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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파와 사두개파 그리고 쿰란 공동체와 초기 기독교 공동체
I. 서 론
기독교의 형성 초기에 이미 유대교에는 많은 종파들이 있었다. 그들의 긴 구약 역사 만큼이나 많은 시간과 사건들 속에서 각자의 해석의 틀이 형성되고 이에 따라 같은 유대교인 이면서도 조금씩 그 해석이 달라 신앙의 방식들이 달라 성전에 대한 관념이나 메시아관 그리고 성경관이 조금씩 차이가 나게 발전되어왔다. 그리고 그들 각 종파들은 또 그 각각대로 초기 기독교의 형성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유대종파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그리고 열심당이 있는데 이들외에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은둔해 있던 두 공동체가 있었다. 본 연구에서는 먼저 이미 알려져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알아보고 그동안 우리의 관심밖에 있었던 엣세네 공동체와 쿰란 공동체 사이의 관계를 규명하고자 한다. 그 까닭은 이 두 공동체의 관계에 대해 많은 엇갈린 의견들이 난무하고 있으며, 최근에 이르러서도 이 문제는 속시원히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두 공동체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언급하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릴 것이다. 여기에서는 엣세네파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요세푸스, 필로, 플리니 등의 저서와 함께 쿰란 문서를 비교 인용하는 방법을 사용할 것이다.
또한 쿰란 공동체와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관계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는 우선 쿰란 문서를 통해 나타난 쿰란 공동체의 성격과 함께 기독교 공동체의 성격을 비교하는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시킬 것이다. 나아가서 쿰란 공동체의 사상과 세례 요한, 예수, 요한의 사상을 비교하는 동시에 쿰란 공동체의 생활과 초대교회 공동체의 생활을 비교함으로 본 연구를 맺고자 한다.
II.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바리새파, 사두개파, 헤롯당퐈와 열심당원 모두가 신약복음서의 기록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은 모두다 그리스도가 탄생하기 전 2백년 동안에 생겨난 당파들이다. 이들 모두는 헬레니즘과 유대주의의 부조화에 대해 각기 다른 반응을 나타내었다. 마카비 혁명 세력들이 시리아의 셀류쿠스 왕조와 유대정부 사이의 정치적 관계를 문제삼은 반면, 이들 당파들은 외부세계에 대해 자신의 종교가 취해야 할 행위 양식을 문제삼고 있었다.
(1) 바리새파
바리새라는 이름의 당파가 최초로 언급되고 있는 것은 요한 힐키누스(B.C.134-104)의 통치 시대다. 그 때에 이미 전통적 바리새인보다 헬라화됐던 사두개인 사이에는 분명한 적대감이 뚜렸했었다. 바리새라는 말은 ‘분리된 자’라는 뜻이다. 그들은 의식적 정결을 지키는데에 철저하고자 했기 때문에에 스스로를 구별하여 바라새라고 했던 것이다. 다시말해 그들은 율법의 세목에 대해 깊은 고나심으로 일관하여 율법을 문자적으로 지키고자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성문 율법보다 구전율법이 더 엄격히 지켜지는 모순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예수님과 벌이는 많은 논쟁 속에서 바리새인들이 보여주는 영적교만이나 신앙적 도취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보여주는 귀중한 교훈인 것이다.
(2) 사두개파
사두개란 말은 ‘의로운’이란 뜻의 ‘싸디킴’에서 나왔다고 본다.그 기원은 솔로몬의 제사장인 사독(삼하 8:17)이후라고 본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귀족이나 대제사장 무리들로서, 그들은 정치지도자와의 협조를 통해 부와권세의 자리를 획득하였고 그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하여 하나의 파를 형성하게 되었다. 성전관리와 의식의 집행이 그들이 가진 특별한 임무였다. 사두개인들은 의식적으로 일반유대인들과의 교제를 끊었다. 이러한 점은 바리새인들이 개종자를 환영한 반면 사두개인들이 꺼렸던 점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러나 이들 두 그룹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는 모두 A.D 70년 로마 장군 티투스의 예루살렘 함락과 더불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II. 쿰란 공동체와 엣세네 공동체
(1) 두 공동체 사이의 유사성
1. 유대주의에서 분리된 집단이다(핫시딤).
2. 훈련규칙을 가지고 있다.
3. 회원의 생활은 감독자의 책임하에 있다.
4. 소유를 공동으로 관리한다.
