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날 주시니 감사합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복음을 듣는 예진이의 눈이 반짝입니다.
이 어린 영혼의 깊은 곳에 복음이 잘 심겨지게 하옵소서.
오늘은 눈 수술 후 힘든 회복의 시간을 보내셨던 서목사님 그리고 사모님을 만나 교제합니다.
서로 사랑으로 격려하게 하시고
저희의 모든 대화에 성령님 간섭하셔서 깊은 은혜의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주님의 보혈로 제 영혼을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본문 주해)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는 이 땅에 있는 모든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1~7절 : 계시록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는 바울이 개척하거나 사역했던 곳이다.
그중 바울 사도가 삼년을 밤낮 눈물로 복음을 전한 교회, 에베소 교회에 보낸 칭찬과 책망의 말씀이다.
에베소교회 사자들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은 ‘오른손에 있는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그리스도’로 묘사한다.
그리고 2, 3, 6절은 에베소 교회가 받은 칭찬의 말씀이다.
그 칭찬은, 에베소 교회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이다. 또 니골라당을 미워한 에베소 교회의 처사를 칭찬한다.
‘니골라당’은 초대교회에서 처음 선택한 일곱 집사(행6:5) 중의 하나인 ‘니골라’로 추정한다.
니골라는 안디옥 사람(헬라인)으로 유대교에 입교했다가 다시 그리스도교로 전향했는데, 후에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아 이단사상을 갖게 된 자이다.
4, 5절은 에베소 교회에 대한 책망의 말씀으로, ‘처음 사랑’을 회복하도록 회개하라는 것이다.
‘처음 사랑’이란 복음을 처음 듣고 알게 된 사랑이다.
우리가 연약할 때에, 죄인 되어 있을 때에,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을 때에,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심이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이다.
‘처음 사랑’이란 이 하나님의 사랑을 복음으로 받고 이 사랑을 같이 받은 사람과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는 이단을 분별하여 내느라고 애를 쓰다가 그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다. 다른 복음을 비판하다가 복음이 주려고 하는 ‘처음 사랑’을 놓쳐버리는 경우이다.
그러므로 ‘회개하지 않으면 네 촛대를 옮겨버린다’고 한다.
‘네 촛대를 옮겨버린다’는 것은, 이 편지가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보내는 편지이므로, 그 교회의 감독, 장로, 목사의 사역을 못하게 해 버린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이것은 말씀을 전하는 자(사자)만이 아니라 모두가 다 들어야 할 말씀이기에 귀 있는 자들은 들으라(7절)고 하신다.
7절은 이기는 자에 대한 약속이다.
이런 자들은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서 먹게 하신다.
요한복음에서 하늘에 있는 생명 나무의 모형은 아들이 달려 죽으신 십자가이다.(요3:14~15)
그러므로 생명나무 열매란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인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다.
책망으로도 돌이키지 않으면 징계를 하셔서라도 그 십자가로 이끄심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8~11절 : 교회는 정치적인 핍박, 이방 종교의 핍박,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환란을 당한다.
서머나 교회의 감독인 폴리갑은 사도 요한의 제자인데 황제숭배를 거부하다가 순교한다.
환란으로 인한 궁핍 속에 있는 서머나 교회에게 주님은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로 묘사된다.
주님에 대한 이 표현은 환란과 궁핍 속에 있는 교회에게 참된 위로와 소망이 될 것이다.
환란과 궁핍은 외적인 압제와 실제적인 가난을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실상 부요한 자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즉 이들은 ‘영적으로’ 믿음에 부요한 자인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이들을 비방하는 유대인들을 ‘사탄의 모임’이라 하신다.
유대인들도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지만 이들은 구원자 그리스도를 거부한다. 그들이 볼 때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사실은 율법에 반하는 거리낌이 되었던 것이다. 특히 주님께서 그들을 사탄으로 규정하신 것은, 참된 신앙과 고백에서 등을 돌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님은 이들을 칭찬하시지만 장차 고난을 받을 것을 말씀하신다. 환란이나 궁핍이 호전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고난이 그들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마귀가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받게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시험은 영원하지 않으며 한계(열흘 동안) 환난을 받는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죽도록 충성하라’라는 요구가 주어진다.
