 여름을 보내는 재미도 꽤 쏠쏠했는데, 이사 오면서 한 가지 재미를 뺏겨버린 셈입니다.
그동안 내가 종신형을 선고하고 독방에 감금한 모기들이 한꺼번에 보복을 한 것일까요?
지금도 가려워서 막 긁고 싶은 걸 애써 참고 있습니다.
7년 전 이야깁니다.
첫댓글 호호호 한꺼번에 복수? 바다모기와 산모기는 집모기보다 훨씬 더 가렵고 고약해요. 생각만해도 나도 가려울라 하네
산모기, 정말 지독하더군요."
반바지 입고온 친구는 다리에 성한데가 없었는데, "야들도 미인을 알아 보는갑네.
요즘은 전기파리채가 나와서 한번 휘둘러
모기나 파리가 닿았다 하면 따닥 거리며 죽더라고요.
세상 참 살기 좋아졌군요.우리 아이들 어릴 때니 오래전 이야깁니다.
주상복합 고층 아파트에 이사오니 파리 모기 걱정은 안하고 살아요.
너무 재밌게 리얼하게, 진짜 표현 잘 하셨네요...
저의 아파트 주변에 나무가 많으니까,
모기가 엄청 많아요.
어제 강아지랑 산책 나갔다가 몇군데 물렸는데,
가려움이 가라앉질 않네요.계속 붓고요.
모기도 점점 강해지나 봐요....
모기가 강해진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라붙게 하는 엽서 크기만한 '찐득이'를 일정한 간격으로 많이 매아 놓았는데 아주 효과적입니다.린 곤충들이 귀찮게 하는 것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지난주 친구 텃밭에서 여러군데 물렸는데 이제야 겨우 진정이 되었어요.
양재천 산책로엔 모기나 나방이
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