5. 가입 희망자는 일정 기간의 유예기간을 통해 정회원이 될 수 있으며, 정회원이 아닌 사0
람은 공동식사에 참여할 수 없다.
6. 정결의식을 행했다.(Charles F.Pfeiffer,The Dead Sea Scrolls and the Bible,.p.94.)
7. 율법을 엄격하게 해석했으며, 높은 수준의 의(義)를 추구하였다.
8. 고대 문서, 특히 예언서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다.(F.F.Bruce,사해사본,.pp.202-205.)
(2) 두 공동체 사이의 차이점(A.D.Crown,"Qumran,Was it an Essene
settlement,".p.30-31.)1)
1. 필로는 그의 저서에서 엣세네파에 대해 평화를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언급했다.
(Philo, Quod amnis probus liber sit, in Complete Works)
반대로 쿰란 문서에는 그들 공동체의 호전적인 성격이 드러나 있다.
그들의 손에는 창과 칼이 쥐어져있다. 그 창의 길이는 7규빗은 족히 될 것이다...그 칼은 제련과 표백을 통해 정제된 순수한 철로 만들어져 있어서 마치 거울과 비슷하다...(1QM 5.5-16).2)
2. 고대 문헌에는 엣세네파가 독신으로서 여자없이 살아간다고 언급했다.
(Philo, Apologia pro Judaeis 14-17;Pliny, Natural History 5.15.73; Josephus, War 02.120-121,160-161.)0
쿰란 문서에는 비록 공동체에는 참여하지 못하지만 여자와 어린이에 대한 규율이 나타난다. (1QSa 1.6-8;11QT 62.9-10;63.11-15)
3. 엣세네 공동체에서는 노예제도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다.
그들은 노예들을 원하지 않았다. 사실 그들은 노예 제도를 부정한 것으로 생각하였다(Josephus, Antiquities 18.21).3)
쿰란 문서에서는 노예에 대해 부정적이었다는 암시가 나타나있지 않다. (CD 11.12;12.10)
4. 엣세네 공동체는 부(富)와 더불어 그것에 현혹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Josephus, War 2.122; Philo, Apologia pro Judaeis 4,11)
쿰란 유적에서는 그들이 소유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값진 물품들이 발굴되었다.
5. 엣세네 공동체에서는 맹세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고 고대 문헌들은 증언하고 있다. 이들에게 있어서 맹세는 오직 공동체에 입회할 때 뿐이었다.
(Philo, Quod omnis probus liber sit 84; Josephus, War 2.135,139-42.)
쿰란 공동체는 매년 공동체에 대한 맹세가 있었다.
...그들은 매년 그 일을 행한다(1QS 2.19).4)
6. 엣세네 공동체에서는 사유 재산은 일절 금지됨은 물론 공동체에 헌납해야 했다.
(Philo, Apologia pro Judaeis 4; Quod omnis probus liber sit 86; Josephus, War 2.122)
쿰란 공동체에서는 어느 정도 사유재산을 허용하고 있었다.
(1QS 6.19; 7.6-8; CD 14.13; 6.15-17)5)
(3) 쿰란 공동체의 특성
1. 반(反)성전주의적 공동체
- 쿰란 공동체는 예루살렘 사제직과 다른 유대인 지도자들을 부정하다고 간주하였다. 쿰란 공동체는 공식적인 유대인 제의와 생활에서 탈퇴하였다(F.V.Filson 129).6)
- 쿰란 공동체는 마지막 전쟁의 7년째 되는 해에 희생 제의가 다시금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Vermes.119).
성소의 문들에서 매일같이 참예할 것이다....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충만한 기쁨과 그의 모든 공동체의 속죄 그리고 영광의 식탁에서 그 분 앞에서의 영원한 그들 자신의 만족함을 위해 향기로운 향을 준비하여 번제와 희생제에 참여할 것이다(1QM 2:3-6).7)
- 예수는 비록 성전을 정화하고 그 멸망을 예고하기는 하였으나(막 11:15-17; 13:2), 성전에서 떠나지는 않았다. 사도들 역시 유대인의 일상생활 혹은 일반 대중들에게서 떠나는 일은 없었다.
- 성전에서 물러난 그들에게 있어서 속죄는 기도와 고통의 영적인 제사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고통의 슬픔을 동반한 괴로움과 정의의 실현으로 인해 죄의 대속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1QS 8:3-4).
