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칼럼
납량영화 ‘죠스’ 성탄영화 됐더라면?
서울대총동창신문 제484호(2018. 7.15)
성기홍 사회86-90 연합뉴스 논설위원, 본지 논설위원
여름이다. 시원한 극장에서 블록버스터 영화 관람하는 게 무더위 날리는 데는 최고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죠스’는 대표적 납량 영화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원조인 이 영화는 1975년 여름 개봉하자 북미 영화시장을 휩쓸었다. 최초로 흥행 수익 1억 달러를 돌파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당초 이 영화는 여름이 아니라 1974년 말 겨울 개봉을 노렸다. 납량영화로 기획된 게 아니라는 얘기다. 그때 영화 시장은 연말이 대목이고 여름은 비수기라 돈 들인 영화들은 성탄절 시즌을 겨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는 제작 지연에다 예산 초과로 완성이 늦어져 성탄절에 개봉할 수 없었다. 스필버그 계획대로 촬영이 이뤄지지 않았다. 리얼리즘을 향한 그의 집념으로 스튜디오 물탱크 세트가 아니라 실제 바다 촬영을 강행했지만 악천후로 난항을 거듭했고, 막대한 비용을 들여 특수 제작된 기계상어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낭패였다. 차질이 빚어지자 제작팀 내부에서는 ‘Jaws’가 아니라 ‘Flaws’(결함)라고 부르는 자조까지 나왔다. 당시 서른 살도 채 되지 않은 신예 감독 스필버그는 “개봉 예정 날짜보다 100일 이상 넘겨 영화를 완성하는 감독은 아무도 없었다. 이러다가 영영 헐리우드에서 발붙일 수 없겠다”는 걱정도 했다고 훗날 회고했다.
하지만 스필버그는 여러 압박에 굴하지 않고 독창성과 상상력, 파격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발상을 전환해 ‘상어가 없는 상어 공포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공포스러운 상어 모습을 담는 촬영을 포기하는 대신, 카메라를 상어의 시점에 맞춰서 움직이도록 했다. 해수욕하는 여성을 향해 상어의 눈높이에서 음산하게 접근하는 앵글로 관객들이 피해자와 같은 공포감을 느끼도록 의도한 촬영이었다. 또 상어의 등장을 암시하는 장면마다 존 윌리엄스의 극적 음악(지금은 공포와 위험을 상징하는 음악이 됐다)을 깔아 긴장감을 서서히 조여오도록 했다. 상어를 보여주지 않으면서, 오히려 관객의 상상을 자극해 공포를 극대화시킨 서스펜스 영화를 만들었다.
수개월 지연 개봉된 죠스는 여름 스크린을 장악했다. 해수욕장은 텅 비었다. 죠스 흥행을 계기로 헐리우드의 제작, 투자, 배급방식의 판도가 바뀌었다. 영화 비수기였던 여름철이 블록버스터 흥행 시즌으로 바뀌었다. 뜻하지 않게 죠스는 영화사의 기념비적 영화가 됐다.
스필버그가 당시 ‘매뉴얼’대로 제작에 임했더라면 어땠을까. 대다수 감독들처럼 모험보다는 안정성을 추구하고, 촬영 사고의 변수를 최소화하려 스튜디오 촬영에다 그래픽을 가미해 화면에 상어를 담았다면, 또 하나의 평범한 괴물영화가 탄생하는 데 그쳤을 수 있다. 청년 초짜 감독 스필버그는 안정성보다는 모험과 도전을 택해 대박과 더불어 영화판의 혁명을 이끌어냈다.
세상의 일들은 행위자의 의도와 계획대로만 전개되지 않는다. 예상하지 못한 돌출 사고들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또 다른 행위자의 의도와 계획과 충돌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변수들에 유연하고 창의적으로 대응하며, 충돌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해 조율하는 능력이다. 원칙을 힘있게 끌고 가는 용기와 비전도 필요하다. 스필버그가 영화계 거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요즘 현실에서 상상 그 이상의 일, 영화보다 드라마틱한 일들이 벌어진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많은 이들이 공상 과학영화로 생각할 것”이라 빗댄 북미 정상회담이 대표적이다.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세계 1위 독일을 2 대 0으로 꺾었던 일도 동화 같은 얘기지만 현실이다. 감동은 파격에서 비롯된다. 예상치에서 움직이면 감동은 없다. 관성에 따라 행동하면 혁신도 없다. 파격 뒤에는 용기와 의지가 있기 마련이다. 역사가 도약해가는 방식이다. 역동하는 여름, 블록버스터 영화 홍수 속에서 스필버그의 도전과 파격을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