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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6일(수),
'2024 문화유산해설사 양성교육 및 문화유적 탐구 영주 역사문화 답사'가 있었습니다.
회장님이 원고를 쓰고 안양문화원에서 발행한 '영주 역사문화 답사 자료집'으로 사전 공부를 하고 7:00에 문화원을 출발하였습니다.
안양문화원에서 제공한 버스를 타고 출발을 하면서 문애심 총무님이 오늘 답사에 대한 안내를 합니다.
오늘 관외답사는 11월 월례회의를 겸한 행사이므로 안양문화유산해설사회에서 이번달에 실시한 삼막마을 쌍신제와 꽃메산 산신제, 석수동 할아버지 산신제에 참석하여 활동한 내역과 오늘 답사에 물품과 현급을 기부한 내역을 소개합니다.
이어서 박석환 회장님이 오늘 답사 일정을 안내합니다.
강혜영 학예사님이 안양문화원의 답사 지원 내용과 문화원의 일정을 안내합니다.
총무님과 염영랑 회계님이 어제부터 준비한 선물꾸러미에는 여러 선생님들이 협찬한 간식들이 풍족하게 들어 있습니다.
꾸러미 ♡ 안에는 총무님이 센스있게 준비한 버츄카드 오늘의 운세가 적혀있습니다.
나의 버츄카드는 절도(節度, Modesty)입니다.
카드 설명문에 적힌 내용은,
"절도는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을 뜻합니다.
절도있는 사람은 자신을 소중히 여겨 몸과 마음, 일과 여가생활을 건강하게 유지합니다"
세 시간 남짓 달려 2018년 6월 30일 <山寺, 한국의 산지승원>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7개 사찰 중 하나인 경상북도 영주시에 있는 영주 부석사에 도착하였습니다.
주차장에서 내려 부석사로 오르는 입구에는 연못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 인공연못은 영지(影池)를 재현한 것으로 옛 문헌에 의하면 "일주문 아래에 영지가 있는데, 절의 누각이 모두 이 연못 속에 비친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부석사 안내도 앞에서 박석환 회장님의 명품 해설이 시작됩니다.
신라 문무왕(文武王) 16년(676년)에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왕명을 받아 세운 화엄종(華嚴宗) 사찰로서, 경상북도 영주시 봉황산 중턱에 있습니다.
부석사는국보(國寶) 5점, 보물(寶物) 8점 등 수많은 국가유산을 보유한 유서 깊은 사찰입니다.
태백산부석사(太白山浮石寺)라는 현판이 걸린 일주문(一株門) 앞에서 태백산에서 갈려져 나와 소백산맥이 시작되는 봉황산 자락에 조성된 부석사의 위치를 설명합니다.
일주문의 밖에는 태백산부석사(太白山浮石寺) 현판이 걸려 있고,
안쪽에서 바라보면 해동화엄종찰(海東華嚴宗刹) 현판이 걸려 있어, 의상대사가 화엄종을 이 땅에 펼치기 위해 세운 최초의 절임을 알려줍니다.
일주문의 양쪽 기둥에는 금강역사를 그려 금강문(金剛門)의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가을에 부석사를 찾는 사람들은 봉황산 꿀 사과에 눈길이 팔려 일행을 놓치기 쉽상입니다.
일주문을 지나 사과의 유혹을 뿌리치고 올라가면 보물 제255호로 지정된 당간지주가 있습니다.
절에 법회나 기도 등의 행사가 있을 때 절의 입구(시대에 따라 사찰 경내에 두기도 함)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깃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幢竿支柱)라고 합니다.
우리 지역의 중초사지당간지주도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노란 은행잎과 붉은 단풍잎이 부석사의 가을을 수놓습니다.
노란 은행잎이 쌓인 길을 따라 걷다보면 천왕문이 보입니다.
천왕문에는 수미산(須彌山) 중턱의 네 방향을 지키는 사천왕(四天王)이 불법을 수호하고 있습니다.
부석사는 산지가람이어서 경사지를 따라 여러 단의 석단(石壇) 위에 건물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천왕문을 지나면 아미타 부처님을 만나러 가는 9품 세계 중 하품(下品) 3생에 속하는 회전문(廻轉門)으로 오르는 석축(石築)은 자연돌로 쌓았습니다.