바울에게 있어서도 기독교 공동체는 과거의 성소를 교체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에베소서 2:20-2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로마서 12:1).
쿰란 공동체에서 역시 이와 비슷한 구절을 찾아볼 수 있다.
그 분(하나님)께서 명령하시기를 인간들의 성소는 그 자신들을 위해 지어져야 할 것이다. 거기에서 그들은 향의 연기와 같이 율법의 사역들을 올려야 할 것이다(4QFlor
1:6-7).
2. 분파적 공동체
- 쿰란 공동체는 개인주의 성향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분파적 성향을 고집하였다.
- 예수와 그의 추종자들은 유대인의 일상생활과 종교의식에서의 급진적인 분리는 시도하지 않았다(Filson 129).
3. 비전적(秘傳的)인 공동체
- ‘의의 교사’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된 지식(Esoteric)은 오직 공동체에 입회한 사람들 만이 알 수 있다.8)
- 한편 바울이 선포한 하나님의 비밀은 우주적 복음으로서, 이전에는 감추어져 있었으나 지금은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고 선포되었다고 주장하였다.
4. 독선적인 공동체
- 쿰란 공동체에 있어서 사랑의 대상은 오직 공동체 내의 사람들에게 국한된다.
- 반면 어두움의 자식들로 간주되는 이방인이나 쿰란의 사상을 나눠갖지 못한 다른 유대인들은 증오의 대상이다( Filson 129-30, Charlesworth 74, Freedman 100-101)9)
- 예수는 반대로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친다. (마 5:44)
5. 율법을 중시한 공동체
- 쿰란 공동체는 각 구성원이 시행해야 할 법칙들을 상비하고 있었음은 물론 율법의 준수가 올바른 신앙의 척도였다.
- 그들의 구원은 율법의 올바른 해석과 준수에 달려있었다.10)
- 신약성서에서 이와 비교할 만한 사항은 발견되지 않는다(Filson 30).
-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 있어서는 바울에 의해 믿음으로 인한 구원이 강조되었다.
(2) 쿰란 공동체와 세례 요한
- 쿰란 공동체11)와 세례 요한은 매우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고 간주했다.
① 요한이 어렸을 때에 쿰란(엣세네) 공동체에 의해 입양되었다는 견해.
② 적어도 요한이 쿰란(엣세네) 공동체와 밀접한 인척관계가 있었다는 견해(O'Connor 57).
- 쿰란 공동체와 세례 요한 사이의 유사성(A.J.Thomson 285)
① 젊은 시절에 광야에서 거주하였다는 점.
② 회개의 선포와 악한 세대에서의 분리를 촉구하였다는 점.
③ 세대에 대해 저항적인 성격.
④ 메시야를 대망하였다는 점.
⑤ 세례와 더불어 심판의 날을 선포하였다는 점.
- 쿰란 공동체와 세례 요한 사이의 차이점(A.J.Thomson 285, W.S.Lasor 150)
① 선택된 무리가 아닌 일반 대중을 상대로 선포했다는 점.
② 메시야의 정확한 오심과 사역은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지만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한 점.
③ 쿰란의 세례가 2년의 견습 기간을 조건으로 하고 있는데 비해 요한은 회개와 신앙고백
이후 즉시 세례를 주었다는 점.
④ 요한의 세례는 메시야의 오심과 연관되는 종말론적 성격을 띠고 있으나 쿰란의 세례는
그렇지 않다는 점.
⑤ 요한의 금욕생활은 구약의 나실인의 서원과 연결될 수도 있으므로 반드시 쿰란과 연결
시킬 필요는 없다는 점.
- 쿰란 공동체와 세례 요한의 연관성에 대해 확실한 결론을 내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가 쿰란의 영향을 어느 정도는 받았으며, 이를 통해 쿰란의 사상이 초기 기독교 공동체내로 유입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가 어렵다.
(3) 쿰란 공동체와 예수의 연관성
1. 종말론
- 쿰란 공동체의 신학과 예수의 신학은 절대적으로 종말론적이다.
- 양자는 모두 임박한 종말론을 선포했으나 예수의 종말론은 좀 더 실현된 종말론적 성격을 띠고 있다.12)(Charlesworth 70)
- 근래에 들어 예수의 종말론적 배경은 현재와 미래의 조화에 의해 드러난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는데, 이는 구원이 한편으로는 바라는 희망인 동시에 이미 경험된 것이라는 뜻이다.