이 ‘충성’은 사람들이나 그들이 만든 조직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신실하라는 말씀이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생명의 관’이다.
생명의 관은 ‘의의 면류관’(딤후4:8), ‘소망,기쁨, 자랑의 면류관’(살전2:19), ‘영광의 관’(벧전5:4), ‘생명의 면류관’(약1:12) 등으로 표현된다.
이기는 자에 대한 약속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 것이다. 생명을 얻은 자는 둘째 사망에서 벗어난다.
둘째 사망이란 주님의 재림 때 심판을 받아 영벌에 들어가는 것을 가리킨다.
(나의 묵상)
에베소 교회가 한 일은 대단하다.
이단을 분별하고, 다른 복음을 분별하고 또 그러한 것들을 내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런데 이런 대단한 일을 한 에베소 교회에 대한 주님의 책망은 무시무시하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을 회개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겨버린다고 하신 것이다.
촛대를 옮겨버린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의 세력이 줄어드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님의 교회’로 인정하시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잘한 일(행위와 수고와 인내 그리고 이단 분별 등)이 다 무효화 되어 버리는 것일까?
처음 사랑이란 복음을 처음 듣고 알게 된 사랑이다.
우리가 연약할 때에, 죄인 되어 있을 때에,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을 때에,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심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확실히 아는 것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이런 사랑으로 시작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조직화 된 교회 안으로 들어와, 노력하고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을, 마치 주님과의 관계 안에 들어와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어느 새 잘 조직된 에베소 교회는 하나님과 교제하고 사귀는 관계를 잃어버린 것이다.
오늘날 주님과 교제하지 않아도, 교회에 모이는 숫자가 많아지고, 많은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것을 부흥했다고 여기는 것과 같다.
이런 교회 사자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신다.
‘회개하지 않으면,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네 촛대를 옮겨버릴 것’이라고....
처음 사랑을 버리고 오직 조직화 된 교회를 위하여 마음을 다 쏟고 있는 한, 예수님의 교회로 인정받을 수 없으며 통째로 버려지리라는 경고이다.
이에 비해 서머나 교회는 주님께 칭찬만 들은 교회이다.
유대인들과 황제 숭배를 요구하는 로마 당국으로부터 핍박을 받았던 서머나 교회는 궁핍에 처해있었고, 에베소 교회처럼 눈에 보이는 확고한 체계를 갖춘 조직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서머나 교회를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환난과 궁핍 속에서도 교인 각자의 마음이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서 처음 사랑을 유지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께 연결된 자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부요한 자가 아니겠는가?
주님께서 주시는 ‘부요함’은 처음 사랑이 계속 유지될 때 나타난다.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심과 같이 처음부터 나를 완벽하게 사랑하셨지만, 나의 ‘처음 사랑’을 생각하면, 참으로 미미하고 부실했다.
내가 연약할 때에, 죄인 되어 있을 때에,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을 때에, 나를 사랑하셨다고 성경은 말씀하였지만, 나는 시큰둥했었다.
그런데 ‘사랑’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그 미미한 마음을 주님께서 주관하여 주신 것이다.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 주님과 교제하는 이 10년 동안 주님에 대한 나의 사랑이 쌓여지고 또 쌓여졌다.
내가 ‘부요한 자’라는 말씀을 듣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나는 분명 ‘처음 사랑’보다 ‘더 진한 사랑’을 가지게 되었다.
비록 에베소 교회가 한 일만큼 하지도 못하는 존재이지만, 이기는 자에게 주신다고 하신 약속인 생명나무 열매를 나는 지금도 먹고 있다.
그것은 날마다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고 있기 때문이다.
또 서머나 교회처럼 칭찬만 듣지 못해도 내게 주어질 생명의 면류관에 대해서는 추호의 의심도 없다.
그것은 나는 여전히 부족하여도, 그런 나를 언제나 십자가로 이끄시는 성실하신 주님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묵상 기도)
주님,
세월이 흐를수록 ‘처음 사랑보다 더 진한 사랑’을 가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사랑의 마음으로 에베소 교회의 책망을 받아들입니다.
이 사랑의 마음으로 서머나 교회의 칭찬에 귀 기울입니다.
부족하고 부족한 자, 주님의 참다운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