회전문(廻轉門)은 윤회전생(輪廻轉生)의 줄임말로 '수레바퀴처럼 중생이 번뇌와 업에 의해 삼계육도(三界六道)의 세계를 끊임없이 돌고 돈다'라는 윤회사상을 의미합니다.
회전문으로 들어가는 문지방은 휘어진 나무를 사용하여 발부리가 걸리지 않도록 배려하였습니다.
회전문을 들어서면 중품(中品)으로 향하는 길 양쪽에 인근 다른 절터에서 옮겨온 동서3층석탑이 놓여 있습니다.
동쪽 3층석탑 뒤로 응향각(凝香閣)과 장경각(藏經閣)이 길게 늘어서 있고 탑 위로 붉게 물든 단풍이 아름답습니다.
서쪽 3층석탑 뒤로 부석사의 전각들이 한 눈에 펼쳐집니다.
동서 3층석탑 앞에서 부석사 전각의 배치를 설명하는 회장님.
부석사의 건물들을 위에서 바라보면 화(華-빛날 화)자의 모습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중품(中品) 3생의 세계로 올라가는 범종각에는 봉황산부석사(鳳凰山浮石寺)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일주문에는 태백산(太白山)으로 범종각에는 봉황산(鳳凰山)으로 서로 다른 이름의 부석사로 씌어져 하나의 사찰에 두 개의 산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아래층을 누하진입(樓下進入) 통로이고 2층 누각은 보물(寶物)인 영주 부석사 범종각(梵鐘閣)입니다.
누하기둥은 바깥쪽은 굵은 기둥을, 안쪽은 가는 기둥을 배치하였습니다.
누각 아래 기둥 사이를 지나면 상품(上品) 세계로 향하는 누하계단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누하 계단을 오르면 밝은 프레임 안으로 점차 밝아지면서 안양루와 무량수전의 모습이 드러나 보입니다.
범종각은 앞쪽은 팔작지붕, 뒷쪽은 맞배지붕의 모습으로 된 건물이 남북으로 길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2층 전면에 결구된 두 개의 충량(衝樑)은 용의 모습으로 조각되어 범종각을 지키고 있습니다.
범종각 안에는 범종은 없고 목어(木魚)와 법고(法鼓), 운판(雲版) 만 걸려 있습니다.
범종각 기둥 사이로 소백산 준령들이 길게 이어져 있습니다.
범종각 옆에는 새로 지은 범종각이 하나 더 있습니다.
원래의 범종은 사라지고 새로 만든 범종이 걸려 있습니다.
부석사 범종은 보통의 범종과 다른 특이한 문양이 그려져 있습니다.
전통 범종에는 비천상(飛天像) 위에 네모난 유곽 안에 9개의 연꽃 봉오리를 새기지만 부석사 범종에는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가 그려져 있습니다.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는 의상(義湘)이 중국 종남산 지상사(至相寺)에서 중국 화엄종 제2조 지엄화상(智儼和尙)의 제자가 되어 9년간 화엄학을 배우고 터득한 경지를 210자(7자 x 20줄)로 연결하여 게송(偈頌-불교적 교리를 담은 한시의 형태)으로 완성한 그림입니다.
하품과 중품은 일직선으로 올라오다가 상품(上品) 3생으로 오르는 안양루는 약간 비켜 서 있습니다.
33개의 계단 위에 세워진 안양루에는 두 개의 현판(懸板)이 걸려 있습니다.
누마루 계자난간 아래 1층에는 안양문(安養門) 현판이, 2층 공포 아래에는 부석사(浮石寺) 현판이 걸려 있어서 문(門)과 누각(樓閣) 두 가지의 기능을 부여한 것입니다.
안양루 누하기둥은 앞쪽 2열은 기둥을 세우고 뒷쪽은 기둥이 없이 석축 위에 올렸습니다.
누하 계단을 오르면 석등과 무량수전이 보입니다.
극락(極樂)이란 뜻을 가진 '안양(安養)'의 안양문은 극락세계에 이르는 입구를 상징하고,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지나면 극락인 무량수전이 위치한 구조입니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石燈)은 국보 제1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어둠을 밝히는 석등의 화창(火窓) 사이로 무량수전(無量壽殿) 현판이 보입니다.