- 이러한 사상은 ‘공동체의 찬송’과 당시의 유대문헌 여기저기에서 발견된다(O'Connor 57).
- H.W. Kuhn은 단도직입적으로 쿰란 공동체의 종말론과 예수의 종말론 사이에는 뚜렷한 연관성이 없다고 주장하는데, 그 까닭은 예수에게 있어서 구원의 현재성이 그의 활동내에서 존재한다는 데 비해 쿰란 공동체는 미래의 구원이 이미 공동체 내에 현존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O'Connor 58).
2. 메시야관
- 쿰란 공동체의 메시야관(D.S.Russell 147-49)
① 제사장적인 메시야와 왕적인 메시야를 대망하고 있었다.
② 사독(Zadokite) 단편들에 아론과 이스라엘의 메시야 도래에 관한 언급들이 있다.
③ 사해사본에 나타난 단수 단어가 실제로는 복수단어로 읽혀졌는데, 이는 저자가 두 사람 이상의 메시야를 대망했음을 암시한 것으로 보인다.
아론과 이스라엘의 메시야들과 한 예언자가 올 때까지..(훈련교범 Col.9, 제11행).
④ 결론적으로 쿰란 공동체의 메시야 대망은 유대의 전통적 희망인 왕적이고 군사적인
메시야를 기대하는 점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 예수는 자신을 메시야로 인식하고 있었고, 초대 기독교 공동체 역시 예수를 그들이 대망하던 메시야로 인정했다.
- 쿰란 공동체에 있어서 ‘의의 교사’는 메시야로 생각되지 않았으며, 그 메시야는 후에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Filson 135).
3. 부자들에 대한 태도
- 예수가 부유함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 사실(마 10:9)과 쿰란(엣세네) 공동체가 개인의 풍요로움을 피했던 사실(Josephus,J.W.2.8.4 //142-26)에서 유사성을 엿볼 수 있다.
- 예수의 사상이 쿰란 공동체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확언할 수 없는 것은 양자 모두의 자세가 구약 예언자들의 가르침을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 예수의 사상은 쿰란(엣세네) 공동체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는 있으나, 그가 단순히 행한 것을 제자들에게 소개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O'Connor 58).
4. 환자 치유시에 손을 얹는 행위
- 예수가 치유 혹은 축사를 할 때에 환자에게 손을 얹는 행동과 유사한 모습을 유대문헌에서 찾는다면 쿰란문서 1QapGen 20.22,29에서만 언급되어 있을 뿐 다른 유대문헌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13)
- 엣세네 공동체가 의술에 관심을 가진 것은 요세푸스에 의해 강조되었다(J.W.2.8.6 / 136).
5. 안식일에 관한 문제
- 안식일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예수의 견해는 쿰란(엣세네) 공동체와 의견을 완전히 달리0하고 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지어진 것이 아니다(막 2:27).14). 같은 날, 그(예수)는 안식일에 일하는 한 사람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그에게 말하였다.‘사람아, 네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너는 축복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네가 그 일을 모르고 있다면 너는 저주를 받으며 율법을 어긴 자이다(눅 6:5 Codex D).
이렇듯 안식일에 대한 예수의 태도는 안식일 준수에 대한 반대가 아닌 안식일의 본래적인 의미를 퇴색시킨 데 대한 것이다.
- 쿰란 공동체에 있어서 안식일의 준수는 바리새파의 그것보다 훨씬 더 엄격하였다.15) 쿰란 공동체에서는 안식일에 어떤 물건을 다른 친구에게 빌려주거나, 조약돌을 들어올려서도 안되었으며, 집의 먼지를 터는 행위 역시 금지되었다(CD 10.14-11.18).
- 한편 마태복음 12:11에 나타난 예수의 언급과 다마스커스 문서에 나타난 조항은 정확하게 대치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너희 사람들에게 묻겠다. 만일 누군가 양 한 마리를 갖고 있는데, 그 양이 안식일날 구덩이에 빠졌다고 한다면 그 양을 들어 올리지 않겠느냐?(마 12:11). 나는 구덩이에 그 양을 두고 떠나겠다(CD 11:13-14).
쿰란 공동체에서는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진 짐승을 도와주지 말라고 엄히 경고한다.
쿰란 공동체에서는 안식일에 어떤 물건을 다른 친구에게 빌려주거나, 조약돌을 들어올려서도 안되었으며, 집의 먼지를 터는 행위 역시 금지되었다(CD 10.14-11.18).
- 한편 마태복음 12:11에 나타난 예수의 언급과 다마스커스 문서에 나타난 조항은 정확하게 대치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너희 사람들에게 묻겠다. 만일 누군가 양 한 마리를 갖고 있는데, 그 양이 안식일날 구덩이에 빠졌다고 한다면 그 양을 들어 올리지 않겠느냐?(마 12:11).
나는 구덩이에 그 양을 두고 떠나겠다(CD 11:13-14).
쿰란 공동체에서는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진 짐승을 도와주지 말라고 엄히 경고한다.
- 요세푸스 역시 엣세네파는 “다른 유대종파보다 더 엄히 안식일을 지킨다.”라고 증언한
다(War 2.8.147).
- 이로 미루어 볼 때에 예수는 쿰란 공동체와는 달리 그의 행동에서 안식일에 대한 매우
자유로운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6. ‘산상수훈’ 중 ‘가난한 자’에 대한 문제
- 마태와 누가의 복음서에서 언급한 예수의 가르침 중에서 ‘가난한 자’와 ‘심령이 가난한 자’의 개념은 쿰란 문서에서 기술적 형태로 사용해 왔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마 5:3).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들을 위한 것이다(눅 6:20b).
- 필로(Apologia pro Judaeis 11)와 요세푸스(War 2.8.122)는 모두 엣세네 공동체가 검소한 삶을 살았으며, 모든 사치와 풍요로부터 분리된 삶을 살았다고 증언하나 ‘심령이 가난한 자’혹은
‘가난한 자’라는 비유적 의미는 찾아볼 수 없다.
- 쿰란 문서에 의하면 ‘가난한 자('ebhyon)’라는 종말론적 전쟁에서의 영광스러운 승리와 연관지어서 자신들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너희 구속받은 가난한 자의 손으로...(1QM 11.9 cf.11.13;13.12-14).
- 또한 쿰란 공동체는 ‘심령이 가난한 자’라는 말 역시 자신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전쟁 문서에서 ‘그 길의 완전’이란 말과 동일시되고 있다.
- 이들 공동체의 설립자인 ‘의의 교사’는 ‘사악한 제사장’으로부터 육체적, 정신적인 고통을 당하고 결국은 성전에서 추방되어 추종자들을 이끌고 광야에서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는 광야에서 그의 종을 구원하고 ‘가난한 자의 삶’을 살게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찬양을 지었다. 즉 ‘의의 교사’는 스스로를 ‘가난한 자’로 이해한 것이다.
그리고 당신(오 하나님)은 가난한 자의 생명을 사자의 굴에서 구원하셨나이다.
그는 칼같이 그의 혀를 갈고있었나이다.
오 나의 하나님, 그리고 당신은 그들이 가난한 자와 거지의 생명을 찢어 갈기지 못하도록
그들의 이빨을 다물게 하셨나이다.
그리고 당신은 칼과 같은 그들의 혀가 당신의 종의 생명을 죽이지 못하도록
칼집에 강제로 집어넣으셨나이다(1QH 5.13-15).
- 후에 ‘가난한 자’의 개념은 쿰란 공동체 전체에 해당하게 되었는데, 그 때는 “은혜에 가난한 모두”(1QH 5.22)라는 개념으로 자신들을 언급하였다.
- 마가의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말씀과 마찬가지로 쿰란 공동체 역시 하나님 나라에서 의 유익을 위해 모든 추종자들이 가난하게 될 것을 명했다.
가라. 네가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고 하늘에 보물이 있게 하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막 10:21).
(5) 쿰란 공동체와 요한복음
- W.F.Albright가 요한복음과 쿰란문서의 특징적 어휘 중 접촉점이 될만한 몇 가지 용어들을 발견하였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빛의 아들들”, “생명의 빛”, “어둠에 다님”, “진리를 행함”, “하나님의 일” 등
- 요한은 쿰란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우주를 빛과 어두움, 선과 악, 진리와 거짓 등이 첨예하게 대립한다고 본다(Bruce 222).
- 다마스커스 문서에서는 세계를 지배하는 창조된 두 지도자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이며, 다른 하나는 미워하는 자라고 언급한다.
사랑하는 자 : 진리의 영, 빛의 왕, 하나님의 진리의 사자, 성령.
미워하는 자 : 타락의 영, 어둠의 천사, 파괴의 사자, 벨리알.