8각으로 된 화사석(火舍石)의 4면에는 화창을 뚫어 놓았고, 4면에는 공양하는 보살상을 새겼습니다.
화사석을 받치는 간주석(竿柱石)은 늘씬한 팔각기둥으로 조각하여 앙련(仰蓮)을 받치고 있습니다.
2겹의 지대석 위에 아래를 향해 핀 8장의 연꽃을 새긴 하대석의 8개 모서리에는 귀꽃이 달려 있습니다.
팔작지붕으로 된 안양루(安養樓)가 하늘 위에 둥실 떠 있습니다.
누하계단을 통해 안양루로 올라오면 극락세계인 불국토입니다.
안양루 기둥 사이로 소백산 준령들이 아스라히 이어져 있습니다.
안양루 처마 아래 공포(栱包) 사이의 빈 곳을 보면 가부좌를 하고 앉아있는 여러 분의 부처님의 모습이 보입니다.
공포가 만든 공포불, 허공에 떠 있는 허공불, 착시로 보이는 착시불, 황금색의 황금불 등으로 불려집니다.
안양루 안에는 이황과 김삿갓 등 여러 선비들이 남긴 시가 걸려 있습니다.
김삿갓이 부석사를 노래한 칠언율시가 걸려 있습니다.
<浮石寺>
평생미가답명구(平生未暇踏名區,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곳 못왔더니)
백수금등안양루(白首今登安養褸, 백수가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강산사화동남별(江山似畵東南別, 그림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있고)
천지여평일야부(天地如萍日夜浮, 천지는 부평같아 밤낮으로 떠있구나)
풍진만사홀홀마(風塵萬事忽忽馬, 지나간 모든 일이 말타고 달려 온 듯)
우주일신범범부(宇宙一身泛泛鳧, 우주간에 내 한몸이 오리마냥 헤엄치네)
백년기득간승경(百年幾得看勝景, 백년 동안 몇번이나 이런 경치 구경할까)
세월무정노장부(歲月無情老丈夫, 세월은 무정하다 나는 벌써 늙어있네)
무량수전 앞에서 부석사 무량수전을 설명하는 회장님
무량수전의 모습을 둘러봅니다.
1962년에 국보로 지정된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無量壽殿)은 고려시대의 목조건물로 배흘림기둥과 양쪽 추녀마루가 치켜올라간 처마선의 앙곡과 안허리곡은 한옥(韓屋)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무량수전(無量壽殿) 편액(扁額)은 공민왕(恭愍王)의 글씨로 전해집니다.
1361년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까지 피신을 왔던 공민왕이 개경으로 돌아가는 길에 쓴 것입니다.
무량수전은 기둥 위에만 공포를 설치한 주심포(柱心包) 형식으로 팔작지붕의 추녀 하부에는 활주를 세워 받치고 있고 서까래에는 분합문을 들어올리는 등자쇠가 매달려 있습니다.
반듯하게 쌓은 무량수전의 기단에는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충원 적화면 석수 김애선(忠原 赤花面 石手 金愛先), 아마도 무량수전 건축 과정에 참여한 장인(匠人)의 이름인듯 합니다.
무량수전 안에는
무량수전의 본존불인 소조아미타여래좌상(塑造阿彌陀如來坐像, 국보 제45호)이 서쪽에서 동쪽을 바라보고 앉아있습니다.
아미타 부처님은 서방 극락정토를 건설하신 분으로, 아미타라는 말은 한없이 긴 수명, 한없이 큰 광명이 라는 뜻입니다.
가구 구조(架構構造)는 2고주 9량(二高柱 九梁) 형식으로 대들보 위에는 충방(衝枋)과 초공을 놓고 종보를 걸었으며, 소슬합장 종보 위에서 종도리를 받치고 있습니다.
무량수전에는 주불(主佛)로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모셔야 하지만 의상은 시대적 상황에 맞추어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직후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과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들을 신라의 품안으로 끌어안기 위해 극락을 관장하는 아미타 부처님을 모셔서 백성들의 마음을 치유하였습니다.
무량수전의 가구형식과 아미타부처님을 설명하는 회장님
무량수전 뒤에는 의상과의 아름다운 사랑이 깃든 선묘낭자를 모신 선묘각이 자리합니다.
선묘각(善妙閣)의 모습
선묘각 안에는 용으로 화하여 의상대사를 도와서 부석사를 창건한 선묘낭자의 영정을 모셨습니다.