- 요한은 쿰란문서의 사상과는 달리 창조된 빛의 영을 거부하며, 빛의 세력의 지도자는 창조되지 않은 영원한 로고스인 그리스도라고 주장한다(오 병세 129)
- 요한과 쿰란의 유사성은 빛과 어두움의 투쟁에서 빛의 궁극적인 승리를 내다보는 종말론적 이원론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 요한과 쿰란의 차이점은 하나님의 공의 실현에 있어서 쿰란은 악의 세력과의 투쟁을 강조하는 반면 요한은 투쟁적인 부분보다 성육신한 로고스이신 빛이 어두움에 속한 자들을 그에게로 초청한다는 사상을 담고있다(G.E.Ladd 269).
(5) 쿰란 공동체와 초대교회 공동체
- 두 공동체는 모두 스스로를 진정한 이스라엘이며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설립된 공동체라고 주장하였다.
(하나님의) 마음에 든 선택받은 사람들..(1QS 8.6).
당신의 기뻐하심을 입은 아들들.....(1QH 11.9).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눅 2:14).
- 두 공동체 사이의 유사점
① 쿰란 공동체가 의의 교사의 인도를 통해 시작되었듯이 초대교회 역시 성령강림으로 시작되었다(1QS 3.13ff; 행 2:38).
② 입회할 때에 사유재산을 바쳐서 이를 공동으로 관리하게 하였다(1QS 1.12;행 2:44).
③ 쿰란 종파는 12명의 족장들에 의해서 인도되었으며 종파의 최고 위원회는 12명의 평신도들과 3명의 제사장으로 구성되었다(1QSa 1.27-2.1; 1QS 8.1). 초대교회 역시 핵심사도 3사람을 포함한 사도, 장로들의 지도하에서 운영되었다(행 15:6).
- 두 공동체 사이의 차이점(Bruce 227-8)
① 쿰란 공동체와 초대교회 공동체는 동일하게 물로 씻는 정결의식을 가졌지만 기독교적인 독특하고도 영원히 한번만 가지는 요소를 쿰란 공동체는 갖지 않는다.
② 두 공동체는 공동식사를 가졌는데, 기독교의 성찬과 같이 성례전적이며 기념적인 요소가 쿰란 공동체에 있어서는 결핍되고 있다.17)
③ 초대교회 공동체에 있어서 물건과 재산 통용은 쿰란과 같이 강제적인 것이 아닌 자발적 성격이 강하다.
④ 쿰란 공동체는 자신들을 외부와 격리시킴으로서 자신들의 거룩함을 지키려 한 반면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모든 종류와 상황 속에 있는 사람들과 사귀었으며, 그들을 향한 선교에 열심이었다는 점이다.
각 주
최근에는 쿰란 공동체의 종교적 성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가령 벨기에의 고고학자인 Robert Donceel과 그의 아내 Pauline Donceel_Voute는 쿰란 전체를 종교적 공동체라고 할 수는 없으며 겨울 별장으로 쓰였다고 결론지었다. 한편 미국의 Norman Golb는 쿰란이 군사적 요새라고 주장했다. 자세한 것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라.
Hershel Shanks,"The Qumran settlement," BAR, May/June 1993.
,"Blood on the Floor at the New York Dead Sea Scroll Conference," BAR, Mar/April 1993.
Stephen Goranson,"Qumran-The evidence of the inkwells," BAR, Nov/Dec 1993.
한편 본 아티클의 저자 Alan D.Crown과 Lena Cansdale은 쿰란이 상업적 화물집산지인 동시에 여행자들을 위한 휴계소일 뿐 엣세네파의 거주지였다는 증거는 없다고 주장한다(p.26.).
물론 이러한 주장에 대해 여러가지 반론의 여지가 있으나 본 연구에서는 이 문제를 다루지 않고 단지 이들이 제시한 엣세네파와 쿰란 공동체의 차이점 만을 보고자 한다.
2) 1QM 5.3-4.역시 참고하라
3) Philo, Quod omnis probus liber sit, 79.
4) 11QT 53.16;54.5;CD 14.10-12을 참고하라.
5) 또한 G.Vermes 역시 엣세네 공동체와 쿰란 공동체의 연관성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라.
Geza Vermes, Jesus and the World of Judaism(Philadelphia: Fortress Press,1983).p.127-9.
6) 쿰란 공동체가 예루살렘 성전을 부정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비(非)사독 계열의 사악
한 제사장으로 말미암아 거룩함을 상실하였다고 보기 때문이다(Vermes 118).
7) 반면 신약성서의 계시록에 나타난 새 예루살렘은 어떤 물질적인 경배장소를 나타내지 않고있다.
그리고 나는 그 도성에서 성전을 보지는 못하였다. 왜냐하면 그 성전은 전능하신
주 하나님과 그 어린양이었기 때문이다(계 21:22).
cf.요한복음 2:19-21을 또한 참조하라.
8) Charlesworth는 이러한 쿰란 공동체의 특성을 감안하여, 예수의 사상에서 엿볼 수
있는 쿰란적 사상들은 예수가 직접 쿰란 공동체를 방문하여 습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James H.Charlesworth, Jesus within Judaism, New light from exiting Archaeological Discove-
ries,pp.60-61.
9) 마태복음 5:43 “너희는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은 쿰란의 사상을 언급한 것이라고 Charlesworth는 말한다(Charlesworth 74).
10) 한편 쿰란 문서에서는 속죄의 조건으로 기도와 고통의 영적 희생을 언급하고 있다.
“그들은 고통의 비애로 인한 괴로움과 정의의 실행을 통해 죄를 사할 수 있을
것이다.”(1QS 8.3-4) cf.1QS 9.4-5; 4QFlor.1.6-7.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바울서신에서 이와 비슷한 내용이 언급되고 있다(엡 2:20-22;롬 12:1).
11) 쿰란 공동체와 세례 요한의 관계를 연구함에 있어서 기존의 많은 학자들은 쿰란 공동 체와 엣세네 공동체를 동일선상에 놓고 있었다. 따라서 본 연구에 있어서도 그들의 견해를 따라 쿰란과 엣세네를 동일 혹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전제하에 진행하고자 한다.
12) 막 1:14-15;9:1과 1QS 6을 대조해 보라.
13) 구체적인 내용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그 밤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그(바로)와 그의 온 집안을 괴롭게하기
위해서 역병의 영, 즉 사악한 영을 보내셨다. 그리고 그것은 그와 그의 온
집안 사람을 쳤으며 그는 그 여인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였으며 알아보지도
못하였다(Column XX,lines 16-7).
모든 의사와 요술사들 그리고 현자들 조차 그를 치료하여 일으키지 못했다
(lines 20).
아브람은 왕이 낫기를 위해 기도하며 왕에 그의 손을 얹자 왕은 살아났다
(lines 21-22).
그리고 그의 머리에 손을 얹자 재앙은 그에게서 떠나고 사악한 영은 사라
지게 되어 그는 살아났다(lines 29).
신약성서에 언급된 ‘손을 얹다’는 말은 έπιτιθεναι로서, 이 말은 칠십인역에서 히브리어 ךמס를 번역한 말이다. 또한 신약성서에서 사용하고 있는 έπιθεσις와 έπιτιθεναι는 성직 임명을 위해서 손을 얹는다는 의미를 갖는다는 סידי תכימס를 번역한 부분도 찾아볼 수 있다(Flusser. 108).
14) 이러한 마가의 언급은 마태와 누가의 복음서에서는 수용되고 있지 않다. 이에 Char-
lesworth는 만일 마가의 유일한 언급이 진정 예수로부터 유래된 것이라면 예수는 정통 바리새 학파는 물론 당시의 어느 유대종파보다 더 완고한 엣세네파에 대해서도 반대되는 것으로 본다.
한편 Charlesworth는 그의 저서에서 쿰란(엣세네) 공동체와 예수를 비교 연구함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신학적 관점을 배제한 믿을 수 있는 예수 전승에 촛점을 두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Charlesworth 64-66)
15) Charlesworth는 그의 저서 p.66에서 바리새주의의 한 분파인 힐렐 학파가 안식일에
허용되는 몇 가지 예를 설명하고 있다.
뜨거운 음식이나 옷을 들어올리는 행위(m.Shab 4.1), 발코니에서 다른 발코니로 어떤 것을 가볍게 던지는 행위(m.Shab 11.5), 배를 갈아타는 행위(m,Shab 11.5) 등등.
그러나 m.Shab 7.2에서는 안식일에 다른 확실한 일들을 하는 것은 절대 금지되었다.
16) 차라리 쿰란 공동체의 공동식사는 초대교회 공동체의 애찬(Agape)의 형식을 띠고 있다
고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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