선묘각 측면 벽에 그려져 있는 용으로 변한 선묘낭자가 의상대사가 탄 배를 호위하는 그림
의상대사를 바라보고 있는 선묘낭자
무량수전 동쪽에 서있는 삼층석탑(보물 제249호)
영주 부석사 삼층석탑은 무량수전의 정면이 아닌 동쪽에 세워져 있는데 여러가지 학설 중 아미타불은 서방세계를 관장하는 부처님이므로 서쪽에 앉아서 동쪽을 바라본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삼층석탑 뒤에서 바라보면 소백산 자락이 첩첩이 보입니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를 모신 영주 부석사 조사당(祖師堂, 국보 제19호)과 조사당 안에 모셔진 부석사 조사당 벽화(국보 제 46호)가 둘 다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조사당 안의 벽화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존처리작업 중이고,
현재 걸려있는 벽화는 모사작입니다.
조사당 처마 아래에 의상이 입적하기 전에 꽂은 지팡이가 자랐다는 선비화(콩과 식물인 골담초)가 철책으로 보호되어 자라고 있습니다.
조사당 아래쪽에는 자인당(慈忍堂)과 응진전(應眞殿)이 있습니다.
자인당 안에는 세 구의 석조불상이 모셔져 있고,
응진전(應眞殿) 안에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16나한이 모셔져 있습니다.
응진전 뒤편에 단하각(丹霞閣)이 있습니다.
다시 무량수전 앞으로 내려와서 부석사 전각들과 앞쪽의 소백산맥(小白山脈)을 조망합니다.
무량수전 활주 사이로 선묘각이 보입니다.
부석사의 창건설화가 깃든 부석(浮石)
신라 문무왕 1년(661) 의상 대사가 화엄학을 공부하기 위해 당나라에 갔을 때 의상 대사를 연무한 선묘(善妙)라는 여인이 있었다.
의상 대사가 10년간 화엄의 도리를 배우고 깨달음을 얻은 후 귀국길에 올랐다.
뒤늕게 소식을 들은 선묘가 부두로 달려갔을 때 대사가 탄 배는 이미 사라지고 말았다.
선묘는 바다에 몸을 던져 용으로 변신하여 의상 대사가 탄 배를 호위하여 무사히 귀국하게 하였다.
그 후 의상대사가 화엄의 도리를 널리 펴기 위하여 왕명으로 이곳 봉황산 기슭에 절을 지으려고 할 때, 이곳에 살던 많은 이교도들이 방해하였다.
이때 선묘 신룡이 바위를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기적을 보여 이교도를 물리쳤다.
그리하여 이 돌은 '부석(浮石)'이라 불렸으며 사찰 이름을 '부석사(浮石寺)'라고 불렀다.
선묘 신룡은 부석사를 지키기 위해 석룡으로 변신하여 무량수전 뜰 아래에 묻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부석 글씨 옆에는 '선원록 봉안사 낭원군 계유동(璿源錄 奉安使 朗原君 癸酉冬)'이라는 글이 씌어있습니다.
오대산 사고에 선원록을 봉안하는 임무를 맡은 낭원군이 계유년(1693) 겨울에 지나갔다는 기록입니다.
부석 아래쪽에 산신각(山神閣)이 있습니다.
기와를 얹어 장식한 낮은 돌담길을 따라 내려갑니다.
일주문을 나오면 과일을 파는 노점 앞에 파라솔에 가려진 큰 바위가 하나 있습니다.
바위에는 초서체(草書體)로 '허문동천(虛門洞天)'이라고 씌어져 있으나 파라솔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고 파라솔 틈 사이로 '門洞) 두 글자만 겨우 보입니다.
영천에 내려오니 분수를 작동하여 영롱한 무지개가 보입니다.
주차장 앞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소수서원으로 이동을 합니다.
<참고자료>
[해설-안양문화유산해설사회 박석환 회장]
[2024 문화유산해설사 양성교육 및 문화유적 탐구 영주 역사문화 답사 자료집-안양문화원]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산사-궁궐문화원]
첫댓글 강호인 포토님
정성가득한 답사여행기록 감사합니다~~~
회장님의 명품 해설을 들으면서 다니는 답사는 행복의 길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